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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던지 뛰어들던지 친구 아기의 돌을 맞아 모처럼 친구들이 모였다. 서울에서 수원에서 강화에서 빗길을 달린 친구들이 참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홀가분하게 아무 때나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던 전과는 달리 부인과 아이들, 어느새 우린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달라진 건 그런 외형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눈에 띄지 않는 그 무엇, 자주 만날 수 없었던 시간을 두고 무엇이 어떻게 지나고 있었는지 우리는 몰랐다. ‘아예 외면하던지, 아니면 흠뻑 뛰어 들던지‘ 영화 속 한 대사가 가슴에 박힌다. 현장과의 거리에서 오는 괴로움, 거친 괴리감, 그렇다, 선택할 수 있는 건 그것이었다. 외면하던지, 뛰어들던지. - 1988년 2021. 7. 3.
이 집사님께 약비라 불릴 정도의 단비가 실낱같지만 계속 내립니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비인지 모르겠습니다. 말랐던 건 대지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창밖으로 마주 보이는 방앗간의 참새도 젖은 몸을 말리려는지 이젠 보이질 않습니다. 강 너머 산이 비안개에 가려 연필로 그은 듯 산등성이만 드러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교인들과 오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일손 멈출 수 있었던 교인들과 모처럼 점심을 같이 해 먹고선 식탁에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지요. 요즘 대학생들이 왜 미국 물러가라 하느냐 묻기에, 짧은 지식으로 이렇게 저렇게 대답했더니, 그럼 바로 우리들을 위해 그러는 거네요 하며 새삼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잎담배를 경작하는 이곳에선 양담배 수입 문제가 심각한 일이지요. 교인들.. 2021. 7. 2.
주의 깊게 살피고, 마음을 다해 응답해요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말하기를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줄테니 가만히 있거라’ 할 수 있겠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 눈이 잘 보여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 줄 수 있을 것이다."(마 7:3-5)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일기가 고르지 않아 생활에 불편이 많습니다. 불볕더위에 시달리지 않아 다행이기는 하지만 푸른 하늘만 믿고 우산 없이 외출했다가 비를 만나기 일쑤입니다. 이제 장마철이 다가온다니 더욱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캐나다 서부 지역의 온도가 거의 50도에 육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도 초유의 일이.. 2021. 7. 2.
시골에서 흙내음으로 태어난 ‘칠칠한’ 옛말 ‘속담(俗談)’은 “예부터 민간에 내려오는 쉬운 격언이나 잠언”이라고 합니다. ‘민간(民間)’은 “여느 사람들 사이”를 가리키고, ‘격언(格言)’은 “겪은 이야기”를 가리키며, ‘잠언(箴言)’은 “가르치는 말”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옛날부터 여느 사람들 사이에 내려오던 말이란 ‘시골에서 살며 흙을 만지는 일을 하는 동안 내려오던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속담 = 시골말’인 셈이요, ‘시골 이야기’인 셈입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진 말이요,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겪은 이야기예요. “칠칠하지 못해서 야단을 맞았다면 칠칠하면 되었을 텐데, 왜 우리는 칠칠하지 못하다는 야단만 맞았을 뿐 칠칠함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했던 것일까”(31쪽). “그가 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 좀 보세요. .. 2021. 7. 1.
손과 손 선머슴 손 같다고, 언젠가 아내는 내 손을 두고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 손이 큰데다가 언제 배겼는지 모를 군살이 아직껏 손바닥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각기 다르게 생긴, 그러나 하나같이 못생긴 손톱이 톱니바퀴처럼 꺼칠했고, 영 돌보지 않는 손톱 주변이 지저분했던 것도 그렇게 말한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겁니다. 시골에서 수고한다고 인사차 그러는 거겠지만 이따금 아는 이들을 만나 악수를 하면 손이 꺼칠해졌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예배를 마치면 현관에 나와 교우들과 악수를 합니다. 첨엔 좀 머쓱해 못했는데 막상 하고보니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일일이 손을 마주 잡고 인사하는 것이 그냥 말로 인사하는 것보다 훨씬 정 깊고 친숙하게 여겨집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와 악수를 합니다.. 2021. 7. 1.
어떤 장례 먼저 떠난 큰형님의 장례를 치르고 온 반장님 댁을 방문했을 때, 반장님은 내게 넋두리를 했다. 반장님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참으로 오랫동안 병을 앓던 큰형님이 역시 앓아누운 형수님을 두고 먼저 이 땅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형수님이 교회에 다녔기에 장례는 그 교회에서 맡아서 하기로 했다. 교회에 다니진 않지만 반장님은 형의 장례를 치러주는 교회의 모든 절차를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마지막 날. 아무래도 형을 그냥 보내기엔 뭔가 속이 텅 빈 듯한, 허전하기 그지없는, 나중엔 송구한 마음이 들어 반장님은 찬밥에 냉수 한 그릇이라도 떠놓고 절이라도 한 번 하고 싶었다. 그래야 맞지 싶었다. 그게 형을 먼저 보내드리는 동생의 도리라 여겨졌다. 그래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안 된다고 .. 2021. 6. 30.
사람은 기계가 아닌데 작실의 김천복 할머니, 섬뜰의 준이 어머니, 단강의 안갑순 집사님 마을대표인양 세 분이 모였다. 주일 낮 예배, 재종을 치고서 몇 곡 찬송을 불렀지만 더 이상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린 준이와 소리, 아내, 나까지 합하면 7명이다. 아마 교회가 세워진 이래 가장 작은 인원이 모였지 싶다. 전날 오랜만에 내린 비, 비 기다리며 미루어온 파종을 주일이라 해서 미룰 순 없었던 거다. 어버이 주일, 혹 모자라지 않을까 염려하며 산 카네이션 꽃이 뒤에 덩그마니 남았다.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고, 어쩜 내 견디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바로 그 숫자일 거라고 그렇게 누누이 자신에게 이르면서도 역시 견디기 어려운 건 숫자에서 오는 무게감이다. 한두 번 쌓이다 보면 게을러지고, 타성에 젖게 되고, 굳게 되는 법, 두.. 2021. 6. 28.
농사꾼 국회의원 “원성 – 횡성 농민 만세!” 새벽, 의외의 결과를 대하며 내가 이긴 듯 괜히 신이 났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누구 말대로 계란으로 바윌 내려치는, 보나마나 결과가 뻔한 일이라고 밖엔 달리 생각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그는 당선되었다. 민주당의 박경수 후보. 내게는 집사로, 속장으로서의 호칭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바로 옆 정산교회의 충성속(담안지역) 속장이기 때문이다. 촌티가 흐르는 사람. 기관장들 쭉 대동하고 나타났던 민정당 후보에 비해, 조용히 초라하게 인사차 다녀가며 ‘모든 걸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고 했을 때만 해도 한편 안쓰러웠던 사람. 놀랍게도 그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를 이백 몇 십 표 간발의 차로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원래 강원도가 여당 밭인데.. 2021. 6. 26.
생명은 거기 있다고 "유약(柔弱)은 삶의 속성이요, 견강(掔剛)은 죽음의 속성 – 老子" 인간은 그 약함으로 살아남는다. – 장폴, 샤르트르 우연히 펼쳐든 오래된 작은 노트. 맨 앞장에 그렇게 쓰여 있다. 언제 옮겨 적었는지. 한 겨울 눈 덮인 깊은 산 속에 있으면 뚝뚝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들린다는, 폭풍 속 거센 비바람을 견디던 나무가 조용히 내려앉은 눈에 꺾이더라는 法頂스님의 말.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한 때라던 바울의 말. 문득 여러 얘기들이 한 분위기가 되어 가슴으로 전해진다. 작고 여린 것, 생명은 거기 있는 거라고. - 1988년 2021.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