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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사랑 주일 저녁예배, 오늘은 특별히 박종구 씨 가정을 위해 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박종구 씨는 변정림 씨 남편인데 얼마 전 발에 심한 동상이 걸렸다. 술에 의지해 살아온 박종구 씨, 술에 취하면 고래고래 큰 소리가 작실 골짜기에 밤늦게까지 가득하다. 얼마 전 동네에 결혼식 잔치가 있던 날, 몹시 춥던 날이었는데 그날 동상이 걸렸다. 한낮에 술에 취한 채 나간 박종구 씨를 밤 11시가 되어서야 윗작실 논배미에서 발견을 했다. 마실을 갔다가 길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발견을 한 것이었다. 연락을 받은 집배원 아저씨가 놀라 달려갔을 땐 온몸이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짚단에 불을 놓아 한참을 녹인 다음에야 겨우 등에 업고 집으로 내려올 수가 있었는데, 그 사이 발에 심한 동.. 2021. 7. 18.
실컷 멀미를 하며 보건소장이 써준 소견서를 읽고 이리저리 부어오른 목을 살펴 본 의사는 너무 늦게 왔노라고 쉽게 말했다. 접수, 대기, 그토록 한참을 기다려 만났는데도 대답은 간단했다. 환자 먼저 나가 있으라고 한 후 나눈 이야기는 어두운 내용이었다. 방법은 수술뿐, 수술도 장담할 수는 없겠노라는 것이었다. 약으로서 치료나 병의 악화를 막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수술을 하면 얼마나 들까요? 의료보호카드가 있는데요.” “글쎄요 그걸 제가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진찰비가 20-30만원, 수술비는 50-60만원 정도 될 겁니다.” 머릿속에 얼핏 100만원의 숫자가 지난다. “중요한건 돈이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을 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결정일 거요. 돈이야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소.” “실은 저희들에겐 돈도 문제가.. 2021. 7. 17.
춤 그리고 멈춤 하늘과 땅 사이 숨으로 피어나는 춤 비와 바람의 북장단이 울리면 가슴이 들썩인다 발뒤꿈치에서 움터 손끝으로 흘러 춤으로 피어나는 숨 춤은 멈춤에서 시작하여 멈춤으로 끝나는 숨 춤을 찰라로 쪼개면 멈춤의 이어짐 정중동(靜中動) 동중정(動中靜) 신에게 올리는 가장 아름다운 춤은 화목 제물이 되는 스스로 온전한 춤은 온전한 사랑 안에 머물러 비로소 쉼을 얻는 멈춤 바깥에서 헤매이며 구하기보다는 멈추어 안으로 시선을 거두는 기도 한 점 숨으로 머무는 고요 침묵의 기도와 사랑의 숨쉼 꽃과 나무의 춤 그리고 멈춤의 평화 사람의 본래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의 숨 2021. 7. 17.
가난하지만 작실속 속회, 유치화 청년 집에서 모이는 날이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해져야 일손을 놓고 집에 돌아오는 사람들, 그제야 씻고 저녁 먹고 하면 어느덧 시간은 저만큼이다. 일찍 모이자고 약속했으면서도 밤 10시가 넘어서야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치화 씨가 주변에 모임을 알리러 나간 사이 치화 씨 어머니가 툇마루에 촛불 하나 밝히고 사람들을 기다렸다. 아직 유치화 청년 집에는 전기가 없다. 오랫동안 비어 있어 전기가 끊긴 집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둘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 사는 내력은 길고도 슬프다. 삶이란 저리도 기구하고 질긴 거구나 싶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며 흔들리는 촛불 앞에 둘러 앉아 나누는 이야기는 불에 관한 이야기였다. “옛날엔 등잔불 아래서도 명주 올이 잘 보.. 2021. 7. 16.
열 감지기가 울렸다 열 감지기가 울렸다 가게 문 입구에서 37.4도 순간 나는 발열자가 된다 "입장하실 수 없습니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지 않았던 것이 원인임을 스스로 감지한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집 안에서는 선풍기를 돌리고 창문을 조금 열어둔다 차 안에서는 뒤에 창문 두 개를 다 열고 보조석 창문을 반쯤 열고 운전석 창문은 이마까지만 내린다 비록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맺히더래도 여름인데 몸에서 땀이 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이런 나는 가족들 사이에선 꼰대가 되기도 하고 밖에선 발열자가 되어서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 인도 델리의 재래 시장인 빠하르간즈 5월로 접어들던 무렵의 무더위를 몸이 기억한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선 숨조차 쉴 수 없었던 무더움 그곳의 초여름 더위는 무더움을 넘어.. 2021. 7. 16.
단순한 삶으로의 초대 “나는 잠시 동안이나마 당신 옆에 앉을 은총을 구합니다. 지금 하던 일은 뒷날 마치겠습니다. (중략) 지금은 말없이 당신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이 조용하며 넘치는 안일 속에서 생명의 헌사를 노래할 시간입니다.”(타고르, , 김병익 옮김, 민음사, p.18) 긴장된 시간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지뢰밭 위를 걷는 것처럼 조마조마합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아도 긴장된 표정이 역력합니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보면 불편합니다. 함부로 지적했다가 시비에 휘말릴 것 같아 얼굴만 찌푸리고 재빨리 지나칩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할 순 있지만 마주 선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 일을 삼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한계를 모르는 자유는 위험합니다. 앞을.. 2021. 7. 15.
지지 못한 지게 지게를 지고 논두렁길을 걸어오는 사람, 작은 키에 독특한 걸음, 아직 거리는 멀지만 그분이 신집사님임을 안다. 당신 키보다 높은 나무를 한 짐 졌다. 좁다란 논둑길을 걷는 걸음새가 영 불안하다. “집사님!” 땅만 쳐다보고 오던 집사님이 깜짝 놀라 섰다. 이마에 알알이 땀이 맺혔다. 장갑도 없이 꺼칠한 손. “힘드시죠?” 뻔한 질문이 송구하다. 많은 말은 필요 없다. 겉치레도 그렇다. 다시 웃고 마는 집사님. “제가 한번 져 볼게요.” “안 돼요! 전도사님.” 집사님은 놀라 막는다. 조금만 져 보겠다고 몇 번을 얘기한 끝에 지게 아래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을 수 있었다. 지게에 등을 대고 두 팔을 집어넣어 어깨띠를 양쪽 어깨에 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깨끈이 어깨에 걸리질 않는다. 주르륵 팔뚝으로 내려와.. 2021. 7. 15.
멈춤 두 다리를 포갠 꽃잎의 평화 허리를 세운 나무의 고요 하늘을 머리에 인 고독이라는 가장 커다란 방을 채우는 침묵이라는 가장 커다란 울림 멈춤의 흙그릇에 머무는 숨 2021. 7. 15.
앞으로 걷는 게 게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썰물이 되면 나타나는, 바닷가 갯벌에 사는 흔한 게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이상한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도 생각지 않은 것을 혼자 생각하면 이상하다고 하더군요. ‘우린 왜 옆으로 걸을까. 앞으로 걸을 순 없는 걸까?’ 그는 앞으로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옆으로 아니라 앞으로야.’ 맘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을 했습니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여 마신 후 조심스레 발을 뻗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떨렸습니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참고 다른 한 발을 마저 옮겼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발은 옆으로 가 있었습니다. 처음이니까 그렇겠지 하며 다시 한 번 해 보았습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생각뿐 발은 옆으로 갔습니다. 몇 번을 더 .. 2021.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