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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맞이하는 기도 선선한 가을 바람, 익어가는 강아지풀 한여름 무더웠던 마음까지 적셔주는 빗소리 돌담 위로 대문 위로 목련나무 위로 밤하늘로 오르려는 새하얀 박꽃 어둔 밤하늘에 드문드문 하얀 별 숨어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 들숨날숨 아, 살아있음 그리고 하늘과 이 땅에 펼쳐 놓으신 무수한 아름다움 차고도 넘쳐 눈을 어디서부터 두어야 할 지 무엇부터 담아야 할 지 매번 알지 못하여 순간 길을 잃을 때면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눈을 감습니다 순간의 새로움으로 또다시 맞이하는 설레임과 흔들림으로 시작하는 오늘 새로운 오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새로운 마음 뿐임을 놓치지 않으려 오늘도 거져 주신 하루에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지 태초의 고민인 듯 거듭 새로이 생각하는 하루입니다 기뻐하는 오늘 감사하는 오늘 기도하는 오늘 제.. 2021. 8. 16.
엄한 숙제 학생부 토요모임, 초등학교 어린이까지 모두 열 명이 모였다. 백지 앞에 서서 감히 붓을 들지 못하고 마침내 울고 만다던, 그런 때가 종종 있다던 어느 노화가의 고백이 생각난다. 나도 지금은 백지 앞에 선 것이다. 맨 처음 시작한다는 것의 가슴 떨림, 성경을 공부한 후 탕자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어서 돌아오오’ 찬송을 가르친다. ‘어서 돌아오오’ 몇 번을 반복하지만 자꾸만 그 부분이 틀린다. 그래, ‘어서 돌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지금은 비록 어린 나이에 이 노래를 배우지만 언젠가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혹 잘못된 길 멀리 떠날 때 ‘확!’ 뜨겁게 이 노래가 되살아오기를. 잘못된 길로 가는 발목 와락 붙잡을 수 있기를. 예배를 마치고 부활절을 준비했다. 둘러앉아 삶은 계란에 ‘축 부활, 예수 .. 2021. 8. 16.
서로 다른 손길 훔쳐간 건 쌀 두 가마뿐이 아니었다. 이제껏 그런 일이 없었는데 반장님 댁 쌀이 없어졌다. 아침에 일하러 나간 사이, 그 잠깐 사이에 마루에 있던 쌀이 없어진 것이다. 일거리 쌓여있는 마당에는 봉고차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낮이나 밤이나 문 열어 놓고 살던, 서로가 서로를 믿으며 열린 마음으로 살던 마을에 전혀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쌀 두 가마의 값보다는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난 데서 더욱 당황해 하던 마을 사람들. 한두 사람의 나쁜 욕심이 던진 어두운 파장은 마을 사람들의 얼굴로 쉽게 번졌다. 어쩜 내일부턴 대문이 닫히는 건 아닐까. 닫힌 문마다엔 굵은 자물쇠가 걸리는 건 아닐까. 나즈막이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이웃집들 사이엔 담이 높아지고 높아진 담 따라 마음도 갇혀 각자 타인이 되는 .. 2021. 8. 15.
아이들을 만나다 주일 오후에 아이들이 놀러왔다. 교회에 나오는 아이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중학교 학생들이었다. ‘너 먼저 들어가’ 하며 서로 뒤로 뺏지만, 모두들 들어왔다. 수원종로교회 청년이 보내준 들깨차를 타서 마시곤 둘러 앉아 게임을 했다. ‘밍맹몽’, 단순하면서도 틀리기 쉬운 게임이다. 조금씩 어색한 분위기가 지워진다. 그냥은 쑥스러워 하지 못했던 노래도 게임에 틀리자 자연스레 부른다. 게임을 마치고 ‘화전놀이’라는 동요를 가르쳐 주었다. ‘달님처럼 둥그런 진달래 꽃전은 송화가루 냄새보다 더 구수하다’ 노래 중 제일 어려운 그 부분을 배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기타반주에 맞춰 악보도 없는 노래를 잘 불렀다. ‘개밥’이란 단편소설도 들려줬다. 현진건인.. 2021. 8. 14.
캄캄한 밤에 다닐지라도 “노력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절망에서 출발하지 않고도 성공에 이를 수 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빈센트 반 고흐, , 신성림 옮김, 예담, p.82)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입추가 지나면서 아침저녁으로 바람결이 달라졌습니다. 새벽이면 홑이불을 끌어당기게 됩니다. 그렇게 보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뭇잎도 그 무성하던 초록이 조금 풀이 죽은 것처럼 보입니다. 매미소리도 조금 애잔해졌습니다. 참매미, 말매미, 쓰름매미, 유지매미 소리가 뒤섞여 숲을 가득 채우더니 이제는 제풀에 꺾인 듯 소리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계절은 이렇게 어김없이 순환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 2021. 8. 12.
마음으로 통하는 한 언어 오후에 초등학교에 다녀왔다. 교장 선생님을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소탈하신 분이셨다. 자신의 교육철학, 현 교육제도의 문제점, 은사와 제자라는 말, 교육자로서 갖는 보람 등을 말씀하셨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해서인지 교장 선생님의 웃음은 유난히 맑고 많으셨다. 나이가 인간의 순박함을 지워간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쉬운 생각이지 싶다. 전교생이 80명이 채 안 되는 이 곳 단강초등학교. 이곳의 어린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을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어린이 문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일 년에 한번쯤이라도 전교생의 글을 모아 하나의 작은 책을 만드는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좋은 선물 되겠지 싶다. 서툴더라도 건강한 글들이 실리리라. 어쩌면 농촌에 대한 가장 꾸임 없.. 2021. 8. 12.
해바라기 응달진 씽크대 주방 집기들이 아파트 베란다로 다 나왔다 물속에서도 물기를 머금을 줄 모르던 집기들이 모처럼 누워서 축 늘어져 해바라기를 한다 어떻게 햇살을 담뿍 머금었는지 눈이 부시도록 빛을 내뿜는 걸 아름답게 바라보면서도 해바라기 씨앗처럼 까만 점이 생길까 샛노란 꽃잎처럼 피부가 탈까 쓸데없는 걱정부터 앞서는 나는 아직 멀었다 살면서 해바라기 한 번 실컷 못하고서 그늘진 눈가에 실주름만 진다 해를 등에 지고 일하는 사람들의 해바라기처럼 8월의 햇살에 익어가며 씨앗에게 자릴 내어주는 꽃잎과 밭고랑을 닮은 굵은 주름살 앞에 늘 부끄러운 마음의 골마다 주름이 진다 2021. 8. 12.
갓 태어난 송아지 신기하게도 송아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뛰어다닌다. 오늘 지 집사님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는데 영양부족인지 일어나질 못했다. 모두 일터에 나간 한낮에 송아지를 낳은 모양이었다. 저녁 어둘 녘에야 일터에서 돌아와서 외양간 오물을 치우면서야 송아지를 발견한 것이다. 저녁예배를 마치고 우사에 가보니 어미 소가 열심히 핥아주고 있는데도 그때까지 송아지는 털이 마르지 않았다. 송아지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하려다 맘 속으로 대신한다. 신앙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너무 꾸민 몸짓 같았다. 다음날 원주에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우사에 다시 들리니 송아지가 일어섰다. 일도 못 나가고 하루 종일 송아지를 돌본 집사님의 정성이 지극했다. 그러나 겨우 일어섰을 뿐 엄마 젖을 찾을 줄도 빨 줄도 몰라 우유를 타서 줘야 한다. 추.. 2021. 8. 11.
무딘 나를 흔드는 것은 무딘 나를 흔드는 것은 스쳐 지나는 꽃바람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느라 머문 당신의 고요한 눈빛입니다 닫힌 귀를 열리게 하는 것은 간지럽히는 꽃노래가 아니라 우리 사이를 빈틈 없이 채운 당신의 평온한 침묵입니다 2021.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