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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50

심심함 한희철의 얘기마을(50) 심심함 “승혜야 넌 커서도 여기서 살고 싶니? 아니면 고모 살고 있는 도시에서 살고 싶니?” 자주 사택에 놀러오는 승혜에게 아내가 물었다. 승혜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단강은 싫어요.”“왜?”“심심해서요. 숙제하고 나오면 아무도 없어요.” 심심해서 단강이 싫다는 승혜. 그건 승혜만한 아이뿐만이 아니다. 떠난 많은 사람들, 그들도 심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가버리는 무심한 세월이 싫어서, 두려워서 떠난 것이 아닌가. 잃어버린 살맛에 대한 두려움이 아이들에게까지 번져 있다. 뿌리가 야위어가고 있는 것이다. 심심함으로... - (1990) 2020. 8. 10.
"일단 사람이 살아야합니다" 신동숙의 글밭(208) "일단 사람이 살아야합니다" 제주, 부산, 광주, 대전, 천안, 인천, 서울, 철원, 영동, 하동, 구례 등 전국적으로 잇달아 올라오는 비 피해 소식에 무거운 마음으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반도 남단에 있는 하동의 화개 장터와 구례의 섬진강이 범람한 모습에 말문이 막힙니다. 목숨을 구하려는 다급한 목소리가 담긴 김순호 구례 군수님의 글을 허락도 구하지 않고 그대로 옮깁니다. 이렇게 지면에서라도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수해민들에게는 무슨 도움이 될까 싶습니다. "어떤 재산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재산피해가 있어도 인명피해가 있으면 안 됩니다. 그야말로 초토화입니다. 처참합니다. 구례읍 봉서·봉동·계산·논곡·신월·원방, 문척면 월전·중마, 간전면 간.. 2020. 8. 10.
대견스러운 승혜 한희철의 얘기마을(49) 대견스러운 승혜 승혜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대부분 그 나이라면 아직은 응석을 부리며, 숙제며, 지참물이며, 입는 옷이며, 매사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다.그러나 승혜는 다르다.빨래며, 설거지며, 청소며, 못하는 게 없다. 늘 바쁜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나가 놀기 좋아하는 오빠와 남동생.승혜는 불평 없이 집안일을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인사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어린 승혜.승혜가 대견한 건 승혜 엄마만이 아니다. (1989) 2020. 8. 9.
그 얼마나 신동숙의 글밭(208) 그 얼마나 한 송이 꽃봉오리그 얼마나 햇살의 어루만짐그 얼마나 살갑도록 빗방울의 다독임그 얼마나 다정히 바람의 숨결그 얼마나 깊이 겹겹이 둘러싸인 꽃봉오리는고독과 침묵의 사랑방 받은 사랑다 감당치 못해 한 순간 터트린눈물웃음꽃 2020. 8. 9.
어진 손길이 놓아둔 고마운 걸림돌 신동숙의 글밭(206) 어진 손길이 놓아둔 고마운 걸림돌 글쓰기는 이미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양심의 등불을 좁은 발등에 비추어 한 걸음 한 걸음,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어슴푸레한 어둠 속 호젓한 산책길이다. 그렇게 글이 걸어가는 길은 하늘로 난 허공처럼 매끈한 길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땅을 밟고 걸어가야 하는 울퉁불퉁한 길이 마음속 세상 안으로 향해 있다. 바깥 세상과 내면의 세상,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상을 왔다갔다 하면서, 점차적으로 서로가 크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조화로운 드나듦일 수 있다면, 세상은 한결 넉넉해지고 두루 따뜻해지고 더불어 행복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안과 밖을 자주 드나들다 보면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엄연한 사실과 우리 모두는.. 2020. 8. 8.
아기의 손을 잡으며 한희철의 얘기마을(48) 아기의 손을 잡으며 작고 고운 아기의 손을 마주 잡습니다. 품에 안겨 막 잠든 아기, 뜻하지 않은 소리 듣고 놀라지 않도록 가만히 잠든 손을 잡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런지 마음이 그런지 그렇게 손을 잡아주면 아기가 놀라지 않는다고 어른들은 말합니다. 누구일지요. 따뜻한 손 건네 우리 생 마주 잡는 이, 누구일지요. - (1990) 2020. 8. 8.
어느 날의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47) 어느 날의 기도 아무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검은 숲으로 단숨에 드는 새처럼 당신 품엔 그렇게 들고 싶습니다.언제라도 주님. - (1992) 2020. 8. 7.
춥겠다 신동숙의 글밭(205) 춥겠다 여름방학 때서울 가는 길에 9살 아들이 문득 하는 말 "지금 서울은 춥겠다." 지난 겨울방학 때 서울을 다녀왔었거든요 파주 출판 단지 '지혜의 숲' 마당에서 신나게눈싸움을 했었거든요 2020. 8. 6.
보이지 않는 나 한희철의 얘기마을(46) 보이지 않는 나 “마음이 몸을 용서하지 않는다.” 티내지 말자 하면서도 입술이 형편없이 터졌다. 가슴은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서서히 가라앉았고, 덩그런 바위가 그 위에 얹혀 있는 것도 같았다. 거센 해일을 견디는 방파제 같기도 했다. 잠자리에 누워선 철컥 철컥 벽시계 소리가 가슴 밟는 소리로 들렸다. 시간은 어렵게 갔고, 옥죄이는 초라함에도 내가 보이질 않았다. - (1990) 2020.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