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젤의 지혜

가젤의 지혜

 



“자비하신 하나님, 주님께 구하오니,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뜨겁게 원하고, 사려 깊게 탐구하고, 진실하게 인식하고, 온전하게 설명하여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아멘”

-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도

 

빛으로 오시는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마음과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오늘 수학능력 시험을 보고 있는 모든 수험생의 마음도 굳게 붙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날이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저절로 몸이 움츠러집니다. 저는 차가운 음료는 좋아하지 않지만 대기의 서늘함은 좋아합니다. 찬 기운을 느끼며 걸을 때 왠지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렬해지기 때문일 겁니다. 가끔 소파에 느긋하게 기댄 채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강인한 모습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몸을 곧추세우게 됩니다. 사막을 배경으로 사는 이들이나 혹한의 추위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사소한 불편조차 견디지 못하는 우리의 나약한 삶이 떠올라 부끄럽습니다.

 

지금도 몸을 눕힐 한 평의 땅도 방도 없어 거리를 떠도는 분들이 계십니다. 추워하며 살게 해달라고, 이불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헤아리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어느 시인의 마음이 참 거룩하게 다가옵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도 세상에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외양간 말구유에 오신 분을 우리는 주님이라 고백합니다. 대림절이 시작되면서 바로 비대면 예배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지만, 교회 2층 로비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구유가 놓여 있습니다. 바람막이조차 없는 외양간에 눕혀진 아기 예수, 동방박사들은 그 놀라운 기적을 경외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와 나귀와 양도 보입니다. 

 

구유에 소와 나귀를 꼭 등장시키는 까닭은 알고 계시지요? 그것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한 구절과 연결됩니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사1:3) 짐승도 제 주인의 은덕을 아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들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소’와 ‘나귀’는 우리의 부덕함을 상기시키는 일종의 거울입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구절은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슬프다! 죄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님을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사1: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타락하면 가장 추한 것이 되는 법입니다.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로 호명되는 것은 하나님을 등진 이스라엘이지만, 우리라고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구유 앞에 한참 동안 서 있었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을 ‘흉악한 종자’라고 부르셨던 하나님의 마음이 곱다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투미하기만 한 우리 영혼을 닦아 주실 분은 하나님뿐임을 알기에 그 은총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구유 만들기 전통이 시작된 것은 13세기 프란체스코 성인을 통해서였습니다. 1223년 성탄절을 보름 앞두고 그는 로마에서 돌아와 폰테 콜롬보에 있는 은둔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세상을 떠날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성탄절을 뜻깊게 보내고 싶었습니다. 마침 베들레헴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과 함께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왜 그들은 구유를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그는 지인인 죠반니 벨리타의 소유인 그레치오(Greccio)의 동굴에 구유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죠반니에게 서신을 보내 주님의 축일을 잘 지내기 위해 구유를 준비해달라고 말합니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자 합니다. 필요한 것 하나 갖추지 못한 그 갓난아기가 겪은 불편함을 최대한 생생하게 제 두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아기가 어떻게 구유에 누워 있었는지, 그리고 황소와 나귀 옆에서 그 갓난아기가 어떻게 건초더미 위에 누워 있었는지를 그대로 보고 싶습니다.” 

 

죠반니는 성인의 말을 따라 구유를 만들었고, 성탄절이 다가오자 많은 수사와 신자들이 그 구유 앞에 모여 그리스도 탄생의 신비를 경험하고 기쁨을 누렸다고 합니다. 우리도 동일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허물이 많은 우리조차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시는 그 한결같은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세상 물결에 따라 흘러가 버리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영혼의 닻입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가족들이 함께 그런 구유를 만들어보는 것도 신앙적으로 유익할 것 같습니다. 매년 행하는 전통으로 삼아도 좋겠구요.

 

그러나 구유의 참 의미는 가난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낮은 자리에 오셨기에 밑바닥 사람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실 수 있었고, 버림받음의 쓰라림을 견디셨기에 버림받은 이들의 신산스러움을 온몸으로 부둥켜안으셨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이러한지라 예년과 같은 떠들썩한 성탄절은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성탄절의 의미를 더 깊이 되새길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구유에 오신 주님을 떠올릴 때마다 동화작가인 권정생 선생님이 떠오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집에서 쫓겨나 거지 생활도 했고, 병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가 1981년에 이오덕 선생에게 보낸 편지를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몸이 찢겨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면서 그가 생각한 것은 이런 것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은 최악의 고통에서만이 진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추운 사람이, 질병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결코 점잖을 수도 없고, 성스러울 수도 없고, 거룩할 수도, 인자할 수도, 위엄이나 용기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를 찾는 자는 제 목에 오랏줄이 감긴 그 사람뿐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심신의 고통을 지금 맛보고 있는 그 사람뿐입니다. 가장 절실한 인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장군이나 성직자가 아닙니다. 지금 배고픈 사람, 지금 추위에 얼어 죽어가는 사람, 지금 병으로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 온갖 괴로움 속에 허덕이는 사람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밤을 사람들은 각양각색으로 새우고 있을 것입니다. 밤은 평안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수치와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한 것입니다.”(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편지,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 한길사, p.232-3)

 

하나도 그른 것 없는 진실입니다. 지금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겸허하게 그런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대림절 기간이 그런 경청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떠도는 말들, 우리 영혼을 어지럽히는 말들, 사람들을 갈라놓는 말들에 귀를 기울이느라 가장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더러 심신이 고달플 때면 카페에 가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곤 했습니다. 이제는 당분간 카페에 머물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 참 답답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긴장을 푸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아리아나 허핑턴이 들려주는 가젤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가젤은 위험을 감지하면, 예컨대 표범이나 사자가 접근하면 부리나케 달아난다. 그러나 위험이 지나가면 곧바로 멈춰서서 아무런 근심도 없이 평화롭게 풀을 뜯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실제 위험과 상상의 위험을 구분하지 못한다.”(아리아나 허핑턴, <제3의 성공>, p.81) 

가젤의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늘 긴장한 채 살 수는 없습니다. 일상 속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평화를 기뻐하며 누려야 합니다. 느긋한 평화를 추구하십시오. 쌀쌀한 날씨에 감기 조심하십시오. 시간을 마련하여 외로운 벗들에게 손편지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일랜드 축복기도로 여러분을 향한 제 마음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꼭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대의 발이 닿는 곳마다 길이 닦여 있기를

바람이 언제나 그대의 등 뒤에서 불어오기를

오늘도 햇살이 그대의 얼굴을 따뜻하게 비추기를

그리고 단비가 그대의 대지 위에 부드럽게 내리기를

우리가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께서 그 크신 손으로 그대를 붙들어 주시기를

하나님께서 그 크신 손으로 그대를 붙들어 주시기를

아멘.”

 

2020년 12월 3일

담임목사 김기석 드림

posted by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한종호의 '너른마당' 2020. 12. 5. 10:08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 리영희 선생의 <대화> -

  

시대의 의로운 길잡이

 

오늘은 엄혹한 시절, 불의가 판을 치고 거짓이 난무할 때 그러한 권력에 맞서 자유와 진실을 추구한 언론인이자 지식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의 10주기이다. 한 시대를 사상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본인에게 있어서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영광이 무수한 고초와 핍박 그리고 고난이 전제된 것이라면 아무나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그 격동의 시기에, 진실에 대한 깊은 갈구를 해온 세대에게 마치 샘물처럼 솟아오른 존재였다. 그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는 냉전 의식으로 눈이 가려진 시대를 뚫고 진실의 정체를 보여준 위력적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는 한 세대를 길러낸 사상의 은사또는 시대의 교사라는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사상의 은사

 

이보다 더 이상의 기쁨은 없다. 그가 낳은 사상의 자식들이 이제 이 사회 곳곳에서 일전의 지휘관으로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영희 학교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분야는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정치는 물론이고 언론계, 학계, 문화계, 시민운동 등 그의 지적 파장이 도달하지 않은 곳이 없다.

 

리영희 선생의 자서전 격인 대화는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대화자로 등장해서 리영희의 어린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개인이 하나로 엉켜 이루어내는 일대 드라마를 장쾌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그리하여, 리영희라는 개인에 대한 이해와 지식만이 아니라 그가 마주했던 시대의 의미까지 파악하도록 해준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오늘은 어떤 지점에 와 있는지를 성찰하도록 만들어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자서전 대화는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세대만이 아니라,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절실한 일독을 권하게 되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독자들은 그와 같은 시점과 현장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라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했을지 돌아보게 된다. 그건 역사의 중심에 서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교육이자 훈련의 과정이 되기도 한다.

 

하여, 이 시대에 대화를 읽지 않는다면 그는 대화에 끼일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 지난 시대가 겪어온 고통과 우여곡절, 거기에서 탄생한 역사에 대한 열정과 의로운 힘들의 집결, 이를 주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오늘의 시간을 내용 없이 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빛나는 어리석음진솔하고도 뜨거운 육성

 

첫 장을 펴는 순간 독자들은 아마도 근 8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리영희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구어체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이다. 한 의지가 바른 지식인의 삶의 기록이다. 그 기록이 열어가는 길을 따라가 보면 우리는 참으로 줄기차게도 그리고 고집스럽게도 자신의 뜻에 충실해온 지식인의 빛나는 어리석음진솔하고도 뜨거운 육성을 만나게 된다.

  

리영희가 전환시대의 논리를 내놓았을 때, 세상은 여전히 중세였다. 권력의 신학이 지배하고 사상의 종교재판이 당연시되었다. 언론은 세상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왜곡해서 보여주는 임무가 본연의 역할인 듯했던 때였다. 바로 그 시점에서 리영희는 권력자, 기득권 세력에게 악역을 맡은 자가 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세대에게는 복음의 전령자가 된다.

 

베트남을 위해 한국군이 파병되었다는 월남전의 진상이 무엇인지, 권력과 언론의 관계가 도대체 어때야 하는지, 그리고 일본의 군사대국화 전략이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일체의 서술은 그때까지 진리라고 여겨졌던 상식에 일대 타격을 가했다. 그것은 단지 주장이 아니었고, 명확한 논거와 입증 그리고 논박하기 어려운 논리로 무장된, 거짓에 대한 철저한 해부였다. 당대의 젊은이들은 놀라움에 휩싸였고 권력자들은 분노했다.

 

 세계는 전환의 고비를 맞고 있는데, 이 땅은 옛 질서의 철옹성 속에서 흘러간 노래를 군가처럼 부르게 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책을 읽은 젊은이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건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나 도는 행렬을 닮아 있었다. 냉전의 성채야 무너져라, 반공의 무덤은 사라져라, 권력의 기만은 이제 끝이다, 라는 외침이 그 안에서 솟구쳐 나왔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권력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리영희는 여차하면 수인(囚人)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얼굴은 더더욱 빛났고 그의 명성은 이 시대의 영혼 깊숙이 뿌리내렸다. 권력은 강했지만 악했고, 힘 있는 듯 했지만 역사의 정의 앞에서 점점 무력해져 갔다. 리영희는 그러면서 살아있는 신화가 되어 갔고 리영희 학교는 날로 번성해져 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그의 책 우상과 이성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그는 마치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를 연상하게 하는 자세로 거짓과 우상의 기만을 쳐부수었다. 온 시대가 우상의 속임수에 끌려가고 진실과 멀어지는 것을 못 견뎌 했다. 그리고 참지 못한 채, 그의 손에 들린 펜을 이 시대의 우상을 파괴하는 망치로 사용했으며 그로써 사상의 해방구가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리영희는 사상적 자폐증은 곧 자살에 이르는 길임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문화적 편협성은 우리 남한 사회가 해방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광적인 반공주의와 극우 폐쇄사상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문명적, 문화적 후퇴를 겪어야 했던가 하는 사회 경험의 본보기가 되지요. 공산주의 국가들도 지식, 사상, 문물의 차원에서 마찬가지였지. 사상적 자폐증은 곧 자살이요. 공산주의나 반공주의나 다 자살주의임에는 다름이 없어요.”

 

그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언론의 거짓 선전이 난무할 때, 온갖 자료를 통해서 진실의 면모를 파헤친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미국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의 자서전 대화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는 베트남 전쟁 끝에 하나의 확고한 의견을 갖게 됩니다. 미국 자본주의는 그 본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잔인무도할 수밖에 없다, 약소민족에 대한 전쟁 없이는 그 제국주의적 경제, 정치, 군사, 과학기술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확신이예요. 베트남 전쟁이 그 노골적인 본보기이지만, 이미 그때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10여개 약소국을 잇달아 군사적으로 침범, 점령했고 약소 후진국들이 조금이라도 민주적 복지와 자립적 경제정의를 추구하려고 하면 그런 정권들은 미국이 뒷받침하는 반동적이며 미국에 예속된 군부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켜서 전복시켜 왔어요.”

 

미국의 허상을 이렇게 짚은 그는 그 허상의 파악을 넘어서서 미국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범죄를 폭로하고 이에 속지 않도록 경계한다. 미국과 관련한 사상적, 정치적, 역사적 우상을 일거에 깨어버린 것이다.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그런데 책 대화는 그의 지적 형성사만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겪은 인간적 고초와 고뇌가 가감 없이 서술되어 있다. 그가 한때 신문사에서 쫓겨나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어느날 집에 누워 있는데, 옆에서 놀던 소학교 1학년의 큰놈이, 아버지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동생 미정이에게 말하더군. ‘우리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이 없을 것 같아라고 하니까, 동생이 왜 없어?’ 하고 물어요. ‘아버지가 실업자래. 돈을 못 번대하더군요.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참 가슴이 아팠어요. 몇 푼이라도 벌어야겠다 싶어서 그 길로 이병주를 찾아갔지요. 마침 그때 그이가 중편소설 소설 알렉산드리아(1965)마술사(1968) 등 몇 권을 쓴 뒤라 그걸 출판하려고 스스로 아폴로라는 출판사를 냈어요. 결국 내가 그 책 외판을 한 거야. 새끼로 묶어서 들고 다녔어요.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들에게 안기고 월급날에 값을 받아오고 했지요. 그래서 서울의 웬만한 남녀 중학교는 어디 있는지 다 알아요. 제일 고약했던 것이 한성여중이었어. 언덕 위에 있는데 어찌나 가파른지. 거기에다가 눈까지 쌓여 미끄러운 길을 레닌의 말대로 일보 전진 이보 후퇴로 오르는데 그 짓을 엄동설한 내내 했어요그 뒤 이병주가 동양방송 라디오에서 7분짜리 칼럼을 했는데, 그 양반이 자기는 술 먹고 여성사업 하느라고 바쁘다며 나보고 대신 쓰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대신 썼는데, 원고료가 적지 않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1년 남짓을 몇 푼씩 벌어가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어.

 

무척 춥던 겨울 어느 날, 오버를 입고 양쪽 손을 각각 이병주 소설을 열 권씩 새끼로 묶은 책 뭉치를 들고 이화여고 국어 선생들을 찾아가느라고 덕수궁 길을 걷고 있었어. 눈이 얼어서 미끄러운 길에서 간신히 발길을 옮기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갑자기 이 부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어. 보니까 법조계 출신인 합동 통신사의 젊은 기자더라구, 그는 나의 모습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의아스러운 시선으로만 바라보더군. 그의 뜻을 알아차린 내가 출판사를 차렸다는 이야기와 함께, 아직 사람을 두지 못해서 직접 책을 배달하고 있다고, 진실 반 거짓 반으로 적당히 얼버무렸어. 그러고 나서 며칠 뒤에 합동 통신사에서 외신부장으로 와달라는 연락이 있었어요그것이 1969년 겨울의 일이었지.”

 

한 위대한 지식인이 감옥에 갇힌 일만이 아니라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는 과정을 그는 담담하게 토로한다. 그렇게 그는 우여곡절을 통과하면서 진실의 필봉을 놓지 않았다. 그 과정을 통해서 그는 더욱 단단해졌고, 더욱 내공이 달라진 존재로 변화해온 것이다.

 

 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최대한 강화하는 자들이 민낮을 드러내고 온갖 거짓과 진실을 뒤섞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언론 권력이 기세등등한 혼란의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고 끝까지 지조를 변치 않고 참 언론인으로 아무리 때가 어둡다 해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 주어 시대의 의로운 길잡이가 되어 온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이다.


한종호/<꽃자리>출판사 대표

 

 

posted by

일렁이는 불빛들

한희철의 얘기마을(164)


일렁이는 불빛들



밤이 늦어서야 작실로 올라갔습니다. 속회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요즘 같은 일철엔 늦은 시간도 이른 시간입니다.


아랫작실 초입에 이르렀을 때 저만치 다리 있는 곳에 웬 휘황찬란한 불빛이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웬 불빛일까, 가까이 가보니 그 불빛은 자동차에 늘어뜨려 놓은 전구들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 날개 펼친 듯 양 옆을 활짝 열고 줄줄이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차려 놓은 물건 규모가 웬만한 가게를 뺨칠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기발한 이동 가게였습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필요한 물건을 샀고, 할머니 몇 분은 다리 난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밤이면 들어오는 가게 차입니다. 충주에서 오는 차라니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자동차 하나 들어오는 것이지만 가게 하나 없는 동네에는 작은 장이 선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속회 예배를 드리는 언덕배기 광철 씨네 집 마당에 올라섰을 때 아, 빛나는 것들! 가게 차 불빛이 여전히 번쩍이고, 서산 밤하늘엔 맘껏 늘어진 가느다란 초승달과 파란 별 두 개, 어둠 속 지워질 듯 희미하게 빛나는 양지말 집집의 불빛들. 하늘과 땅 맑게 일렁이는 불빛, 불빛들. 


-<얘기마을> (1992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렁이는 불빛들  (0) 2020.12.05
어떤 고마움  (0) 2020.12.04
순례자  (0) 2020.12.03
우리의 소원은 통일  (0) 2020.12.02
제비집  (0) 2020.12.01
결혼식 버스  (0) 2020.11.30
posted by

어떤 고마움

한희철의 얘기마을(163)


어떤 고마움



손님이 없어 텅 빈 채 끝정자를 떠난 버스가 강가를 따라 달릴 때,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던 아이들이 버스를 보고 손을 들었다.


등에 멘 책가방이 유난히 커 보이는 것이 1, 2학년 쯤 됐을까 싶은 아이들이었다. 학교에서 조귀농까진 차로 5분 정도 되지만 아이들 걸음으론 30분이 족히 걸리는 거리다. 등굣길 하굣길을 아이들은 걸어 다닌다.


녀석들은 장난삼아 손을 들고 있었다. 장난기 어린 웃음과 주저주저 들어보는 손 모습이 그랬다. 한눈에 보아도 녀석들이 장난치고 있음을 알 만한데, 버스기사 아저씨는 길 한쪽에 버스를 세웠다.


정작 버스가 서자 놀란 건 손을 들었던 아이들이었다. 버스가 서고 출입문이 덜컥 열리자 녀석들은 놀란 참새 달아나듯 둑 아래 담배 밭 속으로 숨어버렸다.


“타라, 어서 타래두!”


한참의 채근이 있은 다음에야 녀석들은 항복하듯 머리를 긁적이며 버스에 올라탔다. 미안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버스에 오르는 녀석들 입가엔 여전히 천진한 웃음들이다.


“웬 녀석들이 그렇게 용기가 없냐?”


운전기사 아저씨는 그런 야단 한 마디로 녀석들을 편하게 받아 준다. 긴 산자락 하나를 돌자 어느 새 조귀농. 녀석들은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쪼르르 내리고 그런 녀석들 뒤로 “공부 잘해라.” 기사 아저씨가 커다랗게 인사를 한다.


잠시 귀래에서 쉬는 사이 음료수를 한 병 사서 기사 아저씨께 전하는 마음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음료수를 전하며 녀석들이 못한 인사를 뒤늦게 대신했다.


“아까 고마웠습니다.”


그 뜻을 알고 고맙게 웃으시는 버스기사 아저씨. 


-<얘기마을> (1992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렁이는 불빛들  (0) 2020.12.05
어떤 고마움  (0) 2020.12.04
순례자  (0) 2020.12.03
우리의 소원은 통일  (0) 2020.12.02
제비집  (0) 2020.12.01
결혼식 버스  (0) 2020.11.30
posted by

순례자

한희철의 얘기마을(162)


순례자




된 소나기가 한참 쏟아진 지난주일 오후, 한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비를 그대로 맞은 채였습니다. 단강으로 오는 차편을 잘 몰라 중간에서 적지 않은 고생을 했다 했습니다.


그날 청년은 세례를 받았다 했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처음 믿음을 잘 지켜 신부님께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세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고 그러다가는 뛰고 그러다간 불쑥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마음속에 담아뒀던 단강을 무작정 찾았던 건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잠깐 인사하고 잠깐 이야기하고 돌아서는 길, 비는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우산 하나 전하며 빗속 배송합니다.


불편한 걸음걸이. 세례 받은 날 먼 길을 고생으로 다녀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세례의 의미를 마음속 깊이 새기는 순례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렁이는 불빛들  (0) 2020.12.05
어떤 고마움  (0) 2020.12.04
순례자  (0) 2020.12.03
우리의 소원은 통일  (0) 2020.12.02
제비집  (0) 2020.12.01
결혼식 버스  (0) 2020.11.30
posted by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한희철의 얘기마을(161)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대해서 통일, 통일이여 오라.”


작실서 섬뜰로 내려오는 산모퉁이 길, 

아침 일찍 커다란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책가방 등에 메고 준비물 손에 든 5학년 병직이입니다. 

하루 첫 햇살 깨끗하게 내리고, 

참나무 많은 산 꾀꼬리 울음 명랑한 이른 아침, 

씩씩한 노래를 부르며 병직이가 학교로 갑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얘기마을> (1992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고마움  (0) 2020.12.04
순례자  (0) 2020.12.03
우리의 소원은 통일  (0) 2020.12.02
제비집  (0) 2020.12.01
결혼식 버스  (0) 2020.11.30
막연함  (0) 2020.11.29
posted by

도리어 애틋한 시작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 2020. 12. 1. 11:32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49)

 

도리어 애틋한 시작

 

 

시간이 빈틈을 보이는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어김없는 순서로 계절은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오고, 우리는 때때로 그것을 마치 기습이나 당한 것처럼 여기기조차 합니다. “어느 새”라는 말은 우리의 무방비한 자세를 폭로하는 것이지 시간의 냉혹함을 일깨우는 말은 아닙니다.

 

활을 한번도 쏘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마저도 한해의 마지막 달력을 응시하는 순간, “세월이 쏜 살 같다”는 표현이 전혀 낯설거나 또는 자주 들었다고 해서 구태의연하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이만큼 그 속도는 비례한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리 헛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에 대한 자세의 차이가 가져오는 속도감의 격차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수는 또 없을 지도 모릅니다. 나이보다는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도 사실 더 관건일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점차 이루어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그 기대를 완성시키는 기쁨이 다가오는 듯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느끼면 자신에게 허락된 여유를 치밀하게 측정해야 하는 초조함이 깊어질 것입니다.




한 번 이상을 살아볼 수 없는 인생에서 아쉬움은 늘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있게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이라는 가정은 현실에서 어떤 환경과 상황을 만들어 본다 해도 실험할 수도 없는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단 한번 주어진 인생의 기회는 도저히 낭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낭비라는 것도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그래서 결과론적으로 평가할 때 비로소 생기는 후회나 억울함이라면 사전에 이를 막을 도리는 아예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오만하려 해도 도저히 전지전능할 까닭이 없는 인간의 숙명 같은 조건에 기인한 사태일 것입니다.

 

알고 보니 쓸모없는 경험, 이제 와서 보니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었던 여정, 안목이 좁았던 탓에 미루거나 거부해버렸던 결정과 선택, 결코 놓쳐서는 안 되었던 인연 들 모두가 다 따지고 보면 충분히 기회를 용납해주었던 시간 앞에서 빈틈을 보인 자신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이를 뚜렷이 절감하기까지는 역시 시간의 훈련으로 마음이 익어가는 과정이 필요한 가 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잃은 듯하지만 얻는 것이 있고, 얻는 듯하지만 잃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상실했다고 슬퍼해도 그걸 넘는 깨우침이 있으면 그는 새로운 자아를 얻을 것입니다. 반면에, 무언가 성취했다고 즐거워해도 그것에 그대로 취하면 그는 황무지에서 헤매고 있는 그의 영혼을 어느 날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하면 그나마 자신을 돌아보지만, 성공하면 세상의 갈채에 금세 취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기로에 서서 자기 자신을 진실 되게 채울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란 어차피 가게 되어 있으며 늙음은 오지 말라 해도 우리 몸에 미처 알아차릴 사이도 없이 스며들고, 후회란 시간을 돌이킬 수 없을 바에야 결국 부질없는 자기학대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하면서 사실 그건 마지막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주어지는 생명의 애틋한 시작임을 안다면, 아쉬움보다 감사함이 앞서지 않을까 합니다. “그해 12월은 내게…” 하는 아름다운 회상이 있을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깊어지는 나날입니다.

 

김민웅/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posted by

제비집

한희철의 얘기마을(160)


제비집


사택 지붕 아래 제비가 집을 지었습니다. 며칠 제비 울음 가깝더니 하루 이틀 흙을 물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붉은 벽돌 중 조금 튀어나온 부분을 용케 피해 집 자리로 잡았습니다.


언제 부부의 연을 맺었는지 두 마리의 제비는 보기에도 정겹게 바지런히 집을 지었습니다. 진흙을 물어오기도 하고 지푸라기를 물어오기도 하며 제비는 하루가 다르게, 낮과 저녁이 다르게 집을 지었습니다.


전깃줄에 새까맣게 앉곤 했던 어릴 적과는 달리 해마다 수가 줄어드는 제비가 내가 사는 집을 찾아 집을 짓다니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 유심히 집 짓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언제 어디서 배운 것인지 며칠 사이로 봉긋 솟은 모양의 제 집을 제비는 훌륭하게 지었습니다.




지나가던 승학이 엄마가 제비집을 보더니 농사 걱정을 합니다. 제비집 모양이 멍석 짠 듯 고르고 예쁜 해는 농사가 잘 되지만 지푸라기들이 튀어나오고 울퉁불퉁 겉모양이 거친 해에는 논밭에 잡초가 우거져 농사를 그르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농사가 제비집 모양을 따른다는, 어릴 적 친정아버지께 들었던 이야기를 제비집을 보면서 되살린 것입니다.


내 사는 집에 처음으로 진 제비집이 하필 거친 집일까, 승학이 엄마 이야기에 아쉽기도 하지만 관례란 예외가 있는 법. 내 집에 든 제비가 알 잘 낳고 새끼 잘 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나저나 시간이 될 때면 제비집을 마주 보며 놀이방 아이들에게 흥부 놀부 이야기나 재미있게 들려 줘야겠습니다.


-<얘기마을> (1992년)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얘기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례자  (0) 2020.12.03
우리의 소원은 통일  (0) 2020.12.02
제비집  (0) 2020.12.01
결혼식 버스  (0) 2020.11.30
막연함  (0) 2020.11.29
사라진 참새  (0) 2020.11.28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