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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하나 켜는 소중함 한희철의 얘기마을(167) 불 하나 켜는 소중함 어둠이 다 내린 저녁, 오토바이를 타고 작실로 올랐다. 패인 길을 고친다고 얼마 전 자갈을 곳곳에 뿌려 놓아 휘청 휘청 작은 오토바이가 춤을 춘다. 게다가 한 손엔 긴 형광등 전구를 잡았으니 어둠속 한손으로 달리는 작실 길은 쉽지가 않았다. 전날 우영기 속장님 집에서 속회 예배를 드렸는데, 보니 형광등 전구가 고장 나 그야말로 캄캄절벽인지라 온통 더듬거려야 했다. 전날 형광등이 고장 났으면서도 농사일이 바빠 전구 사러 나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교회에 형광등 여유분이 있었다. 그토록 덜컹거렸으면서도 용케 전구는 괜찮았다. 형광등 전구를 바꿔 끼자 캄캄한 방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막 마치고 돌아온 속장님이 밝아진 방이 신기한 듯 반가워한다. 필요한 .. 2020. 12. 8.
공부 한희철의 얘기마을(166) 공부 교회 구석진 공간 새로 만든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누군가 빼꼼 들여다보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종순이였습니다. “목사님 뭐 해요?” 열린 창문을 통해 발돋움을 하고선 종순이가 묻습니다. “응, 공부한다.” 그러자 종순이가 이내 눈이 둥그레져 묻습니다. “목사님두 공부해요?” 공부는 자기 같은 아이들만 하는 것으로 알았나 봅니다. “그럼,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야.” 고개를 갸우뚱, 종순이가 돌아섭니다. 그런 종순이를 내다보며 미안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농사일에 책 볼 겨를이라곤 없을 종순이 엄마 아빠 종순이에겐 미안하기도 했고, 종순이를 위해서라면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 (1992년) 2020. 12. 7.
뿌리에서 올라오는 향기 신동숙의 글밭(289) 뿌리에서 올라오는 향기 나무 꼬챙이로 흙을 파며 놀거나 귀한 잡초를 몰라 보고 뿌리채 뽑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게중에 유난히 뽑히지 않는 게 민들레 뿌리입니다. 땅 속으로 깊이 내려가는 하나의 굵다란 뿌리를 중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뻗친 잔가지들이 잘 다져진 땅 속 흙을 온몸으로 부둥켜 끌어 안고 있는 민들레 뿌리의 그 강인한 생명력과 사투를 벌이다 보면 엉덩방아를 찧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서 호미나 삽으로 흙을 더 깊이 파 내려가기도 합니다. 흙을 깊이 팔수록 흙에서 올라오는 깊은 향기가 있습니다. 흙내와 엉킨 뿌리에서 올라오는 깊은 근원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 흙내와 뿌리의 향기 앞에서 무장해제 되지 않을 생명이 있을까요? 한 해 살이 식물의 가장 끝향기가 꽃이라면, .. 2020. 12. 7.
백신 접종 순서, 국가 신뢰도 체온계 신동숙의 글밭(288) 백신 접종 순서, 국가 신뢰도 체온계 코로나 백신 접종 1순위는 누구인가? 어떤 이들이 우선 접종 대상자가 되어야 하는가? 지금까지 영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연구 개발하고 있는 코로나 백신을 두고, 접종 우선 순위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장차 어느 시점부터는, 누구든지 접종 대상자가 될 수도 있기에, 어린 아이들도 이해하기 쉬운 말로 조심스레 생각하려고 합니다. 나를 제외한 의미의 '대상자'라는 말의 맹점을 두고, 나를 포함한 의미의 '모든 사람이 대상자'라는 공평한 저울 위에 올려 놓기를 원합니다. 공평하게 나를 포함해야 할 법 집행자가 나를 제외한 법 집행자가 될 때의 불공평하고 불투명함에서 싹 트는 사회적인 폐단을 우리는 오늘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공평한 시선이란 모.. 2020. 12. 6.
성지(聖地) 한희철의 얘기마을(165) 성지(聖地) “한 목사도 성지 순례를 다녀와야 할 텐데.” 목회하는 친구가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어머니가 그러신다. 자식을 목사라 부르는 어머니 마음에는 자랑과 기대, 그리고 한 평생 지켜 온 목회자에 대한 경외심이 담겨 있다.농촌목회를 해서 성지순례를 다녀올 기회가 없다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 싶어 어머니께 그랬다. “성지가 어디 따로 있나요. 내가 사는 곳이 성지지요.” 혹 어떨지 몰라 어머니를 위로하듯 한 말이지만, 그 말을 삶으로 확인하며 살고 싶다.내 사는 곳을 성지(聖地)로 여기며. - (1992년) 2020. 12. 6.
가젤의 지혜 가젤의 지혜 “자비하신 하나님, 주님께 구하오니,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뜨겁게 원하고, 사려 깊게 탐구하고, 진실하게 인식하고, 온전하게 설명하여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옵소서. 아멘”-토마스 아퀴나스의 기도 빛으로 오시는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마음과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주님께서 오늘 수학능력 시험을 보고 있는 모든 수험생의 마음도 굳게 붙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날이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저절로 몸이 움츠러집니다. 저는 차가운 음료는 좋아하지 않지만 대기의 서늘함은 좋아합니다. 찬 기운을 느끼며 걸을 때 왠지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렬해지기 때문일 겁니다. 가끔 소파에 느긋하게 기댄 채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강인한 모습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몸을 곧추.. 2020. 12. 5.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리영희 선생이 그리운 시절- 리영희 선생의 - 시대의 의로운 길잡이 오늘은 엄혹한 시절, 불의가 판을 치고 거짓이 난무할 때 그러한 권력에 맞서 자유와 진실을 추구한 언론인이자 지식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의 10주기이다. 한 시대를 사상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위치에 오른다는 것은, 본인에게 있어서는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영광이 무수한 고초와 핍박 그리고 고난이 전제된 것이라면 아무나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닐 것이다. 리영희 선생은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그 격동의 시기에, 진실에 대한 깊은 갈구를 해온 세대에게 마치 샘물처럼 솟아오른 존재였다. 그의 책 『전환시대의 논리』는 냉전 의식으로 눈이 가려진 시대를 뚫고 진실의 정체를 보여준 위력적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는.. 2020. 12. 5.
일렁이는 불빛들 한희철의 얘기마을(164) 일렁이는 불빛들 밤이 늦어서야 작실로 올라갔습니다. 속회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요즘 같은 일철엔 늦은 시간도 이른 시간입니다. 아랫작실 초입에 이르렀을 때 저만치 다리 있는 곳에 웬 휘황찬란한 불빛이 번쩍거리고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웬 불빛일까, 가까이 가보니 그 불빛은 자동차에 늘어뜨려 놓은 전구들이었습니다. 이런저런 물건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 날개 펼친 듯 양 옆을 활짝 열고 줄줄이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차려 놓은 물건 규모가 웬만한 가게를 뺨칠 정도였습니다. 그야말로 기발한 이동 가게였습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필요한 물건을 샀고, 할머니 몇 분은 다리 난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밤이면 들어오는 가게 차입니다. 충주에서 오는 차라.. 2020. 12. 5.
어떤 고마움 한희철의 얘기마을(163) 어떤 고마움 손님이 없어 텅 빈 채 끝정자를 떠난 버스가 강가를 따라 달릴 때,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가던 아이들이 버스를 보고 손을 들었다. 등에 멘 책가방이 유난히 커 보이는 것이 1, 2학년 쯤 됐을까 싶은 아이들이었다. 학교에서 조귀농까진 차로 5분 정도 되지만 아이들 걸음으론 30분이 족히 걸리는 거리다. 등굣길 하굣길을 아이들은 걸어 다닌다. 녀석들은 장난삼아 손을 들고 있었다. 장난기 어린 웃음과 주저주저 들어보는 손 모습이 그랬다. 한눈에 보아도 녀석들이 장난치고 있음을 알 만한데, 버스기사 아저씨는 길 한쪽에 버스를 세웠다. 정작 버스가 서자 놀란 건 손을 들었던 아이들이었다. 버스가 서고 출입문이 덜컥 열리자 녀석들은 놀란 참새 달아나듯 둑 아래 담배 밭 속으.. 2020.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