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시노래 한 잔306 아무도 앉지 않는 의자 사람은 다섯인데 의자가 하나면 아무도 앉지 않는 의자 의자가 아닌 의자 토함산 겨울바람에 추울까봐 서까래 흙벽으로 드나들던 바람의 숨구멍까지 한 땀 한 땀 막아주신 따뜻한 손길들 지진으로 깨진 기왓장 틈새로 오랜 세월 빗물이 떨어져 뚫린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던 낡고 기울어진 집 50년 된 나무보 한가운데 옹이에 실금이 가고 아래로 쏠린 나무보가 이제는 세월에 주저앉지 않도록 다섯 사람이 힘을 모아서 새 나무보와 기둥을 덧세워 주저앉으려던 천장을 푸른 하늘까지 떠받쳐준 사람들 천장이 무너질까봐 잠이 안 온다는 나에게 들릴 듯 말 듯 "걱정하지 마세요" 구멍 난 마음 틈새까지 무심히 지나치지 않던 마음 한 점 떠오르는 해와 함께 눈 부비며 시작하는 하루를 하루의 산언덕을 해처럼 넘어가다가 잠시 멈추어 커피 .. 2022. 2. 14. 먼 별 학기 중에도 학교를 가다가 말다가 우리 아이들 두 눈이 일찍 나온 초승달처럼 환한 낮에는 가물가물 감기더니 어둔 밤이 되니까 초롱초롱 반짝이네 점심 때도 잊고 잠잘 때도 잊은 우리 아이들 두 눈이 점점 먼 별을 닮아가네 2022. 2. 11. 냇물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냇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내 귓가를 울리는 냇물의 올바른 소리 한 줄기가 별빛이다 정의로운 정치는 흘러 흘러서 그늘진 생의 골짜기와 메마른 삶의 들판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라고 이 세상 끝까지 내려가서 온 땅을 품에 안은 바다의 수평선이 되는 일이라고 그리하여 푸른 하늘과 나란히 푸르게 서로를 바라보는 기쁜 일이라고 2022. 2. 7. 가슴으로 가슴으로 가는 숨으로 가고 오는 숨으로 오고 가는 숨으로 들숨과 날숨으로 빈 가슴을 지핀다 재만 남은 땅에서 새순이 돋아나면 가슴으로 뿌리를 내리며 이 둥근 땅을 끌어안으려는 불씨 같은 한 점 숨이 있어서 한겨울밤에도 저 별처럼 혼자서도 따뜻하다 2022. 2. 3. 투명하게 지으신 몸 밥은 자식이 먹었는데 엄마 배가 부르다고 하셨지요 밥을 먹다가 뉴스에서 누군가가 높은데서 떨어지거나 다쳤다고 하면 내 정강이뼈가 저릿해지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 떨며 아파하고 밤새 마음이 아파서 잠을 설치게 된다 그래서 평화의 숨으로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나의 몸은 나를 스쳐 지나는 이 모든 걸 그대로 느끼며 투명하게 반응한다 저녁밥을 먹다가 이런 나를 지으신 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안녕하신지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2022. 1. 24. 미장이 싸늘한 벽돌과 껑껑 언 모래와 먼지 같은 시멘트 이 셋을 접붙이는 일 이 셋으로 집을 짓는 일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날 이 차가운 셋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제 살처럼 붙으리라는 강물 같은 믿음으로 나무 토막 줏어 모아 쬐는 손끝을 녹이는 모닥불의 온기와 아침 공복을 채워주는 컵라면과 믹스 커피 새벽답 한 김 끓여온 생강차 한 모금 2022. 1. 22. 바람 빈 가지가 흔들린다 아, 바람이 있다 나에게 두 눈이 있어 흔들리는 것들이 보인다 보이지 않지만 있다가 없는 듯 한낮의 햇살이 슬어주는 잠결에 마른 가지 끝 곤히 하늘을 지우는 보이지 않지만 없다가 있는 듯 앙상한 내 가슴을 흔드는 이것은 누구의 바람일까? 2022. 1. 13. 마른잎 스치는 겨울 바람에 몸도 마음도 움츠러들지만 내려 주시는 한 줄기 햇살에 몸도 마음도 가벼워만 집니다 - 겨울나무 (53) 2022. 1. 10. 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선물로 주신 새해 마지막 숫자를 1로 쓰다가 2로 고쳐 쓰면서 같은 하늘을 숨쉬고 있는 같은 예수의 날을 헤아리는 이 땅에 모든 생명들의 건강을 빕니다 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빕니다 백신을 맞고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코로나 바이러스와도 몸속 세계의 평화 협정을 기도합니다 숨쉬는 모든 순간마다 하늘의 평화가 임하는 내게 주시는 어려움과 아픔이 이 또한 내 몸을 살릴 선물이 되는 은총을 누리는 사색의 등불로 밝히는 감사의 오솔길을 걸으며 오늘의 햇살처럼 내 눈길이 닿는 곳마다 차 한 잔의 평화가 흘러가기를 2022. 1. 3. 이전 1 ··· 5 6 7 8 9 10 11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