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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499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ㅡ 나무 선생님 편 신동숙의 글밭(195)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ㅡ 나무 선생님 편 어둑해 지는 저녁답, 집으로 가는 골목길 한 모퉁이에는 아주 작은 나무 공방이 하나 있습니다. 저 멀리서 보아 유리창 안으로 작고 노란 전깃불이 켜져 있는 걸 볼 때면, 어둔 밤하늘에 뜬 달을 본 듯 반가워 쓸쓸히 걷던 골목길이 잠시나마 푸근해져 오곤 합니다. 잠시 들러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나무 선생님이 문득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그러면서 나무에 글씨가 써진다는 도구와 나무 토막을 선뜻 내미시는 것입니다. 집에 가져가서 연습용으로 사용하라시며, 시와 글을 적는 저에게 유용할 것 같다시며 맡기듯이 안겨 주십니다. 저로선 난생 처음 보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2020. 7. 22.
말씀 신동숙의 글밭(194) 말씀 나는 한 알의 씨앗 오늘은 빈 가슴 어디쯤에 앉아서 새순을 틔울까 말없이 기도의 뿌리를 내리며 2020. 7. 21.
청소년 담배, 차마 모른체 할 수 없어서 신동숙의 글밭(193) 청소년 담배, 차마 모른체 할 수 없어서 길을 걷다가 자녀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면, 꼭 우리 아들 같아서. 덩치가 크던 작던, 피부가 희든 검든, 집에서는 천금 같은 자식일텐데 싶어, 말 한 마디 눈빛 하나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저를 낳아주신 엄마의 마음이 그러하였고, 산동네 길고양이 새끼 같은 어린 저를 바라보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눈길이 그 옛날 그때 그 시절에는 그렇게 봄햇살처럼 따스하였습니다. 큰아이가 7살이던 가을입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건너편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딸아이를 데려다줄 때의 일입니다. 피아노 학원 수업 시간이 4시니까 큰아이를 데려다 주던 그때는 방과후 수업이 있고, 고학년들이 가방을 메고 정문을 나서던 시간대입니.. 2020. 7. 20.
오늘 뜬 아침해 신동숙의 글밭(192) 오늘 뜬 아침해 오늘 뜬 아침해가그토록 닿길 원하는 후미진 땅은 밤새 어두웠을 내 깊은 마음 속 땅인지도 빈 하늘인지도 오늘 아침 햇살이 가장 먼저 닦아주는 얼굴은 밤새 적시운내 눈가에 맺힌 눈물인지도빈 들에 이슬인지도 내 뺨을 스치운 바람이 늘 무심결에 부르는 노래인 듯춤사위인 듯 2020. 7. 19.
두 손 신동숙의 글밭(191) 두 손 구름은땅으로 낮아지려 그토록제 살을 깎아 빗줄기가 되는지 나무는말의 숨결이 되려 그토록제 살을 깎아사각이는 연필이 되었는지 두 손은따스한 가슴이 되려 그토록거친 나무를 쓰다듬어굳은살 배긴 나무가 되었는지 어둠은한 점 빛이 되려 그토록긴 밤을 쓰다듬어두 눈가에 아침 이슬로 맺히는지 2020. 7. 18.
오늘 앉은 자리 - 옥빛 나방과 능소화 신동숙의 글밭(190) 오늘 앉은 자리 - 옥빛 나방과 능소화 가지산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으레 나무 그루터기를 만나게 됩니다. 둥그런 그루터기 그늘 진 곳에는 어김없이 초록 이끼가 앉아 있고, 밝은 곳에는 작은 풀꽃들이 저절로 피어있습니다. 개미들은 제 집인양 들락날락거리는 모습에 생기가 돕니다. 저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잘려 나갔을 낮고 낮은 그루터기지만, 언제나 우뚝 키가 높고 높은 나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저 멀리 그루터기가 보이면, 점점 눈길이 머물고, 발걸음은 느려지고, 생각은 저절로 깊어집니다. 작고 여린 생명들에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집이 한껏 낮아진 나무 그루터기인 것입니다. 하늘로 뻗치던 생명을 잃은 후에도, 주위에 흔한 작은 생명들을 품고서 스스로 집이 된 나무 그루터기. .. 2020. 7. 17.
한밤중에 울린 독경소리 신동숙의 글밭(189) 한밤중에 울린 독경소리 바람도 잠든 한밤중에 은은하게 들려오는 풍경소리 고요한 소리를 따라서골방까지 풍겨오는 참기름 냄새 귀를 순하게 맑힌 풍경소리는밥숟가락이 살금살금 밥그릇에 닿는 소리 골방에서 책 읽는 엄마 몰래주방에서 배고픈 아들 스스로 달그락 그 소리가 순하고 미안해서 앉았던 몸을 일으킨다 입에 달게 또는 쓰게 을 읽느라상대 세상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잊은 절대의 시간 스물네 살의 허기진 가슴에 달그락거리던성철 스님의 "자기를 속이지 마라." 마흔 살이 넘은 지금도 홀로 있는 내 골방에 절로 울리는 독경소리 그리고 비로소"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모든 생명이 이에서 남이니." 환한 말씀의 옷자락에 시름을 내려놓으며쉼을 얻는다 2020. 7. 15.
박꽃 신동숙의 글밭(188) 박꽃 한여름 밤을 울린타종 소리 땅에는 미안함하늘에는 고마움 하늘과 땅 너와 나 우리 사이에 가득한 침묵고요 2020. 7. 13.
솟아오른 보도블럭 신동숙의 글밭(186) 솟아오른 보도블럭 구름이 아무리 뒤덮는다 하여도하늘을 다 덮을 수는 없기에 땅에서 얻은 것으로, 매 끼니 먹고 살아가지만공기는 한순간도 끊을 수 없기에 입을 닫을 수는 있어도마음은 멈춤이 없기에 내가 내어준 것보다는거저 받은 것이 더 많기에 돈을 주고 사는 것에 비하면공짜로 얻고 있는 것은 한이 없기에 하늘, 구름, 비, 바람, 햇살...... 땅이 오염 되고 삭막하여지친 몸이 땅을 보고 걸어가더라도 좁은 가슴 언제나 하늘 향해 열어두기로 합니다 하늘을 몸속 끝까지 끌어안고 또 낮은 곳으로 기도의 뿌리를 내리며 마음을 다하여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벗들과깊은 호흡 하다 보면 그래도 이 세상은 살아갈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0.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