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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499

8월에 순한 가을 풀벌레 소리 신동숙의 글밭(211) 8월에 순한 가을 풀벌레 소리 장마와 폭우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삼복 더위의 징검돌로 이어지던 8월의 한 여름 빛깔이 흐지부지해지고 있다. 이미 입추(入秋)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귀를 쨍쨍 울리던 한낮의 매미 소리가 여름 하늘을 쨍 울리지도 못하고 벌써 순하기만 하다. 저 혼자서 무더운 여름 한낮에 독창을 하던 매미 소리였지만, 가슴을 뚫고 들어오던 소리와는 달리 한결 순해지고 초가을의 풀벌레 소리와 섞이어 합창이 되었다. 여름과 가을이 나란히 부르는 8월의 노래다. 여느 때와는 달리 들려오는 소리도 바람의 냄새도 다른 초가을 같은 8월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삶의 모든 터전을 쓸고 간 물난리에 망연자실해 있을 이웃들의 마음이 멀리서도 무겁게 전해진다. 잠깐 쨍하고 나타난 여름.. 2020. 8. 14.
찻물의 양 신동숙의 글밭(210) 찻물의 양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분명 언제부턴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일 터입니다. 어쩌면 선조들의 무의식에 각인이 되어 있어서 입에 쓰지 않으면 몸에 유익함이 부족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일으키게 하는 선입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차를 자주 마시다 보니 가끔 저에게 찻물의 양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계량된 물의 양대로 맞추어야 하는지, 말하자면 이왕에 우려서 마시는 차 한 잔에서 최상의 효과까지 기대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해 드립니다. 목 넘김이 편안한 정도로 물의 양을 조절하시고, 우려내는 시간도 조정하시면 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계량은 참고만 하시고, 찻물의 기준은 내 몸이 되어야 .. 2020. 8. 13.
차 한 잔 신동숙의 글밭(209) 차 한 잔 빈 가슴으로마른 바람이 불어오는 날 문득차 한 잔 나누고 싶어이런 당신을 만난다면 푸른 가슴에 작은 옹달샘 하나 품고서 때론 세상을 가득 끌어 안은 비구름처럼 눈길이 맑고 그윽한 당신을 만난다면차 한 잔 나누고 싶어 어둔 가슴에 작은 별빛 하나 품고서 자신을 드러내기보다는 희미한 너를 빛나게 하는목소리가 맑고 다정한 당신을 만난다면차 한 잔 나누고 싶어 이런 당신을 만난다면하얀 박꽃이 피는 까만 밤 서로가 아무런 말없이 찻잔 속에 앉은 달빛을 본 순간 문득 고개 들어저 하늘에 뜬 달을 우리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러나 이런 당신이지금 내 곁에 있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는내가 이런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는 노랫말처럼 어느새 고요해진 가슴에 작은 옹달샘 하나 때론 별빛 하나 .. 2020. 8. 12.
사랑이 익기도 전에 신동숙의 글밭(209) 사랑이 익기도 전에 신의 첫사랑으로똘똘 뭉친 씨앗 한 알 그 씨앗 속 천지창조 이전의 암흑과 공허를 두드리는 빗소리 밤새 내린 빗물에 움푹 패인 가슴고인 눈물에 퉁퉁 불기도 전에 기도와 사색의 뿌리를 진리의 땅 속으로 깊이 내리기도 전에 푸릇한 새순이 고개 들어하늘을 우러르기도 전에 진실의 꽃대를 홀로 걸어가는 고독과 침묵의 좁은 길을 걸어 줄기 끝까지 닿기도 전에 노을빛의 그리움으로 무르익기도 전에 살갗을 태우는 여름의 뜨거움을가을날 황홀한 노을빛의 이별을가난한 마음을 노래하는 겨울을충분히 계절 속에 잠기기도 전에 사랑이 익기도 전에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씨앗들 2020. 8. 11.
"일단 사람이 살아야합니다" 신동숙의 글밭(208) "일단 사람이 살아야합니다" 제주, 부산, 광주, 대전, 천안, 인천, 서울, 철원, 영동, 하동, 구례 등 전국적으로 잇달아 올라오는 비 피해 소식에 무거운 마음으로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반도 남단에 있는 하동의 화개 장터와 구례의 섬진강이 범람한 모습에 말문이 막힙니다. 목숨을 구하려는 다급한 목소리가 담긴 김순호 구례 군수님의 글을 허락도 구하지 않고 그대로 옮깁니다. 이렇게 지면에서라도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지만, 수해민들에게는 무슨 도움이 될까 싶습니다. "어떤 재산보다도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재산피해가 있어도 인명피해가 있으면 안 됩니다. 그야말로 초토화입니다. 처참합니다. 구례읍 봉서·봉동·계산·논곡·신월·원방, 문척면 월전·중마, 간전면 간.. 2020. 8. 10.
그 얼마나 신동숙의 글밭(208) 그 얼마나 한 송이 꽃봉오리그 얼마나 햇살의 어루만짐그 얼마나 살갑도록 빗방울의 다독임그 얼마나 다정히 바람의 숨결그 얼마나 깊이 겹겹이 둘러싸인 꽃봉오리는고독과 침묵의 사랑방 받은 사랑다 감당치 못해 한 순간 터트린눈물웃음꽃 2020. 8. 9.
어진 손길이 놓아둔 고마운 걸림돌 신동숙의 글밭(206) 어진 손길이 놓아둔 고마운 걸림돌 글쓰기는 이미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양심의 등불을 좁은 발등에 비추어 한 걸음 한 걸음,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어슴푸레한 어둠 속 호젓한 산책길이다. 그렇게 글이 걸어가는 길은 하늘로 난 허공처럼 매끈한 길이면서 동시에 내면의 땅을 밟고 걸어가야 하는 울퉁불퉁한 길이 마음속 세상 안으로 향해 있다. 바깥 세상과 내면의 세상, 눈에 보이는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세상을 왔다갔다 하면서, 점차적으로 서로가 크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조화로운 드나듦일 수 있다면, 세상은 한결 넉넉해지고 두루 따뜻해지고 더불어 행복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안과 밖을 자주 드나들다 보면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엄연한 사실과 우리 모두는.. 2020. 8. 8.
춥겠다 신동숙의 글밭(205) 춥겠다 여름방학 때서울 가는 길에 9살 아들이 문득 하는 말 "지금 서울은 춥겠다." 지난 겨울방학 때 서울을 다녀왔었거든요 파주 출판 단지 '지혜의 숲' 마당에서 신나게눈싸움을 했었거든요 2020. 8. 6.
물방울 하나 신동숙의 글밭(204) 물방울 하나 하나와 하나가 만나하나가 될 수 있다면 나 하나로 온전할 수 있다면 너 하나로충만할 수 있다면 나와 너가 만나우리가 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물방울은 하나로 맺히는 사랑 2020.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