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06 부산을 움직이는 건, '정의'보다는 '정'과 '의리' 신동숙의 글밭(218) 부산을 움직이는 건, '정의'보다는 '정'과 '의리'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권고인 코로나19, 2단계 안전 수칙인 비대면 예배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대부분의 교회와 단체와 모임과 개인들까지도 지키고 있는데 반해서, 유독 부산에선 270군데 현장 예배를 선포, 강행한 실태를 두고 무엇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너그럽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신 분들 입장에서도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통탄해 할 개신교의 그릇된 단면일 것이다. 그렇지만 부산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필자의 입장에선 어렴풋이 아련하게나마 부산 사람들의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부산 사람들은 환경 태생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정'과 '의리'가 많은 사람들이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한 .. 2020. 8. 25. 마스크와 침묵 신동숙의 글밭(218) 마스크와 침묵 요즘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진짜 바이러스는 코로나19가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뉴스에선 확진자 수십명이 다녀간 어느 가게에서 검사를 받은 직원들한테서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고 한다. 그럴 수 있었던 요인은 모두가 코로나19 안전 수칙인 마스크 착용을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천지 사태 이후로 온 국민이 정부에서 알려준 코로나19 안전 수칙을 대부분 잘 지켜왔기에 울산 지역만 해도 최근 100일 동안 확인자가 0명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어제 날짜로 확진자 70명이 되었다.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공공 기관 출입시에 발열 체크 등. 이 수칙들이 처음엔 약간의 불편함을 주었지만, 어느새 그것도 우리 생활의 일부가.. 2020. 8. 24. 텅빈 대형 교회당과 거룩한 성전 신동숙의 글밭(217) 텅빈 대형 교회당과 거룩한 성전 인도 여행을 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한 자락이 생각난다. 코끼리 형벌에 대한 이야기다. 죄를 지은 신하에게 왕이 내리는 형벌 중에서 코끼리를 하사하는 형벌이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땐 그게 무슨 형벌이 될까 싶었다. 언뜻 생각하면 형벌이 아닌 코끼리 선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토끼도 아닌 거대한 코끼리를 왕이 내려준다니 형벌보다는 오히려 선물이 아닌가.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었다. 코끼리를 굶어 죽게 해선 안되는 것이다. 코끼리를 팔아서도 안되는 것이다. 왕이 하사한 코끼리를 잘 먹여서 키워야 하는 형벌인 것이다. 코끼리 한 마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의 양은 하루에 100kg이 된다고 한다. 코끼리 한 마리를 먹여 살리다가 점점 집안.. 2020. 8. 21. 순한 풀벌레 소리 신동숙의 글밭(216) 순한 풀벌레 소리 새벽녘 풀벌레 소리가 귀를 순하게 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후 들려오는 첫소리가 풀벌레 소리라는 사실에 문득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보다 더 큰 복을 누릴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자연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는 잠자던 영혼을 깨우고 길 잃은 영혼을 부르는 태초의 종소리 같습니다. 자연의 초대는 언제나 내면의 산책길로 향해 있습니다. 잠시 앉아 있으니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따스하게 차오르는 감사와 고요의 샘물이 출렁입니다. 가슴에 흐르는 지금 이 순간의 출렁임은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픈 일어남이 아닌,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이미 충만해서 더 오래 머물고픈 고요함입니다. 제겐 이런 고요의 샘물과 침묵의 열매를 나누고픈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잘 익은 무화과.. 2020. 8. 20. 하늘 냄새가 나는 사람 신동숙의 글밭(215) 하늘 냄새가 나는 사람 하늘 냄새가 나는 사람이 있다그 사람을 마음으로 떠올리면 그 사람은 사라지고빈탕한 허공만 보인다 자사(子思)의 중용(中庸)에서 그는 하늘을 꿰뚫어 보고 부처의 중도(中道)에서그는 하늘을 똑바로 보고 기독교의 성경에서그는 하늘을 알아보고 젊은 노비 청년에게서그는 하늘을 살피어 보고 그 어른은 치매가 와도하늘을 우러러보며 "아바지"만 부르더라 숨을 거두던 마지막 순간에도하얀 수염 난 입에선 "아바지"로이 땅에 씨알 같은 마침표를 찍고 탐진치의 거짓 자아인 제나를 비움으로투명해진 참자아인 얼나를 통하여 보이는 건 맑은 하늘 뿐 그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하늘이기에그가 거하는 곳은 이 땅을 채우는 없는 듯 계시는 하늘이기에 그의 움직임은 춤사위가 되고제소리는 하늘.. 2020. 8. 19. 결 신동숙의 글밭(213) 결 광목으로 만든 천가방, 일명 에코백 안에는 푸른 사과 한 알, 책 한 권, 공책 한 권과 연필 한 자루, 잉크펜 한 자루, 주황색연필 한 자루, 쪼개진 지우개 한 조각이 든 검정색 작은 가죽 필통과 칡차를 우린 물병 하나가 있습니다. 쉼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살짝 조여진 마음의 결을 고르는 일이란, 자연의 리듬을 따라서 자연을 닮은 본래의 마음으로 거슬러 조율을 하기 위하여, 여러 날 고대하던 숲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숨을 봅니다. 호흡은 평소보다 조금은 느리고 긴 호흡입니다. 호흡이 느리면 자연히 발걸음도 느릿느릿 열심을 내지도 않고 목적도 없는 그야말로 느슨한 걸음입니다. 그 느슨함이 여유와 비움으로 이어지면서 숲의 들숨은 저절로 깊어집니다. 가다가 서고 머뭇머뭇.. 2020. 8. 17. 볼펜 한 자루의 대한독립 신동숙의 글밭(212) 볼펜 한 자루의 대한독립 외국에 있는 벗에게 보낼 선물을 고르는 일에는 이왕이면 한국산을 고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먼 타향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고국에서 온 것이라면 더 소중하고, 때론 작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선물 하나가 마중물이 되어서, 마치 고향의 산과 들을 본 듯 그만큼 반가울 수도 있는 일이다. 멀리 있기에 아름다운 달과 별처럼 작고 단순한 물건이 그리운 제 나라의 얼굴이 되고 체온이 될 수도 있기에, 좋은 한국산 볼펜과 잉크펜을 찾기로 했다. 북쪽 나라에 부치던 윤동주의 귀여운 조개껍질처럼, '울언니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에서 물소리 바닷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일이다. 한동안 찾았으나 좋은 한국산 볼펜과 잉크펜을 고르는 일이 순조롭지 못한 이유를 곰곰이 .. 2020. 8. 15. 8월에 순한 가을 풀벌레 소리 신동숙의 글밭(211) 8월에 순한 가을 풀벌레 소리 장마와 폭우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삼복 더위의 징검돌로 이어지던 8월의 한 여름 빛깔이 흐지부지해지고 있다. 이미 입추(入秋)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귀를 쨍쨍 울리던 한낮의 매미 소리가 여름 하늘을 쨍 울리지도 못하고 벌써 순하기만 하다. 저 혼자서 무더운 여름 한낮에 독창을 하던 매미 소리였지만, 가슴을 뚫고 들어오던 소리와는 달리 한결 순해지고 초가을의 풀벌레 소리와 섞이어 합창이 되었다. 여름과 가을이 나란히 부르는 8월의 노래다. 여느 때와는 달리 들려오는 소리도 바람의 냄새도 다른 초가을 같은 8월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삶의 모든 터전을 쓸고 간 물난리에 망연자실해 있을 이웃들의 마음이 멀리서도 무겁게 전해진다. 잠깐 쨍하고 나타난 여름.. 2020. 8. 14. 찻물의 양 신동숙의 글밭(210) 찻물의 양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분명 언제부턴가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일 터입니다. 어쩌면 선조들의 무의식에 각인이 되어 있어서 입에 쓰지 않으면 몸에 유익함이 부족할 것이라는 믿음까지 일으키게 하는 선입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차를 자주 마시다 보니 가끔 저에게 찻물의 양을 물어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계량된 물의 양대로 맞추어야 하는지, 말하자면 이왕에 우려서 마시는 차 한 잔에서 최상의 효과까지 기대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대답을 해 드립니다. 목 넘김이 편안한 정도로 물의 양을 조절하시고, 우려내는 시간도 조정하시면 됩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계량은 참고만 하시고, 찻물의 기준은 내 몸이 되어야 .. 2020. 8. 13.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5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