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03 오늘 앉은 자리 - 옥빛 나방과 능소화 신동숙의 글밭(190) 오늘 앉은 자리 - 옥빛 나방과 능소화 가지산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으레 나무 그루터기를 만나게 됩니다. 둥그런 그루터기 그늘 진 곳에는 어김없이 초록 이끼가 앉아 있고, 밝은 곳에는 작은 풀꽃들이 저절로 피어있습니다. 개미들은 제 집인양 들락날락거리는 모습에 생기가 돕니다. 저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잘려 나갔을 낮고 낮은 그루터기지만, 언제나 우뚝 키가 높고 높은 나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저 멀리 그루터기가 보이면, 점점 눈길이 머물고, 발걸음은 느려지고, 생각은 저절로 깊어집니다. 작고 여린 생명들에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집이 한껏 낮아진 나무 그루터기인 것입니다. 하늘로 뻗치던 생명을 잃은 후에도, 주위에 흔한 작은 생명들을 품고서 스스로 집이 된 나무 그루터기. .. 2020. 7. 17. 한밤중에 울린 독경소리 신동숙의 글밭(189) 한밤중에 울린 독경소리 바람도 잠든 한밤중에 은은하게 들려오는 풍경소리 고요한 소리를 따라서골방까지 풍겨오는 참기름 냄새 귀를 순하게 맑힌 풍경소리는밥숟가락이 살금살금 밥그릇에 닿는 소리 골방에서 책 읽는 엄마 몰래주방에서 배고픈 아들 스스로 달그락 그 소리가 순하고 미안해서 앉았던 몸을 일으킨다 입에 달게 또는 쓰게 을 읽느라상대 세상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잊은 절대의 시간 스물네 살의 허기진 가슴에 달그락거리던성철 스님의 "자기를 속이지 마라." 마흔 살이 넘은 지금도 홀로 있는 내 골방에 절로 울리는 독경소리 그리고 비로소"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모든 생명이 이에서 남이니." 환한 말씀의 옷자락에 시름을 내려놓으며쉼을 얻는다 2020. 7. 15. 박꽃 신동숙의 글밭(188) 박꽃 한여름 밤을 울린타종 소리 땅에는 미안함하늘에는 고마움 하늘과 땅 너와 나 우리 사이에 가득한 침묵고요 2020. 7. 13. 솟아오른 보도블럭 신동숙의 글밭(186) 솟아오른 보도블럭 구름이 아무리 뒤덮는다 하여도하늘을 다 덮을 수는 없기에 땅에서 얻은 것으로, 매 끼니 먹고 살아가지만공기는 한순간도 끊을 수 없기에 입을 닫을 수는 있어도마음은 멈춤이 없기에 내가 내어준 것보다는거저 받은 것이 더 많기에 돈을 주고 사는 것에 비하면공짜로 얻고 있는 것은 한이 없기에 하늘, 구름, 비, 바람, 햇살...... 땅이 오염 되고 삭막하여지친 몸이 땅을 보고 걸어가더라도 좁은 가슴 언제나 하늘 향해 열어두기로 합니다 하늘을 몸속 끝까지 끌어안고 또 낮은 곳으로 기도의 뿌리를 내리며 마음을 다하여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벗들과깊은 호흡 하다 보면 그래도 이 세상은 살아갈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0. 7. 12. 먼 별 하나를 품으며 신동숙의 글밭(186) 먼 별 하나를 품으며 먼 별 하나를 품으며고요히 머물러나는 어둔 밤이 된다 얼굴 하나를 품으며사랑의 씨앗이진리에 뿌리를 내린다 2020. 7. 11. 비가 먼저 운다 신동숙의 글밭(185) 비가 먼저 운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오슬프면 슬프다고 말을 하오 아픈데도 말 못하는 사람슬픈데도 말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불쌍한 사람그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픔 속에 있으면서아픔인 줄 모르는 사람 슬픔 속에 있으면서슬픔인 줄 모르는 사람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모르지만 살아가야 하는 사람 그래서 비가 내리는지도 모른다비가 먼저 운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나는 울고 싶어진다 이유 없이 말 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속에서 울음이 차오른다 2020. 7. 10. 시詩가 주는 자유 신동숙의 글밭(184) 시詩가 주는 자유 아무거도 없는 빈 바탕에 참이 주시는 글씨 몇 톨 고이 심고서 양심에 뿌리를 내린다면한평생 비바람에 흔들린다 하여도 너른 하늘로빈 가슴으로 욕심없이 마음껏뿌리와 가지를 뻗을 수 있는 자유 2020. 7. 9. 보고만 있어도 신동숙의 글밭(183) 보고만 있어도 하늘 한 쪽먼 산 한 자락 보고만 있어도 이렇게 좋은데 빈 가슴에 품고서말없이 바라본다 먼 별 한 점나무 한 그루 보고만 있어도 이렇게 좋은데 눈 감고생각만 해도 2020. 7. 8. 촛불 신동숙의 글밭(182) 촛불 나 이토록 흔들리는 것은타오르기 때문입니다 어둔 밤, 내 눈물의 심지에한 점 별빛으로 댕긴 불꽃 빈 가슴에 품은 불씨 하나불어오는 봄바람에 하늘빛 움이 튼다 2020. 7. 7. 이전 1 ··· 33 34 35 36 37 38 39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