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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506

물길 신동숙의 글밭(175) 물길 비가 내립니다가슴에도 비가 내립니다 메마른 가슴에떨어진 빗방울마다 안으로 홈이 파이고그리움으로 머물다가 실개천 물길을 내어흐르게 하소서메마른 가슴으로 맑게선하게아름답게 2020. 6. 27.
술샘 신동숙의 글밭(174) 술샘 술을 마시고 글을 쓴 적이 없다. 글을 쓴 후에도 마신 적이 없고, 먼 데서 찾아온 반가운 남동생이나 남편이 바로 옆에서 막걸리나 맥주를 한 잔 기울일 때도, 나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으니, 평소에 술을 아예 먹지 않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가족 모임과 벗들의 모임에서도 그저 물잔에 물을 따라서 함께 하는 자리를 즐기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일이나 술을 마시지 않는 일이나 모두가 한 마음 먹기에 달린 일이지만, 나의 선택은 술을 마시지 않기로 한 것이다. 술 기운에 의지하지 않기로 결심을 한 것이 대학 신입생 시절 학과 동기, 선배들과 함께한 뒤풀이 자리였다. 어려선 종종 아빠의 술 심부름을 하곤 했었다. 아빠의 "소주 한 병, 콜라 한 통 사와라." 돈을 받으면 신나.. 2020. 6. 26.
풀밭 신동숙의 글밭(173) 풀밭 신발 벗어 놓고들어가는 풀밭 바람과 빗물이 쓸고 닦는 방 푸릇푸릇 풀잎손들이 새벽 이슬 모아 간질간질 발 씻겨 주는 개운한 아침 2020. 6. 25.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신동숙의 글밭(172) 이미 내 안에 있는 좋은 벗 살아오면서 가끔씩 좋은 벗, 좋은 사람,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잠시 제 곁에 머물러 있는가 싶으면, 어느덧 혼자 있게 됩니다. 제게는 늘 함께 있어 좋은 벗, 좋은 사우(師友)가 있습니다. 밤하늘에 뜬 몇 안되는 별이라도, 먼 별을 바라보는 내가 좋습니다. 밤이면 매일 변하는 밤하늘의 달이 오늘은 어디에 떴는지, 건물들 사이로 두리번거리며 찾는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합니다. 아침이면 하늘 낯빛을 수시로 살피어 마음의 결을 고르는 내가 괜찮습니다. 나무 아래를 지나며, 가슴 설레어 하는 내 모습에, 혼자서 어쩔줄 몰라 하고, 여름날 저녁이면 어김없이 환하게 꽃을 피우는 박꽃을 보며, 외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가 순합.. 2020. 6. 24.
약속 신동숙의 글밭(171) 약속 산길을 걷다가엄마가 새순처럼 말씀하신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1박 2일로 해인사에 가기로 하셨다고 누구랑 가시냐고 물으니"니하고" 하신다 한번 드린 말씀인데엄마는 이미 마음밭에 심어두셨다 2020. 6. 23.
숨쉼 신동숙의 글밭(170) 숨쉼 숨을 쉰다들숨 날숨 들숨의 채움으로날숨의 비움으로 숨을 쉰다거칠어지지 않게 걸음마다평화의 고삐를 붙든다 날숨마다 살피어몸이 붙든 힘을 풀어 주고 날숨마다 조금씩애씀을 내려놓는다 그리하면들숨은 저절로 깊어지는 것 멈칫 길을 잃어도 좋아 늘처음처럼 숨을 쉰다한 알의 몸으로 날숨을 더 오래 느긋하게숨을 쉰다 느리고 고요한숨은 쉼이 된다 씨앗처럼먼 별처럼 내 어둡고 가난한 가슴에한 알의 하늘숨을 품으며 숨을 쉰다한 점 몸이 점점점 푸른 하늘이 된다 2020. 6. 21.
산안개 신동숙의 글밭(169) 산안개 비가 오는 날에는산안개가 보고 싶어서 밥을 먹다가먼 산을 생각합니다 설거지를 하다가산안개를 생각합니다 푸른산 머리 위에 앉은하얀 산안개가 순합니다 비가 오는 그믐밤에도흰 박꽃처럼 순합니다 하늘도 순하고산도 순하고집도 순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온 마을이 하얀 박 속입니다 2020. 6. 20.
다석, 도올, 머튼, <시편 사색>을 주워서 소꿉놀이 신동숙의 글밭(168) 다석, 도올, 머튼, 을 주워서 소꿉놀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심심해진다. 한때 바깥 일도 해보았지만, 제 스스로가 이 사회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한 사람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자본과 경제 논리로 형성된 이 사회구조 안에선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물론 스스로도 어려서부터 이 사회 안에서 있음직한 성공에 대한 꿈을 꾸어본 적 없이, 몸만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서로가 아쉬울 것도 없는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혼자 놀기로 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종종 쪽창으로 창밖을 본다. 마당 위에 하늘을 보고, 나무도 보고, 풀꽃도 보고, 새소리에 귀가 맑아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가만히 바라본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이 세상은, 자연은 참! 신기.. 2020. 6. 19.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신동숙의 글밭(166) 녹음이 짙은 비에 젖은 아침 등교길을 보면서 반바지에 반팔 셔츠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학교에 갑니다. 등에는 가방을 메고 누구나 얼굴엔 마스크를 쓰고서, 학교에 가는 중·고등학생들이 유월의 푸른 잎사귀 같습니다. 교실 안에서는 제 책상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저 푸릇한 귀를 열고서 선생님들의 말씀에 잔잔히 귀를 기울이겠지요. 특히 교실에서도 온종일 쓰고 있어야 하는 마스크에,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여전히 답답하기만 한지 안타깝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함은 다름 아닌,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일과 거듭 새기는 일이 됩니다. 옛어른들은 머리에 새기라고 하였지만, 그보다 더 앞선 옛어른들은 마음에 새겨 자신의 참마음과 세상의 참이치를 밝히는 공부를 참공부라 하였.. 2020. 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