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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492

경전이 참고서라면 교과서는 신동숙의 글밭(147) 경전이 참고서라면 교과서는 지식의 잎새가 무성해도 하늘을 다 가릴 수는 없습니다. 지혜의 잎새가 풍성해도 마음을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의 를 읽다 보면 화두처럼 가슴에 인이 박히는 말들이 있습니다. 제 마음에도 걸림이 없는 말들입니다. 류영모 선생의 제자인 함석헌 선생이 말하기를 '"선생님의 두뇌는 천부적이지만 대단히 과학적이다." 이어서 박영호 선생이 말하는 류영모의 사상은 대단히 신비하지만 미신적인 데가 없이 허공처럼 투명하다.'(박영호, , 교양인, 104쪽) 예전에 박재순 선생의 를 감동과 놀라움으로 다 읽은 후 지금껏 남아 있는 한 가지는 허공처럼 투명한 하나님입니다. 참나, 얼나, 영원한 생명이라고도 부르고, 불교에선 불성, 참자.. 2020. 5. 12.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신동숙의 글밭(146)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딸아이가 영어학원에 간다며 엄마 방으로 들어옵니다. 현관문 앞에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할 때가 많은데, 구석진 방에까지 온 이유는 알고보니 용돈입니다. 읽고 있던 다석 류영모 선생의 내용 중에서 한 단락을 들려주어야겠단 마음이 실바람처럼 불었습니다. 중 3 딸아이에게 '성서조선'과 '조선어학회 사건'이라고 들어봤느냐 물으니, "어, 조선어학회는 들어봤어." 합니다. 그리고 읽고 있던 내용 중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 들어간 한국인이 일본인 간수에게 개인 교사가 되어 공부를 가르쳐줘서 승진 시험을 치르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얘기를 들려주며 지갑에서 이천 원을 꺼내 건네주는데 딸아이의 눈이 번쩍하.. 2020. 5. 11.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신동숙의 글밭(145)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두 자녀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은 어버이날 전야제 저녁밥을 먹고 나서 아빠의 얼굴을 꼭 닮은 딸아이 중학생 딸아이와 아빠가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떠들썩하다가 개구진 딸아이가 손바닥으로 아빠 이마를 바람처럼 스치며 제 방으로 숨는다 커피 내리던 아빠가 반짝 자랑스레"아빠 이마는 태평양"이라고 하니까 딸아이가 방문을 열며"그러면 나는 울산 앞바다" 하며 웃느라 넘어간다 뒷정리 하던 엄마가 "그러면 동생은?" 하니까 신이 난 딸아이가 생각하더니 "동생은 태화강, 엄마는 개천"이라고 한다 엄마는 식탁을 빙 둘러 닦으며 "가장 넓은 건 우주, 우주는 하나님 얼굴이니까 우주 만큼 넓은 마음으로 살아라"고 말해 주는데 떠들썩 돌아오던 대답이 없다 하나님처럼 없다 2020. 5. 10.
카네이션보다 안개꽃 신동숙의 글밭(144) 카네이션보다 안개꽃 카네이션 한 다발을 안겨 주던 날 엄마가 보고 있는 건 카네이션이 아니라 카네이션을 감싼 흰 안개꽃이란다 네가 내 앞에서 웃고 있던 날 엄마가 보고 있는 건 네 옷차림이 아니라 네 등 뒤에 커다란 하늘이란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런 거지 눈에 활짝 띄는 세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언제나 더 크니까 자꾸만 눈에 보이는 건 보이지 않는 하늘이란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러면 그럴 수록 하늘이 점점점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마음 속으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 그러면 너도 꽃처럼 활짝 웃더라 2020. 5. 9.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신동숙의 글밭(143)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아이들의 연필은 신상품 4B, 2B, HB 깨문 자국은 고심하던 흔적 벗겨진 자국은 손 때 묻은 세월 역사를 지닌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그래서 버릴 수 없고 남에게 줄 수도 없고 쓰임 받을 때마다 자신을 비우며 내던 울음소리 웃음소리 때로는 고요한 침묵 몸이 부서지더라도 끝까지 심지가 곧은 그런 몽당 연필을 십 년이 넘도록 다 모아두었다 엄마가 책 읽을 때몽당 연필은 신난다 중요한 말씀이 나오면 나란히 따라서 걷다가 책장 빈 곳마다 말씀 따라쓰기도 한다 가슴에 새겨진 말씀이 된다 2020. 5. 8.
권정생 <강아지똥>은 한국 자주 독립의 국보입니다 신동숙의 글밭(142) 권정생 은 한국 자주 독립의 국보입니다 독립, 나라가 스스로 서는 일, 한국은 8·15 해방으로 독립을 맞이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나 스스로 서지 못하였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애통하게 여긴 바, 스스로 독립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945년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미국이 일본을 굴복시키기 위해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한 것이 한국의 해방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 후로 77년 생인 저의 개인 성장기에 비추어 보아도 한국은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후, 흔들리고 넘어지면서도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하여 부단이 걸어오고 있는 지금도 순례의 길 위에 있습니다. 제가 살던 부산, 옆집에는 장난감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본 동화책 전집의 색색깔 그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 2020. 5. 5.
박꽃과 다석(多夕) 신동숙의 글밭(141) 박꽃과 다석(多夕) 강변에 유채꽃이 피는 무렵, 올해는 마당에 박모종 셋을 띄엄띄엄 심었습니다. 지난해 돌담 아래에 심은 박모종 둘은 그 뿌리가 녹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심지도 않았는데 씨앗으로 번진 꽈리와 깻잎이 보다 더 웃자라면서 박모종이 녹아버리는 바람에, 지난해에는 박꽃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딸의 안타까운 얘기를 곁에서 들어오시던 친정엄마가 장날에 부지런히 박모종을 구해다 심으신 것입니다. 쓸쓸함이 속으로부터 밀물처럼 이는 저녁답이면, 순하고 하얀 박꽃만한 다정한 벗도 없습니다. 저녁밥 지을 무렵이면, 하루도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박꽃의 우정은 신실함입니다. 박모종 둘을 나란히 심어 놓으면 어느 하나의 줄기가 굵어지고 실해지면서 돌담 위로 번져갑니다. 돌담 위로 번져가.. 2020. 5. 1.
언양 석남사, 마음의 결을 빗는 산책길 신동숙의 글밭(140) 언양 석남사, 마음의 결을 빗는 산책길 옆 마을에 사는 벗님이 우리 마을에 왔습니다. 그냥 같이 길을 걸으려고 온 것입니다. 걷다가 배가 고프면 눈에 띄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되고, 또 걷다가 쉬고 싶으면 조용한 찻집에 앉아서 차를 마셔도 되는, 걸어도 걷지 않아도 좋을 다정한 산책길입니다. 예정했던 태화강변길은 오늘따라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햇살이 더워 몸에 땀이 배일 거 같아서, 걷기로 정한 곳이 언양 석남사로 가는 숲길입니다. 누구 하나 숨 가쁘게 걷지 않아도 되는 길. 서로의 말소리가 들릴 만큼의 빈 하늘을 사이에 두고 얼마든지 자유로이 걸어도 좋을 넉넉한 산책길입니다. 소나무의 새순이 싱그러운 산길, 아침 골목길에 본 냉이꽃이 우리보다 먼저 와 기다리는 산길, 여기서도 .. 2020. 4. 30.
아픔은 유난히도 빛나는 별 신동숙의 글밭(139) 아픔은 유난히도 빛나는 별-우체국 집배원 편- 하루를 살다가 더러 아플 때가 있습니다. 아픈 이유는 많겠지만, 맨 처음 이유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맨 처음의 이유입니다. 몸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고, 느낄 수 있다는, 아픔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없다면 아픔도 없는 것인지, 아픔 너머의 세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 있다는 이유로 아픔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온갖 셈으로 헤아리다 보면, 태어난 날로부터 오늘날까지 본전을 따져 보아도 밑지거나 억울해할 일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사람한테 위로를 받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추스르는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어려선 알 수.. 2020.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