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03 언양 석남사, 마음의 결을 빗는 산책길 신동숙의 글밭(140) 언양 석남사, 마음의 결을 빗는 산책길 옆 마을에 사는 벗님이 우리 마을에 왔습니다. 그냥 같이 길을 걸으려고 온 것입니다. 걷다가 배가 고프면 눈에 띄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되고, 또 걷다가 쉬고 싶으면 조용한 찻집에 앉아서 차를 마셔도 되는, 걸어도 걷지 않아도 좋을 다정한 산책길입니다. 예정했던 태화강변길은 오늘따라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햇살이 더워 몸에 땀이 배일 거 같아서, 걷기로 정한 곳이 언양 석남사로 가는 숲길입니다. 누구 하나 숨 가쁘게 걷지 않아도 되는 길. 서로의 말소리가 들릴 만큼의 빈 하늘을 사이에 두고 얼마든지 자유로이 걸어도 좋을 넉넉한 산책길입니다. 소나무의 새순이 싱그러운 산길, 아침 골목길에 본 냉이꽃이 우리보다 먼저 와 기다리는 산길, 여기서도 .. 2020. 4. 30. 아픔은 유난히도 빛나는 별 신동숙의 글밭(139) 아픔은 유난히도 빛나는 별-우체국 집배원 편- 하루를 살다가 더러 아플 때가 있습니다. 아픈 이유는 많겠지만, 맨 처음 이유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맨 처음의 이유입니다. 몸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고, 느낄 수 있다는, 아픔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없다면 아픔도 없는 것인지, 아픔 너머의 세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 있다는 이유로 아픔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온갖 셈으로 헤아리다 보면, 태어난 날로부터 오늘날까지 본전을 따져 보아도 밑지거나 억울해할 일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사람한테 위로를 받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추스르는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어려선 알 수.. 2020. 4. 28. 햇살이 반가운 골방 신동숙의 글밭(138) 햇살이 반가운 골방 아침 설거지를 마친 후 산책 준비를 하러 방으로 들었습니다. 작은 창으로 드는 한 줄기 햇살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해가 뜨는 아침에도 빛줄기가 들지 않는 구석진 방이 제 방입니다. 잠시 비추다 사라질 좁다란 햇살이라도 그저 반가운 골방이라서, 집밖에선 흔한 햇살이 골방에서는 환하게 피워서 안겨 주시는 꽃다발 같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을 20대에 읽은 후 지금껏 제 삶에 영향을 준 가르침이 있습니다. 아무리 좁은 골방에 쪽창이라도, 밖으로 보이는 한 조각의 하늘과 한 줄기의 햇살에도 고마워할 수 있는, 너른 마음을 어느 한 구석에 보석처럼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색과 기도는 그 어디서든 감옥일지라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깨우침입니다. 침대 위로 내.. 2020. 4. 27. 국수와 바람 신동숙의 글밭(137) 국수와 바람 국수를 먹다가 국물을 마시다가 콧잔등에 땀이 맺히고등더리에 땀이 배이려는데 등 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다 어려선 아빠 손에 든 부채가 사랑인 줄 알았는데 오늘은 저절로 부는 바람이 사랑인 걸 2020. 4. 26. 사진 찍는, 꽃 한 송이 신동숙의 글밭(136) 사진 찍는, 꽃 한 송이 딸아이 뒤로 징검다리 건너다가 유채꽃이 환한 태화강 풍경이 어여뻐서 가던 걸음 멈추어 사진에 담았어요 뒤따라오던 청춘 남자가 여자에게 "니도 저렇게 찍어봐라." 들려오는 말소리에 넌지시 뒤돌아보니 조금 옛날 내가 머물던 그 자리에 어여쁜 여자가 꽃 한 송이로 피었어요 2020. 4. 24. 겹벚꽃 할머니 신동숙의 글밭(135) 겹벚꽃 할머니 오일 장날에 참기름집 앞에 서 있는데 앉으신 할머니가 몸을 틀어서 내 있는 쪽으로 손만 뻗고 계신다 할머니의 손이 향한 곳을 보니까 딸기 바구니에 담긴 푸른 엉개잎 바로 지척인데 강 건너 쯤 보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갖다 드릴까요?" 여쭈니 할머니는 눈으로 살풋 미소만 지으신다 참기름병을 가방에 넣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를 헤아리다가 선뜻 몸을 일으키시지도 고맙단 말도 또롯이 못하시면서 할머니는 그 몸으로 장사를 하시네 차가운 바닥에 종일 앉아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해서 해가 뜨면 몸 일으킬 일이 무거워서 나무처럼 할머니의 몸도 입도 무거워서 주름진 얼굴에 핀 수줍은 미소가 겹벚꽃 같아 2020. 4. 23. 소나무와 차나무 신동숙의 글밭(134) 소나무와 차나무 강변 둑으로 어린 쑥이 봄 햇살에 은빛으로 살랑이던 2월의 어느 날. 4살 딸아이의 조막손을 잡고 찾아간 곳은 다도원茶道院입니다. 그날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한 손엔 앵통(차 바구니)을 한 손엔 딸아이의 손을 잡고서 차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다법이 제 몸에 익숙했던 건 어려서부터 귓전에 울리는 일명 부모님의 잔소리,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껏 귓전을 따라다니는 부모님의 음성인 터라 형님들은 처음인데도 잘한다며 이뻐해 주셨고요. 제 나이 32살 무렵이라 다들 저한테는 어머니나 이모 연배셨기에, 선생님이 애초에 저보고 형님이라 부르라 하시며 미리 호칭을 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언니도 아니고 이모도 아닌 그 형님이라는 호칭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 2020. 4. 21. 푸른 잎사귀 신동숙의 글밭(133) 푸른 잎사귀 봄바람에 지는 꽃잎은 고요히 눈을 감는다 꽃 진 자리에 돋는 새순은 순한 귀를 연다 가만가만 꽃잎이 눈을 감으면 공평하게 열리는 푸른 잎사귀 여리고 순한 귀를 기울여 투명한 하늘에 대본다 2020. 4. 20. 남동생은 의리, 누나는 정의, 가정엔 평화를 신동숙의 글밭(132) 남동생은 의리, 누나는 정의, 가정엔 평화를 여야의 거센 돌풍 속에서 21대 총선을 치른 후 이전보다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결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지도상으로는 파란색이 더 많이 보였기에 그래도 한국은 희망이 있습니다. 선거 전에 울산의 어느 시장 상인의 인터뷰에서 "나라를 팔아 먹어도 저는 새누리당이예요."라고 해서 파문을 일으킨 곳이, 바로 제가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처음엔 상인의 말에 저 역시 참 기가 찬다 싶었습니다. 어리석어도 그 만큼 어리석을까 싶은 답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울산은 다른 세상,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마을입니다. 총선 전날 부산에 살고 있는 남동생의 네 식구가.. 2020. 4. 19. 이전 1 ··· 38 39 40 41 42 43 44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