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숙의 글밭499

사진 찍는, 꽃 한 송이 신동숙의 글밭(136) 사진 찍는, 꽃 한 송이 딸아이 뒤로 징검다리 건너다가 유채꽃이 환한 태화강 풍경이 어여뻐서 가던 걸음 멈추어 사진에 담았어요 뒤따라오던 청춘 남자가 여자에게 "니도 저렇게 찍어봐라." 들려오는 말소리에 넌지시 뒤돌아보니 조금 옛날 내가 머물던 그 자리에 어여쁜 여자가 꽃 한 송이로 피었어요 2020. 4. 24.
겹벚꽃 할머니 신동숙의 글밭(135) 겹벚꽃 할머니 오일 장날에 참기름집 앞에 서 있는데 앉으신 할머니가 몸을 틀어서 내 있는 쪽으로 손만 뻗고 계신다 할머니의 손이 향한 곳을 보니까 딸기 바구니에 담긴 푸른 엉개잎 바로 지척인데 강 건너 쯤 보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갖다 드릴까요?" 여쭈니 할머니는 눈으로 살풋 미소만 지으신다 참기름병을 가방에 넣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를 헤아리다가 선뜻 몸을 일으키시지도 고맙단 말도 또롯이 못하시면서 할머니는 그 몸으로 장사를 하시네 차가운 바닥에 종일 앉아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해서 해가 뜨면 몸 일으킬 일이 무거워서 나무처럼 할머니의 몸도 입도 무거워서 주름진 얼굴에 핀 수줍은 미소가 겹벚꽃 같아 2020. 4. 23.
소나무와 차나무 신동숙의 글밭(134) 소나무와 차나무 강변 둑으로 어린 쑥이 봄 햇살에 은빛으로 살랑이던 2월의 어느 날. 4살 딸아이의 조막손을 잡고 찾아간 곳은 다도원茶道院입니다. 그날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한 손엔 앵통(차 바구니)을 한 손엔 딸아이의 손을 잡고서 차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다법이 제 몸에 익숙했던 건 어려서부터 귓전에 울리는 일명 부모님의 잔소리,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껏 귓전을 따라다니는 부모님의 음성인 터라 형님들은 처음인데도 잘한다며 이뻐해 주셨고요. 제 나이 32살 무렵이라 다들 저한테는 어머니나 이모 연배셨기에, 선생님이 애초에 저보고 형님이라 부르라 하시며 미리 호칭을 정해 주셨던 것입니다. 언니도 아니고 이모도 아닌 그 형님이라는 호칭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 2020. 4. 21.
푸른 잎사귀 신동숙의 글밭(133) 푸른 잎사귀 봄바람에 지는 꽃잎은 고요히 눈을 감는다 꽃 진 자리에 돋는 새순은 순한 귀를 연다 가만가만 꽃잎이 눈을 감으면 공평하게 열리는 푸른 잎사귀 여리고 순한 귀를 기울여 투명한 하늘에 대본다 2020. 4. 20.
남동생은 의리, 누나는 정의, 가정엔 평화를 신동숙의 글밭(132) 남동생은 의리, 누나는 정의, 가정엔 평화를 여야의 거센 돌풍 속에서 21대 총선을 치른 후 이전보다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기대했던 결과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지도상으로는 파란색이 더 많이 보였기에 그래도 한국은 희망이 있습니다. 선거 전에 울산의 어느 시장 상인의 인터뷰에서 "나라를 팔아 먹어도 저는 새누리당이예요."라고 해서 파문을 일으킨 곳이, 바로 제가 살고 있는 마을입니다. 처음엔 상인의 말에 저 역시 참 기가 찬다 싶었습니다. 어리석어도 그 만큼 어리석을까 싶은 답답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울산은 다른 세상, 이상한 나라가 아니라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마을입니다. 총선 전날 부산에 살고 있는 남동생의 네 식구가.. 2020. 4. 19.
생활은 불편해도 마음만은 행복합니다 신동숙의 글밭(131) 생활은 불편해도 마음만은 행복합니다 생활이 불편해졌습니다. 제 가까이 불편한 것은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것과 경제 활동과 만남이 수축된 일입니다. 그리고 멀리는 코로나19로 다른 나라들에선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땅에 묻히는 이들이 많다는 소식들로 마음이 아프고 불편합니다. 그리고 현 상황이 얼마나 장기화 될 지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과 이 시기가 지나가더래도 이후에 많은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마음을 무겁게 누릅니다. 이런 상황은 제 개인의 불편함을 넘어서 전세계인들의 생활이 다 함께 불편해졌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의 한 가운데서 더욱 빛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것들로 인해 마음만은 행복합니다. 한국의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시골 뿐만 아니라 도시에.. 2020. 4. 17.
노란 유채꽃과 노란 리본 신동숙의 글밭(130) 노란 유채꽃과 노란 리본 노란 유채꽃이 한껏 노랗게 피어나는 4월의 봄날에,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환해지는, 수학여행길에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떠올리다 보면, 깊은 바다 속에서도 봄이 피어오를 수 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바다의 그 깊이 만큼 하늘의 그 공평한 햇살은 깊이 내려가서, 바다도 하늘도 더불어 푸르고 따스한 봄날이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까지 학생 곁을 떠나지 않은 자애로운 선생님이 엄마처럼 함께 계셨기에. 식어가는 친구의 몸을 친구와 친구가 서로를 꼭 끌어 안으며 형제 자매처럼 함께 있었기에. 함께 걸었을 생의 그 마지막 길에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피를 나눈 가족처럼 다 함께 있었기에. 제 프로필 사진에 노란 리본을 달던 날, 시를 .. 2020. 4. 16.
봄날엔 가시도 순하다 신동숙의 글밭(129) 봄날엔 가시도 순하다 두릅나무에선 두릅나무 순이 엉게나무에선 엉게나무 순이 제피나무에선 제피나무 순이 가시나무에 돋은 어린잎들마다 봄날엔 가시도 순하다 여리고 순한 가시잎을 끓는 물에 데치고 양념장에 버무린다 가끔은 뾰족해진 내 가슴에서 돋아나는 순도 여리고 순할 때 부지런히 뜯어서 씁쓸한 약으로 나물반찬으로 끓는 가슴에 데치고 맑은 눈물로 씻어서 사색의 양념장에 버무릴까 감사와 평화의 기도손 모아 순한 쌈으로 저녁밥상에 올릴까 2020. 4. 11.
핸드폰 안에도 양심이 살고 있어요 신동숙의 글밭(128) 핸드폰 안에도 양심이 살고 있어요 집 밖에선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전쟁 중이고, 집 안에선 자녀들 손 안에 든 핸드폰과 전쟁 중입니다. 바이러스와 핸드폰 속의 온라인 세상, 둘 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처럼, 진리의 성령처럼, 부활하신 예수가 공평하게 주고 가신 양심처럼, 이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사라진 적 없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핸드폰 속 온라인 세상은, 없는 듯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생명체들입니다. 요즘 내내 자유로워야 할 양심이 가볍지 않고 바윗돌을 얹은 듯 무거운 이유를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풀리지 않는 체증처럼 답답한 마음을 스스로 헤집어 봅니다. 그 답은 마음 밖에서나 타인이 아닌, 언제나 제 마음.. 2020.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