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506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신동숙의 글밭(143)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아이들의 연필은 신상품 4B, 2B, HB 깨문 자국은 고심하던 흔적 벗겨진 자국은 손 때 묻은 세월 역사를 지닌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그래서 버릴 수 없고 남에게 줄 수도 없고 쓰임 받을 때마다 자신을 비우며 내던 울음소리 웃음소리 때로는 고요한 침묵 몸이 부서지더라도 끝까지 심지가 곧은 그런 몽당 연필을 십 년이 넘도록 다 모아두었다 엄마가 책 읽을 때몽당 연필은 신난다 중요한 말씀이 나오면 나란히 따라서 걷다가 책장 빈 곳마다 말씀 따라쓰기도 한다 가슴에 새겨진 말씀이 된다 2020. 5. 8. 권정생 <강아지똥>은 한국 자주 독립의 국보입니다 신동숙의 글밭(142) 권정생 은 한국 자주 독립의 국보입니다 독립, 나라가 스스로 서는 일, 한국은 8·15 해방으로 독립을 맞이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으나 스스로 서지 못하였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애통하게 여긴 바, 스스로 독립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945년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미국이 일본을 굴복시키기 위해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한 것이 한국의 해방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 후로 77년 생인 저의 개인 성장기에 비추어 보아도 한국은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후, 흔들리고 넘어지면서도 스스로 바로 서기 위하여 부단이 걸어오고 있는 지금도 순례의 길 위에 있습니다. 제가 살던 부산, 옆집에는 장난감이 많았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본 동화책 전집의 색색깔 그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 2020. 5. 5. 박꽃과 다석(多夕) 신동숙의 글밭(141) 박꽃과 다석(多夕) 강변에 유채꽃이 피는 무렵, 올해는 마당에 박모종 셋을 띄엄띄엄 심었습니다. 지난해 돌담 아래에 심은 박모종 둘은 그 뿌리가 녹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심지도 않았는데 씨앗으로 번진 꽈리와 깻잎이 보다 더 웃자라면서 박모종이 녹아버리는 바람에, 지난해에는 박꽃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딸의 안타까운 얘기를 곁에서 들어오시던 친정엄마가 장날에 부지런히 박모종을 구해다 심으신 것입니다. 쓸쓸함이 속으로부터 밀물처럼 이는 저녁답이면, 순하고 하얀 박꽃만한 다정한 벗도 없습니다. 저녁밥 지을 무렵이면, 하루도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박꽃의 우정은 신실함입니다. 박모종 둘을 나란히 심어 놓으면 어느 하나의 줄기가 굵어지고 실해지면서 돌담 위로 번져갑니다. 돌담 위로 번져가.. 2020. 5. 1. 언양 석남사, 마음의 결을 빗는 산책길 신동숙의 글밭(140) 언양 석남사, 마음의 결을 빗는 산책길 옆 마을에 사는 벗님이 우리 마을에 왔습니다. 그냥 같이 길을 걸으려고 온 것입니다. 걷다가 배가 고프면 눈에 띄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되고, 또 걷다가 쉬고 싶으면 조용한 찻집에 앉아서 차를 마셔도 되는, 걸어도 걷지 않아도 좋을 다정한 산책길입니다. 예정했던 태화강변길은 오늘따라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햇살이 더워 몸에 땀이 배일 거 같아서, 걷기로 정한 곳이 언양 석남사로 가는 숲길입니다. 누구 하나 숨 가쁘게 걷지 않아도 되는 길. 서로의 말소리가 들릴 만큼의 빈 하늘을 사이에 두고 얼마든지 자유로이 걸어도 좋을 넉넉한 산책길입니다. 소나무의 새순이 싱그러운 산길, 아침 골목길에 본 냉이꽃이 우리보다 먼저 와 기다리는 산길, 여기서도 .. 2020. 4. 30. 아픔은 유난히도 빛나는 별 신동숙의 글밭(139) 아픔은 유난히도 빛나는 별-우체국 집배원 편- 하루를 살다가 더러 아플 때가 있습니다. 아픈 이유는 많겠지만, 맨 처음 이유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맨 처음의 이유입니다. 몸이 있고, 생각이 있고, 마음이 있고, 느낄 수 있다는, 아픔은 살아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없다면 아픔도 없는 것인지, 아픔 너머의 세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 있다는 이유로 아픔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며 온갖 셈으로 헤아리다 보면, 태어난 날로부터 오늘날까지 본전을 따져 보아도 밑지거나 억울해할 일은 아니라며 스스로를 추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사람한테 위로를 받으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추스르는 일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어려선 알 수.. 2020. 4. 28. 햇살이 반가운 골방 신동숙의 글밭(138) 햇살이 반가운 골방 아침 설거지를 마친 후 산책 준비를 하러 방으로 들었습니다. 작은 창으로 드는 한 줄기 햇살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해가 뜨는 아침에도 빛줄기가 들지 않는 구석진 방이 제 방입니다. 잠시 비추다 사라질 좁다란 햇살이라도 그저 반가운 골방이라서, 집밖에선 흔한 햇살이 골방에서는 환하게 피워서 안겨 주시는 꽃다발 같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을 20대에 읽은 후 지금껏 제 삶에 영향을 준 가르침이 있습니다. 아무리 좁은 골방에 쪽창이라도, 밖으로 보이는 한 조각의 하늘과 한 줄기의 햇살에도 고마워할 수 있는, 너른 마음을 어느 한 구석에 보석처럼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색과 기도는 그 어디서든 감옥일지라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깨우침입니다. 침대 위로 내.. 2020. 4. 27. 국수와 바람 신동숙의 글밭(137) 국수와 바람 국수를 먹다가 국물을 마시다가 콧잔등에 땀이 맺히고등더리에 땀이 배이려는데 등 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다 어려선 아빠 손에 든 부채가 사랑인 줄 알았는데 오늘은 저절로 부는 바람이 사랑인 걸 2020. 4. 26. 사진 찍는, 꽃 한 송이 신동숙의 글밭(136) 사진 찍는, 꽃 한 송이 딸아이 뒤로 징검다리 건너다가 유채꽃이 환한 태화강 풍경이 어여뻐서 가던 걸음 멈추어 사진에 담았어요 뒤따라오던 청춘 남자가 여자에게 "니도 저렇게 찍어봐라." 들려오는 말소리에 넌지시 뒤돌아보니 조금 옛날 내가 머물던 그 자리에 어여쁜 여자가 꽃 한 송이로 피었어요 2020. 4. 24. 겹벚꽃 할머니 신동숙의 글밭(135) 겹벚꽃 할머니 오일 장날에 참기름집 앞에 서 있는데 앉으신 할머니가 몸을 틀어서 내 있는 쪽으로 손만 뻗고 계신다 할머니의 손이 향한 곳을 보니까 딸기 바구니에 담긴 푸른 엉개잎 바로 지척인데 강 건너 쯤 보일까 싶어 나도 모르게 "갖다 드릴까요?" 여쭈니 할머니는 눈으로 살풋 미소만 지으신다 참기름병을 가방에 넣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를 헤아리다가 선뜻 몸을 일으키시지도 고맙단 말도 또롯이 못하시면서 할머니는 그 몸으로 장사를 하시네 차가운 바닥에 종일 앉아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갈 일이 까마득해서 해가 뜨면 몸 일으킬 일이 무거워서 나무처럼 할머니의 몸도 입도 무거워서 주름진 얼굴에 핀 수줍은 미소가 겹벚꽃 같아 2020. 4. 23. 이전 1 ··· 38 39 40 41 42 43 44 ··· 5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