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숙의 글밭499 온몸을 감싸는 신동숙의 글밭(109) 온몸을 감싸는 온몸을 감싸는 따사로운 봄햇살이 안아주는 품인 것을 가슴을 스치는 한 줄기 봄바람이 홀가분한 날개인 것을 뼛속 깊이 들어 아려오는 봄비가 속 깊은 울음인 것을 없는 듯 있는 커다란 하늘이 살아있는 숨결인 것을 한순간도 멈춘 적 없는 한순간도 끊인 적 없는 경전의 말씀인 것을 굳어진 마음을 만지는 메마른 가슴을 적시는 조물주의 손길인 것을 2020. 3. 14. 짬뽕을 먹으며 '가난'을 얘기했다가 신동숙의 글밭(108) 짬뽕을 먹으며 '가난'을 얘기했다가 딸아이는 제 방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고, 아들은 쇼파에 늘어져 텔레비젼을 보고 있고, 엄마는 책을 읽는 둥 페이스북을 하는 둥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아차 싶어서 거실로 나서며, "얘들아~ 우리 뭐 먹을까? 우리 이러다가 굶겠다. 다 모여봐." 방에서 튀어나온 딸아이가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더니, 배달의 민족에서 자기가 주문을 할 테니, 매뉴를 정하자며 의견을 냅니다. 퇴근해서 돌아올 아빠 몫까지 모처럼 중국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짬뽕 곱배기, 볶음밥, 짬짜면, 탕수육 소자. 온 가족이 거실에 있는 원목 테이블에 둘러 앉아서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낮에 눈물을 흘리면서 본, '설악산의 짐꾼 아.. 2020. 3. 13. 텅 빈 카페 신동숙의 글밭(107) 텅 빈 카페 몸이 늘어지도록 늦잠을 자던 중학생 딸아이가 방에서 나오며 대뜸, "엄마, 우리 카페 가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뭔가 얘기를 해옵니다. "엄마~ 코로나에 걸리면 치사율이 몇 프로인지 알아?" (계속 반말을 합니다. 이쯤 되면 존댓말을 해야 되지 않느냐고 엄마로써 한마디 해줘야 하는데, 얘기가 재미나서 그냥 끝까지 들어주었답니다.) 그러면서 딸아이는 자문자답을 합니다. 3%라며, 수능 시험 1등급 받을 확률이라면서, 친구들하고 카톡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우리는 걱정 안해도 된다."고 했다며, 환하게 웃으면서 카페를 가자고 합니다. 아직은 외출이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러자고 했습니다. 마당에 하얀 목련꽃이 어제보다 조금 더 피어서 오후의 햇살을 듬뿍 받아 딸아이의 미소처.. 2020. 3. 12. 봄비, 얼마나 낮아지면('신의 날' Kol Nidrei) 신동숙의 글밭(106) 봄비, 얼마나 낮아지면('신의 날' Kol Nidrei) 온종일 봄비가 내립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비를 두고 떨어진다 하지 않고 내린다 합니다. 낮은 땅으로 가만가만 닿는 빗소리가 평온함을 줍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봄비는 말없이 가장 낮은 숨을 쉬며 이 땅을 하얗게 적십니다. 지난밤부터 마당으로 내리는 빗소리에, 온몸은 물기를 머금은 듯 아려옵니다. 그대로 마음이 가라앉으면 들뜨던 숨이 저절로 낮아집니다. 잔잔한 빗소리에 메마른 가슴에도 그리움이 흐르면, 앉은 자리 그대로 기도가 됩니다. 이 순간 쟈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의 첼로 연주곡인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Max Bruch, Kol Nidrei Op. 47)가 있다면 좋은 사우師友가 되어줍.. 2020. 3. 11. 매화꽃 한 송이 신동숙의 글쓰기(105) 매화꽃 한 송이 한 잎의 얼굴 한 줄의 꽃술 기자와 목사와 신부와 스님과 음악가 꽃잎 한 장의 양심 다섯 잎이 모이면 어린 아이 노란 꽃술들 수두룩 안을 수 있다 매화꽃 한 송이 참 소복하다 2020. 3. 10. 만약에 우리집에 코로나19가 온다면 신동숙의 글쓰기(104) 만약에 우리집에 코로나19가 온다면 만약에 우리집에 코로나19가 온다면,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듭니다. 현 정부의 정직한 대응책으로 철저한 방역과 확진자 동선의 투명한 공개가 잘 이루어지고 있고, 병원 의료진들의 적극적이고 헌신적인 치료와 다양한 사회 시설 등으로부터 격리 치료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전국에서 물심 양면으로 도움의 손길들이 이어지고 있고,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와 기침 예절을 온 가족과 이웃들이 다함께 잘 지키고 있으며, 다들 작은 만남과 모임과 생계를 위한 영업과 예배도 참아가면서 되도록 외출을 자제하고 있으며, 그런 정부의 발빠른 대응책에 든든한 믿음이 가다가도, 어디선가 불쑥불쑥 돌발 행동으로 계속해서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는 신천지 .. 2020. 3. 9. 3월의 푸른 차나무 신동숙의 글밭(103) 3월의 푸른 차나무 머리가 무거울 때면 산으로 갑니다. 산 좋고, 물 좋고, 인적이 드물고 그러면서도 안전한 곳으로 작은 암자만한 곳도 없습니다. 그럴 때면 암자가 있는 자리에 대신 작은 예배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산 속 오솔길을 걷다가 작고 소박한 예배당 십자가가 보인다면, 도시락을 넉넉히 싸들고서라도 부지런히 찾아갈 텐데 말이지요. 헝클어진 머리칼을 빗듯이 뒤죽박죽 세상 뉴스에 헝클어진 마음의 결을 고르기에는 자연이 좋은 처방전입니다. 아무런 말없이 고요히 앉았다가 오는 일입니다. 산에선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가슴에서 들려오는 작은 숨소리까지 귓전에 잔잔하게 울리면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어 먼 산 능선을 가만히 바라보기도합니다. 그렇게 바.. 2020. 3. 8. 이렇다면 나도 신천지다 신동숙의 글밭(102) 이렇다면 나도 신천지다 14만4천 명의 구원수 안에 들기 위해서 이 세상과 가족에게까지 등 돌린 한탕주의 이기심. 전도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추수꾼이라는 거짓 사명을 따라서, 존엄한 인간을 진실과 섬김과 사랑의 대상이 아닌, 거짓과 수단과 도구로 전락시킨 이기심.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일렬종대로 따닥따닥 맨바닥에 엎드린 사대주의와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시절의 식민노예근성으로 구원 시험을 치르는 맹목적 구원의 이기심. 예수는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으라 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예수가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사건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내가 너희를 이처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이웃을 섬기며 사랑하라, 하시며 전도 점수를 채우지 못하면 .. 2020. 3. 7. 촛불 하나 신동숙의 글밭(101) 촛불 하나 숨을 쉬는 평범한 일이 아주 특별한 일이 되었다 코와 입을 가리고, 눈빛으로만 사람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봄날이다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도 사람들이 쳐다본다 밥을 먹은 후 잔기침만 해도 사람들이 떠나간다 숨을 쉬는 일이 삶에 생기를 누른다 갑갑증이 툴툴거리는 딸아이한테 가서 터졌다 "제발, 남 탓 하지 말고, 자신한테서 문제를 찾아"라고 그래놓고 후회가 밀려온다 바른말로 상처를 주고, 감싸주지 못한 것이 혹여 좁아진 가슴에 촛불 하나 없었다면 어떻게 견뎠을까 쳐다보는 사람도, 떠나가는 사람도 그래도 미운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아주 흔들려도 꺼지지 않는 촛불 하나 봄꽃처럼 피었기 때문이다 코와 입으로 마음껏 숨을 쉴 수 없다면 가슴으로 더 깊이 숨을 쉬면 된다 봄바람.. 2020. 3. 6. 이전 1 ··· 41 42 43 44 45 46 47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