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런 날
이웃집 변관수 할아버지는 두고 두고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허리는 다 꼬부라진 노인이 당신의 농사일을 꾸려나가는 걸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어느 샌지 난 숨이 막혀옵니다. 노인 혼자 힘으로는 엄두가 안 나 보이는 일을 할아버지는 묵묵히 합니다. 논일, 밭일, 할아버지의 작고 야윈 몸으로는 감히 상대가 안 될 일감입니다. 씨 뿌리고, 김매고, 돌 치워내고, 비료 주고, 논둑 밭둑 풀을 깎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하고 내일 못하면 모레 하고, 세월이 내게 숨을 허락하는 한 내 일 내가 해야지, 지칠 것도 질릴 것도 없이 할아버진 언제나 자기걸음입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뙤약볕 쏟아지면 그 볕 다 맞고, 어느 것도 논과 밭에서 할아버지를 떼 놓을 것이 없습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켜켜 가슴에 쌓였을 답답함과..
2021.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