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바퀴는 빼고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2) 바퀴는 빼고요 마음의 청결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걸레와 행주 이야기에 이어 나온 이야기가 그릇 이야기였다. 자신의 마음 밑바닥이 청결치 못해 담기는 모든 것을 기쁨으로 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고백이었다. 쉽지 않은, 정직한 고백이다 싶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오래 전 일이 떠올랐다. 단강에서 목회를 할 때였다. 여름성경학교 강습회가 있었고, 하루 몇 대 없는 버스로 원주 시내로 나가야 했던 나는 제법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용한 찻집을 찾았다. 창문을 통해 오가는 사람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2층 찻집이었다.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강의할 내용을 정리하고 있을 때, 뒤편에서 외마디 소리가 들려 왔다. “아가씨!” 비명에 가까운 날카로운 소리였다. 돌아보.. 2019. 12. 16. 걸레와 행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1) 걸레와 행주 대림절을 보내며 갖는 아침 묵상, 오늘 나눈 묵상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주님을 뵙는 복을 누린다는 말씀이었다. ‘청결’(카다로스)이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비혼합이고, 다른 하나는 키질이다. 가짜 휘발유 이야기를 나눴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넣는 재료는 물이 아니라 진짜 휘발유다. 기가 막힌 역설, 가짜 휘발유 이야기는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가짜라고 보여도 진짜가 더 많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안에 아무리 진짜가 많아도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무시하기 쉬운 적은 양의 가짜인 것이다. 어릴 적 이불에 지도.. 2019. 12. 15. 아찔한 기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40) 아찔한 기로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향유를 부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두 사람은 서로 대비가 된다. 빛과 어둠만큼이나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한 사람은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부어드린 여인이다. 그녀가 막달라 마리아라면 드는 생각이 있다. 그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여성성 대신 동물성만 남아 있는, 사물보다도 못한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예수를 통해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면 무엇이 아까웠을까. 내 지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려도, 모두 드려도 무엇 하나 아까울 것이 없을 것은 내가 받은 사랑에 비한다면 내가 드리는 것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인과 대비가 되는 한 사람은 여인을 비난하고 있는 사람이다. 성경.. 2019. 12. 13. 링반데룽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9) 링반데룽 대림절 기간, 아침마다 두 사람과 마주앉아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교단에서 발행한 묵상집을 따라가고 있다. 며칠 전에 주어진 본문은 창세기 3장 9절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라는 본문이었다. “네가 어디 있느냐?”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물은 최초의 질문이었다. 묵상을 나눈 뒤 링반데룽 이야기를 했다. 독일어로 ‘링반데룽’(Ringwanderung)은 둥근 원을 뜻하는 ‘Ring’과 걷는다는 뜻의 ‘Wanderung’이 합쳐진 말이다. 등산 조난과 관련된 용어인데, 등산 도중에 짙은 안개 또는 폭우나 폭설 등 악천후로 인해서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계속해서 같은 지역을 맴도는 현상을 말한다. 길을 찾아 앞으.. 2019. 12. 12. 해바라기의 미덕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8) 해바라기의 미덕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입구, 빈 화분걸이가 걸려 있는 담장 곁으로 해바라기가 서 있다. 푸른 이파리 끝 노랗게 피었던 해바라기가 온통 진한 갈색으로 변한 채 겨울을 맞는다. 사라지기 전 먼저 찾아오는 것이 빛깔을 잃어버리는 것, 저물어가는 것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바라기의 시간이 다 끝났구나 싶은데,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해바라기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참새들이 찾아든다. 참새들이 해바라기를 찾아오는 길을 나는 안다. 별관 꼭대기 옥상에 앉아 있던 참새들이 쏟아지듯 먼저 내려앉는 곳은 해바라기 건너편에 서 있는 소나무, 딴청을 피우듯 소나무에 앉아 숨을 고른 뒤에야 폴짝 참새들은 해바라기를.. 2019. 12. 11. 맨발로 가는 길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7) 맨발로 가는 길 무익한 일을 하는 이들 대부분은 자기가 하는 일이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누가 봐도 무익한 일인데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화 한다.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한다. 무익함 속에는 어리석음과 악함이 공존한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익한 일인 줄 모르고 무익한 일은 한다면 어리석음이고, 무익한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한다면 악이다. 무익함 속에서 어리석음과 악은 자연스럽게 손을 잡는다. 내밀한 우정을 나누듯이. 간디가 자주 인용한 말이 있다. “지옥으로 가는 모든 길이 선한 동기로 포장되어 있다.”는 라틴 격언이다. 선한 동기로 포장되어 있다고 그 길이 모두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니다. 천국으로 가는.. 2019. 12. 9. 가장 큰 유혹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6) 가장 큰 유혹 나는 그분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교수님, 스승님, 은사님, 박사님, 그분을 부르는 호칭은 많고, 그 어떤 호칭도 어색할 것이 없고, 그 모든 것을 합해도 부족할 것이 없는 분을 나는 그냥 선생님이라 부른다. 배움이 깊지 못한 내가 그분을 스승님이나 은사님이라 부르는 것이 행여 누를 끼치는 일일까 싶어, 이만큼 떨어져 조심스럽게 선생님이라 부를 뿐이다. 학생의 최소한의 도리를 못하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린다. 그럴수록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담는다. 냉천동에서 나는 그분께 성경을 배웠는데, 학문이 아니라 성경을 대하는 진중한 태도를 배웠다. 모든 호칭을 배제한 한 사람 민영진, 그 하나만으로도 그 분은 내게 좋은 선생님이 되신다. 성서주일을 앞.. 2019. 12. 9. 문명 앞으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5) 문명 앞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의외로 단순한 것들이다. 한 화장실에 들렀더니 변기 앞에 짧은 글이 붙어 있었다. 문명 앞으로 한 걸음만 더! Move forward one step closer to civilization! ‘변기 앞으로’가 아니었다. 문명 앞으로였다. 바지춤을 내리다 그 글을 읽고는 웃으며 조금 더 다가섰다. 문명 앞으로. 2019. 12. 8.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34)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 아침 기도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희끗희끗 뭔가 허공에 날리는 것이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눈이었다. 작은 눈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눈이 오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보는 눈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는데 생각하니 마침 절기로 ‘대설’, 자연의 어김없는 걸음이 감탄스러웠다. 잠시 서서 눈을 감상하고 있을 때 담장 저쪽 끝에서 참새 몇 마리가 날아오른다. 언제라도 참새들의 날갯짓과 재잘거림은 경쾌하다. 참새들의 날갯짓과 희끗희끗 날리기 시작하는 눈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맞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이처럼 가벼운 것들이다. 대설과 눈, 눈가루와 참새,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서로 어울려 세상은 넉넉히 아름답다. 2019. 12. 7.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5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