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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네가 무엇을 보느냐?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 네가 무엇을 보느냐?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臨)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對答)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니라”(예레미야 1:11-12). 예레미야를 부르신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물으신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물으신다. 우리는 보는 것을 통해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 하지 않는가?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관심의 방향과 내용일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네가 무엇을 보느냐 물으신 것은 네 마음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를 물으신 것.. 2015. 3. 2.
소주병 꽃꽂이 한희철의 두런두런(18) 소주병 꽃꽂이 수요일 저녁예배 시간, 설교 시간에 들어온 광철 씨의 손엔 꽃병이 들려 있었다. 기도도 드리지 않은 채 성큼 제단으로 나온 -사실은 두어 걸음이면 되지만- 그는 “전도사님, 여기 꽃 있어요.” 하며 꽃병을 내밀었다. 산에 들에 피어난 꽃을 한 묶음 꺾어 병에 담아온 것이었다. 잠시 설교가 중단되긴 했지만 그 순박한 마음을 웃음으로 받아 제단 한 쪽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올려놓고 보니 꽃을 담아온 병이 다름 아닌 소주병이었다. ‘백합 소주’였다. 모두들 악의 없이 웃었다. 혹 광철 씨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도록 좋게 말하며 나도 함께 웃었지만 마음 찡하니 울려오는 게 있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꽃꽂이는 이런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시골 전도사 한 달 생활비.. 2015. 2. 24.
우리는 모르는 만큼 말한다 한희철의 두런두런(5) 우리는 모르는 만큼 말한다 헨리 나우웬의 책을 읽고 있던 아내가 내게 물었다. 한 문장을 읽을 터이니 그것이 무엇을 두고서 한 말인지를 알아 맞춰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뒤 아내가 읽어주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탄광의 본고장 뉴캐슬에 석탄을 지고 가는 기분이요, 네덜란드 사람의 표현대로라면 ‘올빼미 천지인 아테네에 가면서 올빼미를 데리고 가는 격’이며, 프랑스 사람의 말로는 ‘물을 들고 강에 가는 꼴’이 아닐 수 없다.” 동병상련 때문이었을까, 아내가 읽어주는 문장을 들으며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강론(설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헨리 나우웬이 온종일 사전을 들여다보면서 다음날 해야 할 강론에 필요한 단어를 찾으며 썼던 글이었다... 2015. 2. 20.
약점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 약점을 어루만지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예레미야 1:9) 어디 그게 불쑥 튀어나온 가벼운 변명이었을까? 예레미야의 속 깊은 고뇌였을 것이다. 뼛속이 떨리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구별하였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합니다” 했던 것은. 나는 아무 것도 준비한 것이 없는데, 하나님은 나를 쓰시겠다고 하신다. 나는 대답도 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은 내가 생겨나기 전부터 나를 택하셨다고 하신다. 갑자기 뒤집히는 시간, 존재의 어지럼증, 이해와 .. 2015. 2. 13.
소가 울었다, 엄마소가 밤새 울었다 한희철의 두런두런(19) 소가 울었다, 엄마소가 밤새 울었다 흐린 조명 처음엔 흐린 조명 때문이라 했지만, 실은 아니었다. 앉으면 앞사람 등에 코가 닿을 듯 작은 방, 가운데 달려 있던 백열전등 대신 형광등을 앞뒤로 두 개 달아 밝혔는데도 교우들은 성경 찬송을 잘 찾질 못했다. 그 사실을 말해주어서 고마웠다. ‘그래요, 맨 처음부터 시작하죠.’ 얼마간 교회를 다녔던 분들이지만, 바쁜 농사일을 두고 염태고개 너머에 있는 먼 교회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것이다. 맨 처음부터 다시 하기로 한다. 애정과 끈기 잃지 않으며. 쓸데 즉은 얘기 수요일 저녁예배를 마쳤는데, 경림이가 빨리 집으로 가잔다. 무슨 일이냐 물으니 가보면 안다 하며 대답을 안 한다. 반장님 생일이었다. 작은 케이크가 마련된 상을 중심으로 가족.. 2015. 2. 11.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한희철의 두런두런(4)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어느 유머 코너에 적힌 글을 읽다보니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이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질문을 대하며 대뜸 들었던 생각은 당연히 ‘물’, 혹은 ‘솔벤트’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역시 ‘물’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그러나 정답은 의외였다. ‘진짜 휘발유’라는 것이다. 이런,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진짜 휘발유’라니! 정답을 확인하는 순간 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았다. 기가 막힌 역설! 머리가 환하게 맑아지는 느낌이기도 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진짜 휘발유라는 사실은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가짜 휘.. 2015. 2. 6.
천천히 가자 한희철의 두런두런(20) 천천히 가자 창립 예배를 마치고는 모두들 돌아갔다. 지방 교역자들도, 몇 몇 지인들도, 부모님도, 결혼을 약속한 사람도 모두 돌아갔다. 흙벽돌로 만든 사랑방에서 혼자 맞는 밤, 얍복 나루의 야곱이 생각났다. 그래, 편안히 가자. 맨 앞장을 선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럴수록 천천히 가자. 비를 처음 맞을 때에야 비를 피하기 위해 뛰지만, 흠뻑 젖은 뒤엔 빗속을 천천히 걸어갈 수 있는 법, 희망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갈라진 틈이나 옹이 구멍을 통해 보더라도 세상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했던 H.D. 소로우의 말이 떠올랐다. 아니라 하십시오 아니라 하십시오. 동정이나 연민으로, 안쓰러움으로 내 손을 잡질랑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2015. 2. 3.
이 땅 이 시대가 피워 올리는 눈물의 봉화 한희철의 두런두런(3) 이 땅 이 시대가 피워 올리는 눈물의 봉화 언젠가 저 남쪽 끝에 있는 교회를 찾아가 말씀을 나눈 일이 있습니다. 잘 아는 후배가 섬기고 있던 교회였지요.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 후배와 길을 나섰습니다. 답답하고 힘들 때 자신이 찾는 곳을 보여주고 싶다 했습니다. 바다와 섬이 그림처럼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이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왔지요. 하지만 후배가 찾는 곳은 빼어난 조망대가 아니었습니다. 언덕 위엔 돌을 쌓아 만든 봉화대가 있었습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불을 피워 다급한 상황을 알리는 봉화대였습니다. 마음 답답하고 힘들 땐 그 봉화대 위에 올라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봉화를 피워 올리듯 드리는 기도, 세상에 그만한 기도가 어디 흔할까 눈시울이.. 2015. 1. 29.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3)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主)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예레미야 1:6).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예레미야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슬픕니다”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부르셨는데 슬프다니!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예언자가 보인 반응이라 하기에는 어이없어 보인다. 하나님의 뜻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믿음이 적고 약해 보인다. 위대한 주님의 종이라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할렐루야!” 하며 두 손을 들든지, “영광입니다!” 하는 뜨거운 반응을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사막 동굴에서 기도하는 한 수도자를 사탄이 찾아왔다. 빛의 천사를 가장하고서. 사탄은 수도자에게 “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내서 온 빛의 천사입니다”라고.. 2015.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