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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손과 손 선머슴 손 같다고, 언젠가 아내는 내 손을 두고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원래 손이 큰데다가 언제 배겼는지 모를 군살이 아직껏 손바닥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각기 다르게 생긴, 그러나 하나같이 못생긴 손톱이 톱니바퀴처럼 꺼칠했고, 영 돌보지 않는 손톱 주변이 지저분했던 것도 그렇게 말한 이유 중의 하나였을 겁니다. 시골에서 수고한다고 인사차 그러는 거겠지만 이따금 아는 이들을 만나 악수를 하면 손이 꺼칠해졌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예배를 마치면 현관에 나와 교우들과 악수를 합니다. 첨엔 좀 머쓱해 못했는데 막상 하고보니 여간 좋은 게 아닙니다. 일일이 손을 마주 잡고 인사하는 것이 그냥 말로 인사하는 것보다 훨씬 정 깊고 친숙하게 여겨집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와 악수를 합니다.. 2021. 7. 1.
어떤 장례 먼저 떠난 큰형님의 장례를 치르고 온 반장님 댁을 방문했을 때, 반장님은 내게 넋두리를 했다. 반장님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참으로 오랫동안 병을 앓던 큰형님이 역시 앓아누운 형수님을 두고 먼저 이 땅을 떠났다. 어려서부터 형수님이 교회에 다녔기에 장례는 그 교회에서 맡아서 하기로 했다. 교회에 다니진 않지만 반장님은 형의 장례를 치러주는 교회의 모든 절차를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마지막 날. 아무래도 형을 그냥 보내기엔 뭔가 속이 텅 빈 듯한, 허전하기 그지없는, 나중엔 송구한 마음이 들어 반장님은 찬밥에 냉수 한 그릇이라도 떠놓고 절이라도 한 번 하고 싶었다. 그래야 맞지 싶었다. 그게 형을 먼저 보내드리는 동생의 도리라 여겨졌다. 그래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안 된다고 .. 2021. 6. 30.
사람은 기계가 아닌데 작실의 김천복 할머니, 섬뜰의 준이 어머니, 단강의 안갑순 집사님 마을대표인양 세 분이 모였다. 주일 낮 예배, 재종을 치고서 몇 곡 찬송을 불렀지만 더 이상 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린 준이와 소리, 아내, 나까지 합하면 7명이다. 아마 교회가 세워진 이래 가장 작은 인원이 모였지 싶다. 전날 오랜만에 내린 비, 비 기다리며 미루어온 파종을 주일이라 해서 미룰 순 없었던 거다. 어버이 주일, 혹 모자라지 않을까 염려하며 산 카네이션 꽃이 뒤에 덩그마니 남았다. 숫자에 연연하지 말자고, 어쩜 내 견디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바로 그 숫자일 거라고 그렇게 누누이 자신에게 이르면서도 역시 견디기 어려운 건 숫자에서 오는 무게감이다. 한두 번 쌓이다 보면 게을러지고, 타성에 젖게 되고, 굳게 되는 법, 두.. 2021. 6. 28.
농사꾼 국회의원 “원성 – 횡성 농민 만세!” 새벽, 의외의 결과를 대하며 내가 이긴 듯 괜히 신이 났다. 아무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누구 말대로 계란으로 바윌 내려치는, 보나마나 결과가 뻔한 일이라고 밖엔 달리 생각할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그는 당선되었다. 민주당의 박경수 후보. 내게는 집사로, 속장으로서의 호칭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바로 옆 정산교회의 충성속(담안지역) 속장이기 때문이다. 촌티가 흐르는 사람. 기관장들 쭉 대동하고 나타났던 민정당 후보에 비해, 조용히 초라하게 인사차 다녀가며 ‘모든 걸 하나님의 뜻에 맡긴다.’고 했을 때만 해도 한편 안쓰러웠던 사람. 놀랍게도 그가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를 이백 몇 십 표 간발의 차로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원래 강원도가 여당 밭인데.. 2021. 6. 26.
생명은 거기 있다고 "유약(柔弱)은 삶의 속성이요, 견강(掔剛)은 죽음의 속성 – 老子" 인간은 그 약함으로 살아남는다. – 장폴, 샤르트르 우연히 펼쳐든 오래된 작은 노트. 맨 앞장에 그렇게 쓰여 있다. 언제 옮겨 적었는지. 한 겨울 눈 덮인 깊은 산 속에 있으면 뚝뚝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들린다는, 폭풍 속 거센 비바람을 견디던 나무가 조용히 내려앉은 눈에 꺾이더라는 法頂스님의 말. 내가 약할 그때가 곧 강한 때라던 바울의 말. 문득 여러 얘기들이 한 분위기가 되어 가슴으로 전해진다. 작고 여린 것, 생명은 거기 있는 거라고. - 1988년 2021. 6. 25.
단강의 아침 새벽예배를 마치고 교회 현관에 나서면 와락 선선함이 밀려듭니다. 맑은 걸 지나 달지 싶은 그 청정한 기운이 가슴에 닿습니다. 어지러운 꿈자리, 깊은 호흡으로 어젯밤을 지워내면 가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아침기운으로 새롭습니다. 아무래도 아침을 여는 건 새들의 노래입니다. 어둠을 맞이하는 건 개구리, 어둠을 노래하는 건 소쩍이였고요. 참나무 많은 뒷산, 꾀꼬리 소리가 유난히 맑습니다. 솥이 적다고 울어댄, 어둠 묻혀 울어댄 소쩍이의 노래가 아침까지 이어집니다. 소쩍이 소릴 들으면 호루라기 안에 물을 넣고 불던 어릴 적 기억이 떠오릅니다. 멀리서 뻐꾸기가 울고 꿩 소리도 납니다. 어떤 손님을 예감한 것인지, 까치가 빠지지 않습니다. 방앗간의 참새들도 야단입니다. 멀리 떨어진 작실 마을에선 장한 수탉의 울음소.. 2021. 6. 24.
사랑합니다 그렇게 즐거운 모습을 전엔 본적이 없다. 버스 안, 좁은 의자 사이에 서서 정말 신나게들 춤을 추었다.이음천 속장님의 셋째 아들 결혼식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는 길, 버스 안은 온통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빠른 템포의 노래로 가득했고. 노래에 맞춘 춤으로 열기가 가득했다. 무엇 하나 막힘이 없었다. 오늘은 이해해 달라고 몇 분 교우들이 내 자리로 찾아와 이야기했지만 이해할 게 어디 있는가, 박수와 웃음으로 장단을 맞출 뿐 같이 흔들지 못하는 자신이 아쉬울 뿐이지. 춤과 술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만큼 나는 삶에서 멀어져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예수님이라면 그들과 어울려 좁은 틈을 헤집고서 멋있게 춤을 췄을 텐데. ‘으쌰 으쌰’ 장단을 맞춰가며종설이 아버지와 반장님의 멋진 춤, 엉덩이를 뒤로 빼고 한쪽 다.. 2021. 6. 23.
품삯 “어머니, 이렇게 하루 일하는데 품삯이 얼마예요?” 부천에 살고 있는 큰 아들이 모처럼 집에 내려와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 담배 대공을 뽑으며 김 집사님께 물었단다. “삼천 원이란다.” 삼천 원이라는 말에 아들은 놀라며 삼천 원 받고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느니 차라리 동냥 하는 게 더 낫겠다고 했다 한다. 하루에 쉽게 마셔버리는 커피 서너 잔 값에 담배 몇 갑 값에 고된 품을 파는 것이 도시에 사는 아들에겐 이해가 안 됐나보다. 집사님이 이렇게 대답해 줬단다. “얘야, 그래도 그 값에 일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농사를 짓지. 그렇지 않으면 농사 못 진다.” 그렇다. 꼭 품값이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일손 모자라는 형편인데 서로가 서로의 일을 도와야지 별 수 있는가. 하루 삼천 원에 품을 파는 걸 의아하게.. 2021. 6. 22.
오늘의 농촌 학생부 토요모임. 성서연구를 마치고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자신이 생각하는 오늘날의 농촌문제였다. 처음에는 서로가 어색했는지 머뭇거렸지만 나중엔 편하게들 이야길 나눴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이 교통 문제였다. 하루에 서너 번 다니는 버스. 좀 더 많이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다음은 하천문제가 나왔다. 따로 쓰레기장이 없다보니 개울이 쓰레기로 더러워졌고 깨끗한 물이 고이지 못하니 목욕도 못한다는 것이다. 소득이 가을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새로운 재배방법을 도입하여 계절별 소득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되었다. 또한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시켜 도시 공장으로 내보내는 부모님들.. 2021.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