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품삯 “어머니, 이렇게 하루 일하는데 품삯이 얼마예요?” 부천에 살고 있는 큰 아들이 모처럼 집에 내려와 어머니의 일손을 도와 담배 대공을 뽑으며 김 집사님께 물었단다. “삼천 원이란다.” 삼천 원이라는 말에 아들은 놀라며 삼천 원 받고 하루 종일 땀 흘려 일하느니 차라리 동냥 하는 게 더 낫겠다고 했다 한다. 하루에 쉽게 마셔버리는 커피 서너 잔 값에 담배 몇 갑 값에 고된 품을 파는 것이 도시에 사는 아들에겐 이해가 안 됐나보다. 집사님이 이렇게 대답해 줬단다. “얘야, 그래도 그 값에 일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농사를 짓지. 그렇지 않으면 농사 못 진다.” 그렇다. 꼭 품값이 문제가 아니다. 가뜩이나 일손 모자라는 형편인데 서로가 서로의 일을 도와야지 별 수 있는가. 하루 삼천 원에 품을 파는 걸 의아하게.. 2021. 6. 22. 오늘의 농촌 학생부 토요모임. 성서연구를 마치고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자신이 생각하는 오늘날의 농촌문제였다. 처음에는 서로가 어색했는지 머뭇거렸지만 나중엔 편하게들 이야길 나눴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이 교통 문제였다. 하루에 서너 번 다니는 버스. 좀 더 많이 다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다음은 하천문제가 나왔다. 따로 쓰레기장이 없다보니 개울이 쓰레기로 더러워졌고 깨끗한 물이 고이지 못하니 목욕도 못한다는 것이다. 소득이 가을에만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새로운 재배방법을 도입하여 계절별 소득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되었다. 또한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시켜 도시 공장으로 내보내는 부모님들.. 2021. 6. 21. 손 흔드는 아이들 원주에 나갔다 집으로 돌아올 때면, 버스를 타고 저물녘 돌아올 때면 가끔씩 손 흔드는 아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버스를 피하여 길 한쪽으로 비켜서선 손을 흔듭니다. 집에서 학교까진 몇 리나 되는지, 하나씩 둘씩 저녁놀 머리에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이 손을 흔듭니다. 어깨에 둘러멘 책가방, 단발머리 여자 아이의 검고 티 없는 웃음, 아이들이 손을 흔들 때마다 같이 흔들어 줍니다. 잊지 않고 손을 흔들어주는 버스 기사분이 고맙습니다. 혹 차를 타고 어디를 간다 해도 차 창밖으로 손 흔드는 아이 만날 때면 모두가 꼭 손 흔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인사를 누군가 받아 주었다는, 내가 손짓할 때 누군가 대답해 줬다는 작지만 소중한 경험을 어린 마음마다 심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불러도 .. 2021. 6. 19. 길 원주에서 단강으로 오는 길은 두 개가 있습니다. 문막 부론을 지나서 오는 길과 귀래를 거쳐서 오는 것이 그것입니다. 단강이 거의 가운데쯤 되니까 시작이 다를 뿐 모두가 한 바퀴를 도는 셈입니다. 부론으로 오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부론부터 단강까진 남한강을 끼고 길이 있어 경치도 좋습니다.그러나 귀래 쪽으로 오는 길은 아직 비포장입니다. 굽이굽이 먼지 나는 길을 덜컹이며 달려야 됩니다. 똑같이 온 손님이라도 부론 쪽으로 온 사람과 귀래 쪽으로 온 사람의 단강에 대한 이미지는 다릅니다. 부론 쪽 포장길로 온 사람은 ‘그래도 야 좋다‘ 그런 식이지만, 귀래 쪽으로 온 사람은 이곳 단강을 땅끝마을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지난 가을부터 귀래에서 단강까지의 길이 포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여.. 2021. 6. 17. 언제 가르치셨을까, 여기 저기 바쁘실 하나님이 언제 만드셨을까. 아가의 눈과 코와 입과 귀를. 별빛 모아 담으셨나, 무엇으로 두 눈 저리 반짝이게 하셨을까. 까만 눈동자 주위엔 푸른 은하수. 언제 저리도 정갈히 심으셨나, 눈 다치지 않게 속눈썹을. 어디를 어떻게 다르게 하여 엄마 아빨 닮게 하셨을까. 어디를 조금씩 다르게 하여 다른 아이와 다르게 하셨을까. 물집 잡힌 듯 살굿빛 뽀얀 입술. 하품할 때 입안으로 보이는 여린 실핏줄. 손가락 열, 발가락 열. 그리곤 손톱도, 우렁이 뚜껑 닮은 발톱도 열. 열 번도 더 헤아려 크기와 수 틀리지 않게 하시고. 언제 가르치셨을까. 엄마 젖 먹는 것과 배고플 때 우는 것. 쉬하고 응가 하는 것. 하품과 웃음. 밤에 오래 잠자는 것. 혼자 있기보단 같이 있기 좋아하는 것. 찬찬히 엄마 얼굴 익히는 것. 햇빛에 나.. 2021. 6. 14. 조용한 마을 단강, 참 조용한 마을입니다. 아침 일찍 어른들이 일터로 나가면 쟁기 메고 소 몰고 일터로 나가면 서너 명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하고 어슬렁어슬렁 짖지 않는 개들이 빈 집을 지키는 조용한 마을입니다. 지나는 경운기 소리가 가끔씩 들리고 방아 찔 때 들리는 방앗간 기계소리 들리는 건 그런 소리뿐입니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시끄러운 마을이 되고 말았습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어 군용 지프차가 지나기도 하고 덩치 큰 트럭과 탱크와 장갑차가 지나가기도 합니다. 아이들이야 구경거리 생겨 신기하고 좋지만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닙니다. 휙휙 달리며 피워대는 먼지야 그렇다 해도 농사지을 밭에 들어가 푹푹한 흙을 딱딱하게 만드는 건 딱 질색입니다. 또 한 가지 나쁜 건 잠든 우리 아기 깨우는 겁니다. 꼬리에 꼬리 물.. 2021. 6. 12. 첫 돌 돌아보니 까마득하다. 같은 한해가 같은 길이로 갔지만 지난 1년은 유독 길기도 하고 순간순간 선연하기도 하다. 3월 25일은 단강교회가 세워진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무모하게도 창립예배 드리던 날 어딘지도 모르는 것에 첫 발을 디딘 이곳 단강. 감리사님 차를 타고 단강으로 향하여 어딘가 땅 끝으로 가고 있지 싶었던 생각. 굽이굽이 먼 길을 돌때마다 거기 나타난 작은 마을들, 여길까 싶으면 또다시 들판 하나를 돌고. 그러기를 몇 차례, 막상 도착한 마을은 떠나며 가졌던 나름대로의 생각이 그래도 쉬운 것이었음을 한눈에 말해주고 있었다. 어딘들 어떠랴 했던 마음속 막연한 낭만기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생존의 현장이구나’ 아마 그런 감정이었을 것이다. 춘설이 섞인 찬바람이 어지러이 몰아쳤던 그날, 예배실로.. 2021. 6. 11. 꼬리잡기 며칠 동안은 저녁마다 꼬리잡기를 했습니다.교회 앞마당, 나는 도망가고 아이들은 나를 잡는 겁니다. 승호 종순이 승혜 종숙이 아직 어린 그들의 손을 피하기는 쉽지만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간 종설이는 만만치가 않습니다.뜀도 잘 뛰지만 웬만한 속임 동작에도 속아주질 않습니다. 키 큰 전도사가 어린 꼬마들과 어울려 이리저리 겅중겅중 뛰는 모습은 누가 봐도 우스운 일일 겁니다. 잡힐 듯 도망가는 전도사를 아이들은 숨이 차도록 쫒아 다닙니다. 모두의 얼굴엔 이내 땀이 뱁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예배당 계단에 앉아 지는 해를 봅니다. 다시 또 하자 조르는 아이들을 달래 집으로 보냅니다.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줍니다. “제일 먼저 이를 닦고, 이를 닦을 땐 위 아래로, 그렇지 그렇게 말야. 그 다음엔 손을.. 2021. 6. 10. 무소유욕 지방 교역자들의 살림살이가 담긴 회계 보고서가 나눠졌을 때,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뭔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이없는 표정들, 뭘 계산했고 뭣 때문에 놀랐는지 말 안 해도 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놀란 건 우리 모두, 우리 자신들이다. 액수의 차이일 뿐, 그리고 그 차이란 생각만큼 많지 않은 것일 뿐 다른 게 뭐 있나. 뭘 믿고 살라고 전대 가지지 말라고, 옷 두벌 갖지 말라고 예수님은 말했을까. 그렇게 말한 당신은 정말로 그랬을까. 삶의 근거. 버릴 것 버리고 남을, 마지막으로 남을 근거, 그게 과연 우리들에게 하나님일까. 진리를 들먹이며 내 배를 채우는 짓거리야 말로 가장 우스운 짓일 텐데. 마지막 한 개 남은 빵을 떨림 없이 나누기까진 우린 얼마나 버리는 훈련을 해야 할까. .. 2021. 6. 9.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