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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늦게 끈 등 작실 마을 올라가는 길 쪽으로 등을 하나 달았습니다. 집 지을 때 부탁해서 사택 옥상에 등을 달았습니다. 밤이면 등을 켭니다. 둥근 달이 걸리면 그런대로 걸을 만하지만 달이 없으면 길도 없습니다. 더듬더듬 발걸음이 더디고 산을 끼고 도는 길, 오싹 오싹 합니다. 사랑의 빛 되었음 싶은 마음으로 불을 켭니다. 작실로 오르는 길, 밤이면 불을 켭니다. 그러나 가끔씩 실수를 합니다. 불을 켜는 걸 잊기도 하고 끄는 걸 잊기도 합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가르쳐 줘 날 밝은 한참 뒤 뒤늦게 끄기도 합니다. 사람 발길 끊긴 빈 길을 밤새워 밝힌 걸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합니다. 어느 날, 날 밝도록 켜져 있던 불을 뒤늦게 끄며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속 그 어느 곳에도 뜻도 없이 켜져 있는 불은 없는.. 2021. 6. 8.
멀리 사는 자식들 “월급은 12만원 받는데, 엄마, 저녁이면 코피가 나와.” 얼마 전 순림이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중학교를 마치곤 곧바로 언니가 있는 서울에 올라가 낮엔 방적공장에서 일하고 밤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는 순림이. “돈 벌기 그렇게 어려운 거란다.” 엄마 김 집사님은 그렇게 말했다지만, 마른침 삼키며 그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다지만. 그래 순림아, 삶이란 때론 터무니없이 힘겨운 것일 수도 있나 보다. 천근만근 저녁마다 두 눈이 무거워도, 선생님 뭔가를 쓰는 칠판에 낮에 일한 실올이 바둑판처럼 아릿하게 깔려도 두 눈을 크게 뜨렴. 네가 마주한 것, 배우는 것, 단순한 공부가 아닌 엄연한 삶이기에. 연신 눈물을 닦으셨다. 얼마 전 자식을 떠나보내고 남은 텅 빈 집에서 심방예배를 드리며 할머니는 그렇게 눈물을.. 2021. 6. 7.
교우들의 새벽기도 오늘 새벽에도 교회로 들어서는 현관문 앞에는 작은 막대기 하나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오늘도 오셨구나.’ 김천복 할머니, 75세 되신 허리가 굽은 할머니시다. 현관에 서 있는 막대기는 할머니가 짚고 다니시는 지팡이인 것이다. 며칠 전부터 할머니가 새벽예배에 참석하신다. 할머니 사는 아랫 작실까지 재게 걸어도 내 걸음으로 10여분, 할머니는 훨씬 더 걸리리라. 머리 곱게 빗고 맨 앞에 앉으신 할머니, 오늘은 또 무얼 기도하실까. 얼마 전 서울로 떠난 철없는 막내아들 위해 기도하실까. 우리 전도사 좋은 목사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실까. 이는 할머니의 기도 제목 중 하나다. 당신 눈에 흙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곳 떠날 생각 아예 말라는 분이다. 교회 출석한지 얼마 안 되는 변정림 성도도 작실에서 내려온다. .. 2021. 6. 6.
똥줄 타는 전도사 비가 안 와 걱정입니다. 땅 갈고 씨 뿌렸지만 비가 안 와 걱정입니다. 아직은 갈 땅이 많아 우선 갈고 씨 뿌릴 뿐입니다. 전경환인가, 대통령 동생이 어제 잡혀 갔답니다. 몇 해 전 소 때문에 빚진 사람 이곳에도 많은데 그걸로 입은 피해 크고 깊은데 어제 잡혀 갔답니다. 거기다가 누군가에게 뺨을 맞았다죠. 그동안 말 못했던 백성들의 손이요, 어쩜 하나님 손이었다 생각하지만 꼭 남의 일 같습니다. 오늘도 강가 밭에선 사람들이 일 합니다. 당근 씨를 뿌립니다. 땅거미를 밟고 돌아오는 경운기, 오늘도 저녁놀이 붉습니다. 이번 주일이 부활절 생명은 어디로부터 오는지 무얼 딛고 오는지 설교거리 찾는 전도사 똥줄이 탑니다. 시간을 잊고 책상에 앉아서. 1988년 2021. 6. 4.
눈물로 얼싸안기 “제가 잘못했습니다.” 편히 앉으라는 말에도 무릎을 꿇고 앉은 집사님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말하는 집사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작은 일로 다른 교우와 감정이 얽혀 두 주간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집사님이 속회예배 드리러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찾아온 것이다. 사이다 두 병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전에도 몇 번 서로 감정이 얽힌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찾아가 권면하고 했었지만 이번엔 된 맘먹고 모른 채 있었다. 잘못 버릇 드는 것 같아서였다. 빈자리 볼 때마다 마음은 아팠지만 스스로 뉘우치고 나올 때까지 참기로 했다. 그만큼 기도할 땐 집사님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나오지 않는데도 심방해 주지 않는 전도사님이 처음에는 꽤나 원망스러웠지만 나중엔 왜 그러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 2021. 6. 3.
골마다 언덕마다 이곳 단강엔 4개의 마을이 있다. 끽경자라고도 하는 단정, 흔히들 조부랭이라 부르는 조귀농, 사면에 물이어서 생긴 섬뜰, 그리고 병풍처럼 산에 둘러싸인 작실이다. 작실 마을엔 다음과 같은 여러 이름이 있다. 골마다 언덕마다 이름이 있다. 들은 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마지막골, 자작나무골, 느티나무뒷골, 배나무골, 바우봉골, 넓적골, 안골, 움북골, 절너메, 절골, 옻나무고개, 아래턱골, 작은논골, 큰논골, 섬바우골, 터골, 서낭댕이골, 춤춘골, 장방터골, 작은고개, 큰죽마골, 작은죽마골, 구라골, 작은 능골, 큰능골, 댕댕이골… 골마다 언덕마다 이름을 붙인 조상들이 좋다. 그 이름 아직도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 또한 좋다. 모두가 참 좋다. 1988년 2021. 6. 2.
무인도 둘러앉아 얘기하던 한 아이가 무인도에 떨어지면 뭣부터 하겠느냐 물었을 때 아이들은 돌아가며 말했지 살려 달라 모래 위에 크게 쓰든지 불을 피워 연기를 올리던지 지나가는 배를 기다려 옷을 흔들겠다고 뚱딴지 같이 어떤 녀석은 뒷간부터 짓겠다더군 뭐라 할까 망설이다 난 발가벗고 잠을 자고 싶다 했어 모두들 웃었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어 인습의 굴레란 참 우스운 것이지 무섭기도 하구 언젠지도 모르고 한번 쓰기만 하면 좀체 벗기는 어려운 것 문득 거울 속 얼굴과 바라보는 마음이 다른 것 허우적거려도 잡히는 것이 철저하게 날 붙잡고 있는 것 정말이야 내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먹을 걱정 살 걱정 그런 것 모두 잊고 그냥 잠을 잘 거야 모두 벗고 팔다리 맘대로 뻗고 말야 그런데 무인도가 있을까 사람 살지 않는 섬이 아직도.. 2021. 5. 31.
성품통과 가나다순이어서 그랬을까, 58명 중에 내 차례는 맨 나중이었다. 우르르 나가 선 채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지막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사람들 앞에서 인사를 했다. 간단한 소개를 들은 뒤 뒤로 돌아섰다. “可한 사람 손드시오.” “否한 사람 손드시오.” 잠시 후, “네, 됐습니다. 이상으로 준회원 허입자 성품통과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준회원 허입 성품통과가 끝났다. 이제 준회원이 된 것이다. 솔직히 난 아직도 잘 모른다. 한편 모르고도 싶다. 얼마나 지나야 목사가 되는 건지, 또 얼마가 지나야 그 불편한 시험 안 치러도 되는 건지. 지난번 시험 볼 땐 그럭저럭 외웠었는데 쉽게 잊고 말았다. 한심한 노릇이다. 잠깐, 정말 잠깐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돌아서 있던 그 시간에 정말 기분이 묘했다... 2021. 5. 30.
예배당 대청소 예배당 대청소를 했다. 몇 번 얘기가 있던 것을 하루 날을 잡아 다함께 하자 했는데, 그것이 주일낮예배 후로 정해졌다. 제단 커튼도 떼 내고, 창문 커튼도 모두 떼어냈다. 숨어있던 거미줄이 제법이었다. 막대기 끝에 빗자루를 매달아 거미줄을 걷어냈다. 유리창 틈새 먼지와 오물도 털어내고 구석구석 걸레질도 했다. 밖으로 가져나온 커튼은 커다란 함지에 세제를 풀고 발로 꾹꾹 밟아 빨았다. 남자 교우들은 예배당 주위 바깥 청소를 했다. 자루를 들고 다니며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을 주위 담았다. 우물가로 가보니 김천복 할머니가 발을 걷어붙인 채 양동이 안에 들어가 빨래를 꾹꾹 밟고 있다. “아니, 할머니가 다 하세요?” 했더니 할머니 대답이 걸작이다. “더 늙으면 못할까 봐유.” 내년이면 여든, 얼마 전엔 심하게 .. 2021.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