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땀과 땅 한희철의 얘기마을(199) 땀과 땅 사람·살다·사랑이란 말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말이었고, 옳은 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땀과 땅도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땅은 땀을 흘리는 자의 것이어야 하고, 땀을 흘리는 자만이 땅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땀을 사랑하는 자가 땅을 사랑할 수가 있고, 땅의 소중함을 아는 이가 땀을 흘릴 수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볼 때 땅의 주인은 마땅히 땀을 흘리는 자여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로운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나름 많이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땀과 땅이 갖는 관계의 정직함 여부입니다. 이따금씩 자가용 타고 나타나 투기용으로 사두는, 사방 둘러선 산과 문전옥답의 주인이 되어가.. 2021. 1. 10.
소심함과 완고함 한희철의 얘기마을(198) 소심함과 완고함 원주 시내에 있는 밝음신협에서 장학생을 선발하는 일이 있었다. 성적과는 관계없이 가정 형편에 따라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학비를 댄다는 것이었다. 마침 아는 분이 그 일을 권해주어 단강에서도 학생을 추천하기로 했다. 몇 사람과 의논한 후 종하와 완태를 추천하기로 했다. 종하와 완태에게 이야기하고 몇 가지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종하가 며칠 후에 서류를 가져온 반면에 완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크게 어려운 서류도 아니고 마감 날짜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완태를 만나 채근을 했지만 뭔가 완태는 주저주저 하고 있었다. “왜 그러니?” 물었을 때 완태의 대답이 의외였다. “우리 선생님은요, 되게 무서.. 2021. 1. 9.
거룩한 옥수수 한희철의 얘기마을(197) 거룩한 옥수수 추석 전날 작실속 속회를 이서흠 성도 댁에서 모였다. 차례도 그렇게 됐지만 특별히 이서흠 성도님이 원하였던 일이다. 울퉁불퉁 온통 자갈이 깔린 길, 윗작실까지의 길은 멀기도 멀고 쉽지도 않았다. 그 길을 걸어 예배당을 찾는 정성을 헤아리며 작실로 올랐다. 예배를 마쳤을 때 이서흠 성도님은 시간을 맞춰 쪄놨던 옥수수를 내 오셨다. 잘 익은 찰옥수수였다. 옥수수 철이 지난 지 한참일 텐데 그 때까지 옥수수가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알고 보니 추석 때 식구들 모두 모이면 쪄 주려고 일부러 때를 늦게 정해서 옥수수를 심었던 것이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삶의 모든 시간 속에 빈틈없이 배어있는 어머니의 지극한 배려. 옥수수를 베어 무는 마음이 문득 거룩해진다. - (.. 2021. 1. 8.
별과 꿈 한희철의 얘기마을(196) 별과 꿈 “우리 동네 개울이 이렇게 지저분한 줄은 몰랐어요.” 개울을 청소하는 아이들은 한결같이 동네 개울의 더러움에 놀라고 말았다. 비닐, 깡통, 빈병(특히 농약병), 못쓰게 된 농기구 등 개울 곳곳은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했다. 자루에 담는 쓰레기는 이내 리어카를 채웠고, 두 대의 리어카는 분주하게 쓰레기를 날라야 했다. 쓰레기를 모으는 교회 마당엔 수북이 쓰레기가 쌓여갔다. 뜨거운 한낮의 볕이 머리 위해서 이글거렸고 땀은 온몸을 적셨다. 그래도 아이들은 부지런 했고, 그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섬뜰 앞개울과 뒷개울, 작실, 끝정자등 네 개의 개울을 치우는데 이틀, 쓰레기를 분리하는데 또 하루가 걸렸다. 꼬박 사흘을 수고한 셈이다. 쓰레기를 치워낸 개울마다엔 라는 팻말을 박아 .. 2021. 1. 7.
언제쯤이나 한희철의 얘기마을(195) 언제쯤이나 김정옥 집사가 한 광주리 점심을 이고 염태 고개를 올라간다. 벼를 베는 날이다. 얼굴이 부었다 내렸다 계속 몸이 안 좋은 김정옥 집사. 일꾼을 몇 명이나 얻은 것인지 점심은 한 광주리 가득이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가 새삼스럽다. 젊은 시절, 그러니까 김 집사가 맏딸 명림 씨와 둘째 진성이를 낳았을 때였다. 상자골에 일이 있어 점심을 나르는데 그 모습이 가히 가관이었다. 막 걷기를 배운 딸이야 손 하나 잡아주면 되었지만 진성이는 천생 업어야 했고, 밥이며 찬이며 뜨거운 국까지 들은 광주리는 이고, 주렁주렁 바가지를 엮은 그릇들은 어깨에 메고. 박수근 작/'고목과 여인'(1960년대) 상자골까지 올라 보면 알지만 그냥 오르기에도 벅찬, 울퉁불퉁 곳곳이 패이고 잡초는 우거.. 2021. 1. 6.
촌놈 한희철의 얘기마을(194) 촌놈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주머니들이 교회 마당에서 흙투성이 되어 놀던 규민이를 보더니 “어휴, 너도 촌에서 사니 별수 없구나!” 하며 한 마디씩 합니다. 마당에서 놀던 규민이는 동네 사람이 지나가면 그게 반가운지 꾸벅 말도 없이 인사를 하든지 손을 흔들어 대든지 합니다. 그러고 보니 규민이 꼴이 영락없는 촌놈입니다. 얼굴이며 손에 흙이 잔뜩 묻었고 신은 어디다 벗어버린 건지 맨발입니다. 헐렁한 옷차림과 밤송이 같은 머리가 그런 모습에 잘 맞아 떨어져 시골에서 막 자라는 촌티가 밸대로 배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아주머니들의 웃음 속엔 왠지 모를 반가움과 편안함이 담겨 있습니다. 다르지 않다는, 흘러가는 시간 속 결국은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반가움과 안도감에 가.. 2021. 1. 5.
배춧국 한희철의 얘기마을(193) 배춧국 저녁 무렵 강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저만치 일 마치고 돌아오는 아주머니가 있어 보니 조귀농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단강1리라는 같은 행정구역 안에 살면서도 강과 산을 끼고 뚝 떨어져 있어 오히려 다리 하나 사이로 마주한 충청북도 덕은리와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이 조귀농입니다. 원래는 조귀농도 단강교회 선교구역이지만 단강교회가 세워질 즈음 덕은리에도 교회가 세워져 자연스레 조귀농이 덕은교회 선교구역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조귀농 하곤 가까이 지낼 만한 일이 특별히 없었습니다. 그래도 몇 년 시간이 지나며 한 두 사람씩 알게 된 것이 그나마 얼굴만이라도 알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강가에서 만난 아주머니를 알게 된 건 지난 추석 때였습니다. 섬뜰 방앗간으로 쌀.. 2021. 1. 4.
할머니의 낙 한희철의 얘기마을(192) 할머니의 낙 한동안 마을 사람들이 진부로 일을 하러 나가 있었습니다. 당근을 캐는 일이었는데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했습니다. 진부란 곳은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하는 ‘아주 먼 곳’입니다. 그래도 꼬박꼬박 일당을 챙겨 얼마만큼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 마을 사람들 중 몇 사람이 진부로 떠났습니다. 윗작실 영미 아버지가 중간상을 해 그를 생각해서 간다는 사람도 있었고 오랜만에 바깥바람이나 쐬러 간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작실 속회 예배를 마쳤을 때 진부 당근 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왜 할머니는 안 가셨냐고 한 교우가 허석분 할머니께 묻자 할머니가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난 안가, 까짓 거 가서 돈 번다 해도 그게 어디 밤에 자식들 .. 2021. 1. 3.
마음의 병 한희철의 얘기마을(191) 마음의 병 지 집사님이 몸살을 되게 앓았다. 찾아 갔을 땐 정말 눈이 십리나 들어가 있었다. 워낙 마른 분이 꼼짝없이 앓아누우니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몸을 무너뜨리는 오한도 심했지만 허리통증으로 집사님은 꼼짝을 못했다. 경운기에 겨우 실려 아랫말 보건소에 몇 번 다녀왔을 뿐이었다. 다음날 다시 찾았을 땐 빈 집인 줄 알았다. 한참을 불러도 기척이 없어 병원에라도 다니러 갔나 돌아서려는데, 방안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문을 여니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방, 집사님은 두꺼운 이불 속에 혼자 누워 있었다. 전날에 비해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병원이 있는 원주까진 백리길, 마을 보건소에라도 다시 다녀와야 되지 않느냐고 하자 집사님의 한숨이 길다. 그나마 막내 종근이가 있어.. 2021.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