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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지금 나는 한희철의 얘기마을(207) 지금 나는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내 꿈은 무엇이었으며그 꿈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는 얼마나 작아지고 있는가.그 작아짐에 얼마나 익숙해지고 있는가.그런 작아짐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가. 이곳에서의 나는 누구인가.이 땅에서의 구원은 무엇인가. 어둠속에 묻는 물음.어둠속에 묻는 물음. - (1992년) 2021. 1. 18.
벌거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한희철의 얘기마을(206) 벌거벗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박유승 作 / 아담과 하와-둘째 만남 성경 말씀 중 새삼 귀하게 여겨지는 말씀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결혼식 주례를 맡으며 생각하게 된 말씀입니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창 2:25) 공동번역성서에는 ‘아담 내외는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고 옮겼습니다. 벌거벗었으면서도, 알몸이면서도 서로 부끄럽지 않았다는, 처음 인간이 누렸던 순전한 기쁨. 아무 것으로 가리지 않아도, 감추거나 변명하지 않아도, 있는 모습 그대로 마주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지극한 아름다움. 감추고 숨기고 꾸미고, 그런 것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겐 얼마나 낯선 말인지요. 벌거벗고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관계들을 꿈꿔 봅니다.. 2021. 1. 17.
늙은 농부의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205) 늙은 농부의 기도 나의 몸은 늙고 지쳤습니다. 텅 빈 나뭇가지 위에 매달려몇 번 서리 맞은 호박덩이마냥매운바람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마른 낙엽마냥어디하나 쓰일 데 없는 천덕꾸러기입니다. 휘휘, 무릎 꼬뱅이로 찬바람 빠져 나가고마음도 몸 따라 껍질만 남았습니다. 후둑후둑 베껴내는 산다랭이 폐비닐처럼툭툭 생각은 끊기고 이느니 마른 먼지뿐입니다. 이젠 겨울입니다.바람은 차고 몸은 무겁습니다. 오늘도 늙고 지친 몸으로 예배당 찾는 건무지랭이 상관없는 성경 찬송책 옆에 끼고예배당을 찾는 건그나마 빈자리 하나라도 채워불쌍한 젊은 목사양반 허전함 덜려는 마음 궁리도 있거니와주책없는 몸으로 예배당 찾아그래도 남은 눈물 드리는 건거칠고 마른 손 모아 머리를 숙이는 건아무도 읍기 때문입니다. 이.. 2021. 1. 16.
숨어서 하는 사랑 한희철의 얘기마을(204) 숨어서 하는 사랑 밥을 안 먹어 걱정이던 규성이도 점심시간 제일 밥을 많이 먹는다. “엄마한테 갈 거야!” 한번 울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던 학래도 이른 아침부터 놀이방에 올 거라고 전화를 한다. 새침데기 선아도 친구들과 어울려 소꿉놀이에 정신이 없다. 할머니 젖을 물고 자 버릇 했던 제일 나이 어린 영현이는 아내 등이 낯선지 계속 잠을 못 잤고, 졸지에 엄마를 뺏긴 규민이만 칭얼대며 그 뒤를 쫓아다녔다. 희선이, 학내, 선아, 규민이, 재성이, 미애, 규성이, 영현이 등 모두 8명의 꼬마들이 아침부터 모여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 작은 다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 질서를 세워가고 있다. 미끄럼틀을 타기도 하고, 인형을 갖고 놀기도 하고, 장난감 총을 들고 새.. 2021. 1. 15.
브레이크 한희철의 얘기마을(203) 브레이크 고장 난 브레이크를 고치기 위해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끌고 원주 시내 정비소에 다녀왔다는 이웃교회 목사님의 말을 섬뜩한 마음으로 듣습니다. 아무리 살살 조심조심 갔다 하여도 어떻게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를 이끌고 시내를 지나갈 수가 있었을까 잘 이해가 안됐습니다. 다른 부분이면 몰라도 고장 난 데가 브레이크라면 그건 차에 있어 가장 결정적인 고장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달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세우는 것, 세워야 할 때 세우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더 빨리 달리는 차를 만들려면 그만큼 잘 듣는 브레이크가 뒤따라야 합니다. 달리는 차를 확실하게 세울 수 있는 브레이크, 그 제동력이 차의 속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달리.. 2021. 1. 14.
은희 할머니 한희철의 얘기마을(202) 은희 할머니 이애경 그림 은희 할머니가 쌀을 가지고 오셨다. 제법 큰 양동이 가득 하얀 쌀을 머리에 이고 오셨다. 새로 방아를 찧었다며 쌀을 가져오신 것이다. 교인이 아니면서도 그렇게 꼬박꼬박 당신의 정성을 전하시는 할머니. 마루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연극을 연출하는 이가 고생 고생하는 역을 할머니에게 맡긴 듯, 그런 모진 역을 내 역이다 한평생의 삶으로 맡아 오신 할머니의 생. 할머니의 주름과 백발 위엔 말로 못할 삶의 무게와 엄숙함이 무겁게 배어 있었다. “나 죽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아요. 어린 것들 나 죽으면 으뜩하나, 그게 걱정이지요.” 어린 손녀들이 빨리빨리 커야 할 텐데, 어려서부터라도 제 앞가림을 잘해야 할 텐데, 그들을 위해서라고.. 2021. 1. 13.
어떤 두려움 한희철의 얘기마을(201) 어떤 두려움 조용한 시간, 은근히 나를 불안하게 하는 한 생각이 있습니다. 번번이 그런 생각은 그런 때 떠올라서 마음을 쉽지 않게 만듭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엄배덤배(엄벙덤벙의 원주 사투리) 사는 삶, 혹 어느 날 뜻밖의 은총으로 철이 들어 삶이 뭔지,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그나마 희미하게 알게 되었는데, 철든 삶을 살아갈 시간이 모자란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철들자 망령’이라는 옛 말처럼, 겨우 겨우 철이 들었는데 남아 있는 시간이 없다면, 그게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싶습니다. 뒤늦은 깨달음, 분명 그것은 안타까움을 넘어선 한스러움이 될 것입니다. 하루하루 뒤로 미루는 삶의 무감각한 어리석음이, 문득 뒤에서 되짚어 보는 헤아림 하나에 쉽게 잡히고 맙니다. - (1.. 2021. 1. 12.
거룩한 손길 한희철의 얘기마을(200) 거룩한 손길 김대섭 작/벼말리기 한동안 신작로엔 벼들이 기다랗다 널렸다. 낫으로 베어 탈곡기로 털던 옛날과는 달리 요즘엔 콤바인 기계로 추수를 하다 보니 벼를 말리는 일이 또한 큰 일이 되었다. 벼를 베어 한동안 논에 두었다가 나중에 벼가 마른 후 타작한 옛날에 비해 기계가 좋아진 요즘에는 아예 벼를 베는 순간 탈곡은 물론 가마에까지 담겨 나오니, 천생 말리는 일이 나중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벼를 말리는 장소로는 신작로 이상이 없다. 검은 아스팔트인 신작로는 이따금씩 차들이 다녀 위험하긴 하지만 벼를 가장 빨리 말릴 수 있다. 아침에 널고 저녁에 거둬들이는 손길이 분주하다. 고무래로 쓱쓱 펼치면 되는 아침에 비해 거둬들이는 저녁 손길은 더디기도 하고 고되기도 하다. 한군데로 .. 2021. 1. 11.
땀과 땅 한희철의 얘기마을(199) 땀과 땅 사람·살다·사랑이란 말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말이었고, 옳은 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땀과 땅도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땅은 땀을 흘리는 자의 것이어야 하고, 땀을 흘리는 자만이 땅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땀을 사랑하는 자가 땅을 사랑할 수가 있고, 땅의 소중함을 아는 이가 땀을 흘릴 수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볼 때 땅의 주인은 마땅히 땀을 흘리는 자여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정의로운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나름 많이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땀과 땅이 갖는 관계의 정직함 여부입니다. 이따금씩 자가용 타고 나타나 투기용으로 사두는, 사방 둘러선 산과 문전옥답의 주인이 되어가.. 2021.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