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자기 몸집만큼만 한희철의 얘기마을(216) 자기 몸집만큼만 농활 나온 대학생들에게 병철 씨가 콩 심는 방법을 가르친다. “자, 이렇게 호미로 파가지고 콩을 심는데, 한번에 5-6알씩 넣으면 돼. 그러고는 자기 발로 두 개쯤 간격을 두고 또 파서 심으면 되고.” 한 학생이 물었다. “콩은 얼마나 묻으면 돼요?”“응, 그냥 살짝 묻으면 돼. 너무 깊게 묻으면 오히려 안 되지. 옛날 어른들이 그랬어. 씨앗 크기만큼만 묻으면 된다고. 깨는 깨만큼 묻으면 되고 옥수수는 옥수수만큼만 묻으면 된다고. 씨앗 크기만큼씩만 묻으면 싹이 다 난다는 거지.” 자기 크기만큼씩만 묻으면 싹이 난다는 씨앗, 모든 살아있는 것이 그리하여 자기 몸집만큼만 흙속에 묻히면 땅에서 사는 걸, 뿌리 내리고 열매 맺는 걸, 더도 덜도 말고 자기 몸집만큼만 흙.. 2021. 1. 29. 달과 별 한희철의 얘기마을(215) 달과 별 “해는 환해서 혼자 있어도 괜찮지만, 달은 캄캄한데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봐 별이랑 같이 있는 거야?” 어둠과 함께 별 총총 돋는 저녁, 어린 딸과 버스를 함께 탔습니다. 훤하게 내걸린 달,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소리가 별들과 어울린 달 얘기를 합니다. 그런 말이 예뻐, 마음이 예뻐, 눈이 예뻐 마음껏 인정을 합니다. “그래 그럴 거야.” 밀려오는 졸음 이기지 못하고 이내 품에서 잠드는 어린 딸. 캄캄한데 달 혼자면 무서울까봐 별이 같이 있는 거라면, 품에 안겨 잠든 너야 말로 내겐 별이지, 험한 세상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어야지, 왠지 모를 간절함으로 잠든 딸의 등을 다독입니다. - (1993년) 2021. 1. 28. 주인공 한희철의 얘기마을(214) 주인공 우리가 흔히 범하는 잘못 중의 하나는 주인공을 잊어버리는 일이다. 어떤 일로 몇 사람이 모였다 하자.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모이는 자리엔 누군가 주인공이 있기 마련이다. 생일을 맞았다든지, 이사를 했다든지, 아프다든지, 기쁜 일 혹은 슬픈 일이 있다든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가 그 자리의 주인공인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잊고 엉뚱한 얘기들만 늘어놓는 경우가 있다. 엉뚱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엉뚱한 주제가 당연히 나눠야 할 대화를 가로채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설 땐 허전하다. 그 허전함은 돌아서는 사람 뿐 아니라 그날의 주인공인 사람에게는 더욱 클 것이다.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세우는 일, 어색함 없이 누군가의 삶.. 2021. 1. 27.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한희철의 얘기마을(213)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쌓인 우편물을 정리하다 보니 길호가 쓴 메모지 한 장이 있다. 단강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마침 빈 집을 다녀가게 된 수원종로교회 청년들 몇이 남긴 메모였다. 사택이랄 것도 없이 더없이 허름했던 흙벽돌 집. 작은 골방 앞에 써 붙여 둔 짧은 글 하나가 있었다. 그 당시 나를 지탱해 주던 글이었다. 그 글을 눈여겨 본 녀석은 다시 한 번 그 글을 적은 뒤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잊었던 기억. 묻혀뒀던 글, - (1993년) 2021. 1. 26. 어떤 맹세 한희철의 얘기마을(212) 어떤 맹세 오직 한분당신만이 이룰 수 있는 세상입니다.뜻밖의 아름다움견고한 눈부심세상은 스스로도 놀랍니다. 하늘 향해 선 나무가기도를 합니다.가장 조용한 언어로몸 자체가기도가 됩니다.나무와 나무가 무리지어 찬미의 숲을 이루고투명한 숲으론차마 새들도 선뜻 들지 못합니다. 세상사 어떠하듯 난 이 땅버리지 않았다는버릴 수 없다는거룩한 약속모두가 잠든 사이 서리로 내려무릎 꿇어 하늘이 텅 빈 땅에 입을 대는빛나는 아침,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벅차 떨려오는 당신의 맹세를두고두고 눈물로 듣습니다. - (1993년) 2021. 1. 25. 좋은 사람 한희철의 얘기마을(211) 좋은 사람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지 다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바람 때문입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이제쯤엔 압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기쁨이요, 껍질을 벗는 것이요, 결국 참 나를 만나는 길임을 또한 압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여도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 한 나는 그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만난다 해도 그건 만남이 아니요 덧없는 스침에 불과하겠지요. 좋은 사람과의 만남, 그 만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 되려고 애쓰며 삽시다. - (1993년) 2021. 1. 23. 딱한 행차 한희철의 얘기마을(210) 딱한 행차 저런 저런저 딱한 행차 좀 보게찬바람 부는 겨울 길가장자리 잰걸음안 그런 척허리춤 꿰차고 가는 비료 부대가말로 듣던 그 쌀부대 아닌가 읍내 다방 드나드는 재미에 빠져집안 쌀 다 퍼 나른다더니바로 저 모습일세 신사 아니랄까시커먼 와이셔츠 구닥다리 넥타이새끼 꼬듯 매긴 맸다만시중드는 아가씨제 몸 이뻐 그러는 줄 정말인줄 아는가 부지 들고 가는 저 쌀이 무슨 쌀인데남 안 지는 거름지게허리 휘게 날라 진노총각 두 아들 품 팔아 받아온 땀 같고 피 같은 쌀 아닌가일도 없는 한 겨울 넘겨야 할 양식 아닌가 한 톨이라 잃을까 조심으로 일어야 할 쌀을 들고가느니 읍내 다방아주 늙어 그런다면 망령이라 말겠지만맨 정신인기여저게 막대기지 사람인겨 뒤통수 박히는 따가운 욕뒤돌지 않으면 피.. 2021. 1. 22. 겨울 산 한희철의 얘기마을(209) 겨울 산 산은 살아있어나무와 짐승들을 품어서만 아니라산은 스스로 살아있어찬바람 앵앵 우는 한겨울산을 보면 알 수 있지툭 불거져 나온꾸역꾸역 엉겨 붙은 얼음덩이들을 볼 수 있으니까바위틈 빠져나온갇힐 수 없는 뜨거운 숨아무 것도 아닌 듯 얼음덩이로 감추지만저것 봐저 참을 수 없는 뜨겁고 견고한 숨들을 봐 2021. 1. 21. 흙에 대한 그리움이라니! 한희철의 얘기마을(208) 흙에 대한 그리움이라니! 드문 눈이 실컷 왔고 한동안 차가 끊겼다.묘한 갇힘저녁때였다. 누군가 찾는 소리에 나가보니 한 청년이 서 있다. 모르는 이였다. 신발이 다 젖어 있었다. 전날 밤기차를 타고 달랑 주소 하나만 가진 채 먼 길을 왔다. 경남 남해. 눈 때문에라도 까마득한 거리로 느껴졌다. 거기다가 헤매기까지 했다니. 여자 혼자서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길을, 큰 무모함.그가 ‘흙’ 얘길 했다. ‘흙’이 그리웠던 것일까.흙, 흙에 대한 그리움이라니! - (1993년) 2021. 1. 20.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