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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달과 별 한희철의 얘기마을(215) 달과 별 “해는 환해서 혼자 있어도 괜찮지만, 달은 캄캄한데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봐 별이랑 같이 있는 거야?” 어둠과 함께 별 총총 돋는 저녁, 어린 딸과 버스를 함께 탔습니다. 훤하게 내걸린 달,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소리가 별들과 어울린 달 얘기를 합니다. 그런 말이 예뻐, 마음이 예뻐, 눈이 예뻐 마음껏 인정을 합니다. “그래 그럴 거야.” 밀려오는 졸음 이기지 못하고 이내 품에서 잠드는 어린 딸. 캄캄한데 달 혼자면 무서울까봐 별이 같이 있는 거라면, 품에 안겨 잠든 너야 말로 내겐 별이지, 험한 세상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어야지, 왠지 모를 간절함으로 잠든 딸의 등을 다독입니다. - (1993년) 2021. 1. 28.
주인공 한희철의 얘기마을(214) 주인공 우리가 흔히 범하는 잘못 중의 하나는 주인공을 잊어버리는 일이다. 어떤 일로 몇 사람이 모였다 하자.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모이는 자리엔 누군가 주인공이 있기 마련이다. 생일을 맞았다든지, 이사를 했다든지, 아프다든지, 기쁜 일 혹은 슬픈 일이 있다든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누가 그 자리의 주인공인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종종 우리는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잊고 엉뚱한 얘기들만 늘어놓는 경우가 있다. 엉뚱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엉뚱한 주제가 당연히 나눠야 할 대화를 가로채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설 땐 허전하다. 그 허전함은 돌아서는 사람 뿐 아니라 그날의 주인공인 사람에게는 더욱 클 것이다.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세우는 일, 어색함 없이 누군가의 삶.. 2021. 1. 27.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한희철의 얘기마을(213) 소유는 적으나 존재는 넉넉하게 쌓인 우편물을 정리하다 보니 길호가 쓴 메모지 한 장이 있다. 단강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마침 빈 집을 다녀가게 된 수원종로교회 청년들 몇이 남긴 메모였다. 사택이랄 것도 없이 더없이 허름했던 흙벽돌 집. 작은 골방 앞에 써 붙여 둔 짧은 글 하나가 있었다. 그 당시 나를 지탱해 주던 글이었다. 그 글을 눈여겨 본 녀석은 다시 한 번 그 글을 적은 뒤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잊었던 기억. 묻혀뒀던 글, - (1993년) 2021. 1. 26.
어떤 맹세 한희철의 얘기마을(212) 어떤 맹세 오직 한분당신만이 이룰 수 있는 세상입니다.뜻밖의 아름다움견고한 눈부심세상은 스스로도 놀랍니다. 하늘 향해 선 나무가기도를 합니다.가장 조용한 언어로몸 자체가기도가 됩니다.나무와 나무가 무리지어 찬미의 숲을 이루고투명한 숲으론차마 새들도 선뜻 들지 못합니다. 세상사 어떠하듯 난 이 땅버리지 않았다는버릴 수 없다는거룩한 약속모두가 잠든 사이 서리로 내려무릎 꿇어 하늘이 텅 빈 땅에 입을 대는빛나는 아침,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벅차 떨려오는 당신의 맹세를두고두고 눈물로 듣습니다. - (1993년) 2021. 1. 25.
좋은 사람 한희철의 얘기마을(211) 좋은 사람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지 다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바람 때문입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걸 이제쯤엔 압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기쁨이요, 껍질을 벗는 것이요, 결국 참 나를 만나는 길임을 또한 압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여도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 한 나는 그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만난다 해도 그건 만남이 아니요 덧없는 스침에 불과하겠지요. 좋은 사람과의 만남, 그 만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 되려고 애쓰며 삽시다. - (1993년) 2021. 1. 23.
딱한 행차 한희철의 얘기마을(210) 딱한 행차 저런 저런저 딱한 행차 좀 보게찬바람 부는 겨울 길가장자리 잰걸음안 그런 척허리춤 꿰차고 가는 비료 부대가말로 듣던 그 쌀부대 아닌가 읍내 다방 드나드는 재미에 빠져집안 쌀 다 퍼 나른다더니바로 저 모습일세 신사 아니랄까시커먼 와이셔츠 구닥다리 넥타이새끼 꼬듯 매긴 맸다만시중드는 아가씨제 몸 이뻐 그러는 줄 정말인줄 아는가 부지 들고 가는 저 쌀이 무슨 쌀인데남 안 지는 거름지게허리 휘게 날라 진노총각 두 아들 품 팔아 받아온 땀 같고 피 같은 쌀 아닌가일도 없는 한 겨울 넘겨야 할 양식 아닌가 한 톨이라 잃을까 조심으로 일어야 할 쌀을 들고가느니 읍내 다방아주 늙어 그런다면 망령이라 말겠지만맨 정신인기여저게 막대기지 사람인겨 뒤통수 박히는 따가운 욕뒤돌지 않으면 피.. 2021. 1. 22.
겨울 산 한희철의 얘기마을(209) 겨울 산 산은 살아있어나무와 짐승들을 품어서만 아니라산은 스스로 살아있어찬바람 앵앵 우는 한겨울산을 보면 알 수 있지툭 불거져 나온꾸역꾸역 엉겨 붙은 얼음덩이들을 볼 수 있으니까바위틈 빠져나온갇힐 수 없는 뜨거운 숨아무 것도 아닌 듯 얼음덩이로 감추지만저것 봐저 참을 수 없는 뜨겁고 견고한 숨들을 봐 2021. 1. 21.
흙에 대한 그리움이라니! 한희철의 얘기마을(208) 흙에 대한 그리움이라니! 드문 눈이 실컷 왔고 한동안 차가 끊겼다.묘한 갇힘저녁때였다. 누군가 찾는 소리에 나가보니 한 청년이 서 있다. 모르는 이였다. 신발이 다 젖어 있었다. 전날 밤기차를 타고 달랑 주소 하나만 가진 채 먼 길을 왔다. 경남 남해. 눈 때문에라도 까마득한 거리로 느껴졌다. 거기다가 헤매기까지 했다니. 여자 혼자서 어딘지도 모르는 낯선 길을, 큰 무모함.그가 ‘흙’ 얘길 했다. ‘흙’이 그리웠던 것일까.흙, 흙에 대한 그리움이라니! - (1993년) 2021. 1. 20.
다시 돌아가야 한다 한희철의 얘기마을(207)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내 설 곳은 그곳, 여기가 아니다. 이 또한 그리운 자리편한 얼굴들, 반짝이는 눈망울드문드문 빛나는 불빛들을 뒤로 밀며어둠속 달려가는 이 밤기차처럼말없이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잠시 과한 꿈을 꾼 듯밑바닥 괴는 아쉬움일랑 툭툭 털고서미련과 기대제자리로 돌리고떠나온 자리, 다시 그리로 돌아가더욱 그곳에 서야 한다. 잊을 걸 잊어사랑할 거 더욱 사랑해야 한다. -서울에 있는 교회 청년부 신앙강좌를 다녀오며 - (1992년) 2021.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