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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7

교우들은 모른다 한희철의 얘기마을(27) 교우들은 모른다 속상한지고. 보일러 놓고선 덩달아 좋아했던, 내 일처럼 좋아했던 신집사님 네. 그 때가 언제라고 집을 팔았단다. 서울 사람 별장 짓는다고, 바깥채 미경 네와 함께 집을 팔아 집값으로 70만원 받았단다. 빚 내 지붕 고치곤 빚 갚느라 고생 고생 별 고생 다한 게 작년 일인데, 따뜻한 보일러, 모처럼 싫지 않은 겨울 맞게 된 게 엊그제 일인데. 뒤늦게 고개 숙여 하는 말,“폐 끼치지 않으려고 말씀 안 드렸어요.” 모른다. 교우라도 모른다.교우들 안쓰러운 일을 두곤 가슴 얼마나 쓰린지, 별반 도움 못되는 현실 두곤 얼마나 마음 괴로운지, 모른다, 모른다. (1989) 2020. 7. 16.
제 집 버리지 못하는 달팽이처럼 한희철의 얘기마을(26) 제 집 버리지 못하는 달팽이처럼 달팽이가 제 집 이고 가는 것 같았습니다.어둠속에 지워져가는 작실로 가는 먼 길, 할머니 등에 얹힌 커다란 보따리가 그렇게 보였습니다.땅에 닿을 듯 굽은 허리, 다다른 팔십 고개.보따리 가득한 건 강가 밭 비에 젖어 허옇게 싹 난 콩들입니다. 질라래비훨훨, 질라래비훨훨,새 나는 모습 아이에게 가르칠 때 했다는 질라래비훨훨처럼,앞뒤로 손 연신 흔들며, 노 젓듯 어둠 훼훼 저으며, 검은 길 걸어 오르는 김천복 할머니.아무리 무거워도 평생 제집 버리지 못하는 달팽이처럼. (1989) 2020. 7. 15.
우속장님네 황소 한희철의 얘기마을(25) 우속장님네 황소 우속장님네 소는, 윗작실 우속장님네 누런 황소는 겁도 없고 추위도 덜 타야겠다. 캄캄해지고도 한참을 더 어둠을 더듬어 일을 마치곤 그래 넌 여기서 그냥 자라 잠시 후에 다시 올 터니 들판에 소 놔 둔 채 집으로 오면텅 빈 들판에 혼자 남아 밤을 지새우는 우속장님네 황소. 커다란 두 눈 껌뻑여 밤하늘별을 세며 무서움 쫓고, 빙글빙글 같은 자리 돌며 어릴 적 엄마 젖 그리며 추위를 쫓고. (1989) 2020. 7. 14.
때 돈 한희철의 얘기마을(24) 때 돈 언젠가 수원 집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온 식구들이 마루에 모여앉아 봉투를 만들고 있었다. 굉장한 양이었다. 이리 저리 각을 따라 종이를 접고 풀을 붙이는데, 그 손놀림들이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종이봉투 하나를 만들면 받는 돈이 8원. 난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살림이 종이봉투를 접을 만큼 궁색한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일까, 짐작이 되질 않았다. 한 장에 8원 하는 걸 바라고 저 고생을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사연을 들었을 때 난 잠시나마 내가 가졌던 의구심이 몹시 부끄러웠다. 어머니와 형수님은 그렇게 일을 함으로 작정한 헌금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고, 온 식구가 나서서 그 일을 돕고 있었던 것이었다. 8원짜리 종이봉투, 난 같이 앉아 열심히 봉투를 따라 .. 2020. 7. 13.
반가운 편지 한희철의 얘기마을(23) 반가운 편지 숙제장을 한 장 뜯었을까, 칸이 넓은 누런 종이에 굵은 연필로 쓴 글씨였다. 서너 줄, 맞춤법이 틀린 서툰 글이었지만, 그 짧은 편지가 우리에게 전해준 기쁨과 위로는 너무나 컸다. 잘 있노라는, 주민등록증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초등학교에 다니는 주인 아들이 썼음직한 편지였다. 서울로 갔다가 소식 끊긴 지 꼭 한 달, 한 달 만에 박남철 청년이 잘 있다는 편지가 온 것이다. 편지를 보낸 곳은 경기도 파주였다. 그동안 낙심치 말고 기도하자 했지만, 모두의 마음속엔 어두운 예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는 것을 보면, 어두운 예감이 어디까지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 서둘러 답장을 썼다. 이번 주엔 아버지 박종구 씨가 파주.. 2020. 7. 12.
치화 씨의 주보 한희철의 얘기마을(22) 치화 씨의 주보 치화 씨가 교회 올 때 가지고 다니는 낡은 손가방 안에는 성경과 찬송, 그리고 주보뭉치가 있다. 빨간 노끈으로 열십자로 묶은 주보뭉치. 한 주 한 주 묶은 것이 제법 굵어졌다. 주보를 받으면 어디 버리지 않고 묶었던 노끈을 풀러 다시 뭉치로 챙긴다. 아직 치화 씨는 한글을 모른다. 스물다섯 살, ‘이제껏’이라는 말이 맞는 말이다. 가정에 닥친 어려움으로 어릴 적부터 집을 떠나 남의 집에서 일하며 살아야 했던 치화 씨로선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그러나 이제는 찬송가 정도는 찾을 수 있다. 서툴지만 곡조도 따라 한다. 반의 반 박자 정도 느리게 부르는, 그렇게 가사를 따라가는 그의 안쓰러운 동참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조금은 서툴지만 이제는 주기도문도 함.. 2020. 7. 11.
바퀴 없는 차 한희철의 얘기마을(21) 바퀴 없는 차 “집사님, 교회에도 밭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실 속회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 길 옆 널따란 무밭을 지나며 동행했던 김영옥 집사님께 말했다. “밭은 뭐하게요?”“농사짓게요. 돈벌이가 되는 농사를 져서 마을 분들에게 보급했으면 좋겠어요.” 농촌교회가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일이 그것이지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좋죠. 그렇지만 땅 살 돈이 있나요?” 그러시더니 잠깐 사이에 웃으며 한 마디를 보탰다. “전도사님 그때까지 계시겠어요? 되도 몇 년 후에나 가능할 텐데요.” 집사님 말 속엔 오늘의 농촌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담겨있다. 막연히 견디기엔 너무도 열악한 조건, 교회가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 중 큰 것은 마을 사람들의 생활 향.. 2020. 7. 10.
단순한 삶 한희철의 얘기마을(20) 단순한 삶 어둘녘, 인쇄소에서 소개해 준 지업사에 들렸다. 사방으로 켜켜이 종이가 쌓여있고, 종이 자르는 커다란 날을 가진 기계가 한 가운데 있었다. 주인께 온 이유를 말했더니 한번 찾아보라 한다. 아내와 난 너저분히 널려 있는 종잇조각들을 헤치며 쓸 만한 종이를 찾았다. 전지를 원하는 크기로 자르고 나면 한쪽 귀퉁이로 작은 조각들이 남게 마련인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그 작은 종이들이었다. 주보 발송할 때, 주보를 두르는 띠를 얻기 위해서다. 300여부 발송을 하다 보니 잠깐 허리를 두르는 띠지만 적은 양은 아니었고, 성한 종이(?)를 잘라 쓸라니 아깝기도 했던 것이다. 한참을 종이 더미를 뒤져 우리는 쓸 만한 것들을 제법 찾아낼 수 있었다. “얼마 드리면 되죠?” 물었더.. 2020. 7. 9.
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 한희철의 얘기마을(19) 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 오늘도 해는 쉽게 서산을 넘었다.말은 멍석 펴지듯 노을도 없는 어둠산 그림자 앞서며 익숙하게 밀려왔다. 밤은 커다란 솜이불모두를 덮고 모두를 집으로 돌린다. 몇 번 개들이 짖고 나면 그냥 어둠 뿐,빛도 소리도 잠이 든다. 하나 둘 별들이 돋고대답하듯 번져가는 고만고만한 불빛들저마다의 창 저마다의 불빛 속엔저마다의 슬픔이 잠깐씩 빛나고그것도 잠깐 검은 바다 흐른다. 그렇다.밤은 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날마다살아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일으킨다.검은 바다를 홀로 지난 것들을. (1992년) 2020.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