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슬픔을 극복하는 길 한희철의 얘기마을(11) 슬픔을 극복하는 길 박종구 씨가 맞은 환갑은 쓸쓸했다. 늘 궁벽한 삶, 음식 넉넉히 차리고 부를 사람 모두 불러 즐거움을 나누는 여느 잔치와는 달리 조촐하게 환갑을 맞았다. 친척 집에서 준비한 자리엔 가까운 친척 몇 명이 모여 아침식사를 했을 뿐이다. 별 차이는 없었겠지만, 환갑 맞기 얼마 전 부인마저 먼저 보낸 환갑이었기에 쓸쓸함은 더했다. 식사를 마치고 건너편 응달말 언덕배기 박종구 씨 집으로 건너가 식구들과 둘러앉아 예배를 드렸다. 마침 그 날이 주일, 예배 시간 우리는 박수로써 환갑을 맞는 박종구 씨를 축하했다. 예배를 마쳤을 때, 여선교회장인 이음천 속장은 교회에서 떡을 준비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 얼마나 좋은 생각이냐며, 우리는 서둘러 서로에게 연락을 했다... 2020. 6. 27. 땅내 한희철의 얘기마을(10) 땅내 ‘땅내를 맡았다’고 한다.논에 모를 심고 모의 색깔이 검푸른 빛으로 변해 뿌리를 내린 걸 두고 모가 땅내를 맡았다고 한다.땅 냄새를 맡았다는 말이 귀하다.내 삶은 얼마나 땅내를 맡은 것일까. (1989년) 2020. 6. 26. 뒤풀이 한희철의 얘기마을(9) 뒤풀이 은진이 아버지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전에 본 적이 없다. 한 동네서 6년을 같이 살아오면서도 말 한마디 속 시원히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터에 노래라니. 은진이 아버지의 노래는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게다가 흥이 더하자 덩실덩실 청하지도 않은 춤마저 추는 것이 아닌가. 이거 내가 꿈을 꾸나 싶었다. 박수와 웃음소리, 그리고 환호소리가 노래와 춤을 덮었다. 일주일 동안의 농촌봉사활동을 마치고 마지막 날 저녁 예배당 마당에서 열린 '마을주민잔치', 이른바 뒤풀이 시간이다. 자리를 깔고 천막을 치고 푸짐한 상을 차리고, 그야말로 신명나는 잔치가 열렸다. 모르는 대학생들이 일주일 동안이나 단강을 찾아 귀한 땀을 흘리다니, 농약을 치다 어지럼증을 느끼면서도, 풀독이 뻘겋게.. 2020. 6. 25. 마른땅, 그대들의 땀방울은 약비로 내리고 한희철의 얘기마을(8) 마른땅, 그대들의 땀방울은 약비로 내리고 살아가며 그중 어려운 건 외로움입니다. 얼마쯤은 낭만기로 들리는 그 말이 때론 얼음처럼 뼛속으로 파고들어 마음을 흐트러뜨리고 시간을 야위게 합니다. 농사일이 힘든 거야 당연한 일입니다. 변함없이 가는 세월 앞엔 한해 한해가 달라 기운이 쇠하고, 마음은 그렇질 않은데 몸이 따르질 못합니다. 맘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몸을 이끌고 예전처럼 농사일을 꾸리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갈수록 경운기 부리기도 겁이 나고, 쌀가마 두개쯤은 거뜬했던 지게질도 이젠 소꼴 얼마큼에 힘이 벅찹니다. 늙으면 손도 발도 따라 굼떠져 같은 일도 더딜 수밖엔 없습니다. 쑥쑥 단번에 뽑히던 잡초들도 이젠 우리들을 비웃어 여간한 힘엔 꿈쩍을 않습니다. 없는 새벽잠에 깨는 대로 .. 2020. 6. 24. 열흘간의 휴직 계 한희철의 얘기마을(7) 열흘간의 휴직 계 열흘간의 휴직 계를 내고 성문 씨가 단강에 내려왔다. 지난번 사고로 몸이 불편해진 아버지, 힘들어 하시는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직장에 열흘간 휴직 계를 냈다. 논밭 갈고 못자리를 해야 하는데, 연로하신 부모님 두 분으로선 힘에 부치다는 걸 왜 몰랐으랴만, 몸마저 불편하신 아버님 전화 받곤 안타까움을 마음에만 둘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수요예배를 마친 뒤 사택에서 차 한 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성문 씨가 병철 씨와 함께 예배에 참석한 것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웃으며 한 이야기였지만 마음이 아팠다. “부모님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들어와야죠. 마음속엔 늘 그 생각뿐이에요. 그러나 들어오면 내 인생은 희생되는 거구요... 2020. 6. 23. 뜻밖의 손님 한희철의 얘기마을(6) 뜻밖의 손님 ‘어렵게 준비된 잔치일수록 아름다운 법’이라던 생텍쥐페리의 말은 살아가며 늘 새롭게 다가온다. 1989년 부활절은 생텍쥐페리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는 날이었다. 오토바이 뒤에 아내와 딸 소리를 태우고 부활란이 든 봉투를 한 손에 잡고선 강가로 갔다. 부활절 낮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을 때, 강가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팀스피리트 훈련을 끝내고 철수를 기다리고 있는 군인들이 조귀농으로 가는 강가에 주둔하고 있었다. 혹 그들 중 오늘이 부활절임을 기억하면서도 여건상 예배에 참석치 못한 이가 없을까 싶어 부활란 얼마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 영어 할 자신 있어요?” 강가로 나가자는 말에 웃으며 묻는 아내 말에 “까짓것 그거 못 하려고? 그.. 2020. 6. 22. 뜻밖의 소풍 한희철의 얘기마을(5) 뜻밖의 소풍 우리 몇 몇 목회자는 원주에서 라는 찻집을 하고 있는 최종위 씨를 ‘아저씨’라 부른다. 의미로 보자면 ‘형님’ 정도가 될 것이다. 언제 찾아가도 후덕한 웃음으로 맞아 주시는, 기꺼이 성경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주신 고마움을 그렇게 기억하는 것이다. 아저씨라는 호칭 속엔 그분의 나이가 아니라 인품이 담겨 있다. 최종위 아저씨로부터 온 전화는 뜻밖이었다.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지난번 언젠가 에 아내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미국에 있는 한 교회에서 말씀집회 강사로 청하며 우리 내외를 같이 청했는데, 아내는 동행하지 않았다. 같이 사는 마을의 젊은 엄마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이야기를 에 옮기는 것 자체를 아내는 원하지 .. 2020. 6. 21. 자조 한희철의 얘기마을(4) 자조 버스에 탄 할아버지 두 분이 이놈, 저놈 호탕하게 웃으며 농을 한다. “이놈아,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 “어허 그놈, 으른 애도 모르는 걸 보니 갓난애구먼.” “이놈아, 집에 틀어박혀있지 나가길 어딜 나가누. 나갔다 길 잃어버리면 집도 못 찾아올라구.” “고 어린 게 말은 잘하네. 아직 이도 안 난 것이.” “뭐라고?” 어이없어 껄껄 웃고 마는 할아버지, 정말 앞니가 하나도 없다. 친구 같은 두 분 할아버지, 무심한 세월 덧없음을 그렇게 서로 자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얘기마을, 1989년) 2020. 6. 20. 삶을 모르고서야 한희철의 얘기마을(3) 삶을 모르고서야 “제가 열 살 때 샘골로 글을 가르치러 댕겼어요. 국문이죠. 그때 칠판이 있었겠어요? 그런데 샘골 노인들이 참 지혜로웠어요. 어떻게든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면서 쟁반에다 좁쌀을 담아 준비를 해 둔 거예요. 손가락으로 좁쌀 위에 글을 썼다가 흔들면 지워지니 아, 그 얼마나 편하고 좋아요.” “요샌 큰일이에요, 시골에도 도둑이 많으니. 며칠 전엔 성희 네도 도둑을 맞을 뻔 했대요. 자가용 타고 온 웬 남자들이 서성거려 그 집에 온 손님인 줄로 알았지 도둑인 줄 생각이나 했겠어요.” “바로 그날 부놋골에서 도둑을 맞았데요. 금반지 다섯 개와 쌀 두가마를 잃어버렸대요.” “흥호리에선 경운기 앞대가리만 빼갔대요. 값나가는 쪽이 앞쪽이니까 대가리만 빼서 차에 싣고 갔나 봐요... 2020. 6. 19. 이전 1 ··· 53 54 55 56 57 58 59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