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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영원의 의미 한희철의 얘기마을(56) 영원의 의미 제단 앞에 무릎을 꿇으면 날 마주하는 두 개의 문자가 있습니다.알파(Α) 와 오메가(Ω), 처음과 나중이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늘 그 사이에 앉게 됩니다.처음과 나중 그 사이의 어느 한 점.내 삶의 시간이란 결국 그뿐이며 그것이 내겐 영원입니다. - (1990년) 2020. 8. 16.
해가 서산을 넘으면 한희철의 얘기마을(55) 해가 서산을 넘으면 해가 서산을 넘으면 이내 땅거미가 깔립니다. 기우는 하루해가 갈수록 짧습니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면 예배당 십자가에 불을 밝힙니다. 털털거리는 경운기에 하루의 피곤을 싣고 어둠 밟고 돌아오는 사람들, 조금이라도 따뜻한 기운으로 그들을 맞고 싶기 때문입니다. 떠나가고 없는 식구들 웃음처럼, 따뜻한 불빛처럼, 땀 밴 하루의 수고를 맞이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매일 저녁, 해가 서산을 넘으면 깔려드는 땅거미를 따라 예배당 꼭대기 십자가에 불을 밝힙니다. - (1990년) 2020. 8. 15.
물빛 눈매 한희철의 얘기마을(54) 물빛 눈매 5살 때 만주로 떠났다 52년 만에 고국을 찾은 분을 만났다. 약간의 어투뿐 조금의 어색함이나 이질감도 안 느껴지는 의사소통, 떨어져 있는 이들이 더욱 소중히 지켜온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놀라웠다. 헤어질 때 7살이었던, 지금 영월에 살고 있는 형님 만날 기대에 그분은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강산이 변해도 수없이 변했을 50년 세월. 그래도 그분은 52년 전, 5살이었을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동굴 있는 곳에 가서 제(제사)를 드리던 일과, 강냉이 밭 산짐승 쫓느라 밤마다 형하고 빈 깡통 두들기던 일, 두 가지가 아직도 생각난다고 했다. 50년 넘게 이국땅에서 쉽지 않은 삶을 살며 외롭고 힘들 때마다 빛바랜 사진 꺼내들 듯 되살리곤 했을 어릴 적 기억 두 가지... 2020. 8. 14.
살아도 안 산 한희철의 얘기마을(53) 살아도 안 산 “그냥 살다 죽지 이제 살리긴 뭘 살려, 세금만 더 낼 텐데.” 치화 씨 어머니는 호적이 없습니다. 십여 년 전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죽음 이후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 치화 씨 어머니도 부산 어디 수용소에 갇히는 등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을 했던 것인데 그러는 사이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던 것입니다. 마을 사람 몇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호적 이야기가 나왔고 이야기의 대부분은 까짓것 그냥 살다 죽지 뭘 하러 죽은 호적을 살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십년 넘어 만에 아들 치화 씨를 만나 기구한 삶 오늘에 이어오지만 그렇게 살아도 이 세상 안 산 걸로 돼 있는 치화 씨 어머니. 언제 한 번 생이 따뜻이 그를 맞아줘 살 듯 산 적 있었겠냐만, 살아도 안 산,.. 2020. 8. 13.
어떤 부흥사 한희철의 얘기마을(52) 어떤 부흥사 “그 다음날 탁 계약을 했어.” 지방산상집회, 설교하던 강사는 자기가 그랜저 자가용을 사게 된 과정을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감독도 못 타는 그랜저를 이야기가 나온 바로 다음날 교인들이 보기 좋게 계약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구구절절 헤프다 싶게 아멘 잘하던 성도들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잠깐의 침묵이 내겐 컸고 길었다. 계속 이어진 자랑들, 수십 평 빌라에 살고, 한 달 목회비만 수백만 원, 넥타이에 박힌 다이아몬드가 몇 백, 어디 나갈 일 있을 땐 교인들이 수표를 전하고... 그의 말대로 그게 하나님의 축복일까? 물신의 노예로밖엔 더도 덜도 아니었다. 앉아 이야기를 듣는 교인 중의 대부분은 농촌교회 교인들. 문득 한 장면이 강사 이야기와 겹쳤다. 개.. 2020. 8. 12.
쥑이는 것두 하나님이요 한희철의 얘기마을(51) 쥑이는 것두 하나님이요 “쥑이는 것두 하나님이요, 살리는 것두 하나님이니......” 지난여름 장마에 봄 작물을 모두 ‘절딴’ 당한 지 집사님은 그렇게 기도했었다. 대신 가을 농사만은 잘 되게 해 달라는, 반은 탄식이었고 반은 눈물인 기도였다. 그 넓은 강가 밭을 바다처럼 삼켜버린 가을 홍수가 무섭게 지나갔다. 밭인지 갯벌인지, 논인지 개울인지 홍수 지난 뒷자리는 구별이 안 됐다. 결국 수마는 지 집사님 기도 위로 지나갔다. 수원 아들네 다니러 가 길이 끊겨 아직 오지도 못한 지 집사님. 그를 만나면 무슨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하는 건지. - (1990) 2020. 8. 11.
심심함 한희철의 얘기마을(50) 심심함 “승혜야 넌 커서도 여기서 살고 싶니? 아니면 고모 살고 있는 도시에서 살고 싶니?” 자주 사택에 놀러오는 승혜에게 아내가 물었다. 승혜가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단강은 싫어요.”“왜?”“심심해서요. 숙제하고 나오면 아무도 없어요.” 심심해서 단강이 싫다는 승혜. 그건 승혜만한 아이뿐만이 아니다. 떠난 많은 사람들, 그들도 심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가버리는 무심한 세월이 싫어서, 두려워서 떠난 것이 아닌가. 잃어버린 살맛에 대한 두려움이 아이들에게까지 번져 있다. 뿌리가 야위어가고 있는 것이다. 심심함으로... - (1990) 2020. 8. 10.
대견스러운 승혜 한희철의 얘기마을(49) 대견스러운 승혜 승혜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대부분 그 나이라면 아직은 응석을 부리며, 숙제며, 지참물이며, 입는 옷이며, 매사에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때다.그러나 승혜는 다르다.빨래며, 설거지며, 청소며, 못하는 게 없다. 늘 바쁜 엄마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나가 놀기 좋아하는 오빠와 남동생.승혜는 불평 없이 집안일을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인사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는 어린 승혜.승혜가 대견한 건 승혜 엄마만이 아니다. (1989) 2020. 8. 9.
아기의 손을 잡으며 한희철의 얘기마을(48) 아기의 손을 잡으며 작고 고운 아기의 손을 마주 잡습니다. 품에 안겨 막 잠든 아기, 뜻하지 않은 소리 듣고 놀라지 않도록 가만히 잠든 손을 잡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런지 마음이 그런지 그렇게 손을 잡아주면 아기가 놀라지 않는다고 어른들은 말합니다. 누구일지요. 따뜻한 손 건네 우리 생 마주 잡는 이, 누구일지요. - (1990) 2020.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