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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어느 날의 기도 한희철의 얘기마을(47) 어느 날의 기도 아무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검은 숲으로 단숨에 드는 새처럼 당신 품엔 그렇게 들고 싶습니다.언제라도 주님. - (1992) 2020. 8. 7.
보이지 않는 나 한희철의 얘기마을(46) 보이지 않는 나 “마음이 몸을 용서하지 않는다.” 티내지 말자 하면서도 입술이 형편없이 터졌다. 가슴은 스스로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서서히 가라앉았고, 덩그런 바위가 그 위에 얹혀 있는 것도 같았다. 거센 해일을 견디는 방파제 같기도 했다. 잠자리에 누워선 철컥 철컥 벽시계 소리가 가슴 밟는 소리로 들렸다. 시간은 어렵게 갔고, 옥죄이는 초라함에도 내가 보이질 않았다. - (1990) 2020. 8. 6.
제비똥 한희철의 얘기마을(45) 제비똥 안속장님네 마루 위 천정엔 올해도 제비가 집을 지었습니다. 점점 그 수가 줄어드는 제비가 용케 옛집을 찾아 다시 한 번 집을 지은 것입니다. 집 짓느라 바지런히 오가며 때때로 흰 똥을 싸 내려 마루에 똥칠을 합니다. 깨끗하신 속장님 연신 마루를 닦다 이번엔 신문지를 널찍하게 펼쳐놓았습니다. 문을 닫아 놓아도 용케 들어와 집을 진다고, 똥을 싸대 일이라며 말투는 귀찮은 듯 했지만 그 말 속엔 온통 반가움과 고마움이 들었습니다. 한갓 미물의 변함없는 귀향, 사람이 그보다 난 게 무엇일까. 백발의 세월 두곤, 돌아온 제비가 섧도록 고마운 것입니다. 까짓 흰 똥이 문제겠습니까. - (1990) 2020. 8. 5.
가슴에 든 멍 한희철의 얘기마을(44) 가슴에 든 멍 영웅적인 고통이나 희생이 아니다.그저 잘디 잘은 고통뿐. 단 한 번의 주목받는 몰락 아니다.그저 서서히 무너질 뿐. 가슴에 든 멍을 스스로 다스리며또 다시 아픈 가슴 있지도 않은 가슴으로 끌어안을 뿐. 목회란 울타리, 그뿐 또 무엇. - (1990) 2020. 8. 4.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정은 한희철의 얘기마을(43)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정은 버스를 타러 신작로로 나가는데 길가 논에서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반백이었던 머리가 잠깐 사이 온통 하얗게 셌고, 굽은 허리는 완전히 기역자로 꺾였다. 할아버지는 쇠스랑대로 논에 거름을 헤쳐 깔고 있었다.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는 “올해도 농사하세요?” 하고 여쭸다. 나이도 나이고, 굽은 허리도 그렇고, 이젠 아무리 간단한 농사라도 할아버지껜 벅찬 일이 되었다. 잠시 일손을 멈춘 할아버지가 대답을 했다. “올해까지만 짓고 내년에는 그만 둘 꺼유.” 할아버지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안다. 할아버진 지난해에도 그러께도 같은 대답을 했다. 아마 내년에도 같은 대답을 하실 게다. 올해까지만 짓고 내년엔 그만 두겠다고. 언젠가 취중에 ‘.. 2020. 8. 1.
허울 좋은 사랑 한희철의 얘기마을(40) 허울 좋은 사랑 “선한 목자는 양을 사랑하지. 양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산을 넘고 강을 건너 그 양을 찾는단다.”어린이 예배 시간, 아내가 선한 목자와 양 이야기를 가지고 설교를 했다 한다. 말똥말똥 이야기를 듣던 주환이가 불쑥 묻기를 “그치만 나중에 잡아먹잖아요?” 했단다. 어린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그 이야기를 했고, 뜻밖의 이야기에 낄낄 웃었지만 솔직히 속은 불편했다. 아이들의 단순한 시선에 걸린 분명한 현실 비판. 허울 좋은 사랑의 거짓 명분도 있지. 암, 있고말고! - (1990) 2020. 7. 30.
우리 집에 왜 왔니? 한희철의 얘기마을(39) 우리 집에 왜 왔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뒤로 돌아 게시판에 머리를 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욀 때 모두들 열심히, 그러나 조심스럽게 술래 쪽으로 나아갔다. 느리기도 하고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는 술래의 술수에 그만 중심을 잃어버리고 잡혀 나가기도 한다. 그러기를 열댓 번, 술래 앞까지 무사히 나간 이가 술래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있는 동안, 그동안 잡아들인 사람들의 손을 내리쳐 끊으면 모두가 “와!”하며 집으로 도망을 친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꽃을 따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무슨 꽃을 따겠니, 따겠니, 따겠니?” 두 패로 나뉘어 기다랗게 손을 잡곤 파도 밀려갔다 밀려오듯, 춤추듯 어울린다. 따지듯 점점 .. 2020. 7. 29.
자격심사 한희철의 얘기마을(38) 자격심사 -교회 세워진 지 몇 년 됐죠?-3년 됐습니다.-지금 몇 명 모입니까?-20여명 모입니다.-첨엔 몇 명 모였나요?-20여명 모였습니다. 피식 웃었다. 자격 심사, 둘러앉은 심사위원들이 3년 동안 그대로인 수치를 두고 웃었다.나도 웃으며 그랬다. -작년 한 해 동안 세 분이 이사 가고, 세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모두들 다시 웃었다. 고개를 끄덕이며.그러면서-됐습니다. 나가세요.그렇게 자격심사가 끝났다. - (1990) 2020. 7. 28.
평화 한희철의 얘기마을(38) 평화 동네 남자들이 은경이네를 위해 한나절 나무를 같이 했습니다. 한 짐씩 경운기에 실어 날랐습니다. 반장님이 아침부터 방송으로 알리더니 어느 새 한데 모여 나무를 한 것입니다. 은경이 아버지는 지난 가을 팔을 다쳤습니다. 어둔 길 탈곡을 마치고 경운기를 타고 돌아오다가 둔덕을 지날 때 기우뚱 중심을 잃으며 기울어졌는데, 그 순간 미끄러져 내리는 탈곡기를 막다가 팔을 다쳤던 것입니다. 덕분에 은경이네는 얼마 남지 않았던 나무가 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늘 이웃들이 마실 많이 오던 집이 썰렁한 냉방인지라 여느 해처럼 사람들이 모이질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은경이네를 위해 나무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 나서니 마당엔 이내 나무로 가득했습니다. 이웃의 정이 고마운 은경이.. 2020.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