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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증오라는 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7) 증오라는 힘 때로는 증오도 힘이 된다. 좌절이나 체념보다는 훨씬 큰, 살아갈 힘이 된다. 하지만 증오는 길을 잃게 한다. 길을 잃었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먼 길을 가야 한다. 대개는 길을 잃었다는 것도 모른 채, 그 감정에 갇혀 평생의 시간을 보내지만. 2020. 6. 8.
선인장의 인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6) 선인장의 인사 목양실 책상 한 구석에는 선인장 화분이 놓여 있다. 예전에 권사님 한 분과 화원에 들른 적이 있는데, 그 때 권사님이 사준 화분이다. 권사님은 가게에 둘 양란을 하나 사면서 굳이 내게도 같은 화분을 선물하고 싶어 했다. 그런 권사님께 양란 대신 사달라고 한 것이 양란 옆에 있던 선인장이었다. 이내 꽃이 지고 마는 난보다는 가시투성이지만 오래 가는 선인장에 더 마음이 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생명력이 마음에 더 의미를 부여할 것 같았다. 바라볼 때마다 인고를 배울 수 있다면 싶기도 했다. 값 차이 때문이었던지 한동안 양란을 권하던 권사님도 내 생각을 받아주었다. 어느 날 보니 선인장이 새로운 줄기를 뻗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음이 났다. 선인.. 2020. 6. 7.
어느 누가 예외일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5) 어느 누가 예외일까 한 사람이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 있다. 누군가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어색하다. 어색하기 그지없다. ‘어색’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뭔가 못마땅한, 무표정한 표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예배당으로 가기 위해 했던 일을 안다. 최루탄을 쏘아 사람들을 흩음으로 길을 만들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잘 알고 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한 생명이 무릎에 짓눌려 숨졌다. 죽은 이는 흑인 시민이었고, 죽인 이는 백인 경찰이었다. 분노하여 일어선 군중들의 분노를 공감하고 풀어야 할 자리에 있는 그였다. 갈등과 아픔을 보듬고 치유해야 할 책임자였다. 하지만 그는.. 2020. 6. 6.
소확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4) 소확행 말에도 생명력이 있어 낯선 말이 어느새 익숙한 말로 자리를 잡는 경우가 있다. ‘소확행’이란 말이 그렇다. 소확행(小確幸)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처음 등장한 말이라고 한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을 소확행이라고 했다. 문방구에 들러 잉크와 공책을 샀다. 만년필에 넣을 파란색 잉크와 설교문을 적기에 적절한 노트를 사가지고 나올 때 문득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그랬다. ‘이런 게 소확행이구나!’ 2020. 6. 5.
엎어 놓은 항아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3) 엎어 놓은 항아리 항아리 파는 가게를 찾은 사람이 항아리를 보며 불평을 한다. “아가리가 없네.” 이번엔 항아리 밑을 들춰보더니 또 불평을 한다 “밑도 빠졌군.” 항아리들은 비 맞지 말라고 엎어 놓은 상태였다. 불평하는 이는 한결같이 불평한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여 자기 생각을 뒤집을 줄 모른다. 엎어 놓은 항아리처럼. 2020. 6. 4.
조율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2) 조율 글을 통해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도사님이 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음악이 새롭게 다가온다. 오늘 아침에 대한 글도 그랬다. 나는 사라 오트라는 피아니스트를 모른다. 하지만 전도사님의 글을 읽고는 사라 요트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었다. 눈여겨 지켜보며 귀담아 들었다. https://youtu.be/PM0HqmptYlY 전도사님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가 충분히 느껴졌다. 사라 오트는 자신이 협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솔리스트라고 다른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배경쯤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휘자와 다른 연주자들의 지휘와 연주에 집중했고, 자신은 그 중의 일부라는 사실을 겸손함과 따뜻함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저 젊고 재능 있는.. 2020. 6. 3.
들키고 싶은 작은 돌처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1) 들키고 싶은 작은 돌처럼 방치되고 있던 예배당 앞 공터를 화단으로 만들며 가운데에 작은 길 하나를 만들었다. 꽃을 눈으로만 보지 말고 가까이 다가오시라는, 초청의 의미를 담은 짧은 길이었다. 화단을 만들던 날, 한 교우가 마무리 작업으로 담장 공사를 하고 있는 안식관에서 벽돌 두 장을 얻어왔다. 새로 만드는 길의 바닥을 벽돌로 깔면 어떻겠냐는 뜻이었다. 교회가 화단을 꾸미며 벽돌을 얻어다 쓰는 것도 어색하거니와 공터를 화단으로 만드는 자리, 벽돌로 길을 만드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터를 정리하며 나온 잔돌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다. 공터이다 보니 잔돌들이 많았다. 잠깐 호미질만 해도 제법 많은 돌들이 나왔다. 생각하다가 잔돌들을 그냥 쓰기로 했다. 작은 돌들을 양.. 2020. 6. 2.
잃어버린 신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0) 잃어버린 신발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펼친 순간, 거기에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장 멋진 선물이 들어 있었다. 축구화였다. 바닥에 볼록볼록 튀어나온 고무가 박힌, 그야말로 꿈같은 축구화였다. 공을 차면 공보다 신발이 더 높게 오르곤 하던 그 시절, 축구화는 흔치 않은 것이었다. 난 그날 밤 성탄 축하행사가 벌어지는 교회로 축구화를 신고 갔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탄절 행사를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축구화는 없었다. 신발장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던 축구화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속상한 엄마의 야단을, 신발을 사 주어 더 속상했을 누나가 말려 겨우 면할 수 있었다.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신이 났던 축구화, .. 2020. 6. 1.
뜻밖의 선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뜻밖의 선물 ‘아, 예배드리고 싶다.’ ‘내가 예배에 고팠구나.’ 근 석 달 만에 드리는 수요저녁예배, 지는 해가 드리우는 저녁 그림자를 밟고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교우들의 모습에서 그런 마음이 읽혀진다. 코로나가 준 뜻밖의 선물 중에는 그런 것이 있다. 2020. 5.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