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어느 누가 예외일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5) 어느 누가 예외일까 한 사람이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 있다. 누군가 예배당 앞에서 성경책을 들고 서 있는 것은 얼마든지 자연스러울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어색하다. 어색하기 그지없다. ‘어색’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뭔가 못마땅한, 무표정한 표정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예배당으로 가기 위해 했던 일을 안다. 최루탄을 쏘아 사람들을 흩음으로 길을 만들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더 잘 알고 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한 생명이 무릎에 짓눌려 숨졌다. 죽은 이는 흑인 시민이었고, 죽인 이는 백인 경찰이었다. 분노하여 일어선 군중들의 분노를 공감하고 풀어야 할 자리에 있는 그였다. 갈등과 아픔을 보듬고 치유해야 할 책임자였다. 하지만 그는.. 2020. 6. 6. 소확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4) 소확행 말에도 생명력이 있어 낯선 말이 어느새 익숙한 말로 자리를 잡는 경우가 있다. ‘소확행’이란 말이 그렇다. 소확행(小確幸)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처음 등장한 말이라고 한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돌돌 만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을 소확행이라고 했다. 문방구에 들러 잉크와 공책을 샀다. 만년필에 넣을 파란색 잉크와 설교문을 적기에 적절한 노트를 사가지고 나올 때 문득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그랬다. ‘이런 게 소확행이구나!’ 2020. 6. 5. 엎어 놓은 항아리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3) 엎어 놓은 항아리 항아리 파는 가게를 찾은 사람이 항아리를 보며 불평을 한다. “아가리가 없네.” 이번엔 항아리 밑을 들춰보더니 또 불평을 한다 “밑도 빠졌군.” 항아리들은 비 맞지 말라고 엎어 놓은 상태였다. 불평하는 이는 한결같이 불평한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여 자기 생각을 뒤집을 줄 모른다. 엎어 놓은 항아리처럼. 2020. 6. 4. 조율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2) 조율 글을 통해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도사님이 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음악이 새롭게 다가온다. 오늘 아침에 대한 글도 그랬다. 나는 사라 오트라는 피아니스트를 모른다. 하지만 전도사님의 글을 읽고는 사라 요트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들었다. 눈여겨 지켜보며 귀담아 들었다. https://youtu.be/PM0HqmptYlY 전도사님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가 충분히 느껴졌다. 사라 오트는 자신이 협연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솔리스트라고 다른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배경쯤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휘자와 다른 연주자들의 지휘와 연주에 집중했고, 자신은 그 중의 일부라는 사실을 겸손함과 따뜻함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저 젊고 재능 있는.. 2020. 6. 3. 들키고 싶은 작은 돌처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1) 들키고 싶은 작은 돌처럼 방치되고 있던 예배당 앞 공터를 화단으로 만들며 가운데에 작은 길 하나를 만들었다. 꽃을 눈으로만 보지 말고 가까이 다가오시라는, 초청의 의미를 담은 짧은 길이었다. 화단을 만들던 날, 한 교우가 마무리 작업으로 담장 공사를 하고 있는 안식관에서 벽돌 두 장을 얻어왔다. 새로 만드는 길의 바닥을 벽돌로 깔면 어떻겠냐는 뜻이었다. 교회가 화단을 꾸미며 벽돌을 얻어다 쓰는 것도 어색하거니와 공터를 화단으로 만드는 자리, 벽돌로 길을 만드는 것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터를 정리하며 나온 잔돌들이 한쪽에 쌓여 있었다. 공터이다 보니 잔돌들이 많았다. 잠깐 호미질만 해도 제법 많은 돌들이 나왔다. 생각하다가 잔돌들을 그냥 쓰기로 했다. 작은 돌들을 양.. 2020. 6. 2. 잃어버린 신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500) 잃어버린 신발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펼친 순간, 거기에는 내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장 멋진 선물이 들어 있었다. 축구화였다. 바닥에 볼록볼록 튀어나온 고무가 박힌, 그야말로 꿈같은 축구화였다. 공을 차면 공보다 신발이 더 높게 오르곤 하던 그 시절, 축구화는 흔치 않은 것이었다. 난 그날 밤 성탄 축하행사가 벌어지는 교회로 축구화를 신고 갔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성탄절 행사를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축구화는 없었다. 신발장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던 축구화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속상한 엄마의 야단을, 신발을 사 주어 더 속상했을 누나가 말려 겨우 면할 수 있었다. 자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신이 났던 축구화, .. 2020. 6. 1. 뜻밖의 선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9) 뜻밖의 선물 ‘아, 예배드리고 싶다.’ ‘내가 예배에 고팠구나.’ 근 석 달 만에 드리는 수요저녁예배, 지는 해가 드리우는 저녁 그림자를 밟고 예배당 마당으로 들어서는 교우들의 모습에서 그런 마음이 읽혀진다. 코로나가 준 뜻밖의 선물 중에는 그런 것이 있다. 2020. 5. 31. 꽃들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8) 꽃들은 꽃은 하나님의 웃음인지도 몰라. 슬쩍 대지에 남긴 하나님의 지문인지도 모르고. 결코 까탈스럽고 엄숙한 할아버지가 아님을 일러주는 하나님의 손사래인지도 모르고. 천지창조 후 그래도 뭔가 아쉬워서 한 번 더 어루만진 하나님의 손길인지도 모르지. 예배당 앞 공터에 꽃을 심기 위해 찾은 양주화훼단지, 이름도 모를 만큼 꽃들은 얼마나 많던지, 눈이 부실 만큼 빛깔은 얼마나 예쁘던지, 서로서로 모양은 얼마나 다르던지, 꽃은, 꽃들은! 2020. 5. 30. 깨진 유리창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97) 깨진 유리창법칙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론으로,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범죄이론이다. 깨진 유리창 법칙의 구체적인 예가 있다. 구석진 골목에 차량 두 대를 보닛을 열어둔 채 주차를 시켜둔다. 그 중 한 대는 앞 유리창이 깨진 차다. 그런 뒤 일주일을 지켜보면 결과가 다르다. 유리창이 온전한 차는 일주일 전과 동일한 모습이지만, 유리창이 깨져있는 차는 거의 폐차 직전으로 심하게 파손되고 훼손된다는 것이다. 예배당 앞에 있는 공터를 다시 한 번 꽃밭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무관심한 것도 아니었지만 크게 관심을 갖는 것도 아니어서 .. 2020. 5. 29. 이전 1 ··· 55 56 57 58 59 60 61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