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청개구리의 좌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9) 청개구리의 좌선 청개구리가 선에 들었다. 작약 꽃 지고 남은 꽃받침, 그곳에 들어앉아 시간을 잊는다. 바람 거세게 불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들어앉아 세상을 잊을 나의 꽃받침은 어디일지. 2020. 5. 21.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8) 망각보다 무서운 기억의 편집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았다. 자식들의 비석을 쓰다듬는 어머니들의 눈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지난다 해도 그 눈물이 어찌 마를까. 어찌 뜨거움이 달라질 수 있을까. 어머니 가슴속에 묻은 자식들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간다 해도 여전히 꽃다운 청춘들이다. 사진/일요신문 그 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부끄럽다. 모르기도 했고, 모른 척 하기도 했다. 오히려 광주의 아픔을 헤아리게 된 것은 군 입대 후였다. 입대를 한 것이 신학공부 3학년을 마친 1981년 7월 1일, 5.18이 일어난 지 막 1년이 지날 때였다. 논산에서 훈련을 받은 뒤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이 광주 송정리 평동에 있는 포대였다. 그 해였.. 2020. 5. 20.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7) 마음에 걸칠 안경 하나 있었으면 안경을 맞췄다. 어느 날부터인가 책을 읽다보면 글씨가 흐릿했다. 노트에 설교문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쓰면서도 받침이 맞나 싶을 때도 있었다. 마침 교우 중에 안경점을 하는 교우가 있어 찾아갔다. 일터에서 교우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새롭다. 마침 손님이 없어 같이 기도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집사님이 우선 검사부터 하자고 한다. 자리에 앉아 정한 자리에 턱을 괴자 집사님이 내 눈을 기계로 살핀다. 그런 뒤에 집사님이 가리키는 숫자를 읽는다. 애써 잘 읽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이번에는 두툼한 철로 된 안경을 쓰게 하고는 렌즈를 바꿔 끼우며 다시 글자를 읽게 한다. 글자가 한결 또렷해진다. 다.. 2020. 5. 19. 배운 게 있잖아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6) 배운 게 있잖아요 “저 경림이예요.” 뜻밖의 전화였지만, 전화를 건 이가 누구인지는 대번 알았다. 이름과 목소리 안에 내가 기억하는 한 사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후가 되어 경림이는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인우재로 올라왔다. 함께 동행한 둘째딸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빙긋 웃음이 나왔다. 처음 보는 아이에게 말했다. “내가 처음 단강에 들어왔을 때, 엄마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단다.” 그렇다, 경림이는 단강에 들어와서 첫 번째로 만난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였다. 열심히 교회에 나왔고, 고등학교 때 이미 교회학교 교사를 했었다. 유아교육을 공부한 뒤엔 자기도 고향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며 단강교회에서 하는 ‘햇살놀이방’ 교사 일을 맡기도 했었다... 2020. 5. 18. 기도이자 설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5) 기도이자 설교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이자, 세상을 향한 설교입니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만의 소리를 향해 순례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마틴 슐레스케의 에 나오는 한 구절은 그의 목소리처럼 다가온다. 군더더기를 버린 문장을 만나면 마음이 겸손해지거나 단출해진다. 우리의 삶이 곧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라는 말과 삶이 곧 세상을 향한 설교라는 말에 모두 공감을 한다. 기도와 설교가 일상과 구별된 자리와 시간에 특별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많은 순간 무의미하거나 비루해 보이는 우리의 삶이 곧 기도이자 설교라는 말은 그 말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짧은 한 문장 안에서 일어나는 공명이 맑고 길다. 서로 다른 현이 깊은 화음.. 2020. 5. 17.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4)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도리보다는 실리가 앞서는 세상이다. 유익보다는 이익이 우선인 세상이다. 많은 일들이 마땅하다는 듯이 진행된다. 하도 점잖게 이루어져 그걸 낯설게 여기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경박(輕薄)하고 부박(浮薄)한 세상이다. 비 때문일까, 낡은 책에 담긴 이행의 시구가 마음에 닿는다. "우연히 아름다운 약속 지켜 즐겁게 참된 경지를 깨닫네 사람이 좋으면 추한 물건이 없고 땅이 아름다우면 놀라운 시구도 짓기 어려워라" "한평생 얻고 잃는 게 모두 아이들 장난 같아 유유히 웃어넘기곤 묻지를 않으려네" 2020. 5. 16. 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3) 다 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며 남겨 두기로 한다.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편안한 일인가. 다 가지려 하지 않는다. 갖지 못할 것을 인정하며 비워두기로 한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넉넉한 일인가. 다 말하려 하지 않는다. 말로 못할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며 침묵하기로 한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푸근한 일인가. 다 가보려 하지 않는다. 가닿을 수 없는 미답의 세상이 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발길 닿지 않는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아늑한 일인가. 2020. 5. 15. 때로 복음은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2) 때로 복음은 어릴 적에 귀를 앓은 적이 있고, 그 일은 중이염으로 남았다. 의학적으로 맞는 소견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한다. 동네 철둑너머에 있는 저수지를 찾아 물놀이를 하고 돌아오는 길, 뜨거워진 철로 레일에 귀를 대고 물기를 말렸던 기억들이 있다. 하필이면 군생활을 한 곳이 105mm포대, 싫도록 포를 쏘기도 했으니 귀에 좋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언제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왼쪽 고막에는 작은 구멍이 생겼고, 드물지만 귀에서 물이 나올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일주일 가까이 귀에서 물이 나온다. 처음 겪는 일이 아니어서 그 일은 걱정이 되지 않는데, 정작 걱정이 되는 증세는 따로 있다. 양쪽 귀가 먹먹해진 것이다. 마치 솜으로 양.. 2020. 5. 14. 빈 수레가 요란하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81) 빈 수레가 요란하다 우리 속담 중에는 신앙과 관련이 있는 속담들이 있다. 곰곰 생각해보면 신앙적인 의미가 충분히 담겨 있다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콩 심은데 콩 나고, 밭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이 그렇다. 콩 심어놓고 팥 나기를 기도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다. 팥 심어 놓고 팥 안 날까 안달을 하는 것도 신앙이 아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도 마찬가지다. 피와 쭉정이는 제가 제일인 양 삐쭉 고개를 쳐들지만,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인격과 신앙이 익는 만큼 겸손도 따라서 익는다. 잘 익은 과일이 그렇듯이 그의 삶을 통해서는 향기가 전해진다. 신앙과 연관이 있다 여겨지는 속담 중의 하나가, ‘빈 수레가 요란하다’이다. 빈 수레일수록 삐거.. 2020. 5. 13. 이전 1 ··· 57 58 59 60 61 62 63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