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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2) 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는 인우재 기도실을 청소하던 중, 기도용 의자에 눈이 갔다. 무릎을 꿇고 앉을 때 엉덩이 아래에 괴면 몸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작은 의자 표면이 먼지로 지저분했다. 의자를 닦기 위해 우물가를 찾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먼지를 닦다가 의자 아랫부분을 보게 되었는데, 이게 웬일, 의자의 아랫부분 곳곳이 흙으로 채워져 있었다. 어찌 의자 아랫부분이 흙으로 채워져 있을 수가 있을까, 위에서 흙이 떨어졌다면 의자 위에 남아 있을 터, 의자 밑 부분을 채우고 있는 흙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방 이유를 알게 되었다. 막대기를 가지고 와서 흙을 빼내려다 보니 흙 속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작은 애벌레였다. 칸마다 서너 마리씩의 애벌레가 흙.. 2020. 5. 3.
달과 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1) 달과 별 토담집 인우재에서 보내는 밤은 특별하다. 사방이 고요한데, 어디선가 소쩍새가 울고 이름 모를 짐승의 소리도 들린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막 부엌에서 나오는 순간, 서쪽 하늘에 걸린 불빛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어둠이 번진 밤하늘에 누군가 작은 등을 밝힌 듯한데, 초승달과 별이었다. 가만 서서 달과 별을 바라보고 있자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큰딸 소리가 아주 어렸을 적이었다. 둘이서 서울을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원주행 버스를 탔을 때는 땅거미가 깔리며 어둠이 내릴 때였다. 창가 쪽에 앉아 어둔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던 소리가 내게 물었다. “아빠. 해는 환한데 있으니까 혼자 있어도 괜찮지만, 달은 캄캄한 데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봐 별.. 2020. 4. 30.
기도실 문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0) 기도실 문살 세월이 지나면 곰삭는 것 중에는 문살도 있다. 인우재 기도실 문살이 그랬다. 아랫말 무너진 돌담의 돌을 흙과 쌓아올린 기도실에는 동쪽과 서쪽에 작은 창이 두 개 있다. 동네 어느 집인가를 헐며 나온 것을 기도실 창으로 삼았다. 햇살이 비치면 고스란히 문살이 드러나는데, 예쁜 문양으로 서로 대칭을 이루던 것이 노인네 이 빠지듯 곳곳이 빠지기 시작했다. 문살은 헐거워지고 창호지는 삭아서 결국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떨어진 문살을 보면 장인의 솜씨를 느끼게 된다. 무슨 연장을 사용한 것인지 작은 나무토막 양쪽 끝을 날카롭게 벼려 자기보다 큰 문살들과 어울리도록 만들었다. 큰 문살들이 휘는 곳에는 ‘V’자 형태로 움푹 파인 부분이 있어 서로가 자기 자리에 꼭 .. 2020. 4. 30.
입장 차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9) 입장 차이 오래 전 리더스 다이제스트 유머 코너에서 읽은 글이 있다. 갈아 끼울 40와트짜리 전구를 사러 상점에 들러 점원에게 말했다. 벌써 몇 달 사이에 전구를 세 개나 갈았다고, 전구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자 점원이 불쾌하다는 듯이 이렇게 대꾸를 하는 것이었다. “천만에요. 그 전구가 우리 가게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물건입니다!” 부디 세상과 교회가 나누는 대화가 이런 것이 아니기를! 2020. 4. 30.
뒤늦은 깨달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8) 뒤늦은 깨달음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막상 일을 겪을 때는 그 일이 어떤 일인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중에는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다. 일러주긴 일러주지만 뒤늦게 후회하면서 깨닫게 하는 것이다. 공부의 의미를 공부할 때는 몰랐다가 뒤늦게 깨닫기도 하고, 젊음의 의미를 젊었을 때는 몰랐다가 뒤늦게 알게 되고, 일의 의미를, 사랑의 의미를, 건강의 의미를, 부모님의 의미를, 가족의 의미를, 친구의 의미를, 이웃의 의미를, 삶의 의미를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깨닫는 경우들이 있다. “오 맙소사,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한 번도 제대로 .. 2020. 4. 29.
개근충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7) 개근충 이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 있다. 고등학교 3년 개근 메달이었다. 따로 보관하고 있는 줄도 몰랐는데, 어딘가에 있다가 나타났다. 아, 내가 고등학교 때 3년 개근을 했었구나 싶었다. 그 일을 따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은 의왕이었고 고등학교는 수원에 있었다. 마침 수원에 새로 세워진 학교가 미션스쿨이어서 일부러 시험을 보고 선택한 학교였다.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가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갔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기차 통학, 타야 할 기차를 놓치면 지각이어서 기차역으로 내달리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밥을 빨리 먹는 데는 그 때 배인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 어느 핸가는 홍수가 났고, 차편이 끊겨 학교에 갈 수가 없는 날이 있었는데, .. 2020. 4. 27.
별 하나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6) 별 하나 인우재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오랜만의 일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곳곳에 풀을 베고, 베어놓은 나무를 정리하다 보니 금방 하루해가 기울었다. 대강 때우려던 저녁이었는데, 병철 씨가 저녁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했다. 마침 내리는 비, 우산을 쓰고 아랫작실로 내려갔다. 마을길을 걷는 것도 오랜만이다. 산에서 따온 두릅과 취나물, 상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성찬이었다. 비도 오는데 어찌 걸어서 가느냐며 트럭을 몰고 나선 병철 씨 차를 타고 다시 인우재로 올랐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빗물 떨어지는 마루에 앉아 바라보니 앞산에 비구름이 가득하다. 누구의 집일까, 불빛 하나가 붉은 점처럼 빛났다. 사방 가득한 어둠속 유일한 불빛이었다. 비오는 마루에 걸터앉아 그 불빛 바라보.. 2020. 4. 26.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5)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8주째 주일예배를 가정예배로 드렸다. 긴 시간이었다. 문을 닫아건 예배당은 적막강산과 다를 것이 없었다. 늘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신앙도 돌아보고, 교우도 돌아보고, 이웃도 돌아보고, 교회됨도 돌아보아야 했다. 5주째였던가, 영상예배를 드리며 대표기도를 맡은 장로님이 기도 중에 이렇게 고백했다.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 짧은 한 마디 속에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한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말은 화살처럼 박혔고,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버릇처럼 드린 기도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답이 없습니다.” 2020. 4. 26.
갈망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64) 갈망 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을 때, 벽에 걸려 있는 옛 시 하나가 눈에 띄었다. 竹影掃階塵不動 月輪穿沼水無痕 ‘죽영소계진부동 월륜천소수무흔’, 더듬더듬 뜻을 헤아리니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고, 둥근 달이 연못을 뚫어도 무엇 하나 흔적 남지 않네.’ 쯤이 될 것 같았다. 문득 대나무 그림자 앞에 선 듯, 호수를 비추는 달빛 아래 선 듯 마음이 차분해진다. 대나무 그림자 출렁이듯, 순한 달빛 일렁이듯 마음으로 찾아드는 갈망이라니. 먼지 하나 없이 마음 하나 쓸고 싶은. 물결 하나 없이 마음 하나 닿고 싶은. 2020. 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