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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이 참고서라면 교과서는 신동숙의 글밭(147) 경전이 참고서라면 교과서는 지식의 잎새가 무성해도 하늘을 다 가릴 수는 없습니다. 지혜의 잎새가 풍성해도 마음을 다 밝힐 수는 없습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의 제자인 박영호 선생의 를 읽다 보면 화두처럼 가슴에 인이 박히는 말들이 있습니다. 제 마음에도 걸림이 없는 말들입니다. 류영모 선생의 제자인 함석헌 선생이 말하기를 '"선생님의 두뇌는 천부적이지만 대단히 과학적이다." 이어서 박영호 선생이 말하는 류영모의 사상은 대단히 신비하지만 미신적인 데가 없이 허공처럼 투명하다.'(박영호, , 교양인, 104쪽) 예전에 박재순 선생의 를 감동과 놀라움으로 다 읽은 후 지금껏 남아 있는 한 가지는 허공처럼 투명한 하나님입니다. 참나, 얼나, 영원한 생명이라고도 부르고, 불교에선 불성, 참자.. 2020. 5. 12.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신동숙의 글밭(146) 학원 가는 자녀에게 진리를 얘기하려고 딸아이가 영어학원에 간다며 엄마 방으로 들어옵니다. 현관문 앞에서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할 때가 많은데, 구석진 방에까지 온 이유는 알고보니 용돈입니다. 읽고 있던 다석 류영모 선생의 내용 중에서 한 단락을 들려주어야겠단 마음이 실바람처럼 불었습니다. 중 3 딸아이에게 '성서조선'과 '조선어학회 사건'이라고 들어봤느냐 물으니, "어, 조선어학회는 들어봤어." 합니다. 그리고 읽고 있던 내용 중에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서대문 형무소에 잡혀 들어간 한국인이 일본인 간수에게 개인 교사가 되어 공부를 가르쳐줘서 승진 시험을 치르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얘기를 들려주며 지갑에서 이천 원을 꺼내 건네주는데 딸아이의 눈이 번쩍하.. 2020. 5. 11.
말로 하지 않아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9) 말로 하지 않아도 비가 오는 토요일, 교우와 점심을 먹고 예배당으로 돌아올 때였다. 예배당 초입 담장을 따라 줄을 맞춰 걸어둔 화분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하얀 비닐 우비를 입고 있어 누군지를 알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사무실 간사인 장 집사님이었다. 비를 맞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를 물었더니, 화분 아래에 구멍을 뚫어주고 있다고 했다. 비가 오자 화분마다 물이 차는데, 그러면 꽃의 뿌리가 썩어 죽는다는 것이다. 화분에는 물구멍이 두 개가 나 있지만 화분의 흙이 구멍을 막아 물이 제대로 빠지지를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침 화분에는 구멍을 뚫을 자리가 몇 개 더 있다면서 일일이 송곳으로 화분 아래에 구멍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손이 많이 갈 텐데요.” 우비를.. 2020. 5. 11.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신동숙의 글밭(145)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두 자녀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은 어버이날 전야제 저녁밥을 먹고 나서 아빠의 얼굴을 꼭 닮은 딸아이 중학생 딸아이와 아빠가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떠들썩하다가 개구진 딸아이가 손바닥으로 아빠 이마를 바람처럼 스치며 제 방으로 숨는다 커피 내리던 아빠가 반짝 자랑스레"아빠 이마는 태평양"이라고 하니까 딸아이가 방문을 열며"그러면 나는 울산 앞바다" 하며 웃느라 넘어간다 뒷정리 하던 엄마가 "그러면 동생은?" 하니까 신이 난 딸아이가 생각하더니 "동생은 태화강, 엄마는 개천"이라고 한다 엄마는 식탁을 빙 둘러 닦으며 "가장 넓은 건 우주, 우주는 하나님 얼굴이니까 우주 만큼 넓은 마음으로 살아라"고 말해 주는데 떠들썩 돌아오던 대답이 없다 하나님처럼 없다 2020. 5. 10.
700일이 넘었어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8) 700일이 넘었어도 지난 6일은 친구가 이 땅을 떠난 날이었다. 그가 살던 미국의 시간으로 하면 5월 5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어쩌면 아이처럼 살다가 아이처럼 떠난 것이었다. 하긴, 살아 있을 적에도 그는 훌쩍 어딘가로 떠나기를 좋아했고, 불쑥 예고도 없이 나타나기를 좋아했었다. ‘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쓰는 마음이 아프다. 1주기 때에는 그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올해는 그냥 지나기로 했다. 시간이 그만큼 더 흘러서는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상이 멈춰선 이 때, 굳이 모이는 것을 친구도 난감해 할 것 같았다. 내 핸드폰에는 친구 집에서 찍은 옛 사진이 들어 있다. 그 사진을 꺼내본다. 1978년 서울 냉천동 .. 2020. 5. 10.
카네이션보다 안개꽃 신동숙의 글밭(144) 카네이션보다 안개꽃 카네이션 한 다발을 안겨 주던 날 엄마가 보고 있는 건 카네이션이 아니라 카네이션을 감싼 흰 안개꽃이란다 네가 내 앞에서 웃고 있던 날 엄마가 보고 있는 건 네 옷차림이 아니라 네 등 뒤에 커다란 하늘이란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런 거지 눈에 활짝 띄는 세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언제나 더 크니까 자꾸만 눈에 보이는 건 보이지 않는 하늘이란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러면 그럴 수록 하늘이 점점점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마음 속으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 그러면 너도 꽃처럼 활짝 웃더라 2020. 5. 9.
고마운 집, 고마운 사람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7) 고마운 집, 고마운 사람들 어버이날을 앞둔 월요일, 두 어머니를 모시고 인우재에 다녀왔다. 사돈끼리의 동행이지만 함께 한 오랜 세월, 두 분 모두 어색함이 없으시다. 인우재 마루에 둘러앉아 식사를 할 때, 어머니가 인우재와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우리가 독일에서 목회할 기간에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특히 마음에 와 닿은 이야기가 있었다. 어느 핸가 인우재 근처에서 산불이 났다. 한창 농사철이서 바쁘게 일하던 마을사람들이 불을 보고는 한달음에 인우재로 달려왔다. 산 바로 곁에 자리 잡은 인우재가 불에 타지 않도록 물을 길어다 뿌리는 등 정말로 많은 수고를 했다. 덕분에 주변의 산은 새까맣게 탔지만 인우재는 불길에서 자신을 지켰다. 그 일이 너무나 고마워.. 2020. 5. 9.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신동숙의 글밭(143)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아이들의 연필은 신상품 4B, 2B, HB 깨문 자국은 고심하던 흔적 벗겨진 자국은 손 때 묻은 세월 역사를 지닌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그래서 버릴 수 없고 남에게 줄 수도 없고 쓰임 받을 때마다 자신을 비우며 내던 울음소리 웃음소리 때로는 고요한 침묵 몸이 부서지더라도 끝까지 심지가 곧은 그런 몽당 연필을 십 년이 넘도록 다 모아두었다 엄마가 책 읽을 때몽당 연필은 신난다 중요한 말씀이 나오면 나란히 따라서 걷다가 책장 빈 곳마다 말씀 따라쓰기도 한다 가슴에 새겨진 말씀이 된다 2020. 5. 8.
시절인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6) 시절인연 인우재에 있는 화장실은 자연에 가깝다. 통을 땅에 묻어 사용하는, 재래식이다. 통이 차면 차가 와서 통을 비워야 하는, 이른바 푸세식이다. 화장실은 통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벽은 더욱 그렇다. 목제를 켜고 남은 죽대기로 벽을 둘렀다. 숭숭 바람이 통하고 햇빛도 통한다. 아랫집을 짓기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렸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인우재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죽대기 사이로 바깥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바로 옆에는 여물통이 있다. 쇠죽을 담아두던 낡은 통을 그곳에 두고 이것저것 눈에 띄는 대로 담아두었다. 동네 집을 헐며 나온 기와, 인우재를 오르내리며 만난 사기그릇 조각들, 버리기에는 아깝.. 2020.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