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47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신동숙의 글밭(145)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두 자녀들로부터 카네이션을 받은 어버이날 전야제 저녁밥을 먹고 나서 아빠의 얼굴을 꼭 닮은 딸아이 중학생 딸아이와 아빠가 누구 이마가 더 넓은가 떠들썩하다가 개구진 딸아이가 손바닥으로 아빠 이마를 바람처럼 스치며 제 방으로 숨는다 커피 내리던 아빠가 반짝 자랑스레"아빠 이마는 태평양"이라고 하니까 딸아이가 방문을 열며"그러면 나는 울산 앞바다" 하며 웃느라 넘어간다 뒷정리 하던 엄마가 "그러면 동생은?" 하니까 신이 난 딸아이가 생각하더니 "동생은 태화강, 엄마는 개천"이라고 한다 엄마는 식탁을 빙 둘러 닦으며 "가장 넓은 건 우주, 우주는 하나님 얼굴이니까 우주 만큼 넓은 마음으로 살아라"고 말해 주는데 떠들썩 돌아오던 대답이 없다 하나님처럼 없다 2020. 5. 10.
700일이 넘었어도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8) 700일이 넘었어도 지난 6일은 친구가 이 땅을 떠난 날이었다. 그가 살던 미국의 시간으로 하면 5월 5일,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어쩌면 아이처럼 살다가 아이처럼 떠난 것이었다. 하긴, 살아 있을 적에도 그는 훌쩍 어딘가로 떠나기를 좋아했고, 불쑥 예고도 없이 나타나기를 좋아했었다. ‘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쓰는 마음이 아프다. 1주기 때에는 그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 올해는 그냥 지나기로 했다. 시간이 그만큼 더 흘러서는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상이 멈춰선 이 때, 굳이 모이는 것을 친구도 난감해 할 것 같았다. 내 핸드폰에는 친구 집에서 찍은 옛 사진이 들어 있다. 그 사진을 꺼내본다. 1978년 서울 냉천동 .. 2020. 5. 10.
카네이션보다 안개꽃 신동숙의 글밭(144) 카네이션보다 안개꽃 카네이션 한 다발을 안겨 주던 날 엄마가 보고 있는 건 카네이션이 아니라 카네이션을 감싼 흰 안개꽃이란다 네가 내 앞에서 웃고 있던 날 엄마가 보고 있는 건 네 옷차림이 아니라 네 등 뒤에 커다란 하늘이란다 그러니까 말이야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런 거지 눈에 활짝 띄는 세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언제나 더 크니까 자꾸만 눈에 보이는 건 보이지 않는 하늘이란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러면 그럴 수록 하늘이 점점점 마음 속으로 들어오지 마음 속으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 그러면 너도 꽃처럼 활짝 웃더라 2020. 5. 9.
고마운 집, 고마운 사람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7) 고마운 집, 고마운 사람들 어버이날을 앞둔 월요일, 두 어머니를 모시고 인우재에 다녀왔다. 사돈끼리의 동행이지만 함께 한 오랜 세월, 두 분 모두 어색함이 없으시다. 인우재 마루에 둘러앉아 식사를 할 때, 어머니가 인우재와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우리가 독일에서 목회할 기간에 있었던 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특히 마음에 와 닿은 이야기가 있었다. 어느 핸가 인우재 근처에서 산불이 났다. 한창 농사철이서 바쁘게 일하던 마을사람들이 불을 보고는 한달음에 인우재로 달려왔다. 산 바로 곁에 자리 잡은 인우재가 불에 타지 않도록 물을 길어다 뿌리는 등 정말로 많은 수고를 했다. 덕분에 주변의 산은 새까맣게 탔지만 인우재는 불길에서 자신을 지켰다. 그 일이 너무나 고마워.. 2020. 5. 9.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신동숙의 글밭(143)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아이들의 연필은 신상품 4B, 2B, HB 깨문 자국은 고심하던 흔적 벗겨진 자국은 손 때 묻은 세월 역사를 지닌 몽당 연필은 수공예품 그래서 버릴 수 없고 남에게 줄 수도 없고 쓰임 받을 때마다 자신을 비우며 내던 울음소리 웃음소리 때로는 고요한 침묵 몸이 부서지더라도 끝까지 심지가 곧은 그런 몽당 연필을 십 년이 넘도록 다 모아두었다 엄마가 책 읽을 때몽당 연필은 신난다 중요한 말씀이 나오면 나란히 따라서 걷다가 책장 빈 곳마다 말씀 따라쓰기도 한다 가슴에 새겨진 말씀이 된다 2020. 5. 8.
시절인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6) 시절인연 인우재에 있는 화장실은 자연에 가깝다. 통을 땅에 묻어 사용하는, 재래식이다. 통이 차면 차가 와서 통을 비워야 하는, 이른바 푸세식이다. 화장실은 통만 그런 것이 아니어서, 벽은 더욱 그렇다. 목제를 켜고 남은 죽대기로 벽을 둘렀다. 숭숭 바람이 통하고 햇빛도 통한다. 아랫집을 짓기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는 호사를 누렸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인우재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죽대기 사이로 바깥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바로 옆에는 여물통이 있다. 쇠죽을 담아두던 낡은 통을 그곳에 두고 이것저것 눈에 띄는 대로 담아두었다. 동네 집을 헐며 나온 기와, 인우재를 오르내리며 만난 사기그릇 조각들, 버리기에는 아깝.. 2020. 5. 8.
참았던 숨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6) 참았던 숨 꽃을 보는 마음이 안쓰러웠다. 그러다가 미안했다. 잔뜩 쌓인 마른 가지들 틈을 헤치고 붉은 철쭉이 피어 있었다. 지난해 나무를 정리하며 베어낸 가지들을 한쪽에 쌓아둔 것이었는데, 그 자리에 철쭉이 있는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켜켜 쌓인 마른가지들이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철쭉은 해맑게 피어 환히 웃고 있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마른 가지들을 옮기고 주변에 피어난 풀들을 뽑아주자 온전한 철쭉이 드러났다. 철쭉이 마침내 후, 하며 그동안 참았던 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 그런 철쭉을 보며 생각한다. 거둬내야 할 마음속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내 걷는 길이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비로소 숨을 쉬는 저 철쭉을 만.. 2020. 5. 7.
소리까지 찍는 사진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475) 소리까지 찍는 사진기 인우재에서 하루를 보낸 후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실을 찾았다. 무릎을 꿇고 앉아 밤기도를 드리고 밖으로 나왔더니 공기는 상쾌하고 달은 밝다. 사방 개구리 울음소리, 개구리 울음소리가 합창의 베이스라면 당연 솔리스트는 소쩍새다. 청아하고 맑다. 마당에 서서 밤의 정경에 취한다. 이 순간을 남길 수는 없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핸드폰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기도실 창문과 달은 찍었는데, 개구리 울음소리와 소쩍새 노랫소리는 담을 길이 없다. 소리까지 찍는 사진기는 없는 걸까, 실없는 생각이 지난다. 2020. 5. 6.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마가복음 10:13-16) 어느 날 사람들이 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달라고 부탁했다. ‘쓰다듬다’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손으로 가볍게 쓸어 어루만지다’, ‘마음을 달래어 가라앉히다’이다. ‘쓰다듬음’ 혹.. 2020.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