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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도질당한 말씀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5) 난도질 당한 말씀 “왕(王)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書記官) 엘리사마의 방(房)에서 가져다가 왕(王)과 왕(王)의 곁에 선 모든 방백(方伯)의 귀에 낭독(朗讀)하니 때는 구월(九月)이라 왕(王)이 겨울 궁전(宮殿)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火爐)가 있더라 여후디가 삼편(三篇) 사편(四篇)을 낭독(朗讀)하면 왕(王)이 소도(小刀)로 그것을 연(連)하여 베어 화로(火爐) 불에 던져서 온 두루마리를 태웠더라 왕(王)과 그 신하(臣下)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그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王)께 두루마리를 사르지 말기를 간구(懇求)하여도 왕(王)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왕(王)이 왕(王)의.. 2016. 5. 18.
하느님이 죽이라고 명령했다면 구약성서의 대량학살(5) 하느님이 죽이라고 명령했다면 여호수아 10:1-15 만일 정말 죽이라고 명령했다면 어떤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 “하느님이 이 사람을 죽이라고 했다. 난 그렇게 하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고 주장한다면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요? “하느님께서 내게 이러저러한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지만 하느님이 남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실 리 없다고 생각하지요? 현대사회에선 국가가 사법권을 갖고 있습니다. 종교적 신념조차 법률의 판단을 받지요. 그러니 하느님의 명령을 받았다는 신념이 있다고 해도 사법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신념이 존중되기는커녕 오히려 정신병자 취급을 받기 십상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고대.. 2016. 5. 15.
옥한흠 목사의 ‘비판하지 말라’는 설교에 대해 설교비평 모음(4) 옥한흠 목사의 ‘비판하지 말라’는 설교에 대해 편집자 주/예전에 옥한흠 목사의 ‘비판하지 말라’는 설교는 성서의 ‘비판하지 말라’는 대목에 대한 이해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설교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옥한흠 목사는 마태복음의 이 말씀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 의미와는 동떨어진 각도에서 자신의 설교를 구성하고 전개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특히 마태복음의 대목은 교회 내에서 교권적 권위 방어를 위해 비판적 발언을 봉쇄시키려는 자의적 목적으로 자주 등장시키는 수가 많다는 점에서, 본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긴요하다. 옥한흠 목사가 이 설교를 통해서 강조하고자 했던 바가, 비판이라는 명목 아래 날이 선 말로 형제들의 마음과 영혼에 상처를 주지 말라는 것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 2016. 5. 13.
회의와 신앙 사이에서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 하는 ‘안으로의 여행’(52) 회의와 신앙 사이에서 지극히 높은 신성은 겸손이라는 심연 이외의 모든 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1970년대 내가 다니던 신학대학 화장실에 이런 낙서가 적혀 있었다. “신은 죽었다―니체” 그 밑에는 이런 낙서가 이어졌다. “니체는 죽었다―신” 회의와 신앙 사이에서 고뇌하던 어떤 신학도들은 이런 낙서조차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어떻게 그런 불경스런 농담을 지껄일 수 있느냐는 ‘확신파’도 있었지만! 하여간 인간이 존속하는 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절감하는 것이지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이 우리의 생이 .. 2016. 5. 12.
위대한 종님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4) 위대한 종님 놀라운 신유(神癒)의 은사를 받아 숱한 환자를 고쳐 주던 목사님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섰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받고 절망 가운데 헤매던 환자들이 그 목사님에게 안수기도를 받고 다시 살아난 일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죽은 지 여섯 시간이 지난 소녀를 소생시켰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는데, 사실은 헛소문이었습니다만, 사람들은 그 소문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다고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죽을병에 걸린 환자들을 고쳐주어도 사람들은 치료되는 숫자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병에 걸리고 그러다가 끝내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놀라운 신유의 종님도 마침내 숨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 2016. 5. 11.
포도주를 마시지 않은 사람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54) 포도주를 마시지 않은 사람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子孫)에게 포도주(葡萄酒)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命令)은 실행(實行)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先祖)의 명령(命令)을 순종(順從)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부지런히 말하여도 너희는 나를 듣지 아니하도다”(예레미야 35:14). 강원도의 한 외진 마을에서 목회를 하며 집 한 채를 지은 일이 있다. 흙과 나무와 돌을 모아 집을 지었다. 벌목을 하는 분이 나무를 전해주었고, 마을 분들은 동네의 집을 수리할 때 나오는 구들장과 창문 등을 전해주었다. 그 모든 것을 모아 마을 어른들과 시간을 잊고 쉬엄쉬엄 지은 집이니 허술하기로 하면 더없이 허술한 집이 되었다. 새집을 헌집처럼 지은.. 2016. 5. 10.
내쫓으란 말인가, 죽이란 말인가? 구약성서의 대량학살(4) 내쫓으란 말인가, 죽이란 말인가? 신명기 7:1-6, 16-24 나쁜 놈이었으면 좋겠다 두 남학생이 한 여학생을 좋아합니다. 아주 가까운 친구인 두 남학생은 같은 여학생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보하기는 싫습니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지요. 한 녀석이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습니다. “내 친구가 나쁜 놈이었으면 좋겠다.” 많이 듣던 얘기지요?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두 남학생은 아주 친한 친구인데 같은 여학생을 좋아하니 이를 어찌해야 합니까. 아무리 친해도 좋아하는 여학생을 양보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서로 경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별똥.. 2016. 5. 9.
김교신이 그리운 것은 김교신이 그리운 것은 이른바 조선의 지식인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인간 대접을 받기도 힘들었던 1930년대의 정신 풍토에서 김교신은 특이한 존재였다. 민족의 해방을 지상의 목표로 세우고 그렇게들 살아가는 틈바구니 속에서 외로이 “인간의 해방”을 고집하던 그는 200명이 넘지 않은 독자들을 상대로 15년 동안 월간지 을 발행하여 온 인물이다. “조선을 알고 조선을 먹고 조선을 숨 쉬다가 그 흙으로 돌아간 김교신, “함석헌의 ‘조선 역사 수난의 5백년’ 교정을 보다가 인쇄소 공원들 곁에서 눈물을 씻던” 김교신, “한 발 앞서 얼굴을 보여 주시면 힘이 되겠다”는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의 영원한 스승이었던 김교신, “1942년 「성서조선」 사건으로 1년여의 투옥 생활을 마친 후,.. 2016. 5. 4.
김진홍 목사의 숭미 사대주의 설교비평 모음(3) 김진홍 목사의 숭미 사대주의 편집자 주/지난 4월 27일 서울신학대학교 춘계신앙수련회 강사로 온 김진홍 목사는 설교 중 제주 ‘4·3 사건’을 ‘4·3 폭동’이라 표현하여 학생들의 반발을 산 모양이다. 김 목사의 역사관은 사실 새삼스런 것은 아니다. 예전 그의 왜곡된 역사관이 짙게 드리운 설교를 살펴본다. 그의 역사관이 도달한 한계를 안타까워하며 김진홍 목사의 역사관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굴절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살길은 를 따르고 그 앞에 줄서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목회자가, 미국 등 강대국 앞에 줄 잘 서야 산다고, 가르치는 것을 보면서 그가 강자의 규칙을 배격해야 하는 목사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이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반 테러 전쟁을 선포하면서 전 세.. 2016.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