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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이 되는 충만한 시간 신동숙의 글밭(64) 한 점이 되는 충만한 시간 해가 뜨면 하루를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일찌기 해가 뜨기도 전에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도 계시고, 더러는 아예 낮과 밤이 뒤바뀌어서 저녁답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분들도 우리네 주변에는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득 걸음을 멈추어, 하루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두고 사색을 합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씻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가르치고,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고,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고, 음악을 듣고, 여행을 떠나는 일은 눈에 보이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는 우리의 내면에도 수많은 일이 개울물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기뻐하고, 좋아하고, 잘해 주다가, 욕심을 부리고, 이뻐하다가, 미워하고, 용서 못해 괴로워하다가, 아파하고, 슬퍼하고,.. 2020. 1. 27.
섬년에서 촌년으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4) 섬년에서 촌년으로 짜장면이 배달되는 곳에서 살았으면. 오지에서 목회를 하는 목회자의 바람이 의외로 단순할 때가 있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첫 목회지였던 단강도 예외가 아니어서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곳이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짜장면이 오지를 가르는 기준이 되곤 한다. 강화서지방에서 말씀을 나누다가 한 목회자로부터 짜장면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섬에서 목회를 해서 당연히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곳에서 살았는데, 이번에 옮긴 곳이 강화도의 오지 마을, 그곳 또한 짜장면이 배달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란다. 목사님의 딸이 학교에 가서 그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그랬단다. “섬년에서 촌년으로 바뀌었구나!” 고맙다, 짜장면도 배달되지 않는 곳에서 .. 2020. 1. 27.
빛바랜 시간들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3) 빛바랜 시간들 첫 목회지 단강에서 지낼 때 매주 만들던 주보가 있다. 이란 소식지였다. 원고는 내가 썼고, 옮기기는 아내가 옮겼다. 특유의 지렁이 글씨체였기 때문이었다. 은 손글씨로 만든 조촐한 주보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적었다. 내게는 땅끝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물론 적을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누군가의 아픔을 함부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늘 마음을 조심스럽게 했다. 언젠가 한 번은 동네에선 젊은 새댁인 준이 엄마가 주보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목사님, 욕이라도 좋으니 우리 얘기를 써 주세요.” 민들레 씨앗 퍼지듯 이야기가 번져 700여 명이 독자가 생겼고, 단강마을 이야기를 접하는 분들도 단강을 마음의 고향처럼 여겨 단강은 더욱 소중한 동네가 .. 2020. 1. 22.
초승달과 가로등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2) 초승달과 가로등 밤새워 이야기를 나눴겠구나. 후미진 골목의 가로등과 새벽하늘의 초승달 어둠 속 깨어 있던 것들끼리. 2020. 1. 22.
북소리가 들리거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81) 북소리가 들리거든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무리들, 바라바가 흉악범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도 그들은 한결같다. 무리가 그렇게 외친 것을 두고 마가복음은 대제사장들이 그들을 선동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마가복음 15:11) 대제사장들의 선동, 충동, 사주, 부추김을 따랐던 것이다. 그런 무리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태엽을 감으면 감은 만큼 움직이는 인형이다. 그리도 엄청난 일을 그리도 가볍게 하다니. 말씀을 나누는 시간, 나 자신에게 이르듯 교우들에게 말한다.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리면 무조건 목소리를 높이거나 춤을 추지 마세요. 그 북을 누가 치고 있는지를 먼저 살피세요.” 2020. 1. 22.
눈을 감으면 신동숙의 글밭(63) 눈을 감으면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거두어 눈을 감으면 어둠입니다 익숙함에 무뎌진 시선을 거두어 눈을 감으면 혼돈입니다 탐욕에 가리워진 시선을 거두어 눈을 감으면 고독입니다 그냥 그렇게 아무도 없는 눈을 감으면 태초의 공간입니다 비로소 마음이 머무는 고독의 사랑방 침묵 속 쉼을 얻습니다 눈을 감으면 언제나 처음입니다 눈을 뜨면 첫걸음입니다 2020. 1. 22.
옥수수와 태경이와 함께 흐르는 강물 신동숙의 글밭(62) 옥수수와 태경이와 함께 흐르는 강물 옥수수를 삶고 있는데, 골목에서 아이들 소리가 떠들썩하다. 세 살 난 딸아이도 호기심이 발동을 했다. 조용하던 동네가 모처럼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에 잔칫날 같다. 압력솥에 추가 신나게 돌아가는 소리에 조바심이 다 난다. 다행히 아이들은 멀리 가지 않고 우리집 앞 공터에서 이리저리 놀고 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옥수수를 뚝 반으로 쪼개고, 나무젓가락을 쪽 반으로 갈라서 옥수수를 하나씩 꽂아 쟁반에 담아서 골목으로 나갔다. 핫도그 모양으로 젓가락에 꽂은 옥수수를 하나씩 아이들 손에 쥐어 주면서 나이와 이름을 묻는다. 네 살, 여섯 살, 1~2학년, 키가 제일 큰 아이가 5학년이란다. 다들 우리 동네 아이들이라는 말이 반갑다. 옥수수 먹으.. 2020. 1. 22.
내 어깨에 진 짐이 무거우면, 가벼웁게 신동숙의 글밭(61) 내 어깨에 진 짐이 무거우면, 가벼웁게 아들은 아침부터 티비를 켜면서 쇼파에 자리를 잡고는 한 마리 봉황새처럼 이불을 친친 감고서 둥지처럼 포근하게 만듭니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모양새입니다. 아침식사를 챙기고 사과와 단감을 깎아 주고는 억지로 데리고 나오려다가, 먼저 가 있을 테니, 오게 되면 딸기 쥬스와 빵을 사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나옵니다. 반납할 대여섯 권의 책과 읽을 책과 노트와 필기구와 물통을 넣은 커다란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맵니다. 몸을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로 순간 숨이 푹 땅으로 내려앉을 듯 하지만, 한쪽 귀에만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말씀이 어둡고 구석진 마음마다 밝혀주는 햇살 같아서 발걸음을 가벼웁게 해줍니다. 집을 나서고 보니 5일 장날입니다. 아침밥이.. 2020. 1. 18.
엄마, 태워줘! 신동숙의 글밭(60) 엄마, 태워줘! 엄마, 태워줘! 버스 타고 가거라 골목길 걷다가 강아지풀 보면 눈인사도 하고 돌부리에 잠시 멈춰도 보고 넘어지면 털고 일어나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콩나물 시루 속 한 가닥 콩나물이 되면 옆에 사람 발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옮기는 함께 걷는 길 평화의 길 사랑의 길 버스 타고 가는 길 2020.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