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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여행과 단체여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5) 개인여행과 단체여행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말이 있다. 말은 꿀처럼 달게 하지만 속에는 칼을 품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어느 날 예수를 찾아온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 사람들이 그랬다. 그들은 본래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입장이 달랐다. 그런데 예수를 잡는 일에는 손을 잡는다. 그들은 한껏 예수를 추켜세운다. 그들의 칭찬은 존경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은 ‘口蜜’이었다. 속에 시퍼런 비수를 감추고 있다. 그들은 세금에 대해 예수에게 묻는다.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가당한 일인지, 가당치 않은 일인지를 묻고 있다. 몰라서, 배우려고 묻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잡으려고 묻는다. 어느 대답을 해도 꼼짝없이 걸려들 수밖에 없는 교묘한 덫을 놓은 것이다. .. 2019. 9. 21.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4) 바람에 묻어가는 소금 한 알 같이 이따금씩 책장 앞에 설 때가 있다. 심심하거나 무료할 때, 책 구경을 하는 것이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풍경 지나가듯, 가만 서 있는 내 앞으로 책 제목들이 지나간다. 분명 마음에 닿아 구했을 책들이고 책을 읽으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 책이겠지만, 새롭게 말을 걸어오는 제목들은 의외로 드물다. 특별한 일 아니면 나를 깨우지 마세요, 단잠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오늘도 그랬다. 한 달 여 쉬었던 대심방을 가을을 맞아 다시 시작하여 하루 심방을 마치고 났더니 약간의 오한이 느껴진다. 몸도 마음도 무거운 것이 으슬으슬 춥다. 몇 가지 일이 겹쳐 마음이 편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릴 겸 커피 한 잔을 타며 음악을.. 2019. 9. 20.
공터에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3) 공터에선 노란색 꽃도 피고, 자줏빛 꽃도 피고, 수줍게도 피고, 당차게도 피고, 꽃 아닌 풀도 눈치 볼 것 없이 자라고, 키 좀 크다 으스대지 않고, 키가 작다 기죽지 않고, 풀도 씨를 받고, 꽃도 씨를 받고, 풀과 꽃 사이 이름 모를 벌레들이 맘껏 노래를 하는, 어디에도 잘난 것 따로 보이지 않는, 허름한 공터에선! 2019. 9. 18.
두 손을 비운다면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1) 두 손을 비운다면 해마다 추석 명절이 되면 식구들이 인우재에서 모인다. 길이 밀리기 일쑤고, 아궁이에 불을 때야 하고, 씻을 곳도 마땅치 않고, 화장실도 재래식,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불편을 불편으로 여기지 않는 것은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이 단강에 누우셨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도리인 셈이다. 늦은 저녁을 먹고 어둠 속에서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캄캄한 뒤뜰에 파란 불빛이 날았다. 개똥벌레, 반딧불이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언제 봐도 신기하고 신비롭다. 세상에 저런 춤이 다 있구나, 웃으며 바라보다가 가만 다가갔다. 춤사위 앞에 두 손을 펴니 피하려는 기색도 없이 손 안으로 든다. 순간 나는 별을 두 손에 담은 소년이 된다. “어머, 신.. 2019. 9. 16.
버섯 하나를 두고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9) 버섯 하나를 두고 독일에서 목회를 할 때의 일이니 오래된 일이다. 하루는 가족들과 엘츠 성(Burg Eltz)을 찾았다. 독일에는 지역마다 성(城)이 있어 어디를 가나 성을 흔하게 볼 수가 있다. 엘츠 성은 라인란트-팔츠 (Rheinland-Pfalz)주의 코블렌츠와 트리어 사이를 흐르는 모젤강 (Mosel)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 대개의 성은 산꼭대기에 서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엘츠 성은 다르다. 성이 어디에 있지 하며 진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저 아래쪽으로 성이 나타난다. 감돌아 흐르는 강을 끼고 서 있는 단아하고 예쁘장한 성, 처음 엘츠를 만나는 이들은 숨겨진 보물을 갑자기 만난 것처럼 감탄을 하며 발걸음을 멈춰 서고는 한다. 모젤강 (Mosel) 주변.. 2019. 9. 15.
말 안 하기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2) 말 안 하기 며칠 전 ‘더욱 어려운 일’이란 제목으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제 입이 모르게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세상이 놀랄 만한 좋은 일을 남모르게 하는 일도 어렵지만, 그 일을 하고서 입을 다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제 입이 모르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이었다. 질문을 대하는 순간 오래 전에 읽었던 글 하나가 떠올랐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 명의 수도자가 기도를 드리기 위해 동굴로 들어가며 한 가지 서약을 했다. 일 년 동안 기도를 드리되 기도를 마치는 날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이.. 2019. 9. 14.
바보여뀌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0) 바보여뀌 누구 따로 눈길 주지 않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일부러 멈춰 손길 주지 않으니 얼마나 자유로운지 졸졸졸 흐르는 개울가 풀숲이나 벼 자라는 논둑 흔한 곳 사소하게 피어 매운 맛조차 버린 나를 두고 바보라 부르지만 아무려면 어떨까 나는 괜찮다 은은하고 눈부신 누가 알까 내가 얼마나 예쁜지를 하늘의 별만큼 별자리만큼 예쁜 걸 사랑하는 이에게 걸어줄 목걸이로는 사랑하는 사람 기다리는 등불로는 이보다 더 어울릴 것 어디에도 없는데 아무도 눈여겨보는 이 없어 아무도 모르는 몰라서 더 예쁜 이름조차 예쁜 바보여뀌 2019. 9. 14.
무임승차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8) 무임승차 몇 번 KTX를 탄 적이 있는데, 몇 가지 점에서 놀란다. 운행하는 횟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 그런데도 이용하는 승객이 많다는 것, 달리는 기차의 속도가 엄청나다는 것 등이다. 오후에 떠나도 부산 다녀오는 일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또 하나 놀라게 되는 것이 있는데, 기차를 이용하는 과정이다.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창구에서 따로 표를 끊지 않아도 된다. 기차를 타러 나갈 때 ‘개찰’을 하는 일도 없어, 플랫폼에서 기다렸다가 알아서 타면 된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표 검사를 하는 일도 없고(물론 승무원들이 왔다 갔다 하며 체크를 한다 싶지만), 목적지에서 내렸을 때도 표를 검사하지 않은 채 역을 빠져나간다. 표를 괜히 구매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중고.. 2019. 9. 14.
묻는 자와 품는 자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7) 묻는 자와 품는 자 가을이 되면 습관처럼 꺼내 읽는 책이 있다. 릴케의 이다. 겹겹이 친 밑줄들 중 대번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묻는 자는 당신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부드러운 눈길로 당신은, 당신을 가슴에 품은 자를 바라봅니다.” 이 가을엔 물음을 멈추고 다만 품게 해달라고, 같은 기도를 바친다. 2019.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