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3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하루 한 생각(3)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 , 김영광 시인이 낸 산문집 제목이다.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설교 시간에 소개한 적이 있다. 두 가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지구에 00하러 오지 않았다, 나는 지구에 00하러 왔다. 제목이 마음에 닿았을까, 몇 몇 교우들이 책 제목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지난 후에 말이다. 마음에 남는 것은 따로 있다. 때로는 의외의 것이 남기도 한다. - 한희철 목사 2019. 1. 3. 겨울 나그네 하루 한 생각(2) 겨울 나그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모르지 않는다. 이번 겨울을 지나면서도 몇 번인가 노래를 들었다. 들을 때마다 음습하고 을씨년스러운 독일의 겨울이 펼쳐진다. 하지만 몰랐다. 겨울 나그네가 한 시인의 시에 붙인 곡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 시인이 빌헬름 뮐러라는 건 잊고 있었다. 전혀 몰랐던 것도 있었다. 겨울 나그네가 ‘낯선 이로 왔다가 낯선 이로 간다네.’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다음과 같이 끝난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저편 마을 한 구석에 거리의 악사가 서 있네.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손풍금을 빙빙 돌리네. 맨발로 얼음 위에 서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지만 그의 조그만 접시는 언제나 텅 비어 있어. 아무도 들어줄 이 없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네. 개.. 2019. 1. 2. 강가 갈대 하루 한 생각(1) 강가 갈대 절실하지 않은 것들을 그리워하지 말자 절박하지 않은 것들을 기다리지 말자 약하면 약한 대로 허술하면 허술한 대로 강물보다 긴 침묵의 뿌리를 사랑하자 짧은 하루해보다 긴 서늘한 그늘을 안자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며 성급함과 어설픔 강물로 지우는 강가 갈대처럼 - 한희철 목사 2019. 1. 1. ‘새파랗게 질린’시대에, ‘하나님조차 안쓰러워 보이는’ 시절에 ‘새파랗게 질린’시대에 ‘하나님조차 안쓰러워 보이는’ 시절에 부제(副題)는 다. 읽으니 우선 글이 저자의 인품처럼 잔잔하고 진진하다. 묵직한 중량감이 독서를 차분하게 한다. 인용된 예레미야 시대의 정세와 동요는 화염과 폭풍 같을지라도 그 숨 가쁜 현실을 행간에 묻어둔 채 담백하게 기록된 문장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읽어 내려가는 저자의 말씀을 대하는 진중한 숨결이 느껴진다. 실존이 놓인 현실과 더불어 가는 슬픔 그것은 우선 겸손한 자세다. 어떤 겸손인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내가 너를 복중(腹中)에 짓기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 네가 태(胎)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4,5)”,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나는 아니라.. 2018. 11. 22. 글썽이며 조심스럽게 지구별을 거니는 사람에게 글썽이며 조심스럽게 지구별을 거니는 사람에게 늘 마주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을 돋우는 디딤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의 틈새를 발견하기 쉽지 않은 이 시절, 더더욱 이런 사람 하나가 또 다른 삶을 일으킵니다. 목사님 글을 챙겨 읽으면서 마주한 듯 가까운 마음이 일곤 했습니다. 자주 생각을 돋우고 마음결을 벼렸습니다. 이름이 보이면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운 벗이 보낸 편지를 읽듯, 목사님의 편지 를 아껴 읽었습니다. 생명을 우뚝 우뚝 일으키던 ‘손이 아름다운 사람 예수’를 날마다 그리며, ‘물결처럼 가벼우면서도 산맥처럼 무거운 손’을 잡고 살아오신 지난 시간이 그려지는 듯 했습니다. 일상에 담긴 성스러움, 그늘진 자리, 사.. 2018. 11. 13.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길 위의 교회(2)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 제 1회 임진강 민통선 생태탐방로 트레킹 후기 - 1. 날이 흐렸다. 꾸무럭한 하늘이 먹구름 새로 간간이 빗방울을 떨어뜨리는 이른 아침 식구들과 차를 몰아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일산까지 내처 달리는 동안 비가 많이 내리면 어떻게 할까 의론들을 했다. 자유로에 들어서자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고 급기야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낭패가 있나. 단톡방에 날씨 관계로 9km 코스를 6km로 줄였다는 임진강 트레킹 안내소 측에서 알려온 소식이 떴다. 그래도 뭐 그 정도 걸을 수만 있다면 충분한 것 아닌가. 다행히 임진각에 도착할 쯤엔 비가 멎었다. 일찍 출발한 관계로 일행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임진각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몇 년 전 가족들.. 2018. 11. 1. 교회, 길을 걷다 길 위의 교회(1) 교회, 길을 걷다 -제1회 임진강 민통선 트레킹에 부쳐- 한 달에 한 번씩 예배당을 벗어나 길 위에 나서 보자고 시작한 첫 번째 시도로 임진강 민통선 트레킹에 나섰습니다. 두 교회 약 30명이 함께 합니다. 예배도 설교도 기도도 찬양도 없이 그저 함께 걸어보려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예배당과 조직과 교의와 ‘이런 게 교회다운 교회’라는 지난 백년간의 철갑을 두른 틀에서 벗어나 보려고요. 아니죠. 우리가 어머니께로 나올 때 우리가 무슨 기독교도라거나 무슨 교의를 신봉함으로써 인생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 후에 결국 이런 사람들이 됐을망정 사람의 본질인 영혼은 역시 그 무엇으로도 규정될 수도 가둘 수도 갇힐 수도 없는 것이죠. 인생의 의미란 각자의 길 위에 서서 각자의 길에 적응하는 것일.. 2018. 10. 31.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작은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 그동안 잘 계셨는지요?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쓰신 편지들을 읽으면서 저는 그 속에서 제 이름이라도 호명될 것 같은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의 수신자가 되어 있었음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답글 한번 보내드리지 못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제 입장을 지지해주실 너그러움을 잊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누군가의 처지를 살피는 마음이 유난하신 분이기에 제 처지는 언제나 선배님의 시야 안에 놓여 있음을 많은 편지들 속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들녘 「소리가 이루는 장엄한 세계」에서 유년시절에 들었던 소리들을 표현해 주셨네요. 그 대목에서 제 심장이 그 소리들을 따라 요동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많은 소리들을 따라가다가 그만 울컥하는 지.. 2018. 10. 29. 불을 지르러 온 불 불을 지르러 온 불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 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누가복음 12:49-51)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나는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예수님, 참 솔직해서 좋다. 누가가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을 그때 얼마나 많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쳐 괴로워하고 있었을까?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예수 당신의 말씀 때문에. “빚이 어둠 가운데 들어오매 어둠이 빛을 싫어하더라.” 복음, 그것은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기쁜 소식이요,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 2018. 10. 17. 이전 1 ··· 198 199 200 201 202 203 204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