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87 사랑의 거부(巨富)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2) 사랑의 거부(巨富)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식으로 창조하신 눈부신 피조물 가운데 사람의 영혼만큼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은 하늘나라에도 이 세상에도 없습니다.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해 주셨다”(고린도전서 2:9).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그 일이 무엇인지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내 경험의 거울에 비추어 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그 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풍성하고 풍성한 생명을 주셨다’는 선언일 것이다. 이를테면, ‘복’의 선언이다. 엑카르트의 말처럼 우리는 ‘복덩어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복덩어리로 지어졌다는 .. 2016. 1. 28. 때늦은 후회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2) 때늦은 후회 “바벨론 왕(王) 느부갓네살이 우리를 치니 청(請)컨대 너는 우리를 위(爲)하여 여호와께 간구(懇求)하라 여호와께서 혹시(或時) 그 모든 기사(奇事)로 우리를 도와 행(行)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예레미야 21:2). 삶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 중에는 ‘때늦은 후회’라는 것이 있지 싶다. 후회하며 뒤늦게 깨닫게 하는 것이다. ‘철들자 망령’이라는 속담도 있고, ‘물고기가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물이다’라는 말도 있다.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살아온 물고기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물을 알게 된다는 말이 아릿하다. H.D. 소로우는 “오, 맙소사! 죽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한 번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다니!” 하며 탄식을 하기도 했.. 2016. 1. 26. 김석기를 기억한다 천정근의 어디로 가시나이까(21) 김석기를 기억한다 -그를 위한 변명이 불가능한 이유- *이 글은 2013년 11월 23일자 세계일보 논설위원 조정진씨의 칼럼 을 읽고 썼던 글이다. 그 글은 여전히 인터넷에 남아있으니 누구든 찾아 읽어볼 수 있다. 조정진이라는 개인 논설위원 조정진씨의 칼럼 을 읽었다. 나는 를 읽어본 일이 거의 없다. 같은 신문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에 대한 어떤 유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용산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남일당 망루에 오르기까지, 자신과 가족들의 힘겨운 삶을 살아내기 위해 치대며 시달려온 가족사에 대해 조정진 논설위원이 무관심한 것과 대략 같은 무관심이다. 내게는 에 대해 할 말이 없었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 2016. 1. 19. 신세대 새들을 보셨나요?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1) 신세대 새들을 보셨나요?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고르게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을 가득 부어주십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정답게 대해야 합니다. 예전에 이층에서 살던 때의 일이다. 풍물장을 다녀오겠다고 장바구니를 들고 나간 아내가 아래층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보, 빨리 내려와 봐요!” 불이라도 난 줄 알고 나는 속옷 바람으로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무슨 일인데 그 난리요?” “여기 웬 새들이 떨어져 죽었어요.” 그랬다. 알에서 막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듯싶은 새 새끼들이 이층 계단 아래 쪽마루에 널부러져 있었다. 전부 다섯 마리인데, 두 마리는 떨어진 충격이 컸던지 죽어 있었고, 세 마리는 다행히 살아서 꼼지.. 2016. 1. 19. 불멸과 소멸, 자매들의 전쟁에 관하여 딸들에게 주는 편지(5) 불멸과 소멸, 자매들의 전쟁에 관하여 ‘쁘레스뚜쁠레니’와 ‘나까자니에’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라는 소설에는 - 다른 얘기도 많이 나오지만 - 두 자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람은 맏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당연히 맏딸이 아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제일먼저 구약성서의 장자(長子)의 권리를 둘러싼 끝없는 암투가 떠올랐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선택(選擇)과 유기(遺棄)라는 인간문제의 근본적 조건이 아닐까 싶다. 너희가 읽어보면 알게 될 테지만, 구약성서의 장자 다툼은 대부분 차자(次子)의 승리로 끝난다. 그 기나긴 싸움의 역사는 한 형제의 비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의 첫 번째 사람이었던 아담의 장자는 가인이지만 신께서는 차자인 아벨의 편을 들어주었다. 창세기는 가인과.. 2016. 1. 18.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1) 내가 주님께 속았습니다! “여호와여 주(主)께서 나를 권유(勸誘)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勸誘)를 받았사오며 주(主)께서 나보다 강(强)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嘲弄)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終日)토록 나를 조롱(嘲弄)하나이다 대저(大抵)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强暴)와 멸망(滅亡)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終日)토록 치욕(恥辱)과 모욕(侮辱)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宣布)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中心)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骨髓)에 사무치니 답답(沓沓)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예레미야 20:7-9).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7절) 할 때의 ‘권유’라는 말은 설득하.. 2016. 1. 14. 악플 때문에 괴로운가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40) 악플 때문에 괴로운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완전한 행복을 줄 어떠한 피조물도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여러분은 의당 영혼의 본질과 터에 머물러야 합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떠다니는 악플 때문에 괴로워하기도 하고 더러는 자살을 감행하기도 한다. 악플이든 선플이든 그런 타인의 나에 대한 평판은, 마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과도 같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거울 속에 비친 그것은 내가 아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아무리 일그러져 있어도 거울 속에 비친 그것은 내가 아니다. 따라서 남들의 평판에 울고 웃는 것은 실재의 반영을 실재로 여기는 어리석음이다. 어떤 종교에서는 세상을 마야[환영]라고 부른다. 엑카르.. 2016. 1. 7. 걸어 다니는 두려움 무릎 꿇고 손가락으로 읽는 예레미야(40) 걸어 다니는 두려움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先知者)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門)에 있는 착고(着錮)에 채웠더니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着錮)에서 놓아 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아니하시고 마골 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예레미야 20:2~3). 성전 뜰에 선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주님의 뜻을 외친다.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이 백성이 고집을 부려 나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내가 이미 선포한 그 모든 재앙을 이 도성과 거기에 딸린 모든 성읍 위에 내리겠다”(예레미야 19:15). 예언자란 말씀의 통로, 주님이 전하라 하신 말씀을 받은 대로 전할 뿐이다. 백성들의 기대에.. 2016. 1. 7. 찢긴 채 허공에 흩날리는 소녀, 위안부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8) 찢긴 채 허공에 흩날리는 소녀, 위안부 위안부 문제 한-일 외교협상은 일본 아베정권의 자위대 확대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위한 것에 가장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여기에 조력한 것입니다. 1. 시한이 없는 반인륜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에 “불가역적”이라는 말로 면죄부를 준 사건입니다. 반인륜적 범죄 규탄과 응징에는 시한이 없다는 국제법적 원칙을 스스로 저버렸습니다. 2. 일본의 과거 식민지 통치의 피해에 대한 법적 정리를 졸속으로 처리한 1965년 한일협정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입니다. 일본은 이로써 한일협정에 규정된 법적 책임 해결문제를 재확인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의 역사.. 2016. 1. 6. 이전 1 ··· 237 238 239 240 241 242 243 ··· 29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