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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선물로 주신 새해 마지막 숫자를 1로 쓰다가 2로 고쳐 쓰면서 같은 하늘을 숨쉬고 있는 같은 예수의 날을 헤아리는 이 땅에 모든 생명들의 건강을 빕니다 라벤더 차 한 잔의 평화를 빕니다 백신을 맞고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코로나 바이러스와도 몸속 세계의 평화 협정을 기도합니다 숨쉬는 모든 순간마다 하늘의 평화가 임하는 내게 주시는 어려움과 아픔이 이 또한 내 몸을 살릴 선물이 되는 은총을 누리는 사색의 등불로 밝히는 감사의 오솔길을 걸으며 오늘의 햇살처럼 내 눈길이 닿는 곳마다 차 한 잔의 평화가 흘러가기를 2022. 1. 3.
붕어 잡기 고향 부곡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월암리와 입북리, 초평리를 끼고 펼쳐져 있는 저수지의 크기는 상당했다. 여름철의 수영과 낚시, 겨울철의 썰매와 스케이팅을 마음껏 즐길 만큼 저수지는 차라리 호수 쪽에 가까웠다. 저수지로 흘러가는 개울이 몇 개가 있었는데 그 개울마다엔 붕어, 미꾸라지, 구구락지, 빠가사리 등 고기들이 많았다. 특히 봄이 되어 첫 비가 많이 오는 날은 굉장한 날이 되곤 했다. 그때쯤이면 붕어가 알을 낳을 때, 첫 비가 오는 날은 알을 낳으려는 붕어가 그야말로 떼로 올라왔다. 그런 날은 그물이 필요 없었다. 그저 손으로 움키기만 해도 커다란 붕어들을 얼마든지 잡아낼 수 있었다, 두 손을 펴 물속에 집어넣고 조심스레 손을 좁혀 붕어를 잡는 맛이라니. 손 사이 붕어의 움직임이 아무리 날래더라.. 2022. 1. 3.
주님의 배려 안쓰러운 건 어린 선아만이 아니었다. 근 한 달 반 동안 서울에 올라가 수술과 병원생활을 마치고 내려온 아주머니가 한쪽 눈 두툼한 안대를 댄 채 그동안의 얘기를 눈물로 할 때, 자리를 함께 한 모두의 마음은 안쓰러웠다. 아주머니가 눈물 흘릴 때마다 수건을 들고 그 앞에 서선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 선아가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엄숙한 자리이기도 했다. 신실한 불자로서 30년 동안이나 섬겨오던 불도를 떠나 하나님 품에 안기는 시간, 누구도 쉽게 생각 못했던 뜻밖의 변화에 첫 예배를 드리는 모두의 마음은 엄숙함으로 숙연하기까지 했다. 17년 동안 앓아오던 지병이 눈으로 도져 위험한 수술을 앞두게 되었을 때,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믿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2022. 1. 2.
聖地 "한 목사도 성지순례를 다녀와야 할 텐데." 목회하는 친구가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어머니가 그러신다. 자식을 목사라 부르는 어머니 마음에는 자랑과 기대, 그리고 한 평생 지켜온 목회자에 대한 존경심이 담겨 있다. 어머니께 그랬다. "성지가 어디 따로 있나요, 내가 사는 곳이 성지지요." 혹 어떨지 몰라 어머니를 위로하듯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사실임을 삶으로 확인하며 살고 싶다. 내가 사는 곳을 성지(聖地)로 믿으며. - 1991년 2022. 1. 1.
크로스오버 더 스카이 밤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동지를 하루 지나서 비로소 해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첫날 문득 한낮의 볕이 좋아서 모처럼 따뜻한 볕이 아까워서 칠순을 넘기신 엄마랑 통도사의 무풍한송로를 걸었습니다 뿌리를 내린 한 폭의 땅이 평생 살아갈 집이 되는 소나무가 춤을 추는 듯 줄줄이 선 산책길을 따라서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이 구불구불 걸어갑니다 사찰 내 서점에서 마주선 백팔 염주알을 보니 딸아이의 공깃돌을 옮겨가며 숫자를 헤아리던 기억에 책 외에 모처럼 갖고 싶은 물건이 생겼습니다 옆에 계신 친정 엄마한테 이십여 년만에 사달라는 말을 꺼내었습니다 엄마는 손수 몇 가지 염주알을 굴려보시더니 이게 제일 좋다 하시는데, 그러면 그렇지 제가 첫눈에 마음이 간 밝은 빛깔의 백팔 염주알입니다 엄마가 한 말씀 하십니다, "평.. 2021. 12. 31.
머리에 얹은 손 한해가 바뀌는 시간, 어둠속 촛불 하나씩 밝히고 예배당에 앉았습니다. 경건한 마음들. 늘 그만한 간격으로 흘러가는 시간일터이면서도 해 바뀜의 시간은 엄숙하고 무겁습니다. 더듬더듬, 기도도 빈말을 삼가게 됩니다. 돌이켜 보는 한해가 회한으로 차올라 눈물로 흐르고, 마주하는 한해가 마음을 여미게 합니다. 머리 숙인 교우들 머리 위에 손을 얹습니다. 그리곤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전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인 양, 시간 위에 손 얹은 양, 손도 마음도 떨립니다. 전에 없던 일, 스스로에게도 낯선 일 그 일이 그 순간 절실했던 건 내 자신 때문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기도 받고 싶은, 문득 그런 마음이 온통 나를 눌렀습니다. 낮게 엎드려, 가장 가난한 마음 되어 단 한 번의 손길을 온통 축복으로 받고 싶은 배.. 2021. 12. 31.
어딘가엔 또 불고 있으리니 오래 전, 관옥 이현주 목사님이 보내주신 연하장에는 ‘오늘 하루’라는 붓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그 글씨는 나를 침묵 속으로 데려가 잠시 시간을 멈추게 했습니다. ‘오늘’이라는 말과 ‘하루’라는 말이 무척 새롭게 그리고 퍽 무겁게 와 닿았습니다. 이후로 이런 하루, 저런 하루, 어떤 하루, 그때 하 루, 내일 하루… 그 하루마다 ‘오늘’이고 그 오늘마다 ‘하루’ 였습니다. 한희철 목사님은 이 책 제목을 ‘하루 한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걸음과 길’이란 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럭저럭 별일 없이 지내는 하루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하루가 모여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길은 걸음과 걸음이 모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규암 김약연 선생께서 말씀하신 .. 2021. 12. 31.
상희의 아픔은 펄펄 한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 상희 아버지는 한참 어둠이 내린 버스정류장을 늦도록 서성였다. 안산으로 취직을 나간 고등학교 졸업반인 딸 상희가, 신정휴가를 맞아 고향에 오겠다고 뒷집을 통해 연락을 해 왔던 것이다. 피붙이 하나 없는 객지에 어린 것이 나가 얼마나 고생이 됐을까. 먹을 것 제대로 먹기나 했는지, 딸이 눈에 선했다. 그러나 제법 붐빈 막차에도 상희는 내리지 않았다. 막차 지나 한참까지 기다렸지만 상희는 오지 않았다. 밤늦게 다시 걸려온 전화, 야근 나간 상희였다. 상희 아버진 된 술로 한해를 보내고, 상희의 아픔은 펄펄 흰 눈으로 내리고. - 1991년 2021. 12. 31.
떨리는 전화 반갑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 전화가 있다. 단강에서 이사 나간 최일용 성도님과 신동희 집사님의 전화다. 최일용 성도님은 아직 배움의 길에 있는 두 형제를 데리고 부론으로 나갔다가 다시 문막으로 이사를 갔다. 막내 갑수가 고등학교 기숙사로 떠나 이젠 백수와 둘이서 지낸다. 문막 농공단지 내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신동희 집사님 또한 마찬가지다. 어린 병관이와 둘이서 살다가 지난해 만종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집사님은 청주 근교로 멀리 떠났다. 단칸방을 얻어 살며 어느 회사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냥 전화했어요,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무슨 용건이 있는 전화는 아니다. 그저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하는 전화인 것이다. 뽑아도 뽑아도 밟아도 밟아도 돋아나오는 .. 2021.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