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2692

봄(32) 무엇을 품을까 꿈꾸는 빈 황토밭 봄비가 적셔주고 봄바람이 슬어주고 감자, 고구마 고추, 상추, 깻잎 무엇을 심든지 이 붉은 땅에선 모두 모두 제 발로 설 테지요 2022. 3. 19.
이 봄을 몸이 안다 봄비가 오시리란 걸 몸이 먼저 안다 "얘들아, 내일 학교 갈 때 우산 준비하자" 그런 마음을 알아 듣고, 꾸욱 1번을 찍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하고 누가 물으면 그냥 몸이 알아요 저절로 몸이 앓아요 손가락 마디마디 뼛속 골골이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시간이 몸에 새겨놓은 자연이 몸에 물들인 이 모든 흔적이 나의 몸인 걸요 지금 내가 선 이 땅은 탐욕의 고속도로와 분노의 고속국도와 무지의 갈림길 저 멀찍이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나는 한 그루 매화나무 또다시 탐진치의 구둣발에 짓밟힌 이 치욕스런 봄날에도 이 세상에 매화꽃 한 잎의 평화를 눈물처럼 떨구는 나는 그러나 2022번째 찾아오시는 이 봄비는 그날에 더러워진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던 눈물이란 걸 또다시 비구름을 헤치며 나타나실 봄햇살은 그날.. 2022. 3. 14.
김기석 따라 시편 읽으며 히브리 시에 익숙해져 보기 김기석의 시편산책 이것은 김기석의 시편 설교 모음이다. 운 좋게도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다면 우선 초판 서문 “시편 세계에 잠기다”를 먼저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시편이 어떤 책인지 슬쩍 궁금해지면서, 시편을 한두 편이라도 빨리 읽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본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개정판 서문 “삶의 다른 층위를 바라보는 일”을 마저 읽기를 바란다. 시편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할지, 시편의 시인들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지, 어렴풋이나마 어떤 기대나 흥미가 생길 것이다. 이쯤 되면, 독자는 비로소 차례에 적힌 대로, 약 70여 꼭지의 글을 읽으면 된다. 또 설교 들으라고? 그러나 주의해야 한다. 이 책의 골갱이는 많은 독자가 싫어할 수도 있는 “설교”다. 그.. 2022. 3. 14.
몸이 저울축 열 살 아들과 엄마가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비닐 봉투 하나 종이 가방 하나 엄마 손에 든 짐을 아들이 모두 다 달라며 둘 다 한 손으로 다 들겠다며 다 들 수 있다며 두 짐을 든 주먹손 뒤로 빼며 빈 손으로 엄마 손을 잡습니다 몇 발짝 걷다가 좀 무거운지 잠시 주춤 짐을 바로 잡길래 "엄마가 하나만 들어줄까?" 아들이 걸음을 멈추더니 한 손엔 비닐 봉투 다른 손엔 종이 가방 두 손에 나누어 들고서 열 살 몸이 저울축이 되어 곰곰이 묵묵히 저울질을 합니다 그러고는 종이 가방을 내밉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웠는지 궁금해진 엄마도 멈추어 서서 양 손에 하나씩 들어보자며 엄마 몸도 똑같이 저울축이 됩니다 무게가 엇비슷해서 잘 분간이 되지 않지만 이번에는 검정 비닐 봉투 말고 하얀 종이 가방을 엄마에.. 2022. 3. 13.
“호랑이 입보다 사람 입이 더 무섭다” “호랑이 입보다 사람 입이 더 무섭다” 속담이나 우리말에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우리네 삶의 경험과 생각이 녹아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가 무엇이냐 물으면 우리 옛 어른들은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를 적실 때 나는 냄새’라 했다. 생각해보면 그윽하다. 농사를 업으로 삼고 있는 옛 어른들에게 석 달 동안 가뭄이 든다는 것은 절망의 벼랑 끝에 내몰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곡식이 될만한 풀포기는 모두 새빨갛게 타들어가고 논바닥은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졌을 터. 식구들을 먹여 살릴 길이 보이지 않으니 농부의 마음은 갈라진 논바닥보다 더 깊이 타들어 갔을 것이다. 하루하루 애(창자)가 타는 마음으로 쳐다보는 하늘,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천둥소리가 나야 농.. 2022. 3. 2.
아,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두려움 없이, 두리번거림 없이/-눈부시지 않아도 좋은, 하루 한 생각을 읽고 ____________________ 난 어릴 때부터 철이 삼촌이 좋았다. 따뜻하고 재미있고 나를 예뻐하는 삼촌이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과 북적이며 살았던 덕분에 타닥이며 돌아가는 전축판에서 해바라기, 조동진의 노래를 들으며 자랄 수 있었던 것도, 돌이켜 보면 감사한 일이다. 어느 날 삼촌의 손을 잡고 나타난 여인을 봤을 때의 충격, 그 이후 삼촌에게 하나 둘 아이가 태어나면서 점점 멀어져간 조카 사랑, 이 모든 걸 웃음으로 떠올리는 지금의 나는, 그때의 삼촌보다 훌쩍 더 많은 나이,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글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그게 삶이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그.. 2022. 2. 26.
지푸라기 한 올 가슴에 품고 살던 마음이 무거워 어디든 내려놓고 싶을 때 순간을 더듬어 살던 삶이 무거워 그만 주저앉고 싶을 때 마음이 붙잡는 지푸라기 한 올은 물 한 잔 글 한 줄 쪼그리고 앉으면 늘 곁을 내어주는 아무 말 없어도 좋은 풀과 나무는 오랜 벗님 풀잎과 풀잎 끝에 맺힌 물방울 한 알 하늘에 달 하나 작은 별 하나 하나여서 나처럼 외롭게 빛나는 하얗게 꺼져가던 가슴에 마른 장작 한 개비 같은 한 줄기 입바람 같은 지푸라기 한 올 2022. 2. 23.
참 빈 하나 그런데 하늘은 저 위에만 있지 않고 내 손끝에도 있고 내 발밑에도 있고 내 뼛속에도 있고 내 가슴속에도 있어서 내가 처음 시를 쓰려고 두 눈을 감았을 때 맨 처음 본 하늘은 온통 어둠과 혼돈이었는데 그리운 얼굴 하나 문득 한 점 별빛이 되었고 그런 밤하늘과 나란히 나도 한 점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늘 있는 그대로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온통 크고 밝은 참 빈 하나의 방 뿐이다 침묵이 침묵으로 말하는 방 고독이 고독으로 숨쉬는 방 참 찾아 예는 길에 너무나 바라본 하늘 사무치도록 참을 찾아서 참든 내 맘에 참 빈 하나를 모신다 *참 빈 하나(다석 류영모의 詩에서 인용) 2022. 2. 21.
바람아 바람아 내가 걸어오느라 패인 발자국을 네가 슬어다오 바람아 내가 쌓아올리느라 가린 모래성을 네가 슬어다오 그리하여 내가 지나온 자리에 하늘만이 푸르도록 하늘 닮은 새순이 돋아나도록 2022.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