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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 기다려온 씨앗처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박민하 성도님 네 심방을 하며 위의 성경을 읽었다. 무거운 짐, 걱정일랑 주께 맡기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 말씀 중 ‘멍에’도 그랬고, ‘두 마리 소가 나란히 밭을 간다’는 농사법에 대한 얘기도 그랬다. 함께 모인 교우들이 그 말을 쉽게 이해했다. 박민하 성도님은 ‘두 마리 소’를 ‘겨릿소’로 받으셨다. ‘소나 나귀는 주인을 알아보는데 내 백성은 나를 모른다’(이사야 1:3)는 속회공과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알아보나요?” 여쭸더니 “그럼요, 주인보다 먼저 알아보고 좋아하는데요.” 허석분 할머니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렇다. 하늘 바라 땅 일구며, 씨 뿌리고 거두며 살아가.. 2021. 10. 13.
사막으로 가는 길 그리운 이들 마주하면 그들 마음마다엔 끝 모를 사막 펼쳐 있음을 봅니다. 선인장 가시 자라는 따가움과 별빛 쏟는 어둠, 고향 지키듯 적적한 침묵 홀로 지키는 저마다의 사막이 저마다에게 있습니다. 저마다의 사막으로 가는 길은 무엇인지요? 그리운 이들 마주하면 그걸 묻고 싶습니다. 바람 자는 언덕에 말(言)을 묻곤 사막으로 가는 길, 그걸 묻고 싶습니다. - 1989년 2021. 10. 11.
바치다 쌀이며 담배며 콩이며, 그동안 지은 농작물에 대한 수매가 있었다. 늘 그래왔던 대로 원하던 양도 아니었고 기대했던 가격에도 미치지 못했다. 잠깐뿐이긴 하지만 그래도 농촌에선 유일하게 만져볼 수 있는 목돈의 기회이기도 하다. 쌀 미(米)자는 원래 八과 八을 합쳐 놓은 글자, 88세를 米壽라 한다. 쌀 한 톨 먹으려면 농부의 손 여든여덟 번이 가야 한다. 농사 중 가장 많이 손 가는 게 잎담배농사라 하니, 담배는 여든여덟 번 손 가는 쌀보다도 더 손이 가는 셈이다. 재처럼 작은 씨를 모판에 심을 때부터, 몇 번이고 같은 빛깔, 같은 상태의 잎을 추리는 조리에 이르기까지 여간한 많은 품이 드는 게 아니다. 이곳에선 수매하는 일을 ‘바친다’고 한다. 잎담배 수매에 응하는 걸 ‘담배 바친다’고 한다. ‘바친다’라.. 2021. 10. 10.
고향 당신의 바라봄 속에 펼쳐지는 세계를 난 사랑합니다. 끝 간 데 없는 당신. 당신 안에 있다 해도 그게 구속 아님은 내 아직 당신의 끝 모르기 때문입니다. 봄소식 언제인가 싶게 얼음 같은 고독 흰 눈 같은 푸근함 아울러 지닌 돌아가야 할 이 있는 곳 그게 고향이라면 당신은 내 고향입니다. - 1989년 2021. 10. 9.
아릿한 기도 “우린 부족한 게 많습니다. 성미도 즉고, 헌금도 즉고, 사람도 즉고, 성도도 즉고, 믿음도 즉습니다. 불쌍히 보시고 채워 주옵소서.” 지 집사님은 늘 그렇게 기도하신다.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천한 저희들을”이라든지 “지금은 처음 시작이오니 마치는 시간까지 주님 홀로 영광 받으소서.”라든지 사람마다의 기도엔 습관처럼 반복되는 구절이 있는데, 지집사님의 경우엔 위와 같다. 말과 마음이 하나라면 언제나 집사님은 빈말로써가 아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모든 넉넉한 은혜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 그동안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집사님의 기도를 들을 때마다 순간적으로 지나는 아릿함을 난 아직도 어쩌지 못한다. - 1989년 2021. 10. 8.
하늘은 애쓰지 아니하며 놀이터에서 흙구슬을 빚던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흙구슬이 부서져 울상이 되던 날 물기가 너무 없어도 아니되고 너무 많아도 아니되는 흙반죽을 떠올리며 새벽마다 이슬을 빚으시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면 이슬은 터져서 볼 수 없었겠지요 하늘은 애쓰지 아니하며 이 땅을 빚으시는지 물로 이 땅을 쓰다듬으시듯 바람으로 숨을 불어넣으시듯 오늘도 그렇게 새벽 이슬을 빚으시는 손길을 해처럼 떠올리며 저도 따라서 제게 주신 이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애쓰지 아니하기로 한 마음을 먹으며 이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빛이 있으라 밤새 어두웠을 제 마음을 향하여 둥글게 2021. 10. 8.
집이 많은 서울 늦장가드는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차가 서울로 들어설 때였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며 구경하던 어린 딸 소리가 신기한 듯 소리를 쳤습니다. “어머나. 집이 많이 있다!” 빽빽이 늘어선 아파트와 빌딩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소리의 눈에도 서울은 크기만 했나 봅니다. 하기야 몇 집 옹기종기 모여 있을 뿐 대부분이 논과 밭뿐인 작은 시골에 사는 소리로선 서울이란 별천지였을 겁니다. 어린 딸의 짧은 말이 가슴엔 긴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 1989년 2021. 10. 7.
우리는 어떤 편지인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요 13:35)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모든 이에게 임하시기를 빕니다.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어렵고 곤고한 시간을 견디고 계신 교우들이 많습니다. 수술을 받고 회복을 기다리는 분도 계시고, 수술을 앞두고 계신 분도 계십니다. 인생의 가장 어려운 순간을 견디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시대적 우울감이 우리를 확고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앞날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우리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안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끈질기고 확고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주님의 진노는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영원하니, 밤새도록 눈물을 흘려도, 새벽이 오면 기쁨.. 2021. 10. 7.
이름값을 못하고 살아가는 ‘양아치과’ 김민웅의 인문학 산책(37) 이름값을 못하고 살아가는 ‘양아치과’ ‘양아치’라는 말은 들판을 뜻하는 한자의 ‘야(野)’와 사람을 뜻하는 ‘치’가 합쳐진 말이라고 합니다. 중간에 ‘아’가 들어가는 것은 두 단어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어투입니다. ‘야’가 ‘양’으로 변하는 것은 ‘송아지’, ‘망아지’의 생성과정과 유사합니다. 아무튼 ‘양아치’는 들판을 마구 돌아다니며 천방지축(天方地軸)으로 살아가는 이를 일컫는 말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어찌 보면 이 양아치라는 말은 농경사회가 확립되어가면서 유목생활을 했던 시대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농경생활이 주도권을 잡아가면서 유목민적 생활양식은 점차 비하의 대상이 되어갔던 셈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한 자리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시대에, ‘양.. 2021. 10.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