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664 불이문(不二門) 지난 여름 강원도 고성군 대대리를 친구와 함께 찾은 적이 있다. 대대리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강원도 고성군이면 아버지 고향인 북쪽의 통천군과 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룻밤 다녀오는 짧은 일정인지라 무얼 할까 하다가 다음날 아침 건봉사를 찾았다. 남한의 최북단에 있는 사찰로서 개방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소개를 들었다. 기기묘묘한 금강산 풍경 속 웅장한 사찰을 그리며 갔는데, 가보니 그렇지 않았다. 금강산 자락이라고는 하지만 여느 산과 다름이 없었고,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멀리 아버지 고향 한 자락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었던 기대는 무리한 기대였다. 원래는 우리나라 4대 사찰 중 하나요, 금강산 내 사찰 중에선 규모가 제일 큰 본사였다는데 6.25 때 모두 소실되어 지금은 대웅전만.. 2021. 9. 22. 가난한 큰 사랑이여 4박 5일, 잠깐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을 위해 지 집사님은 여주 장에 다녀왔다. 마늘 여덟 접을 가지고 나가 팔아 돌아가는 아들 여비를 전했다. 부모 사랑이여, 주어도 주어도 모자란, 가난한 큰 사랑이여 - 1989년 2021. 9. 21. 같이 한 숙제 “전도사님, 전도사님 속담 좀 가르쳐 줘요.”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학교에서 속담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내줬단다. 방과 후 아이들은 늘 교회에 들러 숙제를 하곤 한다. 책장에서 「俗談大成」이란 책을 찾아 전해줬다. 잠시 후 아이들은 다시 달려왔다. “국어사전 좀 빌려줘요.” 낱말 조사는 스무 가지씩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아이는 3학년 전과 책이 없느냐며 묻는다. 교회 ‘샛별문고’ 책장을 찾아 봤지만 국어사전이 없다. 원래 없었는지 누가 빌려갔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할 수 없이 「새 우리말 큰사전」 두 권을 뽑아들고 교회로 갔다. 아이들과 둘러 앉아 숙제를 같이 했다. 잘 모르는 낱말을 찾아 아이들은 밑줄을 긋고, 두꺼운 사전을 뒤져 뜻을 찾았다. 어느새 스무 개, 어렵게만 생각했던 숙제를 생각보단.. 2021. 9. 20. 갈수록 그리운 건 《갈수록 그리운 건 샘물이지 싶습니다.》 오전 내내 뚝딱거려 작업을 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연장과 나무궤짝, 그리고 주변의 각목조각들을 주워 모아 놓고 톱으로 쓸고 망치로 박고 지난번 쓰다 남은 페인트를 칠하고, 제법 분주하게 돌아쳐서야 서툰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교회 수도를 팔 때 교회 입구 쪽으로 수돗가를 만들었다. 길가 쪽인지라 마을 분들 일하러 지나가다 혹 목마르면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땀이라도 시원하게 씻으시라 일부러 위치를 그곳으로 잡았다. 대개가 원래 의도대로 쓰이지만 때때로 엉뚱하게 쓰이기도 한다. 몇 안 되는 동네 꼬마 놀이터(소꿉장난하며 쌀을 씻는 곳이다) 되기 일쑤고, 좀 큰 녀석들은 물싸움을 하기도 하고, 아예 호스로 물을 끌어 농약을 주기도 하고, 동네에 큰일 있을 땐 큰일.. 2021. 9. 19. 순복음교회 성령운동의 빛과 그림자 한국 기독교사에서 성령 이해의 매우 중요한 분수령은 1970년대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진 ‘성령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성령의 역사와 관련한 개인과 교회의 전격적인 변화에 대한 증언이 존재해왔으나,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파장을 이루면서 한국인들의 신앙에 위력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성령운동이었다. 그리고 비기독교 대중들도 ‘성령’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계기가 이루어진 시점이라고 하겠다. 애초에는 보수교단에 의한 이단 시비로 신학적 제동이 걸렸지만, 죄의식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교인들을 주눅 들게 했던 기존 교단의 엄격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영적 해방감을 신앙인들에게 맛보게 함으로써 성령운동의 파급은 막기 어려운 속도와 강도로 .. 2021. 9. 18. 하늘 뜻 “대통령도 밥 묵고 사는 기여. 아무리 돈 많아도 돈 먹고는 못 사는 기여.” 도로에 벼를 널고 계신 동네 할아버지. 추곡 수매가에 대한 부총리의 대답을 어젯밤 뉴스를 통해 봤다시며 “지덜이 우리가 농사 안지면 뭘 먹구 살려구.” 하며 화를 내신다. 뭐가 어떻게 남는 건지 쌀 남으니 쌀 막걸리 만들고, 논밭이나 줄이자고 하는 나라님들 고견을 두고, 한 촌로(村老)의 말씀이 무섭다. 그 말씀 속에 스민 하늘 뜻이 두렵다. - 1989년 2021. 9. 18. 형에게 兄, 신집사님 댁에 보일러를 놓았습니다. ‘눈구뎅이 빠지며 나무 가쟁이 꺾을’ 또 한 번의 ‘서러운 겨울’을 앞두고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兄의 믿음의 힘이 컸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것 드린 것이라 당연하다 겸손하게 말하지만 어찌 그 당연함이 쉽기만 하겠습니까. 보일러를 놓은 방은 작은 한 칸 방입니다. 어린 아들 데리고 둘이 살아가는 좁다란 방입니다. 그 좁은 방에도 서러움은 많고, 한 겨울 주인처럼 찾아드는 추위를 두곤 생각도 많았는데, 이젠 그런 눅눅하고 무거운 마음도 많이 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 한 달 일한 품값 받으면 밀린 빚 갚고, 연탄 좀 들여 놓을 수 있고, 남은 시간 또 일하면 겨울 지낼 양식 장만은 가능할 거라시며 신집사님은 모처럼 든든하십니다. 작은 키에 움츠린 어깨, .. 2021. 9. 17. 선의 희미한 가능성을 붙잡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롬 12:15)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기원합니다. 백로와 추분 사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교우님들 가정마다 기쁨과 감사가 넘치시길 빕니다. 온 세상을 뒤흔들 듯 요란하던 매미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이제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올 때입니다. 도시의 소음 때문에 그 소리를 알아채기 쉽지 않지만, 이맘때가 되면 어릴 적에 벽 사이에서 들려오던 귀뚜라미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시인 윤동주는 “귀뚜라미와 나와/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고 노래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말자고, 둘이서만 알자고 약속했다는 것입니다(‘귀뚜라미와 나와’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 고요한 귀.. 2021. 9. 16. 주님, 오늘 하루도 새벽 4시 20분. 어김없이 자명종이 웁니다. 날랜 벌래 잡듯 울어대는 시계를 끕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는 주섬주섬 옷을 입습니다. 새벽공기 차가운 마당에 나서면 그제야 잠이 달아납니다. 가을 새벽하늘 별들은 시리도록 맑습니다. 밤새 이슬로 씻은 듯 깨끗합니다. 캄캄한 예배당, 오늘도 아무도 없습니다. 제단 쪽 형광등 2개와 십자가 네온에 불을 켭니다. 새벽종을 치기 전 늘 망설임이 지납니다. 여린 마음 탓입니다. 소리를 낮춰 종을 칩니다. 새벽 어둠속으로, 고단한 잠자리로 종소리는 달려갑니다. 잠시 후 개 짓는 소리, 그리고 예배당으로 들어서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들어서는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짐작이 갑니다. 대개는 둘, 간혹 셋이서 예배를 드립니다. 벼 베는 철, 납덩이 같이 무거.. 2021. 9. 16. 이전 1 ··· 36 37 38 39 40 41 42 ··· 29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