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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였을까? 세상에 별일도 다 있다. 저녁예배를 드리러 가시던 할머니 한 분이 교회로 가던 도중에서 살해되었다. 이곳 섬뜰에서 10분 거리밖에 안 되는, 바로 옆동네 조귀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주일 저녁, 강원도와 충청북도를 연결하는 다리 건너편에 있는, 새로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교회로 가던 할머니가 변을 당했다. 범인은 뱀을 잡는 30대의 땅꾼이었다 한다. 사건 당시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었지만, 술 먹은 사람끼리 싸우는 것인 줄 알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할머니를 목 졸라 죽이곤 할머니 가방 안에 들어있던 600원으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살해됐다는 사실보다는 그 할머니가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 사람들의 얘깃거리였다. 호기심조로 말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 2021. 9. 5.
불씨 ‘목회수첩’을 쓰기가 점점 어렵다. 실은 쓸 만한 얘기 거리들도 별로 없다. 뭔 좋은 소식이라고 어둡고 눅눅한 얘기들을 굳이 계속 쓰는가. 아프고 설운 얘기들, 결국은 나와 함께 사는 이들의 이야기인데. 그걸 나는 무슨 기자나 된 듯 끼적이고 있으니. 그러나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한 멈추지 않기로 한다. 고발이니, 의미 부여니, 변명처럼 이유를 댈 건 없다. 그냥 하자. 화로에 불씨 담듯 아픔을 담자. 꺼져가는 불씨 꺼뜨리지 말자. - 1987년 2021. 9. 4.
우리 속의 빛이 어둡지 않은가? “가장 절실한 인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장군이나 성직자가 아닙니다. 지금 배고픈 사람, 지금 추위에 얼어 죽어가는 사람, 지금 병으로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 온갖 괴로움 속에 허덕이는 사람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편지, , 한길사, p.233에 나오는 권정생의 말) 주님의 은혜와 평화를 빕니다. 벌써 9월에 접어들었습니다. 별고 없이 잘들 계신지요? 격절의 세월이 한없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앞에 당도한 시간은 하나님의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전 7:14). ‘알지 못함’, .. 2021. 9. 4.
황금빛 불 저녁 하늘 가득 홍시 빛 노을 시샘하듯 그 빛에 반해 황금빛 불 벌판에 번진다. - 1987년 2021. 8. 31.
늘 빈 곳 우리집 부엌에는 늘 빈 곳이 있다 씻은 그릇을 쌓아 두던 건조대가 그곳이다 바라보는 마음을 말끔하게도 무겁게 누르기도 하던 그릇 산더미 그곳을 늘 비워두기로 한 마음을 먹었다 숟가락 하나라도 씻으면 이내 건조대를 본래의 빈 곳으로 늘 빈 곳 하나가 있으므로 해서 모두가 제자리에 있게 되는 이치라니 이 세상에도 그런 곳이 있던가 눈앞으로 가장 먼저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하늘은 늘 빈 곳으로 이 세상을 있게 하는 듯 구름이 모여 뭉치면 비를 내려 자신을 비우듯 바람은 쉼없이 불어 똑같은 채움이 없듯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던가 가슴에 빈탕한 하늘을 지닌 사람 그 고독의 방에서 침묵의 기도로 스스로를 비움으로 산을 마주하면 산이 되고 하늘을 마주하면 하늘이 되는 기도의 사람 늘 빈 곳에선 떠돌던 고요와 평.. 2021. 8. 31.
개미를 보며 전에 없던 개미가 방안을 돌아다닌다. 처음에는 보이는 대로 밖으로 집어 던졌지만, 그래도 없어지질 않아 파리채로 잡기 시작한다. 왜 갑자기 개미가 생겼을까? 개미를 불러 들일만한 맛있는 음식을 방안에 둔 건 아니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 이유를 미루어 깨닫는다. 여름을 보내며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는 파리 잡기였다. 주위에 소를 키우는 집이 많다보니 파리가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파리채로 잡은 파리들을 뒷문을 열고 뒤꼍에 버리곤 했는데 그게 바로 개미가 생긴 이유였을 것이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개미가 그곳에 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뒤 한두 번 더 지날 때도 먹을 것이 풍족히 있음을 알게 되자 친구들을 불렀지 싶다. 그 깨달음이 묘하게 나를 흥분시킨다. 조급하게 결과에 집착하여 실망해선 .. 2021. 8. 30.
너무 하신 하나님 “하나님, 너무 하십니다. 그래도 살아 볼려구 들에 나가 곡식을 심었는데, 어제 나가보니 때 아닌 서리로 모두 절딴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먹을 게 없습니다. 이번 추석만 지나면 어디론가 나가야 되겠습니다. 식모살이라도 떠나야지요.” 새벽 기도를 하던 한 성도가 울먹이며 기도를 했다. 그의 기도는 늘 그런 식이다. 미사여구로 다듬어진 기도와는 거리가 멀다.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다 말할 뿐이다. 한 여름 내내 비로 어렵게 하더니, 이제는 뜻하지 않은 서리로 농작물을 모두 태워 죽이다니, 두렵지만 하늘이 야속하다. 땅에 곡심 심고, 그리곤 하늘 바라고 사는 사람들, 더도 덜도 없는 땅의 사람들. 갑작스레 기온이 떨어지고 밤사이 서리가 내린 것이 도시 사람에겐 그저 뉴스거리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 2021. 8. 29.
자연스러운 과정 미영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올해 94세시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동네를 다니기도 하고, 가끔은 잔 빨래도 하고, 또 가끔씩은 햇볕을 쬐기도 하던, 연세에 비해 귀가 무척이나 밝으신 분이셨다. 곡기를 끊은 지 며칠째 되는 날, 곧 돌아가시게 될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할머니를 뵈러 갔다. 자리에 누워 계신 할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시고 호흡이 가빴다. 물도 마시지 못하셨다.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유심히 살피시는 것이었다. 군에 간지 얼마 안 되는 맏손자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두곤 쉬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이 떠나는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결국은 맏손자를 보지 못하신 채 다음날인 추석 오후 1시경에 돌아가셨다. 모두들 할머니.. 2021. 8. 28.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아침에 눈떠서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받기만 했다고, 받은 것들을 쌓아놓기만 했다고, 쌓인 것들이 너무 많다고, 그것들이 모두 다시 주어지고 갚아져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살아야겠다고……”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 한겨레출판, p.94)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수신인들을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이라고 칭했습니다. 그리고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도 아울러 문안드립니다”(고전 1:2)라고 말합니다. 어제와 오늘, 이 구절을 많이 묵상했습니다. 특히 ‘각처’라는 말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간간이 기도를 부탁하.. 2021.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