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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받아들이는 용기 “‘이만하면 됐다’라고 말하는 날, 이날 당신은 죽음에 이를 것입니다. 이에 항상 더 많이 행하고, 항상 앞을 향해 나아가며, 항상 길 위에 있으십시오. 결코 되돌아가지 말고, 결코, 길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안셀름 그린,, 김영룡 옮김, 분도출판사, p.41에 인용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주님의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명절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고 하더군요. 고속도로를 가득 채운 차량의 행렬도 보이지 않고, 기차도 창가쪽 좌석에만 승객을 앉혔다 합니다. 가족들조차 8명 이상 모일 수 없으니, 옛날처럼 시끌벅적한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희도 아들과 딸네 식구들을 따로 따로 맞아야 했습니다. 모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온 아이들은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벽에 붙.. 2021. 9. 26.
반가운 편지 숙제장을 한 장 뜯었을까. 칸이 넓은 누런빛 종이에 연필로 쓴 글씨였다. 서너 줄, 맞춤법이 틀린 글이었지만 그 짧은 편지가 우리에게 전해준 기쁨과 위로는 너무나 컸다. 잘 있노라는, 주민등록증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마 초등학교에 다니는 주인 아들이 썼음직한 편지였다. 서울로 갔다가 소식 끊긴지 꼭 한 달, 박남철 청년이 잘 있다는 편지가 온 것이다. 그가 있는 곳은 경기도 파주였다. 그동안 낙심치 말고 기도하자 했지만 모두의 마음속엔 어두운 예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는 것을 보면 어두운 예감이 어디까지 미쳤는지를 알 수 있다. 서둘러 답장을 썼다. 이번 주엔 아버지 박종구 씨가 파주를 다녀오기로 했다. 아버지를 따라 남철 씨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2021. 9. 26.
용담정 툇마루 경주 구미산 용담정 툇마루에 앉으며 먼지처럼 떠돌던 한 점 숨을 모신다 청청 구월의 짙은 산빛으로 초가을 저녁으로 넘어가는 구름으로 숲이 우거진 좁다란 골짝 샘물 소리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수운 최제우님의 숨결로 용담정에 깃든 이 푸른 마음들을 헤아리다가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달을 보며 빌던 정성과 만난다 시천주(侍天主) 가슴에 하느님을 모시는 마음이란 몸종이던 두 명의 여인을 한 사람은 큰며느리 삼으시고 또 한 사람은 수양딸로 삼으신 하늘처럼 공평한 마음을 헤아리다가 용담정 산골짜기도 운수 같은 손님이 싫지 않은지 무료한 마음이 적적히 스며들어 자리를 뜨기 싫은데 흙마당에 홀로 선 백일홍 한 그루 아직 저 혼자서 붉은 빛을 띄어도 마땅히 채울 것 없는 마음 그릇에 모실 만한 것이란 초가을.. 2021. 9. 26.
길 잃은 남철 씨 불쌍한 남철 씨.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추석 지나 친척 네를 따라 서울로 일하러 간 박남철 청년이, 서울로 간지 하루도 못 되어 집을 나가 이제껏 소식이 없다. 농사일 그것도 지게일 밖에 모르는 남철 씨, 그의 순박한 모자람을 감쌀 건 주위의 이해와 사랑뿐인데, 서울 그 복잡하고 검은 손길 많은 거리에서 길을 잃었다면 그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일지. - 1989년 2021. 9. 23.
불이문(不二門) 지난 여름 강원도 고성군 대대리를 친구와 함께 찾은 적이 있다. 대대리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강원도 고성군이면 아버지 고향인 북쪽의 통천군과 접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룻밤 다녀오는 짧은 일정인지라 무얼 할까 하다가 다음날 아침 건봉사를 찾았다. 남한의 최북단에 있는 사찰로서 개방된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소개를 들었다. 기기묘묘한 금강산 풍경 속 웅장한 사찰을 그리며 갔는데, 가보니 그렇지 않았다. 금강산 자락이라고는 하지만 여느 산과 다름이 없었고, 산꼭대기에 올라서면 멀리 아버지 고향 한 자락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었던 기대는 무리한 기대였다. 원래는 우리나라 4대 사찰 중 하나요, 금강산 내 사찰 중에선 규모가 제일 큰 본사였다는데 6.25 때 모두 소실되어 지금은 대웅전만.. 2021. 9. 22.
가난한 큰 사랑이여 4박 5일, 잠깐 군에서 휴가 나온 아들을 위해 지 집사님은 여주 장에 다녀왔다. 마늘 여덟 접을 가지고 나가 팔아 돌아가는 아들 여비를 전했다. 부모 사랑이여, 주어도 주어도 모자란, 가난한 큰 사랑이여 - 1989년 2021. 9. 21.
같이 한 숙제 “전도사님, 전도사님 속담 좀 가르쳐 줘요.”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학교에서 속담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내줬단다. 방과 후 아이들은 늘 교회에 들러 숙제를 하곤 한다. 책장에서 「俗談大成」이란 책을 찾아 전해줬다. 잠시 후 아이들은 다시 달려왔다. “국어사전 좀 빌려줘요.” 낱말 조사는 스무 가지씩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아이는 3학년 전과 책이 없느냐며 묻는다. 교회 ‘샛별문고’ 책장을 찾아 봤지만 국어사전이 없다. 원래 없었는지 누가 빌려갔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할 수 없이 「새 우리말 큰사전」 두 권을 뽑아들고 교회로 갔다. 아이들과 둘러 앉아 숙제를 같이 했다. 잘 모르는 낱말을 찾아 아이들은 밑줄을 긋고, 두꺼운 사전을 뒤져 뜻을 찾았다. 어느새 스무 개, 어렵게만 생각했던 숙제를 생각보단.. 2021. 9. 20.
갈수록 그리운 건 《갈수록 그리운 건 샘물이지 싶습니다.》 오전 내내 뚝딱거려 작업을 했다. 가지고 있는 모든 연장과 나무궤짝, 그리고 주변의 각목조각들을 주워 모아 놓고 톱으로 쓸고 망치로 박고 지난번 쓰다 남은 페인트를 칠하고, 제법 분주하게 돌아쳐서야 서툰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교회 수도를 팔 때 교회 입구 쪽으로 수돗가를 만들었다. 길가 쪽인지라 마을 분들 일하러 지나가다 혹 목마르면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땀이라도 시원하게 씻으시라 일부러 위치를 그곳으로 잡았다. 대개가 원래 의도대로 쓰이지만 때때로 엉뚱하게 쓰이기도 한다. 몇 안 되는 동네 꼬마 놀이터(소꿉장난하며 쌀을 씻는 곳이다) 되기 일쑤고, 좀 큰 녀석들은 물싸움을 하기도 하고, 아예 호스로 물을 끌어 농약을 주기도 하고, 동네에 큰일 있을 땐 큰일.. 2021. 9. 19.
순복음교회 성령운동의 빛과 그림자 한국 기독교사에서 성령 이해의 매우 중요한 분수령은 1970년대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진 ‘성령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성령의 역사와 관련한 개인과 교회의 전격적인 변화에 대한 증언이 존재해왔으나,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파장을 이루면서 한국인들의 신앙에 위력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성령운동이었다. 그리고 비기독교 대중들도 ‘성령’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계기가 이루어진 시점이라고 하겠다. 애초에는 보수교단에 의한 이단 시비로 신학적 제동이 걸렸지만, 죄의식을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교인들을 주눅 들게 했던 기존 교단의 엄격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영적 해방감을 신앙인들에게 맛보게 함으로써 성령운동의 파급은 막기 어려운 속도와 강도로 .. 2021.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