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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저항과 공동체(1) “저항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죽음의 세력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 그 결과 우리가 만나는 것이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없이 모든 생명에 대해 ‘예’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기도하라 저항하라》, 77쪽)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그 동료들이 미국 시민권 운동의 전환점으로 만든 셀마에서 진행된 영웅적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 미국 남부로 내려갔다. 1970년대에는 반전집회에서 연설했고, 코네티컷의 트라이던트 핵잠수함 해군 기지에서 벌어진 철야 평화 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1980년대에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던 니카라과와 과테말라에 가서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레이건 대통령의 저강도 전쟁 전략과 핵무기 경쟁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고, 네바다의 핵실험 장소에서.. 2024. 12. 4.
나는 설교에 실패했고, 거부당한 설교자였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모태신앙 가정에서 태어나서 예수를 섬기는 대열에 서긴 했지만 나를 예수 사람으로 기른 사람은 목사인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의 아내인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내게 성경 이야기를 해주었고, 내가 성경을 직접 읽도록 가르쳤고, 예수를 내게 소개했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믿음을 갖게 했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도록 이끌어주었고, 기도할 수 있게 했고, 끝내 나를 목사가 되도록 안내하였다.  내가 비록 목사인 나의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에 출석하기는 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교인이 아니라 어머니의 교인이었던 셈이다. 나의 아버지 목사에게 심한 꾸중을 듣고 교회를 떠났던 교인들이 나의 어머니의 위로와 격려에 설득되어 다시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다면, 그리고 목사 아버지가 친가 친척을 전.. 2024. 12. 1.
날마다, 순간마다 하늘에 길을 묻지 않으면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크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에서 한 말이다. 옛사람들은 북극성을 가리켜 ‘거기소’(居其所)라 했다. 늘 그 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변함없이 그곳에 있기에 항해자들은 북극성을 보며 자기 위치를 가늠했다. 먼 바다로 나갔다가도 때가 되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떼, 장거리 비행을 하면서도 가야 할 곳을 잊지 않는 철새들, 꿀이 있는 곳으로 정확히 날아가는 벌들은 어떻게 길을 찾는 것일까? 운전자들은 GPS의 도움으로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길을 잃기 일쑤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왜 왔는지, .. 2024. 11. 27.
하나님의 마음, 그 여성의 힘 여성 신학자, 목회자들의 성경 읽기는 무엇이 다를까? 그것은 단지 젠더의 차이를 묻는 질문이 아니라 그 차이에 담긴 시선, 사회적 경험, 해석에 대한 질문이 될 것이다. 같은 성서 텍스트라도 그 서 있는 자리, 사회적 존재로서 겪게 되는 일상은 다른 관점, 전망 그리고 실천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책의 제목을 《새 시대 새 설교》라고 붙인 까닭 또한 그런 의미를 담는다. 오랜 세월 동안 남성 위주의 강단이 쏟아내는 설교, 메시지가 하나의 교리, 교조 내지는 정식처럼 여겨지는 현실은 여성적 관점의 배제, 여성이라는 젠더가 포괄하는 기존질서로부터 변두리화된 존재의 육성을 지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것은 억압된 목소리, 경험, 관점의 복구를 열망하게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복구의 지점에 서 있다. 물론 이로.. 2024. 11. 19.
설교 표절은 스스로 함정을 파는 행위 표절 이후의 문제를 어떻게 감당해 나갈 것인가 설교표절이 미치는 문제에서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바는 개신교 정신의 근간이 '말씀으로 돌아가자'라는 점이다. 개신교의 전통은 '강단의 중심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씀이 예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표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중심을 어떻게 세워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데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 자체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변화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열어주는 중요한 동력인데, 그 동력을 교회가 공동체 안에서 길러주고 쏟아내고 배우고 얻어내는 과정과 본질에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되는가? 말씀의 기본이 무너지는 것을 뜻하지 않겠는가? 표절을 정당화하는 입장에서는 설교의 여러 가지 내용들을 그 .. 2024. 11. 13.
여성 설교의 현주소와 미래 전망 세 명의 여성 설교자가 한 설교를 일별하면서 드러나는 공통된 특징은 이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통렬한 진단이다. 각기 실천신학자, 조직신학자, 성서신학자인 강호숙, 김정숙, 박유미 세 분 박사가 보는 이 세상, 특히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여전히 남성가부장체제 아래 시대의 병통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었고 그 신앙이 편벽되며, 특히 여성의 위상에 대한 사회적 존중이 지극히 결핍된 공간이다. 공공연히 여성 침묵을 강요하면서 목사 등 특정한 교회 내 직분에 대한 안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그 대표적 징후라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이들의 설교는 그것이 잘못되었고 하나님의 뜻이 전혀 아니며, 예수의 구원 사역에 역행하는 반시대적인 인습이라고 정직하게 고발하며 절규하듯 외친다.  강호숙 박사의 설교는 실천신학자답게 신.. 2024. 10. 31.
말로 꽂는 비수(匕首)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비수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다.”(잠언 12:18) 말의 역할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단지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인가? 그렇다면 어떤 의사도 다 소통되면 말의 역할은 다 한 것인가? 악한 의사를 소통해도 말은 중립적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 성서는 말의 역할을 의사소통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생명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하여, 그것이 인간의 생명에 상처를 내는가, 아니면 앓던 병도 낫게 하는 능력인가로 판별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로 인간의 생명에 상처를 내고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뿐인가? 잘 나아가던 상처도 덧나게 함으로써 병통을 더욱 도지게 하고 만다. 그래서 신앙은 이 말의 훈련을 제일 중요한.. 2024. 10. 30.
프레임에 갇혀 허수아비가 된 사람들 사람은 저마다 세상의 중심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파악한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나와 타자들의 거리가 적정선에서 유지될 때는 편안하지만, 그 거리의 규칙이 무너질 때는 불편해 한다.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 실은 멀리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서운함에 사로잡히고, 멀다고 생각한 이가 암암리에 세워둔 심리적 경계를 넘어 성큼 다가올 때 불쾌감을 느낀다. 사람은 단독자로 태어났지만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함께 그러나 홀로’ 존재인 인간은 그 묘한 균형을 찾지 못해 흔들리고 시시때때로 감정의 부침을 겪는다. 상대방이 나의 기대대로 움직여 줄 때는 평화롭지만 자율적으로 처신할 때 불화가 빚어진다. 관계에 금이 가는 것이다. 그 금은 .. 2024. 10. 29.
썩은 감자 하나가 섬 감자를 썩힌다 감자와 고구마는 좋은 양식도 되고 맛있는 간식도 된다. 솥단 지에 푹 삶아 식구들과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것은 다른 음식을 통해서는 쉽게 누리기 힘든 멋과 정겨 움을 준다. 감자와 고구마는 비슷한 면이 있다. 모든 씨가 그러하듯 적 은 것을 심어 많은 것을 거둔다. 씨감자 한 조각을 심으면 둥글 둥글 편하게 생긴 감자 여러 개를 거둘 수 있고, 고구마 순 하 나를 심으면 줄줄이 딸려 나오는 고구마를 거두게 되니 괜히 수지맞는 기분이 들어 농사짓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감자와 고구마는 보관을 잘못하면 금방 얼거나 썩고 만다. 물기가 있거나 습기가 많은 곳에 보관하면 썩기가 쉽고, 추운 곳에 보관하면 얼기도 잘 한다.  감자와 고구마를 보관해보면 알지만 한 개가 썩으면 나머지 도 금방 썩.. 2024.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