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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잔칫상 딸에게 차려줄 때에는 모양새에 신경을 써야 하고 아들에게 차려줄 때에는 양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차려주신 오늘이라는 밥상은 나날이 잔칫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한 명 한 명의 입맛 하나 하나를 다 만족시켜 주는 자연, 그 얼마나 신경을 쓰셨으면, 심지어는 변화하는 우리의 입맛에 발 맞추어, 자연의 진화라는 방법으로 거듭 새로운 잔칫상을 차려 주고 계십니다. 오늘도 새롭게 차려 주신 하루라는 잔칫상에 오늘도 행복한 잔칫날입니다. 어디서부터 눈을 두어야 할 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 지 2021. 9. 8.
별과 별빛 “별빛을 우리가 보았을 때 그 별은 이미 죽어있을 지도 모른답니다.” 한 귀퉁이, 늘 그만한 네모 크기로 같은 책을 고집스레 소개하는 . 짧게 실리는 글들이 늘 시선을 끌었는데, 며칠 전의 글은 위와 같았다. 기쁨이나 슬픔 그 어떤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하여도 우리가 다른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때론 그것이 이미 때 지난 것일 수도 있다는, 어쩜 늘 그런 것이 아니냐는 아픈 지적이었다. - 1989년 2021. 9. 7.
가슴이 뛰네 여름이가 곰 인형을 안고 “어 가슴이 뛰네!” 했을 때도, 고임이가 받아들고 “어, 정말 가슴이 뛰네!” 했을 때도, 그들의 성화에 사모님이 곰 인형을 받고 “어, 정말이네!” 했을 때도 믿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돌아간 후 집 사람이 “어 정말 가슴이 뛰네!” 놀라 말했을 때도 그랬다. 혹시나 싶어 손을 갖다 댔을 때 분명 곰 인형의 가슴이 쿵덕쿵덕 뛰고 있었다. 윗작실 아기 난 집 선물 하려고 오천 원에 두 마리 길거리에서 산, 한 마리 보내고 한 마리 텔레비전 위에 올려놓은 노란색 작은 곰 인형, 곰 인형의 가슴이 정말로 뛰고 있었다. 덩달아 뛰는 가슴, 아, 가슴이 뛰네. - 1987년 2021. 9. 6.
가는 길마다 한 점 숨으로 나의 익숙한 산책길은 이 방에서 저 방을 잇는 강화마루 오솔길 하루에도 수없이 오고가는 이 산책길에 내 가슴 옹달샘에선 저절로 물음이 샘솟아 지금 있는 일상의 집이지만 물음과 동시에 낯선 '여긴 어디인가?' 나의 가장 먼 여행길은 집에서 일터를 오고가는 아스팔트 순례길 날마다 오고가는 이 여행길에 무엇을 위하여 달리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 사이에선 숨구멍으로 보이던 마음을 펼치어 언제나 가슴으로 산과 하늘을 가득 맞아들인다 나의 입산 수행길은 일층에서 이층으로 오르는 시멘트 돌층계 틈틈이 오르는 입산 수행길에 오르는 걸음마다 고요한 숨으로 평정심을 지키려는 가는 길마다 한 점 숨으로 되돌아오려는 이러한 내 안의 '나는 누구인가?' 2021. 9. 6.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하였을까? 세상에 별일도 다 있다. 저녁예배를 드리러 가시던 할머니 한 분이 교회로 가던 도중에서 살해되었다. 이곳 섬뜰에서 10분 거리밖에 안 되는, 바로 옆동네 조귀농에서 일어난 일이다. 지난주일 저녁, 강원도와 충청북도를 연결하는 다리 건너편에 있는, 새로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교회로 가던 할머니가 변을 당했다. 범인은 뱀을 잡는 30대의 땅꾼이었다 한다. 사건 당시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었지만, 술 먹은 사람끼리 싸우는 것인 줄 알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할머니를 목 졸라 죽이곤 할머니 가방 안에 들어있던 600원으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살해됐다는 사실보다는 그 할머니가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 사람들의 얘깃거리였다. 호기심조로 말하지만 그 속에는 우리.. 2021. 9. 5.
불씨 ‘목회수첩’을 쓰기가 점점 어렵다. 실은 쓸 만한 얘기 거리들도 별로 없다. 뭔 좋은 소식이라고 어둡고 눅눅한 얘기들을 굳이 계속 쓰는가. 아프고 설운 얘기들, 결국은 나와 함께 사는 이들의 이야기인데. 그걸 나는 무슨 기자나 된 듯 끼적이고 있으니. 그러나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한 멈추지 않기로 한다. 고발이니, 의미 부여니, 변명처럼 이유를 댈 건 없다. 그냥 하자. 화로에 불씨 담듯 아픔을 담자. 꺼져가는 불씨 꺼뜨리지 말자. - 1987년 2021. 9. 4.
우리 속의 빛이 어둡지 않은가? “가장 절실한 인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위대한 장군이나 성직자가 아닙니다. 지금 배고픈 사람, 지금 추위에 얼어 죽어가는 사람, 지금 병으로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는 사람, 온갖 괴로움 속에 허덕이는 사람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이오덕과 권정생이 주고받은 아름다운 편지, , 한길사, p.233에 나오는 권정생의 말) 주님의 은혜와 평화를 빕니다. 벌써 9월에 접어들었습니다. 별고 없이 잘들 계신지요? 격절의 세월이 한없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앞에 당도한 시간은 하나님의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전 7:14). ‘알지 못함’, .. 2021. 9. 4.
황금빛 불 저녁 하늘 가득 홍시 빛 노을 시샘하듯 그 빛에 반해 황금빛 불 벌판에 번진다. - 1987년 2021. 8. 31.
늘 빈 곳 우리집 부엌에는 늘 빈 곳이 있다 씻은 그릇을 쌓아 두던 건조대가 그곳이다 바라보는 마음을 말끔하게도 무겁게 누르기도 하던 그릇 산더미 그곳을 늘 비워두기로 한 마음을 먹었다 숟가락 하나라도 씻으면 이내 건조대를 본래의 빈 곳으로 늘 빈 곳 하나가 있으므로 해서 모두가 제자리에 있게 되는 이치라니 이 세상에도 그런 곳이 있던가 눈앞으로 가장 먼저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하늘은 늘 빈 곳으로 이 세상을 있게 하는 듯 구름이 모여 뭉치면 비를 내려 자신을 비우듯 바람은 쉼없이 불어 똑같은 채움이 없듯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던가 가슴에 빈탕한 하늘을 지닌 사람 그 고독의 방에서 침묵의 기도로 스스로를 비움으로 산을 마주하면 산이 되고 하늘을 마주하면 하늘이 되는 기도의 사람 늘 빈 곳에선 떠돌던 고요와 평.. 2021.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