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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얼싸안기 “제가 잘못했습니다.” 편히 앉으라는 말에도 무릎을 꿇고 앉은 집사님은 낮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그렇게 말하는 집사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작은 일로 다른 교우와 감정이 얽혀 두 주간 교회에 나오지 않았던 집사님이 속회예배 드리러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찾아온 것이다. 사이다 두 병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전에도 몇 번 서로 감정이 얽힌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찾아가 권면하고 했었지만 이번엔 된 맘먹고 모른 채 있었다. 잘못 버릇 드는 것 같아서였다. 빈자리 볼 때마다 마음은 아팠지만 스스로 뉘우치고 나올 때까지 참기로 했다. 그만큼 기도할 땐 집사님을 생각해야 했다. “내가 나오지 않는데도 심방해 주지 않는 전도사님이 처음에는 꽤나 원망스러웠지만 나중엔 왜 그러셨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 2021. 6. 3.
골마다 언덕마다 이곳 단강엔 4개의 마을이 있다. 끽경자라고도 하는 단정, 흔히들 조부랭이라 부르는 조귀농, 사면에 물이어서 생긴 섬뜰, 그리고 병풍처럼 산에 둘러싸인 작실이다. 작실 마을엔 다음과 같은 여러 이름이 있다. 골마다 언덕마다 이름이 있다. 들은 대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마지막골, 자작나무골, 느티나무뒷골, 배나무골, 바우봉골, 넓적골, 안골, 움북골, 절너메, 절골, 옻나무고개, 아래턱골, 작은논골, 큰논골, 섬바우골, 터골, 서낭댕이골, 춤춘골, 장방터골, 작은고개, 큰죽마골, 작은죽마골, 구라골, 작은 능골, 큰능골, 댕댕이골… 골마다 언덕마다 이름을 붙인 조상들이 좋다. 그 이름 아직도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 또한 좋다. 모두가 참 좋다. 1988년 2021. 6. 2.
한국은 섬나라가 아닌, 대륙과 하늘의 나라다 해외 여행이라 하면 비행기가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코로나 비상시기로 출입국이 엄격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비행기를 타고 가는 하늘길이 아니고선, 지구상의 그 어느 다른 나라든 갈 수 없는, 땅의 길이 막힌 처지가 현재 한국의 입장인 셈이다. 세삼스레 이런 현실을 떠올리다 보면 가슴 한 구석이 갑갑해진다. 마치 지구촌의 대륙으로부터 한국이라는 나라가 뚝 떨어져 섬처럼 고립된 것 같아서 스스로의 입지를 돌아보게 된다. 마치 일본처럼 섬나라가 된 한국은 아닌지. 그래서 국민들의 정서까지도 섬나라의 폐쇄성을 은연중에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를 내려놓지 못할 때가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구한말 한국이 일제강점기의 수탈을 겪으며, 광복 직후 열강들이 이 땅에서 일으킨 6.. 2021. 6. 2.
무인도 둘러앉아 얘기하던 한 아이가 무인도에 떨어지면 뭣부터 하겠느냐 물었을 때 아이들은 돌아가며 말했지 살려 달라 모래 위에 크게 쓰든지 불을 피워 연기를 올리던지 지나가는 배를 기다려 옷을 흔들겠다고 뚱딴지 같이 어떤 녀석은 뒷간부터 짓겠다더군 뭐라 할까 망설이다 난 발가벗고 잠을 자고 싶다 했어 모두들 웃었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어 인습의 굴레란 참 우스운 것이지 무섭기도 하구 언젠지도 모르고 한번 쓰기만 하면 좀체 벗기는 어려운 것 문득 거울 속 얼굴과 바라보는 마음이 다른 것 허우적거려도 잡히는 것이 철저하게 날 붙잡고 있는 것 정말이야 내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먹을 걱정 살 걱정 그런 것 모두 잊고 그냥 잠을 잘 거야 모두 벗고 팔다리 맘대로 뻗고 말야 그런데 무인도가 있을까 사람 살지 않는 섬이 아직도.. 2021. 5. 31.
홀씨랑 나랑 바람이랑 입바람에 날아갈까 손바람에 흩어질까 홀씨랑 나랑 바람이랑 셋이서 잠잠히 있었지 몸으로 숨 한 점 잇는 일이 허공으로 손길 한 줄 긋는 일이 땅으로 한 발짝 옮기는 일이 순간을 죽었다가 영원을 사는 바람의 길이라며 홀씨랑 나랑 바람이랑 셋이서 숨 한 점 나누었지 하지만 한 점도 모르는 이야기 몰라도 훌훌 좋은 숨은 바람의 이야기 2021. 5. 31.
성품통과 가나다순이어서 그랬을까, 58명 중에 내 차례는 맨 나중이었다. 우르르 나가 선 채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지막 혼자 남게 되었을 때, 사람들 앞에서 인사를 했다. 간단한 소개를 들은 뒤 뒤로 돌아섰다. “可한 사람 손드시오.” “否한 사람 손드시오.” 잠시 후, “네, 됐습니다. 이상으로 준회원 허입자 성품통과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준회원 허입 성품통과가 끝났다. 이제 준회원이 된 것이다. 솔직히 난 아직도 잘 모른다. 한편 모르고도 싶다. 얼마나 지나야 목사가 되는 건지, 또 얼마가 지나야 그 불편한 시험 안 치러도 되는 건지. 지난번 시험 볼 땐 그럭저럭 외웠었는데 쉽게 잊고 말았다. 한심한 노릇이다. 잠깐, 정말 잠깐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돌아서 있던 그 시간에 정말 기분이 묘했다... 2021. 5. 30.
에셀도서관에 부는 바람 나에게 특별한 두 편의 동화를 고르라면 와 이다. 이 책은 내가 글을 배운 이후 내가 처음 읽어 본 동화책이다. 어릴 적 우리 집은 가난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최종학력인 부모님은 5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 산골마을 떠나 정읍으로 나오셨다. 고향의 논밭을 팔아 변두리에 작은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정착했지만 학력이 낮은 부모님이 고를 수 있는 돈벌이는 제한적이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짚어 보면 아버지는 끊임없이 일을 하셨다. 가족이 먹을 양식은 직접 농사 지으셨고, 5남매를 가르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던 것 같다. 보일러공, 집짓는 일, 수레에 과일과 야채를 싣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파는 노점상, 공장직공, 청소부 등 아마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까지 합친다면 아버지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경험.. 2021. 5. 30.
예배당 대청소 예배당 대청소를 했다. 몇 번 얘기가 있던 것을 하루 날을 잡아 다함께 하자 했는데, 그것이 주일낮예배 후로 정해졌다. 제단 커튼도 떼 내고, 창문 커튼도 모두 떼어냈다. 숨어있던 거미줄이 제법이었다. 막대기 끝에 빗자루를 매달아 거미줄을 걷어냈다. 유리창 틈새 먼지와 오물도 털어내고 구석구석 걸레질도 했다. 밖으로 가져나온 커튼은 커다란 함지에 세제를 풀고 발로 꾹꾹 밟아 빨았다. 남자 교우들은 예배당 주위 바깥 청소를 했다. 자루를 들고 다니며 온갖 오물과 쓰레기들을 주위 담았다. 우물가로 가보니 김천복 할머니가 발을 걷어붙인 채 양동이 안에 들어가 빨래를 꾹꾹 밟고 있다. “아니, 할머니가 다 하세요?” 했더니 할머니 대답이 걸작이다. “더 늙으면 못할까 봐유.” 내년이면 여든, 얼마 전엔 심하게 .. 2021. 5. 29.
윤동주 시인의 하늘, 그 원맥을 <나철 평전>에서 찾았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일본인도 사랑하는 세계 평화의 시인,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하늘이 아름다운 시인, 그런 윤동주 시인의 하늘이 나는 늘 궁금했었다. 그 하늘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학술서와 문학서에선 어린 시절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마을인 북간도, 그곳 마을에 살던 이웃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라서 그렇다고들 했다. 하지만 제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윤동주 시인의 하늘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서 펼쳐지는 하늘은 분명히 크고 밝은 배달의 하늘이다. 시에서 크고 밝은 한의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시인이 윤동주인 셈이다. 나는 늘 그의 하늘이 궁금했었다. 그 하늘의 원맥이 궁금했었다. 그동안 윤동주 시인과 관련한 대부분의 책들 그 어디에서도 안타깝지만 그 원맥을.. 2021.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