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20/1057

가장 좋은 설교 한희철의 얘기마을(120) 가장 좋은 설교 농촌목회를 하면서 느끼게 되는 어려움 중 그중 큰 것이 설교입니다. 설교란 모든 목회자가 한결같이 느끼는 어려움이겠지만, 농촌에서는 더욱 더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까짓 서너 명 모일 때가 많은데 뭔 어려움이냐 할지 모릅니다. 사실 도시 교회에 비한다면 농촌교회는 지극히 단순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요구가 있는 것도 아니요 논리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적은 교인이 피곤한 몸으로 참석하여 그나마 피곤을 이기지 못하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 적당히 때워(?) 넘겨도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유혹처럼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점이 어렵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기다려온 사람들이 빛나는 눈빛으로 설교자를 응시하고, 구절구절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으로.. 2020. 10. 20.
화두(話頭), 모르는 길 신동숙의 글밭(256) 화두(話頭), 모르는 길 가을 바람이 부는 것을 보고, 가을 바람이 날 부르는 것으로 알고 나선 길입니다. 가을 바람에 날리우는 풀씨 한 알 만큼이나 가벼운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어디에 닿을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모르는 길을 나섭니다. 애초에 알고자 나선 길이 아니라 머릿 속에 가득한 앎과 안다는 생각 조차도 비우고자 나선 길이기에, 습관적으로 머리가 헤아리려 드는 하나 둘 셋 숫자도 잊고서 엎드립니다. 단지 깨어서 알아차림으로 날숨마다 좌복에 몸을 엎드리다 보면 비워질까. 날숨마다 입 속에서 모른다고 시인하면 지워질까. 하염없이 앉아 있으면 사라질까. 어디까지가 텅 비운 곳인지. 어디쯤이 나를 잊은 곳인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매 순간을 깨어서, 지금 이 순간으로 이 땅으.. 2020. 10. 20.
무너지는 고향 한희철의 얘기마을(119) 무너지는 고향 단강 아이들과 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자기 꿈 이야기를 돌아가며 했습니다. 과학자가 되겠다는 아이도 있었고,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화가, 가수, 군인, 간호사 등 아이들은 차례대로 자기 꿈 얘기를 했습니다. 되고 싶은 게 많아서인지, 미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서인지 대답을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중 미희와 은숙이 얘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던 4학년 미희와 의사가 꿈이라고 대답했던 6학년 은숙이는 이어진 질문,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냐는 질문에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미희는 밭에서 담배나 고추를 따고 있을 것이라고 했고, 의.. 2020. 10. 19.
새벽 제단 한희철의 얘기마을(118) 새벽 제단 매일 새벽마다 어김이 없는 두 분이 있습니다. 문 권사님과 지 권사님입니다. 문 권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제단을 닦고, 지 권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종을 칩니다. 그 일은 어김이 없어 멀리 자식 집에 다니러 갔다가도 아무리 늦어도 굳이 돌아오는 것은 그 일 때문입니다. 늙은 과부에 가난하기까지 하니 무엇으로 봉사하겠느냐고 안타까워 할 때, 두 분께 주어진 일이 제단 닦는 일과 새벽종 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두 분은 그 일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인양 지성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두 분은 모두 일흔이 넘은 노인들입니다. 그런데다가 두 분은 모두 몸이 불편합니다. 제단을 닦는 문권사님은 관절염이 심하여 걷는 일도 힘들고 무릎을 꿇지도 못합니다. 그래도 제단 닦는 일은.. 2020. 10. 18.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사랑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이 사랑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습니다.” (롬11:29) 주님의 평안을 빕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조석 기운이 제법 시원합니다. 건강한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생활 속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어서 다행입니다. 안심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래도 막혔던 통로가 조금은 열린 것 같아 좋습니다. 그렇지만 더욱 조심스럽게 이 시간을 살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는 없겠지만 기본 방역 수칙을 잘 지켜가면서 일상을 살아내는 성실함이 필요한 때입니다. 아침 저녁 공원을 산책하면서 색깔이 변해가는 나무들을 바라보면 조락의 계절이 다가옴을 실감합니다. 조금은 쓸쓸한 듯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싫지만도 않습니다. 피어남과 스러짐은 생명.. 2020. 10. 17.
낯선 객 한희철의 얘기마을(117) 낯선 객 산이 불씨를 품었다.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이 골짝 저 능선 붉은 기운이 번져간다. 한꺼번에 펼쳐서는 안 될, 천천히 풀어 놓아야 할 그리움인 냥, 안으로 붉음을 다스린다. 자기 몸을 불살라 가장 눈부신 모습으로 자기를 키운 대지 품에 안기는, 기꺼이 순응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보아주는 이, 눈길 주는 이 없어도 뿌리 내린 곳 어디라도 꽃을 피워 올리는 들꽃이 아름답다. 연보랏빛 들국화와 노란 달맞이꽃, 길가 풀섶의 달개비꽃과 강가의 갈대잎, 저마다의 빛깔과 모양으로 피어나 찾아온 계절 대지를 수놓는다. 선선한 바람과는 달리 햇살이 따뜻하다. 한 올 한 올 손에 잡힐 뜻 나뉘어 내리는 햇살이 마음껏 가을을 익힌다. 텃밭에서 통이 커가는 배추하며 알 굵은 무, 산다락 .. 2020. 10. 17.
사탕 한희철의 얘기마을(116) 사탕 가까운 친구 주명이가 죽은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토요일 오후 우리는 저수지로 향했다. 고기, 우렁, 조개를 잡을 수 있고 수영도 할 수 있는 곳, 학교에선 가지 말라 금하였지만 철길 넘어 저수지는 어린 우리에겐 얼마나 신나는 곳이었던지. 갈 때마다 그러했듯 그날도 모두들 신나게 놀았다. 저녁 무렵, 집으로 오려고 철교 아래 모였는데 주명이가 보이질 않았다. 오리를 잡는다고 물로 들어갔다는데, 그 뒤론 모두들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입을 모아 주명이를 불렀다. 목이 쉬도록 불렀지만 그는 대답하지도 나오지도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때가 저녁, 통근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었다. 친구 한 명과 나는 숨이 멎도록 기차역으로 달려가 퇴근해 돌아오는 주명이 형에게 그 사.. 2020. 10. 16.
고독의 방 신동숙의 글밭(255) 고독의 방 가슴으로 쓸쓸한 바람이 불어옵니다못 견디게 시리도록 때론 아프도록 바로 이때가 고독의 방이 부르는영혼의 신호 사람을 찾지 않고 홀로 침잠하는 날숨마다 날 지우며시공간(時空間)을 잊은 無의 춤 처음엔 온통 어둠이었고 언제나 냉냉하던 골방입니다 홀로 우두커니 선 듯 앉은 듯 추위에 떨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저 멀리 반짝이는 한 점 별빛그 별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하였습니다 그 먼 별이 살풋 짓는 여린 미소에 가슴 속 얼음이 녹아 눈물로 흐르면 흘러가기를 목마른 곳으로 골방에 나보다 먼저 다녀간 이가 있었는지아궁이에 군불이라도 지폈는지 훈훈한 온기가 감돕니다 문득 나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아.. 이제는 고독의 방으로 드는 일이 견딜만합니다 고요히 머무는 평온한 침묵의 방.. 2020. 10. 16.
오토바이를 버리라고요? 한희철의 얘기마을(115) 오토바이를 버리라고요? 목사님, 먼저 저의 이런 못난 처신을 용서하십시오. 언젠가 목사님은 목사님이 펴내시는 주보를 통해 “그대의 오토바이를 당장 버리시오”라고 호령하신 적이 있습니다. “흙 가운데 살면서, 흙의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어쩌자고 그 괴물을 타고 흙길 가운데를 질풍처럼 달리느냐.”고 하셨습니다. 본시 사람이란 흙 밟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목사님이 주시고자 했던 말씀이셨죠. 이어 보내신 편지에서도 다시 한 번 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흙 같은 가슴들일랑 흙가슴으로 만나야 한다고요. 처음 목회 떠나왔을 땐 말씀대로 걸었습니다. 걸을 수밖에 없기도 했고요. 뱀처럼 늘어진 길을 땀으로 목욕하며 걷기도 했고요, 아픈 아기를 안고 그냥 비를 맞고 걸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2020.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