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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젖 한희철의 얘기마을(137) 엄마 젖 “아무리 추운 날 낳았다 해두 송아질 방으로 들이면 안돼유. 그러문 죽어유. 동지슷달 추운 밤에 낳대두 그냥 놔둬야지 불쌍하다 해서 굼불 땐 방에 들이문 오히려 죽구 말아유.” 송아지를 낳은 지 며칠 후, 속회예배를 드리게 된 윗작실 이식근 성도님은 이렇게 날이 추워 송아지가 괜찮겠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송아지는 낳아 어미가 털을 핥아 말려 주문 금방 뛰어댕겨유. 낳자마자 엄마 젖을 먹는데, 그걸 초유라고 하지유. 그 초유를 먹으문 아무리 추운 날이래두 추운 걸 모른대유, 초유 속에 추위를 이기게 해주는 그 무엇이 들어있대유.” 아무리 날이 추워도 갓 태어난 송아지가 어미 젖을 빨면 추위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신기하고도 귀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모두가 .. 2020. 11. 7.
세속의 성자들 세속의 성자들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창28:11-12) 주님의 평화가 모든 이들에게 임하시기를 빕니다. 별고없이 잘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난 두 주 동안 교우들께서 보내주시는 메시지를 보며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감염병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 삶을 알차게 가꾸기 위해 애쓰신 교우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접속을 유지했기에 어려움을 이길 수 있었다는 고백은 우리 가운데 신앙이 어떻게 작동하.. 2020. 11. 6.
평화의 밥상 신동숙의 글밭(270) 평화의 밥상 따끈한 무청 시래기 된장국 한 그릇, 김밥 반 줄, 유부 초밥 세 개, 깍두기 일곱쪽, 수도승들이 산책길에 주운 알밤 한 줌, 제주도 노란 귤 하나로 따뜻하고 맛있는 풍요로운 이 가을날 점심밥상의 축복을 받습니다. 아침부터 분주히 많은 양의 식사 준비를 하시던 누군가의 마음이 손길이, 먹는 이의 입으로 가슴으로 전해지는 거룩한 식사 시간은 그대로 고요한 감사의 기도 시간이 됩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앞마당엔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상이 보이고, 밥을 먹는 제 곁엔 사찰의 공양게송이 가까운, 이곳에선 하느님과 부처님이 사이좋은 이웃입니다. 하나의 평등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이미 깊은 땅속에서 하나에 뿌리를 둔 하나라는 사실을 문득 해처럼 떠올리다 보면 어.. 2020. 11. 6.
어떤 축구 선수 한희철의 얘기마을(136) 어떤 축구 선수 가끔씩 떠올리는 축구 선수가 있습니다. 어느 날 중요한 시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영 자신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실수로 경기를 놓칠 것 같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민 고민 하던 그가 그만의 방법을 생각해 냈고, 운동장에 들어간 그는 열심히, 어느 때 보다도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그가 생각해 낸 방법이란, 공 없는 데로만 뛰어다니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공이 자기 앞에 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실수를 미리 피하기 위해 그는 공 없는 곳으로만 열심히 뛰어다닌 것입니다. 그럴 수가 있냐며 웃지만, 사실 우리들의 삶이 그럴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실수가 두려워서 삶을 피해 다니는 안쓰러운 모습들. 실수를 두려워하여 삶을 외면하는 자는.. 2020. 11. 6.
밤은 모두를 재워 한희철의 얘기마을(135) 밤은 모두를 재워 오늘도 해는 쉽게 서산을 넘었다.말은 멍석 펼치듯 노을도 없는 어둠산 그림자 앞세우며 익숙하게 밀려왔다. 차라리 밤은 커다란 솜이불모두를 덮고 모두를 집으로 돌린다.몇 번 개들이 짖고 나면 그냥 어둠 뿐,빛도 소리도 잠이 든다. 하나 둘 별들이 하늘로 돋고대답하듯 번져가는 고만고만한 불빛들저마다의 창 저마다의 불빛 속엔저마다의 슬픔이 잠깐씩 빛나고그것도 잠깐 검은 바다 흐른다. 그렇다.밤은 모두를 재워모두를 같은 품에 재워날마다살아있는 것들을 다시 한 번 일으킨다.검은 바다를 홀로 지나 것들을. - (1992년) 2020. 11. 5.
조율하는 날 신동숙의 글밭(269) 조율하는 날 밥은 먹었니?가슴 따뜻해지는 말 차 한 잔 하자가슴 설레이는 말 어느 날 문득그러한 초대에 따뜻해지지도 설레이지도 않는 날 내 마음의 결을 고요히 조율하는 날 2020. 11. 5.
먼 곳에서 벗이 찾으니 한희철의 얘기마을(134) 먼 곳에서 벗이 찾으니 막 수요예배가 시작되었을 때 낯선 청년 세 명이 예배당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배낭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뒤편 한 구석에 배낭을 벗어 놓더니 나란히 뒷자리에 앉는다.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하며, 설교를 하며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짐작 가는 데가 없다. 누굴까, 누가 단강을 찾아와 함께 예배를 드릴까, 궁금증이 들쑥날쑥 머릿속을 드나들었다. 설교를 마치고 성도의 교제시간, 소개를 부탁했다. 단강이 그리워서, 단강교회 교우들이 보고 싶어서 왔노라고 했다. 짧은 소개를 박수로 받았다. 예배를 마치고 모두들 난롯가에 둘러앉았다. 멀리 울산에서 올라왔다는 말보다는, 교우들을 소개 했을 때 익히 알던 분을 만난 듯 익숙한 이름을 되뇌는 청년들의 모습에 교우들이 .. 2020. 11. 4.
투명한 예수 신동숙의 글밭(268) 투명한 예수 공생애를 사시던 예수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제가 유심히 살펴보던 점은 모든 행함 중에 보이는 예수의 마음입니다. 모든 순간의 말과 행적을 놓치지 않으며 제 마음에 비추어 보는 일이 다름 아닌 성경 읽기와 사람 읽기, 마음 읽기가 됩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과 일은 어디까지나 마음의 일이니까요. 결혼식 축하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후 보이신 예수의 마음에는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혈우병을 앓던 여인이 군중 사이를 지나던 예수의 옷자락을 잡고서 병이 나음을 보이시고도, 예수는 "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고 할 뿐입니다. 신약의 전문을 낱낱이 살펴보아도 이른바 종교인들이 내세우는, 예수가 행하신 이적과 기적 중에도, 예수는 언제나 자신의 공로와 의를.. 2020. 11. 4.
쉬운 삶 한희철의 얘기마을(133) 쉬운 삶 안갑순 속장님이 몸져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고 끝정자로 내려갔습니다. 아직껏 가슴이 뛴다는 속장님의 얼굴이 많이 부어있었습니다. 강아지 두 마리가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깟 강아지 두 마리에 웬 수선이냐 할진 몰라도 이야길 들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일 년 내내 번 돈을 아껴 집사님 내외분은 강아지 두 마리를 샀습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사람 주먹보다도 작은 귀한 강아지였습니다. 그림같이 인형같이 생긴 강아지 두 마리를 방안에 키우며 며칠 동안은 고놈들 귀여운 맛에 하루 해가 짧았습니다. 들인 거금이 아깝지 않을 만큼 강아지들은 귀여움 투성이였습니다. 자식 없이 살아가는 노년의 외로움을 그렇게 이겨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사고가 나던 날, 마침 바깥 볕.. 2020.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