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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506

하늘의 사랑법 신동숙의 글밭(245) 하늘의 사랑법 오늘도 하늘을 바라봅니다유년의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말을 배운 기억보다 하늘은 더 앞선 풍경입니다 배고픔보다 더 커다란 허기를 하늘은 언제나 든든히 채워주었지요그러다가 저도 모르게하늘을 닮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늘이 바라보는 곳으로저의 눈길도 따라서 바라봅니다하늘로부터 햇살이 내려오는 길을빗물이 내려오는 길을 하늘이 걸어가는 길은땅으로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어린날에 산길을 내려오다가 만난 다정한 벗강아지풀 토끼풀 꺾어 제 팔목에 매듭짓다 보면뭉친 마음이 어느새 풀처럼 풀리던 기억처럼 하늘의 발걸음은 낮아져가장 낮은 땅으로작고 작은 생명에겐 단비로가난한 집 눅눅함을 말려주는 햇살과 바람으로 하늘은 세상의 모든 생명을 그 둥그런 품에 가득 안고서몸속까지 스며든 살갑고 고마운보.. 2020. 10. 4.
비가 내리는 날엔 신동숙의 글밭(244) 비가 내리는 날엔 비가 내리는 날엔다가오지 않은 미래보다는 저 멀고도 아득한 옛날이 가슴을 두드립니다 기억하지 못하는끝이 보이지 않는 가슴 밑바닥으로부터그리움이 밀물처럼 차오릅니다 빗방울이 떨어진 자리마다 흙이 패이고 흙탕물이 고이고가슴은 질퍽해져 뒤죽박죽이지만 끊임없이 내려앉는 빗소리에마음은 땅으로 낮아집니다 빗물이 처음 발길 닿은 곳에 잠시 고였다가 이윽코 낮은 곳으로 흘러내리듯가슴은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을 더듬습니다 비가 내리는 날엔빗방울처럼 연약해진 가슴이 잘게 부서져 내리는연약하고 낮은 가슴을 지닌 이들을 생각합니다 2020. 10. 3.
내 마음 경전 (經典) 신동숙의 글밭(243) 내 마음 경전 (經典) 오솔길 나무 그림자 보면서 시시하다고얼마나 많이 지웠나 물 웅덩이 하늘 그림자 보면서 싱겁다고얼마나 많이 버렸나 본래 마음내 마음 경전(經典) 그림자가 품고물 웅덩이가 품는다 2020. 10. 2.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 청도 운문사 신동숙의 글밭(242)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 청도 운문사 가을 하늘이 좋은 토요일 정오인데, 가족들이 저마다 다 일이 있다고들 합니다. 은근히 기대하던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모처럼 혼자서 길을 나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훌쩍 혼자서 집을 나서기 전에 "같이 갈래요?"하고 자녀들과 친정 엄마에게까지도 전화를 걸어서 일일이 다 물어보았기에,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홀가분하기만 합니다. 가뜩이나 온라인 등교로 두 자녀와 매일 집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그립기까지 했던 차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멀리까지 가지는 못하고 차로 달려서 한 시간 이내에 있으면서 조용히 책도 읽고, 숲길 산책도 하고, 침묵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면 좋은 것입니다. 분도 명상의 집, 통도사, 석남.. 2020. 9. 28.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졌는가? 신동숙의 글밭(241)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졌는가? 초가집은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스케치북에 그리고 그리던 제 마음의 고향집입니다. 어린날의 그림 속에는 작은 초가집 한 채가 있고, 오른편엔 초가 지붕을 훌쩍 넘는 나무 한 그루, 왼편엔 장독대가 있고, 둘레에 싸리와 나무로 엮은 울타리는 키가 낮으며 성글고, 집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감싸고, 집 앞으로는 작은 개울물이 흐르는 그런 마음속 풍경을 그림으로 그릴 때면, 언제나 마음이 따스해져오면서 평화로웠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의 성지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변함없이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이 좋아하는 그림을 따라서 비록 혼자서 걸어온 길이지만, 그 길에 만나게 된 벗님들에게서도 나와 같은 마음의 성지(聖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2020. 9. 27.
낭독(朗讀) 신동숙의 글밭(240) 낭독(朗讀) 곁에 아무도 없는 적막감이 밀려올 때 묵상 중에도 흔들려서 말 한 마디 건져올릴 수 없을 때 책을 펼쳐보아도글이 자꾸만 달아날 때 책을 소리내어 읽어줍니다내가 나에게 읽어줍니다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다독이고 다독이듯이 2020. 9. 25.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신동숙의 글밭(239)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땔감이래도 줏어다가 부뚜막 한 켠에 쟁여 드리고 싶은 집 가난한 오막살이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 책으로 둘러쌓인 방 서넛이 앉으면 꽉 차는 쪽방에서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 한 자락만 들려주셔요 * '바보처럼 착하게 서 있는 집'은 권정생 선생님의 노래 상자 제목에서 인용 - 권정생 詩. 백창우 曲. 2020. 9. 24.
한마음 신동숙의 글밭(238) 한마음 그 옛날 당신이 내어준 한마음살갗을 스치는 바람인 듯가고 오지 않는 물결인 듯 까맣게 태운 마음 한 알가난한 마음에 품기로 하였습니다 바람결에 뭍어온 풀향 한 자락에물결에 내려앉은 별빛 한 점에그 한 말씀을 새기기로 하였습니다 2020. 9. 22.
해인사, 엄마하고 약속한 가을 소풍 신동숙의 글밭(237) 해인사, 엄마하고 약속한 가을 소풍나무골이 진 마루바닥으로 아침해가 빛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아침, 이렇게 가을이 옵니다. 해의 고도가 낮아져 집안으로 깊숙히 들어오는 만큼 이제는 시선을 안으로 거두어 들여야 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눅눅하던 가슴으로 마른 바람이 불어오는 오늘 같은 토요일 아침엔, 숲이 있는 한적한 곳이면 어디든 가서 머물러, 그동안 안으로 여몄던 가슴을 활짝 펼쳐 널어놓고 싶은 그런 날씨입니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하는 헤아림으로 잠시 가슴속 여기저기를 들추어보았습니다. 지난 초여름 밀양 표충사 작은 암자 뒷마당에 보리수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고, 계곡물에 산딸기를 헹구어 먹던 날, 친정 엄마하고 약속했던, 가을이 오면 해인사에 함께 가기로 한 일.. 2020.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