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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506

목사님, 참선방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왔어요 신동숙의 글밭(254) 목사님, 참선방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왔어요 아침에 눈을 뜨니 가을 하늘이 참 좋아서, 이 아름다운 하늘을 오래도록 보고 싶은 한 마음이 산들바람처럼 불어옵니다. 그리고 보이는 하늘 만큼이나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펼쳐지는 내면의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은 한 마음이 잔잔한 물결처럼 일렁이는 가을 아침입니다. 구름처럼 자욱한 욕심을 걷어낸 텅빈 하늘, 무심한 듯한 공空의 얼굴은 어쩌면 사랑뿐인 하나님의 얼굴을 닮았는지도 모른다는 누군가의 얘기가 귀를 간지럽힙니다. 그냥 쪼그리고 앉아서 가만히 푸른 가을 하늘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실실 웃음이 흘러나오는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늘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은 하늘 만큼 땅 만큼입니다. 그처럼 맑갛게 갠 내면의 .. 2020. 10. 13.
달개비 신동숙의 글밭(253) 달개비 인파人波에 떠밀려 오르내리느라 바닷가 달개비가 들려주는 경전經典을 한 줄도 못 읽고 말 한마디 못 붙이고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답니다 2020. 10. 12.
알고 보면 신동숙의 글밭(252) 알고 보면 허리 굽혀 폐지 주우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알고 보면 어느 독립운동가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더욱 허리 굽혀 인사드려야겠다 2020. 10. 11.
헛걸음이지 않도록 누군가 신동숙의 글밭(251) 헛걸음이지 않도록 누군가 가을날 산길을 걷는 걸음이헛걸음이지 않도록 누군가 떨어진 잎 사이로도토리 알밤이 반질반질 땅바닥을 보며 걷는 걸음이헛걸음이지 않도록누군가 집안에 뒹구는 종이 조각들 차곡차곡 하늘을 보며 걷는 걸음이헛걸음이지 않도록누군가 까맣게 태우는 밤별들을 흩어 놓으신 2020. 10. 10.
환승 신동숙의 글밭(250) 환승 친정 엄마가 아침 햇살처럼 들어오시더니 가방도 안 내려놓으시고서서 물 한 잔 드시고 "이제 가야지" 하신다무슨 일이시냐며 불러 세우니 "버스 환승했다" 하시며떠날 채비라 할 것도 없이 부지런히 걸어도 10분이 넘는 거리를저녁 햇살처럼 걸어가신다 2020. 10. 9.
떠도는 물방울 하나 신동숙의 글밭(249) 떠도는 물방울 하나 망망대해(茫茫大海) 망망대천(茫茫大天)떠도는 물방울 하나 깜깜한 밤이래도 걱정 없어요돌고 돌아서 제자리길 잃을 염려 없어요 연약하여 부서진대도 상관 없어요부서지면 더 작은 물방울더 가벼울 터이니 언제든 고개 들면해와 달과 별이 그 자리에서한결같이 지켜보고 있으니 2020. 10. 8.
글숲 신동숙의 글밭(248) 글숲 글숲에서 길을 찾기도 하지만종종 길을 잃기도 하지요 키 큰 나무와 무성한 수풀 속에서길이 보이지 않으면 가만히 눈을 감지요달과 별이 어디 있나 하고요 고요히 눈을 떴을 때 나뭇잎 사이로 해가 빛나면맘껏 해를 마주보기도 하고 햇살에 춤추는 먼지 한 톨에 기뻐하지요 2020. 10. 7.
동틀 녘 참선방에서 쫓겨나다 신동숙의 글밭(247) 동틀 녘 참선방에서 쫓겨나다 이 세상에서 내가 앉을 자리가 어디인가 하고 찾다 보면, 예수가 이 세상에 머리 둘 곳 없다 하시던 말씀과 살포시 겹쳐집니다. 잠시 앉을 자리야 얼마든지 있지만, 제가 찾는 건 잠시 앉을 자리가 아닌 오래 앉을 자리입니다. 오래 앉을 자리로 치자면 제 집도 오래 앉을 곳이 못 됩니다. 집안 살림이란 것이 있어서, 때가 되면 끼니를 챙겨야 할 자녀들이 눈 앞에 어른거리고, 세탁 바구니엔 빨랫감이 쌓이고, 설거지거리가 쌓이고, 먼지가 쌓이고,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살림살이 속에서 과연 홀로 앉았는 일이란 널뛰기와 같습니다. 차 한 잔을 우려내는 3분의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았는 일도 일상 속 가족들에겐 게으름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3분이.. 2020. 10. 6.
순간 신동숙의 글밭(246) 순간 가까이 다가갈수록 향기 짙은고요히 깊어질수록 아름다운 매 순간이 꽃이더라모든 순간이 사랑이더라 슬픔은 눈물꽃으로 피우고아픔은 앓음앓음 한숨꽃으로 피우고 어린아이의 눈물웃음꽃으로 다시 피어나는햇살 머금은 아침이슬의 웃음꽃으로 빛나는 그러한 순간이 되는 길을고독과 침묵의 귀 기울임 말고는 나는 알지를 못한다 2020.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