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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506

가을비와 풀벌레 신동숙의 글밭(236) 가을비와 풀벌레 한밤에 내려앉는 가을 빗소리가 봄비를 닮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밤이면빗소리에 머물다가 저도 모르게 잠들곤 하였습니다 순하디 순한 빗소리에 느슨해진 가슴으로 반짝 풀벌레밤동무가 궁금해집니다 맨발로 풀숲을 헤치며숨은 풀벌레를 찾으려는 아이처럼 숨죽여 빗소리를 헤치며풀벌레 소리를 찾아 잠잠히밤하늘에 귀를 대어봅니다 가전 기기음인지 풀벌레음인지 마음이 문전에서 키질을 하다가자연의 소리만 남겨 맞아들입니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빗소리도 발걸음을 늦추어 더 낮아지고 풀벌레 소리는 떠올라가을밤을 울리는 두 줄의 현이 되었습니다 가을비와 풀벌레는한 음에 떠는 봄비와 꽃잎의 낮은 음으로 2020. 9. 20.
붉은 하늘 저 너머에는 신동숙의 글밭(235) 붉은 하늘 저 너머에는 달밤을 떠올리면 문득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 베네딕토회 왜관 수도원에 수련장으로 계시던 진 토머스 신부님은 이제는 머리가 하얗게 샌 독일인 신부님입니다. 이 이야기는 진 토머스 신부님을 아주 존경하시는 한국인 박 안셀모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카톨릭 수도승으로 구도의 삶을 살고 계시는 진 토머스 신부님은 젊은 시절부터 한국의 불교에도 관심이 많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스님들을 직접 만나뵙고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는데, 그 중에는 그 옛날 가야산의 호랑이 성철 스님도 계십니다. 그렇게 많은 스님들과 만나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말다툼이 되고 꼭 자기하고는 싸움이 되더라는 얘기를 하십니다. 그런 스님들과의 만남 중에서 가장 좋았.. 2020. 9. 15.
고구마 속이 익기까지 신동숙의 글밭(234) 고구마 속이 익기까지 마당에 모처럼 숯불을 피웠다. 검은 숯 한덩이가 알이 굵은 감자만 해서 불을 지피는데도 시간이 배나 걸리지만, 한 번 불이 옮겨 붙기만 하면 오래오래 타오르기에, 불을 지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기도 굽고 햄도 굽느라 모처럼 남동생 손이 바쁘다. 마당 가득 하얗게 피어오르는 숯불 연기가 어스름한 저녁 하늘로 평온한 이야기 물길을 터 서로의 가슴으로 잔잔한 물길을 내어준다. 남동생은 처음 회사에 들어갈 때부터 스스로 고기를 구웠는데, 아직도 굽고 있다고 한다. 이제와서 안 구으면 승진했다고 그러는가 건방지다고 생각할까봐 집게를 내려놓을 수가 없다는 얘기에, 어려서부터 누나보다 헤아리는 속이 깊은 남동생이.. 2020. 9. 14.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 신동숙의 글밭(233)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 먼 별을 보듯 바라본다별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석에도 갈 수 없는 고향집을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벗님을 온라인 등교로 저쪽 방에서 뒹구는 아이들을오도가도 못하여 집안을 서성이고 있는 나를 먼 별을 보듯 바라본다별 하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가슴에는 언제나 하늘이 흐르고추억 같은 별 하나쯤은 있어서 마음으로 바라볼 수록 빛나는 별을그리워할 수록 더 가까워지는 별을 별과 별 사이에 우주적 거리에는커다란 침묵이 흐르고바람이 멈추고 너도 나도 아름다운 별 하나가 되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만큼 평화가 숨쉰다 2020. 9. 13.
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 신동숙의 글밭(232) 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 언젠가부터 스쳐 보이는 것이 있다그것은 잠이 깨려는 순간눈도 채 뜨지 못한비몽사몽 간에새벽녘이나 아침 나절에 잠들 무렵이면낮동안 있었던 일 중에서마음에 걸리는 일해결되지 못한 일후회스러운 일아쉬운 일잘못한 일그리운 일 다 기억나지 않는 꿈 속의 일이지만밤새 내 몸은 웅크린 채지나온 하루를 품는다 그렇게 내 안의 나는지나온 하루를 알처럼 품고서잠 속에서도 잠들지 못하고 꿈 속에서 게워내고 게워내고 해가 뜰 무렵이면가장 커다란 한 알로 오롯히 영글어잠시 스치듯 감은 눈으로 보이는 것은얼굴이기도 하고장면이기도 하고빈 가슴에 태양처럼 떠 안겨 주고는돌아온 새날을 또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용서 해 주세요살려주세요함께 해 주세요 나는 매일 아침눈도 뜨지 못한 채간.. 2020. 9. 12.
"빛으로 물들일꺼야, 다이너마이트처럼" -BTS 신동숙의 글밭(231) "빛으로 물들일꺼야, 다이너마이트처럼" -BTS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중 제 가슴에 새겨진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다." 한국의 방탄소년단(BTS)의 가 세운 빌보트 싱글 차트 1위라는 이 영광스러운 소식을 더불어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이 한없이 생각난다는 건 행복한 일입니다.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수많은 외침 속에서도 배달민족('배달'은 '밝다'의 옛말)의 밝고 커다란 하나의 하늘인, '한'의 정신(얼)을 유유히 지켜온 선조들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별처럼 찬란히 빛나고 있는 우리의 선조들과 별이 되신 대한독립운동가들입니다. 하늘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분들께 차 .. 2020. 9. 11.
'나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 신동숙의 글밭(230) '나는 무엇인가?' 하는 물음 들숨 날숨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20대 초반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 같은 물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왠지 그 물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포괄적이고 우주의 조화에 걸맞는 물음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나의 몸은 인간의 몸이지만,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 중에서 보다 가까운 물질은 무엇인가 하고요. 지구의 구성 원소인 물(水),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의 오행과 연관 지어서 거듭 되묻고는 합니다. 어딜 찾아가서 생년월일시에 따른 사주로 알아보기 이전에 스스로에게 묻고 거듭 주의를 기울이는 이러한 일은 마음을 바라보는 일, 즉 명상에 가깝습니다. 밖에서 .. 2020. 9. 9.
먼저 비우면 저절로 채워지는 호흡 신동숙의 글밭(229) 먼저 비우면 저절로 채워지는 호흡 모든 생명은 숨을 쉬면서 살아갑니다. 숨이 붙어 있으면 산 목숨이오, 숨이 끊어지면 생명이 다했다고 흔히들 얘기합니다. 평생 우리 몸에서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 호흡이지만, 오장육부의 자율신경계와는 달리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자율 의식으로 그 완급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 또한 호흡인 것입니다. 숨을 내쉬고 이어서 숨을 들이쉬는 그 사이에 삶과 죽음이 있으며 또한 그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본다는 선각자들의 말씀이 마음을 환하게 합니다. 그보다 앞서 흙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다는 천지창조의 말씀에서도 생기 즉 숨의 생명력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날숨이 먼저인지 들숨이 먼저인지 그 이치를 가만히 헤아리다 보.. 2020. 9. 8.
마스크를 쓴 얼굴이 아름다워요 신동숙의 글밭(228) 마스크를 쓴 얼굴이 아름다워요 마스크를 쓴 얼굴이 아름다워요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우리를 지키기 위한 안전띠지요 마스크를 쓴 눈빛이 사랑스러워요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고마운우리를 살리기 위한 생명띠지요 버스와 지하철에서식당과 카페에서광화문 광장에서산과 바닷가에서단 둘이 있을 때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고내리지 않으려고언제나 오래 참는 마스크 속의 인내와 절제는 감사와 기쁨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낮아진우리들 사랑의 새로운 호흡법이지요 화평과 온유의 고요해진 숨결로가슴속 아주 작은 소리까지 언제나 귀를 기울여요 2020.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