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철의 '두런두런'1160 치악산 오르기 한희철의 얘기마을(76) 치악산 오르기 치악산에 올랐다가 탈진해서 내려왔다. 아무려면 어떠랴 했던 건강에 대한 과신이 문제였다. 아침 점심 모두 거른 빈속으로 치악은 무리였다. 그럭저럭 물도 떠 마시며 올라갈 땐 몰랐는데, 내려오는 길에 몸이 풀어지고 말았다. 같이 올라간 김기석 형과 손인화 아우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민망했다. 기대한 대로 마음이 텅 비기는커녕, 빈속엔 밥 생각이 가득했다. 그나마 형이 들려주는 신선한 이야기가 흐느적대는 몸을 지탱해 주었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과신의 어리석음과, 도전할 만한 정상을 스스로 포기한 채 살아가는 내 삶의 무력함을 절실히 깨달은 하루였다. - (1991년) 2020. 9. 6. “뭘 해도 농사보다야 못하겠어요?”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5) “뭘 해도 농사보다야 못하겠어요?” 버스에서 정용하 씨를 만났다. 작은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있었다. 용하 씨는 요즘 문막농공단지에 취직을 하여 다니고 있다. 기골이 장대한, 30대 중반이긴 하지만 작실마을에선 힘쓸만한 몇 안 되는 젊은이였는데 농사를 그만두고 얼마 전에 취직을 했다. “힘들지 않아요?” 버스에서 내려 같이 들어오며 용하 씨에게 물었다. “할만 해요. 근데 딴 건 다 괜찮은데 배고파서 힘들어요. 새참 먹던 버릇이 있어 그런가 봐요.” 웃으면 두 눈이 감기는 그 너털웃음을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흙 일궈 삼십년 넘게 살아온 사람이 공장에 나가 쇠를 깎는다는 게 어찌 할 만 한 일이겠는가. 어머니 가슴 같은 흙 일구던 손으로 쇳조각을 깎아대니, 어찌 .. 2020. 9. 5. 어느 수요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4) 어느 수요일 광철 씨가 아프단 말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폐가처럼 썰렁한 언덕배기 집, 이미 집으로 오르는 길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잡풀이 수북이 자라 올랐고, 장마 물길에 패인 것이 그대로라 따로 길이 없었습니다. 흙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좁다란 방에 광철 씨가 누워있었습니다. 찾아온 목사를 보고 비척 흔들리며 힘들게 일어났습니다.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더욱 야위었습니다. 퀭한 두 눈이 쑥 들어간 채였습니다. 이젠 학교에 안 가는 봉철이, 아버지 박종구 씨, 광철 씨, 좁다란 방에 둘러 앉아 함께 두 손을 모았습니다. 빨리 낫게 해 달라 기도하지만, 내 기도가 얼마나 무력한 기도인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며칠의 몸살보다는 몸살이 있기까지의 어처구니없는 삶이 더 크기 때.. 2020. 9. 4. 더딘 출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3) 더딘 출발 요 며칠 동안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사택에 들러 숙제를 했다. 섬뜰의 승호, 종순이, 솔미에 사는 지혜 등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었다. 그들로선 하기 힘든 숙제였다. ‘화장실에 가서 사람이 많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면 ‘줄을 섭니다.’ 하고 답하는 문제는 단순하고 쉬운 것이었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아직 글을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데 있었다. 아이들은 문제가 무얼 요구하는지 읽질 못했다. 아내가 문제를 읽어주면 그제야 아이들은 대답을 한다. 그러나 대답한 내용을 쓰질 못한다. 아내가 써 주면 그걸 보고서야 그리듯 답을 쓰는 것이었다. 학교 들어가기 전 한글은 물론 덧셈, 뺄셈, 피아노 심지어는 영어까지도 미리 배워 학교에 들어가서는 다 아.. 2020. 9. 3. 고르지 못한 삶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2) 고르지 못한 삶 “날씨가 고르지 못해서 힘들지요?” 수요 저녁예배 성도의 교제시간, 피곤이 가득한 교우들께 그렇게 인사했을 때 김영옥 집사님이 대답을 했다. “날이 추워 걱정이에유. 담배가 많이 얼었어유.” 잎담배를 모종하고서는 비닐로 씌웠는데도 비닐에 닿은 부분이 많이 얼었다는 것이었다. 날이 추우면 얼어 죽고, 비가 안 오면 말라죽고, 많이 오면 잠겨 죽고, 그나마 키운 건 헐값 되기 일쑤고. 고르지 못한 일기.고르지 못한 삶. - (1991년) 2020. 9. 2. 짧은 여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1) 짧은 여행 마을에 결혼을 하는 이가 있어 모처럼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좋은 날, 아침부터 찬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고생고생 키운 딸을 보내는 어머니의 기쁨과 보람, 그 뒤에 깔린 아쉬움을 보았습니다. 신명나는 춤을 췄지만 춤사위에 담긴 마음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서점에 들렀습니다. 모처럼 찾은 서울, 잠깐이라도 내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찾아간 종로서적엔 책도 많고 사람도 많습니다. 2층 한 쪽 구석에 나란히 쌓인 책도 보았습니다. 내가 쓴 책이 낯선 이를 맞듯 서먹하게 나를 맞았습니다. 이제야 찾아오다니, 내 무관심에 쀼루퉁 화가 난 듯도 싶었습니다. 산책하듯 책과 사람 사이를, 말과 침묵.. 2020. 9. 1. 남철 씨의 교회 사랑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0) 남철 씨의 교회 사랑 주일저녁, 초종을 치러 나갔더니 예배당에 불이 켜 있다. 누가 일찍 왔을까 문을 열었더니 남철 씨다. 얼마 전 돌아온 광철 씨 동생 남철 씨, 그가 교회 마루를 청소하고 있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떠나 있는 동안 교회 생각 많이 났다는 그의 말이 빈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떠나서 깨달은, 전엔 몰랐던 교회 사랑을 남철 씨가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광고시간, 그 따뜻한 마음을 교우들께 알렸고 그 마음 박수로 받았을 때, 남철 씨는 히죽 예의 익숙한 표정으로 웃었다. 단강을 떠나 소식 끊겼을 때도 눈에 선했던 그 웃음을. - (1991년) 2020. 8. 31. 견뎌야 할 빈자리 한희철의 얘기마을(69) 견뎌야 할 빈자리 여름성경학교가 끝나던 날, 빙 둘러서서 인사를 나누던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하나 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흘간 함께 했던 시간을 두고 벌써 정은 싹터 헤어짐이 아쉬운 것이다. 경림이와 은희가 먼저 눈물을 보였고 그러자 내내 참았던 눈물이 따라 터진 것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풍금 의자에 마이크를 잡고 앉아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던 나 자신도 벌써부터 눈물이 목젖까지 차올라 겨우겨우 참아내야 했다. 나마저 울고 나면 와락 눈물바다가 될 것 같았다. 문득 선생님들이 떠난 뒤의 교회 빈 모습이 떠올랐다. 며칠이긴 했지만 활발하고 의욕 있는 선생님들로 교회는 생기에 넘쳤었는데 모두 돌아가면 남는 건 나 혼자뿐, 다시 빈자리를 견뎌야 한다. .. 2020. 8. 30. 좋았던 집에도 들어가기가 싫어졌습니다 한희철의 얘기마을(68) 좋았던 집에도 들어가기가 싫어졌습니다 20여 년 동안 운전기사로 일해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번 돈을 아껴 모아 꼬박꼬박 저금을 했습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주택부금을 부은 것입니다. 한 푼 한 푼 적은 돈이지만 내 집 꿈을 꾸며 쓸 것 안 쓰고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만 어느 날 그는 마침내 내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추첨에서 당첨이 된 것입니다. 좁다란 아파트지만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셋집 아니고 내 집인데요. 20여 년 동안 모은 돈이 꼭 아파트 값은 되어 그 값 치르고 나니 고생한 보람도 있고 여간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밥 먹듯 이사 고생시켰던 부인, 자식들에게도 난생 처음 뿌듯했으니까요. 그런지 두 달만의 일입니다. 그가 깊은 회의에 빠졌.. 2020. 8. 29. 이전 1 ··· 46 47 48 49 50 51 52 ··· 1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