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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1158

어느 수요일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4) 어느 수요일 광철 씨가 아프단 말을 듣고 찾아갔습니다. 폐가처럼 썰렁한 언덕배기 집, 이미 집으로 오르는 길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잡풀이 수북이 자라 올랐고, 장마 물길에 패인 것이 그대로라 따로 길이 없었습니다. 흙벽돌이 그대로 드러난 좁다란 방에 광철 씨가 누워있었습니다. 찾아온 목사를 보고 비척 흔들리며 힘들게 일어났습니다.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더욱 야위었습니다. 퀭한 두 눈이 쑥 들어간 채였습니다. 이젠 학교에 안 가는 봉철이, 아버지 박종구 씨, 광철 씨, 좁다란 방에 둘러 앉아 함께 두 손을 모았습니다. 빨리 낫게 해 달라 기도하지만, 내 기도가 얼마나 무력한 기도인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며칠의 몸살보다는 몸살이 있기까지의 어처구니없는 삶이 더 크기 때.. 2020. 9. 4.
더딘 출발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3) 더딘 출발 요 며칠 동안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사택에 들러 숙제를 했다. 섬뜰의 승호, 종순이, 솔미에 사는 지혜 등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었다. 그들로선 하기 힘든 숙제였다. ‘화장실에 가서 사람이 많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면 ‘줄을 섭니다.’ 하고 답하는 문제는 단순하고 쉬운 것이었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아직 글을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데 있었다. 아이들은 문제가 무얼 요구하는지 읽질 못했다. 아내가 문제를 읽어주면 그제야 아이들은 대답을 한다. 그러나 대답한 내용을 쓰질 못한다. 아내가 써 주면 그걸 보고서야 그리듯 답을 쓰는 것이었다. 학교 들어가기 전 한글은 물론 덧셈, 뺄셈, 피아노 심지어는 영어까지도 미리 배워 학교에 들어가서는 다 아.. 2020. 9. 3.
고르지 못한 삶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2) 고르지 못한 삶 “날씨가 고르지 못해서 힘들지요?” 수요 저녁예배 성도의 교제시간, 피곤이 가득한 교우들께 그렇게 인사했을 때 김영옥 집사님이 대답을 했다. “날이 추워 걱정이에유. 담배가 많이 얼었어유.” 잎담배를 모종하고서는 비닐로 씌웠는데도 비닐에 닿은 부분이 많이 얼었다는 것이었다. 날이 추우면 얼어 죽고, 비가 안 오면 말라죽고, 많이 오면 잠겨 죽고, 그나마 키운 건 헐값 되기 일쑤고. 고르지 못한 일기.고르지 못한 삶. - (1991년) 2020. 9. 2.
짧은 여행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1) 짧은 여행 마을에 결혼을 하는 이가 있어 모처럼 서울을 다녀왔습니다. 대절한 관광버스를 타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좋은 날, 아침부터 찬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고생고생 키운 딸을 보내는 어머니의 기쁨과 보람, 그 뒤에 깔린 아쉬움을 보았습니다. 신명나는 춤을 췄지만 춤사위에 담긴 마음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서점에 들렀습니다. 모처럼 찾은 서울, 잠깐이라도 내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찾아간 종로서적엔 책도 많고 사람도 많습니다. 2층 한 쪽 구석에 나란히 쌓인 책도 보았습니다. 내가 쓴 책이 낯선 이를 맞듯 서먹하게 나를 맞았습니다. 이제야 찾아오다니, 내 무관심에 쀼루퉁 화가 난 듯도 싶었습니다. 산책하듯 책과 사람 사이를, 말과 침묵.. 2020. 9. 1.
남철 씨의 교회 사랑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70) 남철 씨의 교회 사랑 주일저녁, 초종을 치러 나갔더니 예배당에 불이 켜 있다. 누가 일찍 왔을까 문을 열었더니 남철 씨다. 얼마 전 돌아온 광철 씨 동생 남철 씨, 그가 교회 마루를 청소하고 있었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떠나 있는 동안 교회 생각 많이 났다는 그의 말이 빈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떠나서 깨달은, 전엔 몰랐던 교회 사랑을 남철 씨가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광고시간, 그 따뜻한 마음을 교우들께 알렸고 그 마음 박수로 받았을 때, 남철 씨는 히죽 예의 익숙한 표정으로 웃었다. 단강을 떠나 소식 끊겼을 때도 눈에 선했던 그 웃음을. - (1991년) 2020. 8. 31.
견뎌야 할 빈자리 한희철의 얘기마을(69) 견뎌야 할 빈자리 여름성경학교가 끝나던 날, 빙 둘러서서 인사를 나누던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하나 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흘간 함께 했던 시간을 두고 벌써 정은 싹터 헤어짐이 아쉬운 것이다. 경림이와 은희가 먼저 눈물을 보였고 그러자 내내 참았던 눈물이 따라 터진 것이었다. 눈물을 흘리는 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풍금 의자에 마이크를 잡고 앉아 마지막 시간을 정리하던 나 자신도 벌써부터 눈물이 목젖까지 차올라 겨우겨우 참아내야 했다. 나마저 울고 나면 와락 눈물바다가 될 것 같았다. 문득 선생님들이 떠난 뒤의 교회 빈 모습이 떠올랐다. 며칠이긴 했지만 활발하고 의욕 있는 선생님들로 교회는 생기에 넘쳤었는데 모두 돌아가면 남는 건 나 혼자뿐, 다시 빈자리를 견뎌야 한다. .. 2020. 8. 30.
좋았던 집에도 들어가기가 싫어졌습니다 한희철의 얘기마을(68) 좋았던 집에도 들어가기가 싫어졌습니다 20여 년 동안 운전기사로 일해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번 돈을 아껴 모아 꼬박꼬박 저금을 했습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주택부금을 부은 것입니다. 한 푼 한 푼 적은 돈이지만 내 집 꿈을 꾸며 쓸 것 안 쓰고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만 어느 날 그는 마침내 내 집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추첨에서 당첨이 된 것입니다. 좁다란 아파트지만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셋집 아니고 내 집인데요. 20여 년 동안 모은 돈이 꼭 아파트 값은 되어 그 값 치르고 나니 고생한 보람도 있고 여간 좋은 게 아니었습니다. 밥 먹듯 이사 고생시켰던 부인, 자식들에게도 난생 처음 뿌듯했으니까요. 그런지 두 달만의 일입니다. 그가 깊은 회의에 빠졌.. 2020. 8. 29.
부자와 빈자 한희철의 얘기마을(67) 부자와 빈자 저승길 심판관 앞에 한 부자가 섰다. 세상 살 때 그러했듯 부자는 위세가 당당했다. 그를 본 심판관이 말했다. “불쌍한 인생아, 너는 부유했지만 네 부의 기초는 다른 이의 눈물이었다. 괴롬의 방으로 가거라.” 부자는 힘없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본, 역시 부자였던 이가 몹시 두려운 빛으로 섰다. 심판관이 말했다. “위로 받을 지라, 인생아. 네 부의 기초는 네 땀이었다. 땀이 네게 부를 주었을 때 넌 괴로워했다. 어느 게 네 몫이며 어느 게 나눌 몫인지를. 위로의 방으로 가라.” 부자에게 내리는 판결을 본 한 빈자가 다행스런 얼굴로 심판관 앞에 섰다. 한동안 빈자의 얼굴을 쳐다볼 뿐 말이 없던 심판관이 입을 열었다. “어리석은지고, 그댄 가난했지만 오직 너를 위해 가.. 2020. 8. 28.
처절한 점심 한희철의 얘기마을(66) 처절한 점심 지난번 과정자격심사 때 최경철 목사를 만났다. 최북단인 대대리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신학교 동기다. 차를 나누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한 말에 우리는 배를 잡고 웃었는데,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교역자 월례회를 하고선 다음 장소를 정하는데 아무도 나서는 교회가 없었다. 점심 대접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한참을 그러고 있을 때 최 목사가 손을 들고 일어나 말했다. “우리 대대리 교회는 작지만 다음번엔 우리 교회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그냥 국수라도 말아 조촐하게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려고 일어섰고 생각한 대로 말하는데, 말하던 도중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조촐하게’라는 말이 ‘처절하게’로 바뀐 것이다. 처절하게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했으니 그.. 2020. 8. 27.